#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301화
작은 인형무대.
그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손가락만 한 인형들 위로 반투명한 실이 연결되더니 잠시 후 하나둘 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 됐다됐어. 일단 출석체크부터 할까?”
조율자를 본 딴 인형이 장난스럽게 이야기하자 여태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배교자의 인형이 대답했다.
“헛짓거리하지 말고 본론부터 이야기해라.”
“까탈스럽기는…….”
불만스럽게 투덜거린 조율자가 다른 인형들을 둘러보았다.
자신들의 외형을 본 딴 인형들과 달리 아무런 특색도 없는 인형들. 그 모습을 바라본 조율자가 물었다.
“이번에 참석한 게 『계승』이랑 『공양』이었던가?”
“맞아요.”
“그래.”
담담하게 대답하는 두 인형. 그 너머에 있을 주시자들의 수장들을 떠올리며 조율자가 슬쩍 웃었다.
“생각보다 참여율이 저조하네. 꽤 큰 사건이라 생각했는데.”
“다들 따로 준비하는 일들이 있으니까요. 당신도 그렇지 않나요?”
『계승』의 물음에 조율자가 허리에 팔을 얹으며 불만스럽게 바라보았다.
“어허. 지금은 주시자가 아니라 십악으로서 참가한 거라고. 구분은 확실하게 해.”
“하아. 그냥 나오질 말았어야 했는데…….”
머리를 짚으며 골치 아프다는 듯 중얼거리는 『계승』의 모습에 『공양』이 조율자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번에 『탈각』의 힘은 쓰지 않겠다는 뜻인가?”
“정확히는 쓰고 싶어도 못 쓰는 거지. 고래사냥 때문에 쓸 만한 녀석들은 전부 개조 중이거든.”
고래, 검은 바다에 서식하는 ‘백경’의 사냥을 준비한다는 이야기에 『계승』과 『공양』이 살짝 관심을 드러냈다.
근원의 파편은 둘째 치고 백경에게서 나오는 부산물만 해도 상당히 유용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 지원은 얼마든지 환영이야. 완등자들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좀 여유 있게 가고 싶거든.”
“흐음. 나중에 정해지면 말씀해 주세요.”
“참고하지.”
주시자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무대 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인형사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적당히 하고 본론으로 넘어가. 배교자가 인형 부숴먹기 직전이니까.”
인형사의 이야기에 셋의 시선이 가만히 있는 배교자의 인형으로 향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움직이지 않지만 위쪽의 투명한 실이 끊어질 것처럼 흔들거린다.
그 모습에 조율자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그래. 그럼 이번 표적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고.”
무언가 주섬주섬 꺼내는 것처럼 움직이던 조율자가 헛기침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디보자. 불명자의 권능은 사용 확인. 성화공의 권능은 아직 의심단계고 순례자의 권능은 미확인이지만…….”
조율자의 인형이 허공, 본체의 손에 들린 자료를 읽으며 피식 웃었다.
“총대주교라는 거창한 직위까지 받았으니 습득했다고 봐도 무방하겠네.”
일곱 명의 완등자 중에 무려 세 명에게서 권능을 배워낸 기상천외한 존재.
이번 표적인 이세훈에 대한 정보를 나열한 조율자가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자. 이 정신 나간 권능 수집가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다들 편하게 이야기해 보자고.”
조율자의 이야기에 잠시 침묵이 감돌더니 『계승』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전부터 의문이었는데…… 정말로 권능을 습득한 건가요?”
“왜. 안 믿겨져?”
“그야 당연하죠. 완등자의 권능을 한 개도 아니고 세 개나 습득하다니. 살아 있을 리가 없잖아요.”
일반적인 기술은 습득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심상에 맞춰지지만 완등자의 권능은 다르다.
권능에 담긴 완등자의 심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으며 습득한 사람이 반대로 거기에 영향을 받아 심상이 변질되게 된다.
그런데 그걸 한 개도 아니고 세 개나 습득하다니.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진작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권능을 습득한 게 아니라 권능이 담긴 무구를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저는 그쪽이 더 현실성 있다고 보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계승』의 모습에 조율자가 속으로 웃었다.
‘사실 다섯 개라고 하면 절대 안 믿겠네.’
방금 나열한 것은 어디까지나 공개적으로 알려진 사실뿐. 이전에 이세훈과 직접 싸워본 적이 있는 조율자는 승천제와 원견사의 권능도 확인했었다.
‘반지나 활을 매개체로 쓴 게 아닐까도 싶었지만…… 이번 일로 확실해졌어. 그놈은 모든 권능을 직접 습득했다.’
아무리 완등자들의 권능을 무구를 통해 우회적으로 사용한다고 해도 조금씩 영향을 받기 마련.
그렇기에 무구를 통해서 부작용을 피하고 있었다면 다섯 개나 다루는 시점에서 탈이 났어야 정상이지만, 이세훈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니 무구의 사용여부를 떠나서 이세훈의 심상이 복수의 권능을 받아들일 수 있는 특수한 형태로 보는 것이 옳으리라.
“뭐, 그럴 가능성도 있을 순 있겠지.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런 전제로 움직여야 한다는 거야. 뭐가 됐든 완등자들한테 이래저래 관심 받는 건 사실이잖아?”
“흐음. 그렇기는 하죠.”
“뭐, 부외자인 우리 둘은 넘어가고…… 오늘 모임을 제안한 당사자들 의견부터 들어봐야겠네.”
조율자가 조용히 있던 둘을 바라보았고, 『공양』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전체적인 계획은 전적으로 맡기지. 병력은 특화의식을 마친 전투원 다섯 명을 투입하겠다.”
“……정말인가요?”
“그래.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도록 대기 중이다.”
『공양』의 이야기에 『계승』이 놀란 눈으로 보았다.
무구와 육체를 일체화시켜 힘을 폭발적으로 상승시키는 특화의식.
『공양』 내부에서도 성공한 이들이 20명이 채 안되는데 그중 다섯 명이나 투입하겠다고 한 것이다.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오시네요. 이세훈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나요?”
“지금 녀석을 확보한다면 1년 안에 성화공을 죽일 수 있다. 그 정도만 말해두지.”
완등자를 죽일 수 있는 재료.
그 이야기에 조율자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나쁘지 않네. 너는?”
조율자의 물음에 그동안 미동도 하지 않던 배교자의 인형이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내가 직접 간다.”
배교자의 이야기에 세 인형, 그리고 무대 옆에서 책을 읽던 인형사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십악인 배교자가 직접 나선다는 것은 사실상 무슨 일이 있어도 이세훈을 붙잡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재밌겠네.”
그 대답에 조율자가 씩 웃으며 셋을 바라보았다.
“그럼 나도 보조할 수 있는 몬스터 두 마리 정도 보내줄게. 바깥으로 유인하는 건 어떻게 할래?”
아무리 병력이 강력해도 이세훈을 바벨 밖으로 끌어내지 않는 이상 의미가 없다.
조율자의 이야기에 모두가 고민하던 그때. 『계승』이 입을 열었다.
“장담은 못 하지만…… 한 가지 방법이 있어요.”
“뭔데?”
조율자의 물음에 『계승』이 슬쩍 웃었다.
“절대로 무시 못 할 미끼를 쓰는 거죠.”
* * *
2학기가 시작된 지 어느덧 일주일째.
모든 생도가 부전공 신청을 마치면서 본격적으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기존에 재학 중이던 생도들에게는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올해 입학한 1학년들은 조금 달랐다.
“이것도 모르겠다고? 흐음.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자자. 여름방학 때 다들 예습해 왔지? 안 했다고? 하하. 그거야 내 알 바 아니고.”
“바벨에 들어오고 싶은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고작 너 하나를 위해서 내가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있나?”
1학기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혹독하게 강의를 펼치며 과제 폭탄을 던지기 시작한 교수들.
기본적인 재능은 1학기 때 확인을 끝마쳤으니 이제는 정신력을 비롯하여 다양한 능력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극한의 상황에서만 터져 나오는 본인도 모르는 재능. 그것을 발굴하기 위해 교수들이 매섭게 채찍을 휘둘렀고.
[……답답해 죽겠군.]
이세훈 역시 그 채찍에서 피해갈 수는 없었다.
[명계의 마력을 분리해서 일점으로 압축시킨 다음 경계의 권능으로 그걸 다시 연결하란 말이다. 이게 그렇게 어렵나?]
발할라의 최상층인 15층의 특수대련장.
총괄책임자의 허락을 받아야 들어올 수 있는 내부에서 허공에 떠있는 눈, 위르겐의 명안이 이세훈을 노려보았다.
[다시 해라.]
위르겐의 명령에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리면서도 경계의 권능을 발동하여 명계의 마력을 밖으로 끄집어냈다.
우우웅
무저갱과 같은 어둠 속에서 흘러나온 검은 마력. 그 음산한 기운을 휘감은 이세훈이 다시금 경계의 권능을 발동했다.
전신에 퍼져 있던 명계의 마력이 손바닥 위로 모여들었고 조금씩 일점으로 압축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느다란 선으로 변한 명계의 마력을 이세훈이 명계와 다시 연결하려던 그 순간.
파스스─
압축된 마력이 맥없이 풀려서 흩어졌다.
[…….]
“…….”
그 모습을 본 위르겐의 눈이 가늘어졌고, 그 시선을 받은 이세훈이 헛기침했다.
“흠흠. 명안이 그렇게 쉬운 기술은 아니잖아요. 첫 수업부터 너무 급하신 거 아닙니까?”
[쉽지는 않지. 하지만 그건 경계의 권능을 다룰 줄 모르는 녀석들을 이야기하는 거지 네놈은 다르다.]
스스스
위르겐의 눈 주변으로 새로운 선들이 그어졌고, 이내 하나둘씩 떠지면서 동시에 쳐다본다.
불명자 위르겐을 상징하는 사령마법 ‘명안冥眼’. 그것이 다시 한 번 이세훈의 앞에서 펼쳐진 것이다.
[경계의 권능을 다룰 수 있는 이들에게 명안은 수천 수백 개도 만들어낼 수 있는 기본기에 지나지 않아. 이것도 앞서 설명했을 텐데.]
“…….”
[권능은 훔쳐 배운 놈이 명안 하나를 못 만들어서 끙끙대다니…… 한심해서 말이 안 나오는군.]
수십 개의 눈을 찌푸리며 바라보는 위르겐. 그 시선에서 느껴지는 짜증에 이세훈도 눈매를 찌푸렸다.
‘뭐 때문에 안 되는지 뻔히 알면서 억지 부리기는…….’
위르겐의 말대로 명안은 경계의 권능을 이용한 기술 중에서도 기본기에 속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기술 자체가 육체의 제약에서 벗어난 존재, 위르겐처럼 뼈밖에 안남은 이들에게 맞춰져 있다 보니 몸이 멀쩡히 있는 이세훈이 사용하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위르겐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갈구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총대주교니 뭐니 한 자리 꿰차고 나니까 간절함이 없나보군. 그럴 거면 그냥 그놈한테 가서 신성마법이나 배워라.]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이번에 임명받은 순례교의 총대주교 직위를 들먹이며 갈구는 위르겐.
제대로 기분이 상한 것 같은 그 모습에 이세훈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 양반이 설마 이런 걸로 질투를 할 줄이야.’
배교자의 습격을 유인하기 위해서 칼과 의논하여 만들어낸 총대주교직.
명칭만 다르지 권한은 다른 대주교들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그 소식을 접한 세간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순례교의 차기교주. 이세훈으로 결정?!]
[수십 년간 공석으로 비어져 있던 순례자의 후계자, 드디어 채워지는가.]
이세훈을 차기 교주로 확정짓는 것은 물론이며 이미 권능까지 전수받았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조금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두 사람이 노리던 반응이었기에 그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문제는 위르겐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눈치가 없었군. 교주 자리가 내정된 녀석한테 사업체니 뭐니…… 쯧]
이전에 사업체를 주겠다던 자신의 제안은 곧장 거절해 놓고 순례교의 직위는 곧장 받아들이다니.
그 소식에 자존심이 있는 대로 상한 위르겐이 시도 때도 없이 총대주교직을 들먹이며 핀잔을 주고 있는 것이다.
“아니…… 아까 사정이 있어서 잠깐 임명받은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왜 그러십니까.”
[누가 뭐라 했나?]
“지금도 뭐라하고 계시…….”
[아무튼.]
이세훈의 말을 단칼에 잘라낸 위르겐이 수십 개의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았다.
[다음 수업까지 명안을 완벽히 습득해 와라. 실패하면 이 쓸데없는 짓거리도 그만둘 테니 그리 알고.]
스륵
자기 할 말만 하고 그대로 사라져버리는 위르겐.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나이도 먹을 대로 먹은 양반이 거참…….’
여러모로 깨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위르겐이 저렇게 투덜거리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기도 했다.
자신에게 권능을 가르치기 위해 ‘명계지리학’이라는 강의까지 만들어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대외적으로 버림받은 상황이 됐으니 조금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뭐, 그래도 진심으로 화내는 건 아니니까 괜찮겠지.’
위르겐이 진심이었다면 저렇게 투덜거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냉정하게 대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적인 부분은 모두 배제하고 순수하게 이해득실만 따지는 관계. 아마 그때는 수업은 물론이고 도움을 받는 것도 이전보다 까다로워졌으리라.
‘그건 그렇고…… 저쪽은 아직 반응 없나?’
대련장을 나오면서 휴대폰을 꺼내든 이세훈은 세계각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살펴보았다.
자잘한 사건사고를 제외하면 대체로 평화로운 분위기. 그 모습에 이세훈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뭔가 바로 할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조용하네.’
지난 주말. 총대주교직을 임명을 발표한 이후 『여명』에게 십악과 주시자로부터 한 가지 제안이 도착했다.
내용은 이번 기회에 이세훈을 처리할 생각이 없는가.
거절하긴 했지만 저쪽에서는 따로 계획을 준비할 것이고, 당연히 즉각 어떤 움직임을 보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주말이 지나고 나서도 별다른 소식이나 이야기가 없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려는 건가?’
지금 상황을 보면 그게 맞기는 하지만, 배교자가 칼을 향해 보이던 집착을 생각하면 얌전히 기다릴 가능성은 낮다.
‘아니면 모르는 척 잠깐 나가볼까…….’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 아니면 확실한 기회를 기다릴 것인지. 이세훈이 곰곰이 생각하던 그때.
우우웅
진동과 함께 휴대폰에 걸려온 전화.
화면에 떠오른 류은하의 이름을 본 이세훈이 무언가 느끼며 곧장 전화를 받았다.
“예. 학과장님.”
-으음…….
전화를 걸기 직전까지 고민하고 있었는지 머뭇거리는 류은하. 그에 이세훈이 가만히 기다리고 있자 조심스레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세훈 생도. 혹시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습니까?
“시간은 괜찮은데…… 무슨 일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이세훈의 물음에 류은하가 목소리를 낮추며 대답했다.
-전설 등급 무구, 오행무구 중 하나를 발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