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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299화 (299/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99화

모든 것이 새하얗게 물든 공간.

은혜의 권능으로 만들어낸 작은 기도실 안쪽에서 칼은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기도를 이어나갔다.

자신을 비롯하여 전 인류에게 내려진 수많은 은혜. 그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있는 지금도 계속해서 전 세계에 은혜가 내려지고 있다.

‘이 무한한 은혜에 언제쯤 보답할 수 있을까…….’

완등에 도달하여 순례교라는 거대한 집단을 이끌게 되었지만, 그 힘과 영향력을 모두 발휘해도 신의 은혜에 갚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의 창조물에게 끝없이 은혜를 내리는 신. 그리고 그것을 보답하지도 못하는 나약한 창조물.

기도를 올릴수록 커져가는 무력함에 칼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고.

콰아아앙!!!

“?!”

우렁찬 폭발과 함께 눈물이 옆으로 튀었다.

“…….”

한참 기도에 빠져 있던 칼의 눈이 떠졌고 폭발의 영향으로 살짝 흐트러진 기도실 내부가 보였다.

‘이번에는 제대로 만들었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터뜨리면 자신의 권능을 뚫고 들어와 충격을 가할 수 있단 말인가.

감탄과 당혹스러움을 함께 느끼며 칼이 폭발이 들린 벽을 바라보았고, 일부분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며 바깥이 보였다.

기기긱─쿠궁!

10m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회색 탑.

겉모습만 보면 저게 도대체 무슨 건물인지 용도를 짐작할 수 없었지만 이전에 설명을 들은 칼은 정체를 알고 있었다.

푸쉬이익!

탑 곳곳에 있는 화구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회색 연기.

저 무식하게 커다란 탑 전체가 이세훈이 성역에서 직접 만들어낸 ‘화로’인 것이다.

“……그새 더 커졌군.”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분명 5m 정도였는데 그새 두 배 가까이 커졌다.

뭘 어떻게 만들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거대한 회색화로에 칼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저게 가능한가?’

이 성역 내부에서는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선 반드시 은혜의 권능을 사용해야만 한다.

이걸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바라기만 하면 그대로 나타나니 기적처럼 놀랍고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금 달랐다.

‘저렇게 복잡해 보이는 장치를 처음부터 끝까지 명확하게 이해하다니…….’

은혜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그 물건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세훈의 화로를 예시로 든다면 각 부품의 위치, 작동 방식, 재료의 상태 등 무엇 하나라도 어긋난다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쿠구궁!

하지만 이세훈이 만들어낸 회색화로는 큰 문제없이 작동했고, 심지어 다른 재료들까지 만들어서 제련을 펼치고 있었다.

저게 과연 바벨에 들어간 지 1년도 안 된 생도가 할 수 있는 일이 맞는 걸까.

‘정말 알 수 없는 분이야…….’

여러모로 의문이 많지만 저 힘이 신의 은혜를 갚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저 비밀이 무엇이든 자신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리 생각하며 칼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스스스

주변의 기도실이 깔끔하게 사라졌고, 화원 밖으로 나온 칼은 이세훈의 작업 공간으로 넘어왔다.

카앙! 카앙!

한쪽에서 울려 퍼지는 우렁찬 쇳소리.

그곳을 향해 다가가자 거대한 화로의 맨 아래, 한쪽 화구를 열어두고 작업하는 이세훈의 모습이 보였다.

모루 위에서 동그란 원판을 때리며 모양을 잡고 있는 이세훈. 눈빛도 또렷하고 움직임도 늘어지지 않았는데 모습을 본 칼이 감탄했다.

‘벌써 한 달이나 됐는데 저렇게 멀쩡하다니…….’

성역 내부에서는 밥을 먹거나 잠을 자지 않아도 문제가 없지만 허기와 수면욕 같은 정신적인 피로는 그대로 느껴진다.

거기에 성역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신의 존재감 때문에 오래 머무를수록 피로가 심해졌고, 수많은 고행을 겪어온 대주교들조차 한 달을 버티지 못했다.

그런데 이세훈은 거기에 제련까지 펼치고 있는 데도 쌩쌩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

그 모습을 본 칼은 자신도 모르게 과거를 떠올렸다.

자신과 함께 성역에서 수백 일을 기도했던 사내.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이해해 주던, 정확히는 그렇다고 생각했었던 제자를 떠올리며 칼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이 세계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째서…….’

도대체 무슨 이유로 신을 부정하며 자신을 떠난 것일까.

칼이 씁쓸함을 느끼며 과거의 기억을 흘려보내고 있을 때. 뒤늦게 그 모습을 발견한 이세훈이 망치를 멈췄다.

“어. 벌써 나오셨어요? 아직 2주 밖에 안 됐는데…….”

한 달 동안 기도하겠다고 기도실에 들어간 양반이 왜 벌써 나온 것인가. 이세훈이 의아하게 바라보자 칼이 과거의 기억을 떨쳐내며 부드럽게 웃었다.

“기도실에 폭발음이 들려서 잠깐 나왔습니다.”

“그래요? 그럼 아까 그 세팅이 맞았었나…….”

이세훈이 화로를 바라보며 중얼거리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칼이 물었다.

“작업은 잘 되어가고 있나요?”

“예? 아아. 작업이라면…….”

화로를 힐끗 올려다본 이세훈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반반이네요.”

은혜의 권능은 성역에서 지낼수록 익숙해지고 있지만 정작 본래 목적이었던 새로운 설계도, 리 켄세의 권능을 이용한 물건이 떠오르지 않는다.

좀처럼 풀리지 않는 연구에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렸다.

‘다른 완등자들은 얼추 감이 잡혔는데 말이야.’

완등에 도달한 이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낼 수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가설이었지만, 회귀 전의 기억을 되짚어보고 연구를 반복한 끝에 이세훈은 그 가설이 사실이라고 확신했다.

예를 들어 은혜의 권능.

인류와 신을 소통시켜 신성력을 만들어낸 이 권능은 칼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회귀 전에 칼이 배교자에게 살해당한 이후로도 신성력은 계속해서 존재했다.’

신성력이 정말로 권능에서만 비롯된 힘이었다면 칼이 죽으면서 함께 사라졌어야 했을 터.

하지만 신성력은 세계가 멸망해 가던 그날까지 존재했고, 그것이 권능과 개념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여기까지는 잘 풀렸지만 문제는 리 켄세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영감탱이랑 관련된 개념은 하나도 없단 말이지…….’

루트비히는 여백, 위르겐은 명계, 탐구자는 아카식.

세 사람은 이렇게 개념으로 추정되는 것이 확실히 존재했고 하백연 역시 포착의 권능을 사용할 때 보이는 ‘기회’가 개념으로 의심되었다.

이렇듯 이세훈이 알고 있는 완등자들은 그들의 권능과 관련된 개념을 지니고 있었는데 리 켄세는 회귀 전을 포함해서 단 하나도 없는 것이다.

‘불이랑 관련된 세계도 없고…… 대장장이들한테 요상한 힘이 생겼다는 말도 없고…….’

도대체 성화공의 권능은 무슨 개념을 만들어낸 것일까.

자신의 추측이 틀렸다고 하기는 다른 완등자들에게서는 모두 발견되었기에 이세훈은 리 켄세가 그것을 일부로 숨기고 있다고 판단했다.

원래 산골짜기에 틀어박혀서 무구만 만들어대던 양반인 만큼 그럴 가능성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성화를 토대로 분석하면 금방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쉽지 않구만.’

어쩌면 자신의 가설이 틀렸고 다른 완등자들이 우연히 맞아떨어진 게 아닐까.

지난 한 달 동안 생각해 온 전제를 다 갈아엎을지 이세훈이 고민하고 있을 때.

“그럼 저한테 말씀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칼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순례자님한테요……?”

“이세훈 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저도 종종 성법기를 만들곤 하니까요. 다른 시선을 보면 돌파구를 찾을지도 모르죠.”

“그건…… 그러네요.”

확실히 같은 완등자이니 자신보다는 더 쉽게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빠르게 결정을 내린 이세훈은 어디까지 말할지 정한 다음 칼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육아방침을 둔 대결이라…… 두 분 모두 그 아이를 아끼시나 보군요.”

설명을 다 듣고 작게 웃음을 터뜨리는 칼. 그 모습에 이세훈이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정말 아꼈다면 부모랑 생이별을 시키진 않았겠죠.”

그것도 1~2년으로 끝났으면 모를까 회귀 전에는 무려 19년, 리 페이가 성인이 되고 나서야 만날 수 있게 허락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런 짓을 했었으니 리 켄세를 좋게 보긴 힘들었다.

“그것도 그렇죠. 그래도 이전에 그런 일이 있었으니 어느 정도 경계하시는 건 이해합니다.”

“……그런 일이요?”

“아. 며느리 분에 대해서 못 들어보셨나 보군요.”

갑작스러운 칼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며느리라면…… 지병으로 죽었다고 하지 않았나.’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 리 페이를 낳으면서 죽었다고 들었는데 그 이야기가 갑자기 왜 나오는 걸까.

이세훈이 의아하게 바라보자 칼이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야기했다.

“리 켄세 님의 며느리 분은 돌발성 발화질환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계셨습니다.”

“발화질환…….”

“원인은 심상이 붕괴되면서 마력이 폭주를 일으키는 것으로 부상을 입은 영웅분들에게도 종종 일어나는 현상인데…… 이게 희귀병으로 분류된 이유는 통증 때문입니다.”

“통증이요?”

전신에 불꽃이 붙는 만큼 엄청난 통증을 유발하는 것일까. 이세훈의 되물음에 칼이 대답했다.

“불꽃에 대한 통증을 못 느끼거든요.”

“……정말입니까?”

“예. 환자에 따라 다르지만 몇몇은 불꽃이 가져다주는 안정감에 중독성까지 느낀다더군요. 그것 때문에 매우 위험한 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불꽃이 피어올라 전신을 불태우는 데 정작 당사자는 통증은커녕 편안함을 느낀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이세훈은 그게 얼마나 위험한 병인지 곧장 알 수 있었다.

‘아니, 이걸 병이라고 할 수 있나?’

이야기만 들어보면 마치 ‘저주’에 가까운 증상이 아닌가.

이세훈이 묘한 기시감을 느끼는 사이 칼이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치료법이 마땅히 없어 지금으로선 전신의 마력을 억누르는 게 최선책이죠. 리 켄세 님의 며느리분도 그렇게 생활하셨지만…… 출산 때 문제가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문제라는 건…….”

이세훈의 물음에 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저도 모릅니다. 당시 리 켄세 님이 제게 도움을 요청하셨지만, 도와드릴 수 없었거든요.”

“…….”

안타깝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칼의 모습에 이세훈의 눈매가 살짝 찌푸려졌다.

당사자가 거절한 것도 아닌데 칼이 치료를 하지 않았다면 이유는 하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 신의 뜻인가 뭔가 그건가 보구만.’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저런 이야기만 들으면 사이비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속으로 혀를 찬 이세훈이 칼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 희귀병은 언제부터 생겨난 겁니까?”

“흐음. 만마전과의 냉전 이전에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네요.”

“…….”

칼의 이야기에 이세훈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력이라는 새로운 힘이 등장하고 자연스레 그와 관련된 다양한 질병들이 새롭게 생겨났다.

저 발화질환도 그중 하나일 수도 있지만, 이세훈은 어째서인지 그 증세가 거슬렸다.

‘심상이 붕괴되면서 생기는 병인데…… 증세가 저렇게 일치할 수가 있는 건가?’

화속성마력이 폭주해서 몸에 불이 붙는 건 공통적으로 일어날 수 있지만, 통증까지 느끼지 않는 건 조금 이상했다.

아무리 비슷한 심상이라 할지라도 사람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마련. 그런데 어떻게 모두가 똑같이 통증이 없는 불꽃을 만들어내는 걸까.

‘단순한 희귀병이 아니라 체질이라면……?’

그들이 만들어내는 불꽃이 만약 하나의 ‘개념’이라면, 수많은 이가 똑같은 증상을 겪어도 설명되지 않을까.

“…….”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에 이세훈의 표정이 굳어졌고, 점심의 식당에서 자신의 몸을 휘감은 성화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때 아주 잠깐 느껴졌던 안도감을 떠올리며 확신했다.

“골치 아프네…….”

리 켄세의 권능이 전 인류에게 저주나 다름없는 힘을 가져다줬다는 것을.

* * *

황산에 자리 잡은 리 켄세의 공방.

안쪽의 화로는 여전히 거세게 타오르고 있지만, 주변에는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

그 광경을 한 사내가 묵묵히 바라보고 있을 때. 뒤쪽으로 담배를 입에 문 여인, 류 메이린이 걸어 들어왔다.

“부하가 이것 좀 보여주라더라.”

“…….”

류 메이린이 내민 휴대폰을 건네받은 사내가 화면에 떠오른 사진을 바라보았다.

전신에 유리처럼 투명한 불꽃이 솟구쳐 있는 이세훈. 그 모습을 본 사내, 『공양』의 수장이자 성화공의 첫 번째 제자인 케이든 밀러가 미소를 지었다.

“찾았군.”

성화공을 죽일 수 있는 재료가 드디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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