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97화
파라데이의 중심지에 위치한 수도원.
거대한 나무를 둘러싸고 있는 원형의 건물에 들어선 이세훈은 자신을 안내하는 카말을 바라보았다.
“파라데이 수도원은 교단에서 오랫동안 연구해 온 차세대 성법기를 개발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장소입니다. 공방이자 연구소, 그리고 교육기관을 겸하여…….”
수도원의 설립 목적과 각 시설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하는 카말.
뭐가 그리 즐거운지 쉴 새 없이 떠드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이 영감이 원래 이렇게 말이 많았었나……?’
이세훈이 기억하는 카말은 온화하면서도 할 때는 확실하게 하는, 흔히 말하는 외유내강의 인물이었다.
순례자 칼 안데르센의 죽음 이후 붕괴하던 순례교를 수습하고 자신의 목숨까지 마신들과 맞서 싸우는 데 사용했던 교인이자 영웅.
그것이 회귀 전 순례교의 총대주교 카말 샤르마였지만, 지금은 사람이 조금 달랐다.
“건물의 양식이 독특하지 않습니까? 이건 순례교가 기존의 종교를 받아들이면서 그들의 양식이 섞인 탓에 생겨난 것인데 교단 내부에 이걸 좀 더 발전시켜 보자는 의견도…….”
“아, 순례교의 내부조직에 대해서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외부에서 종종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저희들은 다신교이며 다른 교리를 완전히 부정하진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기존에 흡수된 종교들이 제각기 교파로…….”
“이세훈 생도님께 말씀드리다 보니 옛날 생각이 나는군요. 과거의 저는 마법을 사용하던 평범한 영웅이었지만 한 전쟁터에서 교주님을 뵌 이후로…….”
한 이야기가 끝나면 세 개의 이야깃거리가 나오고, 세 개의 이야기가 끝나면 다시 아홉 개의 이야깃거리가 나온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쏟아지는 카말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떨떠름한 눈으로 보았다.
‘기억하던 거랑 너무 다르니까 적응이 안 되네.’
회귀 전에는 과묵하다는 소리까지 들었던 카말이 원래는 이렇게 말이 많았다니.
이세훈이 묘한 기분을 느끼며 쳐다보자 뒤늦게 그 시선을 알아차린 카말이 살짝 헛기침했다.
“흠흠. 죄송합니다. 제가 워낙에 뭔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지라…….”
“아닙니다. 친구들도 재밌게 듣고 있던걸요. 그렇지?”
이세훈이 뒤를 돌아보며 물어보자 반쯤 정신을 빼놓고 있던 제이크와 무관심한 표정을 짓던 에리카가 대답했다.
“으, 응. 그렇지.”
“조금은.”
방금까지 어떻게 듣고 있었는지 훤히 보이는 태도. 사람에 따라서는 기분 나빠할 수도 있었지만 카말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다른 분들이 모두 기억해 주시길 바라며 말하는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상대가 자신의 말을 흘려듣는 걸 아는 데도 저렇게 열심히 이야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세훈이 의아해하며 물어보자 카말이 담담히 대답했다.
“조금이라도 전해졌으면 하는 것이지요.”
도대체 뭘 전하고 싶어서 저리 쉴 새 없이 말하는 걸까.
이세훈이 좀 더 자세히 물어보려던 찰나. 네 사람의 목적지였던 공방의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가 파라데이 수도원의 공방입니다.”
카말이 공방의 입구를 부드럽게 열었고, 뜨거운 열기와 함께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먼지 한 톨도 보기 힘들던 복도 쪽과 마찬가지로 깔끔하게 정돈된 내부.
공방의 모서리에는 거대한 화로가 하나씩 놓여 있었는데 각각 다섯 개의 화구가 뚫려 있어 하나당 다섯 명씩 작업이 가능했다.
카앙! 카앙!
작업복을 입은 채 철을 달구고 두드리는 교인들. 그 자체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특이한 것은 중앙에 놓인 ‘물’이었다.
거대한 통에 담겨진 물. 거기에다가 교인들이 단조를 끝낸 무구를 집어넣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스스스
기포 대신 황금빛이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무구.
그렇게 담금질을 끝내고 물속에서 무구를 꺼내자 금속 사이사이에 황금빛이 깃들었는데 그 모습을 제이크와 에리카가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오…….”
“흐음…….”
그런 두 사람의 반응을 본 카말이 부드럽게 웃으며 옆에서 설명했다.
“방금 보신 것은 ‘세례洗禮’ 라고 불리는 작업입니다. 마력에 특화된 재료들을 신성력에 맞추는 작업이지요.”
“신성력에 맞춘다는 건…… 마력 대신 거기에 반응을 하는 건가요?”
“맞습니다. 성법기를 만들기 전에 하는 준비 단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신성력…….”
카말의 설명에 더욱 흥미를 드러내는 제이크와 에리카.
하지만 이세훈은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이런 기초적인 신성제련법은 회귀 전에 질리도록 연구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왜 여기에 데려왔는지가 궁금한데…… 도통 감이 안 잡히네.’
자신이 성화가 폭주한 모습을 보고 갑작스레 성법기를 만들지 않겠냐고 제안했던 카말.
회귀 전에 성법기를 연구했었던 이세훈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였지만, 카말은 그게 해결책이 될 것처럼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그 모습에 일단 공방까지 따라오긴 했지만 여전히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가.’
이세훈이 공방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그 모습을 본 카말이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카말의 제안을 따라 성법기를 만들어볼 것인가, 아니면 알고 있는 방법으로 성화를 길들여 볼 것인가.
잠시 고민하던 이세훈은 결정을 내리며 입고 있던 작업복의 윗옷을 벗었다.
“한번 해보죠.”
여기까지 와놓고 안 해보는 것도 찝찝하고 신성제련법을 안 쓴 지도 오래됐으니 나쁠 건 없다.
윗옷을 허리춤에 감은 이세훈은 공방 한쪽에 놓인 재료들 중에 품질이 가장 좋은 금속 하나를 집어 들었다.
‘성법기 전용으로 만들어진 합금이네.’
합금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이세훈은 아공간 포켓에서 소광의 망치를 꺼내들어 금속의 표면을 가볍게 두드렸다.
지잉─
망치를 통해 파고든 마력이 합금 깊숙이 파고들었고, 마력배열에 엉성한 부분을 바로잡으며 효율을 극대화시킨다.
그로인해 합금에서 울려 퍼지던 소리가 점점 맑아지더니 이내 종소리처럼 청아하게 변했다.
“……과연.”
그 모습을 본 카말이 살짝 감탄하며 웃었고, 재료 손질을 끝낸 이세훈이 화로의 앞으로 다가갔다.
‘조금 뜨겁구만.’
화구에 개별적으로 있는 스위치를 누르며 이세훈이 온도를 조정하고 있을 때. 한 기술자가 곁으로 조심스레 다가왔다.
“혹시 신성력이 없으시면 제가 인챈트를…….”
“아. 괜찮습니다. 없어도 될 것 같아요.”
“예?”
당황하는 기술자를 놔둔 채 이세훈은 온도를 맞춰놓은 화로에다가 합금을 집어 넣었다.
화륵!
앞서 마력배열을 조정한 덕분인지 금방 열을 흡수하며 달아오르는 합금.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은 공방 중앙의 물통으로 향했다.
‘본래 세례 작업은 신성력이 깃든 망치로 단조한다.’
마력을 담아서 단조해도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담금질을 할 때 신성력을 머금는 양이 몇 배로 차이나기에 사실상 필수나 다름없다.
그 때문에 신성력이 없는 대장장이들은 성법기를 만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화르륵!
이세훈이 마력을 불어 넣으면서 소광의 망치가 주홍빛으로 달궈졌고, 겉이 녹아내리기 직전 물통에 집어넣었다.
스스스
망치를 식히면서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파고드는 신성력.
그것을 딱 표면까지 받아들인 이세훈은 마력을 불어넣어 신성력을 가로막았다.
우우웅!
망치에 스며든 마력이 신성력을 가로막은 다음 그것을 바깥으로 밀어내며 특수한 형태로 뭉치게 유도한다.
마치 껍질처럼 망치에 맺히게 된 신성력.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이세훈은 화로 안쪽을 살폈다.
‘저쪽도 다됐네.’
붉게 달아오른 합금을 살핀 이세훈은 곧장 물통에서 망치를 꺼내들었다.
우웅!
붉은색에서 황금색으로 변한 소광의 망치.
그 모습에 공방에 있던 이들이 모두 놀란 표정으로 보았고, 이세훈은 그 빛이 사라지기 전에 합금을 집게로 꺼내 단조를 시작했다.
카앙! 카앙!
망치가 합금을 때릴 때마다 그 형태가 변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자루의 검으로 빚어져간다.
그 모습을 본 순례교의 기술자들은 모두 경악한 표정을 지었는데 첫 번째는 순수한 제련 실력에, 두 번째는 망치에서 검으로 옮겨지는 신성력 때문이었다.
카앙!
망치가 달궈진 검을 두드릴 때마다 표면에 맺힌 신성력이 못처럼 변해 내부에 박힌다.
그 과정이 반복되어 검 곳곳에 신성력의 조각들이 자리 잡았는데 그 형태가 마치 ‘회로’처럼 보였다.
“저건…… 각인 작업이잖아.”
세례 작업을 끝낸 무구에 회로를 만들어 성법기로 탄생시키는 각인 작업.
순례교의 기술자들은 두 작업을 절대로 동시에 진행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난이도 때문이었다.
카앙! 카앙!
아직 신성력에 특화되지 않은 금속에 회로까지 새겨 넣으면 자연스럽게 부하가 심해지고, 그 결과 조금만 실수해도 성법기는커녕 이도저도 아닌 고철이 된다.
그러면서 별다른 이점도 없어 사실상 제련을 어렵게만 만드는 것이다.
‘그냥 인챈트해서 하면 되는 걸 왜 굳이 저렇게…….’
‘빨리 만들어지는 것 말고 장점이 있었던가?’
자신이 모르는 뭔가 엄청난 이유가 숨겨진 게 아닐까.
이세훈의 명성을 생각한 기술자들이 여러 이유를 떠올렸는데 정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렇게 해야 내가 다 만들 수 있으니까.’
순례교의 기술자들은 신성력을 가졌으니 자신들이 각인 작업도 할 수 있지만, 회귀 전에 신성력이 없었던 이세훈은 늘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했다.
하지만 직접 만드는 게 아니다 보니 수백 번을 수정해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게 너무 답답해서 궁리해 낸 방법이 바로 동시진행이었던 것이다.
‘익숙해지면 그리 어렵지도 않고 말이야.’
카앙!
마력으로 신성력을 밀어내며 못처럼 만들고, 그것을 고스란히 검의 일부분에 꽂아 넣는다.
그 과정에서 무구 안에 마력이 약간 스며들긴 했지만 극소량이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우웅!
망치의 표면에 맺힌 신성력도 거의 사라졌고, 회로가 다 만들어지며 점차 성법기로 완성되어간다.
마무리만 남긴 이세훈은 단조를 끝낸 다음 중앙의 물통에 검신을 집어넣었다.
키이잉!
물속에서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검.
앞서 다른 무구들은 성질을 변환하는 정도였기에 신성력을 많이 빨아들이진 않았지만 이세훈이 만든 것은 이미 성법기로서 완성된 상황.
그로인해 자연스럽게 더 많은 신성력을 빨아들였고, 무구의 품질 역시 다른 기술자들이 만들 때보다 높아졌다.
‘이걸로 끝인가.’
회귀 전처럼 신성력을 사용하지 않고 펼친 신성제련법.
예전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 나쁘지는 않았지만, 막상 성화에 관한 깨달음은 아무것도 없었다.
‘도대체 뭐 때문에 성법기를 만들어보라고 한 거지?’
점점 완성되어가는 검을 바라보며 이세훈은 카말이 권유했을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재밌는 경험을 하면서 기분을 풀라고 한 것일까, 그도 아니면 성법기를 만들다가 우연히 신성력을 각성해서 어찌 해보라고 권유한 것일까.
‘저 영감이 그렇게 무책임한 생각을 할 리가 없어.’
회귀 전에 알던 것과 조금 다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카말의 본질까지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뜻을 펼치면서도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죄다 나사가 빠진 고위 영웅들 중에서도 그나마 존경할 부분이 있었던 노인.
그러니 자신이 모르는 단서가 있을 것이라고 이세훈이 생각을 곱씹어보던 그때.
‘……본질?’
어째서인지 입에 걸리는 단어.
마음속으로 그 단어를 중얼거리던 이세훈은 다시 물통 속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성법기를 바라보았고,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순례자와 배교자의 신성력은 왜 본질이 같을까.’
마력만 해도 속성이 다르면 서로 충돌하고, 속성이 같더라도 그 성질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부딪친다.
그런데 왜 완등자와 십악, 교주와 이단의 신성력이 서로 공명을 일으킬 정도로 본질이 같은 것인가.
그 의문을 계속해서 되새기던 이세훈은 회귀 전에 들었던 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흑염륜의 공명도, 내 진원공명도 딱히 특별한 게 아니다. 다른 녀석들이 머리가 굳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
“과정을 무시하고 시작과 끝만 봐라. 두 극점이 이어지면서 만들어지는 게 진정한 공명이다.”
염륜잔화창을 가르치던 도중에 광견이 해준 조언.
그때는 마력의 균형을 맞추는걸 뭐 저리 재수 없게 말하는 가 싶었지만, 지금은 그 조언이 다르게 느껴졌다.
‘시작과 끝을 이어 하나로 수렴시킨다.’
원형 경기장에서 출발점과 결승점을 일직선으로 그어둔다면 모두가 제각기 다른 길과 속도, 시간을 소요하더라도 결국 같은 곳에서 멈추게 된다.
그 심상이 이세훈의 머릿속에 정립된 순간. 물통 속의 성법기에서 한 차례 변화가 일어났다.
우우웅!
검에 맺힌 황금빛에 검은빛이 스며들었고, 이내 서로 뒤엉키더니 회색으로 변해 찬란하게 빛났다.
신성력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이질적인 빛. 그 광경에 모든 이들이 경악하며 바라보았고.
[‘신성력(A)’과 속성마력 ‘정토(D)’가 속성마력 ‘신력(A+)’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스킬 ‘순례의 기도(A+)’를 습득하셨습니다.]
이세훈의 몸에 새로운 힘이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