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92화
대련장에 흐르는 침묵.
갑작스러운 도전에 세 사람이 당혹스럽게 보았고, 이내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농담처럼 말한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싸워보자고 말한 것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한 번 싸울 때가 되긴 했군.”
팔짱을 푼 염성하가 아공간 포켓에서 두 자루의 창을 꺼내들며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누구랑 먼저 할 거지?”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이글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는 염성하. 예상한 그대로 반응에 이세훈이 슬쩍 웃었다.
‘역시 이놈이 제일 먼저 나서네.’
루이제는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하고 아미르는 제안의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고민하지만 염성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승부에 응한다.
타고난 투쟁심과 승부욕. 그것이 바로 광견, 염성하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마냥 좋은 건 아니지만.’
역시 한 번쯤 길들일 필요가 있다.
그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이세훈이 세 사람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따로따로 싸우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귀찮으니까 그냥 한꺼번에 덤벼.”
“……혼자서 싸우겠다고?”
“왜. 안 될 것 같아?”
이세훈의 물음에 염성하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만약 1학기 때의 이세훈이었다면 대장장이가 주제도 모른다고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무술만 사용해도 자신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것이며 전력을 다할 경우에는 간단하게 압승할지도 모른다.
더 이상 자신이 위가 아니다. 이전부터 그 사실을 깨닫고 있었기에 염성하는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대답했다.
“마음대로 해라. 나도 그렇게 할 테니.”
이야기를 끝낸 염성하가 대련장의 왼쪽 끝으로 걸어갔고, 여태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던 아미르가 물었다.
“전력으로 싸우실 겁니까?”
“너희들이 그런 수준이라면 그렇게 되겠지.”
“음…….”
이세훈의 대답에 아미르가 자연스럽게 대련장 곳곳을 향해 은근히 시선을 보냈다.
무언가를 알려주려는 듯한 모습. 그게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아차린 이세훈이 피식 웃었다.
“걱정 마라. 니들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으니까.”
“…….”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아미르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뜻이 전해진 것은 좋지만 또 너무 무시당하니 약간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이번 기회에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려드려야겠군.’
너무 몰아붙이지만 않으면 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 생각을 정리한 아미르가 입을 열었다.
“너무 방심하지는 마십쇼. 형님.”
조금 까칠하게 이야기한 아미르가 염성하가 있는 곳으로 향했고, 이세훈은 마지막으로 남은 루이제를 바라보았다.
“너는 쟤들처럼 뭐 할 말 없어?”
“…….”
이세훈의 물음에 루이제가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뒤쪽에서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 리 페이를 힐끗 보았다.
그러고는 잠시 동안 할 말을 고르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조카야?”
“응?”
“그 애 말이야.”
“아. 조카는 아니고 아는 사람 손녀야. 근데 그건 왜?”
지금 상황에서 리 페이가 누구인지가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이세훈이 의아하게 바라보자 루이제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크흠. 그냥 너랑 하나도 안 닮았는데 딱 붙어 있길래 누군가 했지.”
“그냥 구경하러 온 거니까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어. 그 이외에 궁금한 건 없어?”
이세훈의 물음에 루이제가 먼저 준비 중인 염성하와 아미르를 힐끗 보며 물었다.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는 거야?”
굳이 셋이서 덤비라고 한 것을 보면 뭔가 노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거기에 맞춰서 싸워야 하냐는 루이제의 물음에 이세훈이 담담히 대답했다.
“그냥 실전이라 생각하고 싸워.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게.”
“흐음.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루이제가 대련장의 왼쪽으로 향했고, 이세훈은 한 자리에 모여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대련을 준비해서 몸을 풀어주는 세 사람.
집중하려는 듯 아무런 대화도 없이 각자 준비했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예상 그대로구만.’
이번에 부르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이세훈이 자신의 뒤쪽에 숨어 있던 리 페이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얌전히 보고 있어야 돼. 알겠지?”
“네!”
이제 곧 대련을 본다는 사실에 잔뜩 흥분한 리 페이. 그 모습에 이세훈은 별다른 말을 더하지 않고 곧장 대련장의 오른쪽으로 향했다.
“보자…….”
세 사람의 맞은편에 선 이세훈이 대표로 허공의 패널을 두드리며 대련장을 가동시켰다.
후웅!
대련장의 외곽선에 검은 장막이 한 차례 솟구쳤다가 사라졌고 전신에 희미한 껍질이 덧씌워진 감각이 느껴진다.
대련시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호진으로 바벨의 기술과 비슷했는데 차이점이라면 발할라는 명계의 마력을 사용했다는 점이었다.
‘명계에 직접 공급받는 거면 죽을 일은 없겠네.’
아마 완등자나 S급 영웅이 전력으로 후려갈기는 게 아니라면 목숨은 건질 수 있지 않을까.
발할라의 시설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한 이세훈이 몸을 가볍게 풀어주고 있을 때. 대련장 중앙에 숫자가 떠올랐다.
[10]
저 숫자가 모두 줄어드는 순간 대련이 시작된다.
남은 시간을 확인한 세 사람이 자세를 잡으며 곧 있을 전투를 대비했고, 이세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8]
숫자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음에도 무구를 꺼내지도, 주변에 무언가를 설치하며 공격에 대비하지도 않는다.
[6]
여유롭게 이쪽을 보고만 있는 이세훈의 모습에 세 사람은 눈매를 찌푸리면서도 방심하진 않았다.
[4]
이세훈의 강함이 자신들과 다르다는 것은 곁에서 보면서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런 순간에는 불쾌해하기만 할 게 아니라 대비가 중요했다.
[2]
‘어중간하게 틈을 주는 대신 정면에서 으깬다.’
‘우선은 상황을 보고 형님의 움직임에 맞춰서 대응할까.’
‘일단 주변 장악부터.’
세 사람이 저마다 계획을 구상하고, 전력을 터뜨리기 위해 온몸의 힘을 끌어올린다.
그리고 마침내 대련장 중앙의 숫자가 [0]에 도달한 순간.
“……찾았다.”
이세훈이 두 눈을 빛내며 경계의 권능을 발동했다.
후웅!
명계의 어둠 속에서 나타난 세 마리의 언데드.
그 예상치 못한 수에 세 사람이 놀라면서도 곧장 자리를 박차고 제각각 움직였다.
콰앙!
두 자루의 단창을 움켜쥔 염성하가 검붉은 불꽃을 휘감으며 달려들었고, 아미르는 조금 거리를 벌린 채 뒤따라서 빙결연금으로 만든 암기를 투척한다.
정면에서 덤벼오는 두 사람의 모습에 이세훈이 고른 위르겐의 언데드들도 재빠르게 움직였다.
투웅─!
언데드 검사가 푸른 불꽃이 맺힌 검, 언데드 창술사가 명계의 마력이 휘감긴 창을 제각각 휘둘러온다.
자신을 향해 합격을 펼치는 두 언데드의 모습에 염성하가 두 눈을 빛냈다.
‘그리 강하지 않다.’
높게 쳐도 A급 정도. 거기에 화력특화인지 기술의 엉성함이 자신의 눈으로도 보일 정도다.
뒤쪽에서 쏘아진 아미르의 암기를 이용해서 언데드를 단숨에 박살 내기로 한 염성하가 전력을 다해 단창을 휘둘렀고.
키이잉─!
네 자루의 무구가 맞부딪치며 거센 공명음이 터져 나왔다.
파카앙!
그 울림에 아미르가 쏘아냈던 암기는 물론 두 손에서 만들어냈던 단검까지 산산조각 나며 깨졌고, 염성하의 창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조금만 힘이 풀렸어도 튕겨져 나가는 것을 넘어서 창을 놓쳐 버렸을 것 같은 반탄력. 그 예상치 못한 위력에 염성하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내 힘을 역이용하다니…….’
화속성마력과 암속성마력이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있는 염륜잔화창의 불꽃을 강제로 흩뜨리고, 다시 균형을 맞춰 공명현상을 일으킨다.
그로 인해 염성하의 제어에서 벗어난 공명음이 적아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휩쓸어버린 것이다.
카앙!
“큭……!”
휘청거렸던 언데드들이 재빠르게 자세를 다잡으며 덤벼들었고 염성하도 다급히 창을 휘둘러 맞서 싸웠다.
하지만 자신의 힘을 이용당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술을 펼치기가 까다로워졌고 전투에 이용하려던 암기가 모두 깨지면서 판도가 기울어졌다.
‘한 명만 붙잡아둘 수 있다면……!’
잠깐이라도 누군가 지원해 준다면 상황을 수습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안타깝게도 아미르에게 그런 여유는 없었다.
후웅!
“크윽……!”
네 개의 기다란 팔을 무기처럼 휘둘러오는 언데드의 모습에 아미르가 몸을 날리며 피했다.
단검만 있어도 이렇게 형편없이 피하지는 않았겠지만, 빙결연금을 펼치려고 해도 마력이 좀처럼 가다듬어지지가 않는다.
‘방금 공명이 너무 깊이 파고들었어…….’
종이 한 번 울린 뒤에도 희미한 진동이 계속해서 남아 있는 것처럼 체내에 스며든 공명이 마력의 운용을 방해한다.
마치 자신을 파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그 일격에 아미르가 이를 악물면서 흐트러진 마력을 가다듬었다.
‘조금만 시간을 벌면…….’
그러면 눈앞의 어설픈 언데드를 제압하고 염성하를 도와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
그 기회를 찾기 위해 아미르가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그때.
“……!”
고유스킬인 동천안을 통해 느껴지는 하나의 심상.
그것을 알아차린 아미르가 재빠르게 한쪽으로 몸을 내던지며 자리를 만들었고, 후방에 있던 루이제가 곧장 준비한 언령을 쏘아냈다.
【Vapour Mark】푸하악!
허공에서 터져 나오는 소량의 증기.
거기서 만들어진 물기가 세 언데드의 몸에 표식처럼 자리 잡았고, 그 모습을 본 루이제가 두 눈을 푸른색으로 빛내며 다음 언령을 내뱉었다.
【Chain Lightning】콰르르릉!
번개의 사슬이 허공을 찢어발기며 쏘아졌고, 눈 깜짝할 사이에 표식이 새겨진 세 언데드의 몸을 정확히 관통했다.
피하지 못할 만큼 빠르면서도 강력한 화력을 지닌 마법. 자신이 제대로 골랐다는 것을 확인한 루이제가 이어서 다음 언령을 준비했다.
‘어중간하게 공격해 봐야 어차피 재생한다. 그러니 지금 노려야 할 건…….’
언데드들이 마비된 사이 이세훈을 제압한다.
【Set─】루이제가 판단을 내림과 동시에 붉은 마법진이 전신에 채워졌고 이어서 다음 언령이 눈 깜짝할 사이에 장전된다.
그 모습에 이세훈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Death Bite】카아앙!
강철이 강하게 맞물리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전력을 다해서 펼쳐낸 루이제의 언령.
A급 영웅의 육체에도 충분히 타격을 줄 수 있을 정도였고, 급소를 제대로 노린다면 즉사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대련장에 방호진이 펼쳐져 있었기에 충격은 느끼지만 실제 부상으로 이어지진 않았고.
“컥…….”
“쿨럭…….”
“크윽…….”
세 사람이 바닥에 엎어진 채로 밀려오는 고통에 눈매를 일그러뜨렸다.
‘뭐가…… 어떻게…….’
분명히 이세훈을 향해 언령을 쏘아냈는데 어째서 자신들에게 날아든 것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루이제가 앞을 다시 보았고,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다.
“저건…….”
허공을 움켜쥔 채 네 개의 팔을 교차하고 있는 언데드.
그 손끝으로 공간이 희미하게 일렁거리고 있었는데 루이제는 그제야 어떻게 된 것인지 깨달았다.
‘공간마법으로 마법진을 날려 보낸 건가.’
만약 방금 쏘아낸 언령 그 자체를 막으려고 했다면 루이제 역시 거기에 대응해서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세훈은 루이제가 새로운 언령 대신 앞서 설정한 도착 지점, 몸에 채워진 붉은 마법진을 발동하기 직전에 이동시켰다.
그 결과 이세훈이 아니라 세 사람이 루이제의 언령에 제압당한 것이다.
“흐음…….”
바닥에 널브러진 세 사람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가장 먼저 루이제를 바라보았다.
“빠른 건 좋지만 제어는 똑바로 해야지. 그리고 적에게 자신의 언령이 이용당할 수 있는 가능성도 생각해두는 게 좋아.”
“윽…….”
“아미르 너는 마력 제어도 어설프고 술식의 종류도 너무 적어. 어떤 상황에서든 무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장점인데 못 쓰면 무슨 소용이야?”
“……맞습니다.”
풀 죽은 두 사람을 보며 이세훈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아무리 강하더라도 그걸 온전히 다루지 못하면 의미가 없어.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발목까지 잡아버릴 수 있지.”
고개를 돌린 이세훈이 말없이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염성하를 바라보았다.
“염성하 너처럼 말이야.”
“…….”
이세훈의 지목에 염성하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방금 지적에 반박할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불러낸 언데드들은 전부 A급이었고 스펙만 따지면 너희들이 훨씬 우세해. 그런데도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
“나는 너희들의 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만 너희들은 스스로의 힘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거기에 오합지졸인 것들도 조금 있고.”
삼견처럼 합이 잘 맞지 않더라도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만 제대로 알았어도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지적에 세 사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패배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형편없이 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형편없었나…….’
‘형님의 전력을 이끌어내기는커녕 내 힘도 제대로 못 쓸 줄이야.’
‘마법을 제어 못 해서 아군을 전멸시키다니…… 으윽.’
저마다의 이유로 부끄러움을 느꼈고, 이내 자리에서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정신적으로 힘들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지적받았다면 자신들이 할 일은 정해져 있다.
“다음에도 같은 방법이 통할 거라고는 생각마라.”
“말씀하신 부분 모두 고쳐오겠습니다.”
“보완해 둘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모두 보완한 다음 눈앞의 재수 없는 녀석에게 한 방 제대로 먹여준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알 수 없는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답답함에 세 사람이 각오를 다지던 그때.
“……너희들 지금 뭔 소리 하냐?”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왜 다 끝난 것처럼 말해?”
“방금 지적한 걸 다음까지 개선해오라는 거 아니었어?”
루이제의 물음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선은 해야지. 근데 다음이 아니라 오늘이야.”
“……뭐?”
“오늘 안에 전부 개선해서 끝낼 거라고.”
“…….”
이세훈의 이야기에 루이제는 물론 염성하와 아미르도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힘을 온전히 파악한다.
말로는 쉽지만 모든 기술을 재점검해야 하며 그것을 안정시키기 위해 수많은 경험이 필요했다.
즉,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무슨 수로 오늘 하루 만에 다 끝내겠다는 말인가.
“뭐, 너희들 반응도 이해는 한다. 수련에 지름길 같은 편법이 어디 있겠냐.”
정상을 향해가는 시간과 작고 사소한 경험 하나하나까지 모두 모이면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내는 것이다.
회귀 전에 수많은 영웅과 마주한 이세훈이었기에 그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고, 세 사람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했다.
“그러면 오늘은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시는 겁니까?”
“다 끝낸다니까. 같은 말을 몇 번하냐.”
“아니, 형님이 방금 지름길이 없다고 하셨잖아요.”
본인이 말해놓고 바로 잊어먹는 건 도대체 뭔가. 그런 세 사람의 시선에 이세훈이 슬쩍 웃었다.
“지름길이야 없지. 하지만 탈 건 있어.”
“……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맨발로 힘들게 뛰어다녀. 자전거든 오토바이든 탈 만한 게 있으면 타고 다녀야지.”
스스슥
이세훈을 중심으로 명계의 어둠이 널리 퍼졌고, 그 안쪽에서 수십 수백 마리의 언데드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그동안 니들 때려눕히려고 고안해 둔 방법만 수백 개는 되거든? 오늘 하루 만에 전부 때려 박아서 저 멀리까지 태워다줄게.”
회귀 전에 삼견의 기술을 연구하면서 구상한 파훼법.
그때는 셋 다 성장을 끝마친 상태라 기껏 써먹어도 곧장 대응해서 재미가 없었지만, 지금은 미숙한 상태인 만큼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어디보자. 이번에는 누구부터…….”
이세훈이 콧노래를 부르며 전투에 보낼 언데드를 고르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보던 세 사람이 시선을 교환했다.
서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는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망했군.”
“망했네.”
“망했죠.”
오늘 처음으로 세 사람의 뜻이 일치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