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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284화 (284/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84화

“새로운 특별지구는 생도들의 안목을 넓히며 보다 다양한 경험을…….”

단상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루트비히.

그 뒤쪽에 펼쳐진 화면이 실시간으로 UD그룹과 순례교가 관리하는 특별지구의 풍경이 영화처럼 지나갔고, 중앙광장에 모인 모두가 두 눈을 빛냈다.

그동안 승천제 한 사람이 관리해 온 바벨이라는 정원에 불명자와 순례자가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거기서 알 수 있는 소식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 승천제가 바벨에 자리를 내주다니…….’

‘형식적인 동맹관계가 아니야. 세 완등자가 진짜로 손을 잡은 거다.’

루트비히가 바벨을 얼마나 끔찍하게 아끼는지는 알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사실.

오죽하면 과거 바벨에 간섭하려고 했었던 고위영웅이나 전대 영웅 협회장, 정부관계자 등 끝이 좋았던 인물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그 승천제가 다른 누구도 아닌 완등자들에게 바벨의 자리를 나눠줬다.

해봐야 교수 몇 명이 추가되리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바벨에서의 위치가 더욱 중요해지겠구나.’

‘내부에서의 경쟁도…… 외부에서의 견제도 더 커지겠어.’

이번 발표로 바벨에 소속된 자들의 위상이 더욱더 높아졌고,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발전이 필요해졌다.

중앙광장에 모여 있는 모두가 그 사실을 깨달으며 의욕을 불태웠고.

“흐음…….”

이세훈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눈앞의 알림창을 보았다.

[관계 : 갱생更生]

과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받을 수는 있지만 그 일을 없었던 것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죄악감을 짊어진 채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그 고민이 해결되는 순간 새로운 관계가 찾아올 것입니다.

*대상이 갱생할 때마다 인연석이 생성됩니다.

*대상이 속죄하고 있을 때 인연석의 숙성 속도가 증가합니다.

*대상이 새로운 삶을 찾아가고 있을 때 인연석의 심상발현 확률을 증가시킵니다.

*현재 생성된 인연석 : 1개.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갱신된 김인철의 인연레벨.

입학식 내내 그 내용을 살펴봤던 이세훈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과거 『공양』의 기술자였으나 회의감을 느끼고 오행무구 중 하나인 화천태도를 빼돌려서 탈주했었던 김인철.

바벨의 습격 사건 이후 자신이 저질렀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제련학부의 지도교수직을 그만둔 뒤 모습을 감췄고, 그 이후로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인연레벨이 오르다니?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이세훈의 입장으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흐음…… 인연관계의 특이성이라고 봐야 하나.’

자신의 조언으로 김인철이 죗값을 치르고 새로운 삶을 찾아가기로 결심했었기에 그로 인한 결과도 자신의 덕분이 된다.

사람의 성격에 따라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기에 그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게 나타난 시기였다.

‘특별지구를 공개하는 그 순간에 딱 맞춰서 나타났다…… 이건 우연이라고 보기엔 힘들지.’

김인철을 직접 거두었던 루트비히인 만큼 속죄의 방법을 고를 때도 어느 정도 도움을 줬을 터.

그게 만약 이번 특별지구와 관련된 무언가라면 그것을 이뤄내면서 김인철이 만족감을 느끼고 인연레벨이 올랐을 가능성이 높았다.

‘뭘 어떻게 관여했을라나…….’

김인철의 능력을 떠올리며 이세훈이 화면을 바라보았고, 그 사이 루트비히가 발표를 마무리지어갔다.

“향상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렇다면 바벨 역시 그 노력을 잊지 않고 보답할 것입니다.”

이야기를 끝낸 루트비히가 단상의 아래로 내려갔고 잠깐의 정적 이후 사방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앞으로 세계에 수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그 중심에는 분명히 바벨이 존재할 것이다.

모두가 그것을 깨달았기에 바벨의 주인인 루트비히를 향해 존경과 두려움이 담긴 박수갈채를 보냈고, 무대를 내려오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달아오른 분위기가 진정된 뒤. 진행자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다음으로 특별지구 ‘게헨나’의 총괄 책임자이신 리하르트 크루거 이사님을 모시겠습니다.]

진행자의 이야기와 함께 무대의 아래에서 한 사내가 성큼성큼 올라왔고, 단상의 앞에 서서 중앙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가슴까지 오는 검은 장발에 웃음기를 머금은 부드러운 얼굴. 옷은 검은색 반팔와이셔츠에 흰색 면바지를 입었는데 키가 훤칠한 덕분인지 모델처럼 보였다.

“아아. 이거 제대로 들립니까? 혼자서 입만 뻐끔거리고 있으면 조금 부끄러운데.”

단상에 선 리하르트가 주변을 살피며 이야기했고, 그 내용에 중앙광장에 모여 있던 모두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에 그렇게 중요한 소식이 전 세계에 송출되었는데 저렇게 풀어진 태도라니.

경망스럽기 그지없는 행동이었지만 리하르트는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표정들을 보아하니 잘 들렸나 보군요. 아무튼, 만나서 반갑습니다. UD생명연구소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리하르트 크루거라고 합니다.”

단상에 선 리하르트의 소개에 이세훈이 미묘한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리하르트?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거 같은데…….’

위르겐의 자식들 중에는 회귀 전에 활약상을 펼친 이들이 적잖게 있었다.

애초에 뛰어난 후계자를 얻기 위해서 만들어져 길러진 이들인 만큼 재능이 떨어지더라도 다른 쪽으로 뛰어났고, 그 결과 어떤 식으로든 전쟁 중에 도움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세훈은 좀처럼 리하르트를 떠올리지 못했는데 활약상과 별개로 그 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제가 누군지 잘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저희 회장님의 18번째 아들, 전체로 치면 43번째 자식입니다. 아, 이렇게 설명해도 더 모르겠군요. 하하핫.”

멋쩍게 웃는 리하르트의 이야기에 모두가 멍하니 바라보았고, 이세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저 정도면 꽤 잘 싸웠을 것 같은데.’

체내에 품고 있는 마력량도 상당해보였고 무엇보다도 위르겐과 어느 정도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명계의 마력에 익숙한 자들에게서 느껴지는 음산한 분위기. 그 특유의 느낌이 리하르트에게서도 보이는 것이다.

‘하긴. 특별지구의 책임자인데 실력 없는 놈을 보내지는 않았겠지.’

아마 위르겐의 자식들 중에서는 손꼽히는 위치가 아닐까.

이세훈이 자리에 앉아서 살펴보는 동안 리하르트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잡담은 이 정도면 된 것 같고 슬슬 게헨나의 이야기로 넘어가죠. 게헨나는 UD그룹이 직접 디자인한 도시로…….”

리하르트의 이야기에 따라 뒤쪽에 떠있는 화면이 자연스럽게 바뀌며 게헨나의 풍경을 이리저리 비춘다.

시설이야 규모가 규모인 만큼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이세훈이 흥미를 느낀 곳은 ‘발할라Valhalla’였다.

“발할라는 UD그룹이 관리하고 있는 언데드들과 싸울 수 있는 훈련장을 겸한 연구시설입니다. 여기서 다양한 전투를 경험하고 여러분들의 개선점을 알아내는 거죠.”

위르겐이 사역하고 있는 언데드들과 싸울 수 있는 시설.

기존에 발할라와 비슷한 곳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연하게도 비교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다른 곳들은 언데드가 많아 봐야 백단위에 종류도 한정되어 있지만 발할라는 최소 수십만에 종류도 영웅, 마인, 몬스터 등 매우 다양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적극적이네.’

시설만 해도 돈을 많이 쓴 게 보이는데 설마 본인의 능력까지 사용해서 지원을 할 줄이야.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발표를 들었고 각 시설의 대략적인 설명이 끝났다.

“총괄 책임자로서 앞으로 게헨나와 바벨, 인류 전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깔끔한 마무리에 곳곳에서 박수가 쏟아졌고, 리하르트는 마주 손을 흔들며 무대의 아래로 향했다.

불안한 출발과 달리 무난하게 끝난 발표. 그 내용을 곱씹던 이세훈은 도중에 눈이 마주쳤던 것을 떠올렸다.

‘위르겐한테 뭔가 들었을 것 같기는 한데…… 어디까지 들었을지는 모르겠구만.’

적당히 흥미를 보이던 걸 보면 몽환마와 관련된 것은 비밀로 한 것이 아닐까.

언제 한 번 만나게 될 것 같다고 이세훈이 생각하고 있을 때. 진행자의 목소리가 광장에 다시 울려 퍼졌다.

[다음은 특별지구 ‘파라데이’의 총괄 책임자이신 카말 샤르마 대주교님을 모시겠습니다.]

무대 아래에서 올라오는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노인.

두 눈동자에는 황금빛의 신성력이 은은하게 깃들었고 옅은 갈색피부에는 지나온 세월을 보여주듯 주름들이 자리 잡았다.

온화한 얼굴에 특별할 것 없는 체구. 어딜 봐도 평범해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거대하다는 느낌이 전신에 풍겨져 나온다.

‘허…….’

회귀 전 순례자의 사후 총대주교로 임명되어 순례교를 이끌었던 노인, 카말 샤르마를 본 이세훈이 속으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 많은 대주교 중에서 설마 회귀 전에 자신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 오게 될 줄이야.

‘세상 참 좁네.’

이세훈이 신기한 눈으로 보고 있을 때. 단상에 선 카말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파라데이의 총괄 책임자를 맡게 된 카말 샤르마라고 합니다. 본래 순례교의 대주교로서 활동해 왔으나 오늘부터는 맡겨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여…….”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카말.

앞에 다소 혼란스러웠던 리하르트와 다르게 매우 정석적인 발표였고 사람들도 조금 아쉬워하면서도 발표에 집중했다.

“이곳은 파라데이 수도원으로 성도님이 머무르시는 장소이자 성법기를 연구하고 제작하는 공방으로서 사용될 시설입니다.”

파라데이의 중앙에 자라나 있는 거대한 나무를 둘러싸듯이 지어진 원형의 건물.

영상으로만 봐도 그 크기가 얼마나 거대한지 체감이 왔는데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이 턱을 쓰다듬었다.

‘완전히 작정하고 보냈구만.’

무슨 일이 있어도 성법기, 정확히는 신성력 변환장치를 개발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시설.

사실상 자신을 향한 지원이나 다름없었기에 이세훈이 화면 속에 보이는 시설과 그 가운데에 있는 나무를 바라보았다.

‘저건…… 신목인가?’

이전에 칼이 바벨에 방문했을 때 루트비히를 불러서 남쪽 바다에 심어뒀던 신목의 씨앗.

그동안 별다른 소식이 없었기에 그냥 자라는 데 시간이 걸리는가 했더니 루트비히가 공간능력으로 아예 숨겨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말했던 프로젝트가 이거였네.’

설마 저만한 규모의 시설들을 아공간 속에서 비밀리에 건설하고 있었을 줄이야.

이세훈이 어이없는 눈으로 화면 속의 시설들을 보고 있을 때. 모든 설명을 끝낸 카말이 마무리했다.

“인류를 위하여 이 한 몸 아낌없이 헌신할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카말이 고개를 꾸벅이면서 박수가 이어졌고, 간단한 축사가 이어지며 개학식도 끝나가기 시작했다.

‘어디부터 가지?’

‘발할라는 빨리 안 가면 자리 없을 것 같은데.’

‘저 나무는 가까이서 볼 수 있나?’

새로운 특별지구를 찾아갈 생각에 사람들이 모두 들떴고 자연스럽게 그 열기가 중앙광장을 가득 채워갔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쉴 새 없이 진행자의 입을 살펴보던 그 순간.

[─이로서 2학기 개학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개학식이 끝나면서 사람들이 중앙광장을 벗어나 특별지구를 향하기 시작했다.

“역으로 가면 안 돼! 자리 없어!”

“달리는 게 더 빨라!”

행사장을 벗어나자마자 특별지구를 향해 잽싸게 달려가는 생도들.

기자나 다른 사람들도 차를 타고 곧장 이동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중앙광장에서 사람들이 사라졌다.

‘엄청 빠르네…….’

텅텅 비어가는 행사장의 모습에 이세훈이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 주변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옆쪽에 있던 아리아와 렌. 입구에서 헤어졌던 제이크, 에리카, 레아, 루이제, 염성하, 아미르.

그리고 저 멀리서 귀빈들을 무시한 채 이곳으로 오고 있는 류은하까지.

“…….”

“…….”

곁에 모이자 모두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새로운 특별지구에 이세훈을 데리고 간다. 모두가 같은 목적이었기에 어떻게 결정할지 눈치싸움으로 고르고 있던 그때.

“이야. 인기 많네.”

무대 위에서 연설했던 리하르트가 자연스럽게 파고들어와 이세훈의 앞에 섰다.

“아까 소개는 들었지? 앞으로 잘 부탁해.”

명함을 내밀며 미소를 짓는 리하르트. 그 유들유들한 모습에 이세훈이 명함을 건네받았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주변을 보아하니 누구랑 구경할지 정해진 게 없는 것 같은데 나랑 가는 건 어때? 총괄 책임자니까 어지간한 건 다 꿰고 있다고.”

주변의 시선이 따가워졌지만 리하르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이 정도 눈총은 집에서 형제들과 마주하면서 익숙할 정도로 겪었기 때문이다.

“다 같이 가는 건…….”

“아, 미안하지만 그건 안 돼. 우리 회장님이 너한테만 보여주라고 한 것들도 몇 가지 있거든.”

회장, 위르겐이 언급되자 주변의 분위기가 더욱더 흉흉하게 변했다. 완등자가 언급되면 어지간해서는 이기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이야기에 이세훈이 막 결정하려던 찰나.

“실례하겠습니다.”

다른 쪽에서 들어온 카말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이세훈 생도님. 괜찮으시다면 잠깐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파라데이를 안내해드리고 싶습니다만…….”

카말의 등장에 주변이 한층 더 어지러워졌고, 코앞가지 온 기회를 놓친 리하르트가 눈매를 찌푸렸다.

“좀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이세훈을 사이에 둔 총괄 책임자들 간의 신경전.

그 이외에도 여덟 명이 서로 경계하고 있을 때.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류은하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다들 정도를 모르는군.’

아무리 데리고 가고 싶다고 해도 저렇게 둘러싸서야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겠는가.

학과장으로서 이세훈을 보호하고 편안하게 구경할 수 있도록 류은하가 끼어들어서 빼내려던 그때.

[내가 데리고 가겠네.]

후웅!

모두의 앞에서 사라진 이세훈.

류은하가 막 뻗으려던 손으로 허공을 잡았고, 비슷하게 눈치싸움을 하던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울려 퍼진 목소리가 루트비히라는 것을 깨달은 뒤.

“……치사하네.”

“……내말이.”

바벨의 폭군을 향해 작게 불만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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