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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281화 (281/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81화

사방에 퍼지는 짙은 피비린내.

그 광경을 말없이 바라보던 루이제가 입가의 하티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촤라락

하티가 마스크에서 초커의 형태로 돌아왔고, 잠시 입을 우물거리던 루이제가 머금고 있던 것을 뱉어냈다.

“퉷.”

입안에 한가득 고여 있던 피. 마지막에 이빨을 너무 세게 깨물어서 출혈이 생긴 것이다.

“쯧…….”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쾌한 통증에 루이제가 혀를 차면서 다른 곳들도 살펴보았다.

전투가 화력전으로 단기간에 끝났기에 큰 부상은 없었고 체력과 마력에도 여유가 있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루이제는 마지막으로 대기 중에 퍼져 있는 마력을 바라보았다.

‘……없어졌네.’

방금까지만 해도 주변의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라는 모종 확신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게 무슨 정신 나간 헛소리인가 같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한바탕 꿈이라도 꾼 것 같은 그 기묘한 경험에 루이제가 눈매를 찌푸렸다.

‘목소리도 그렇고…… 그 녀석이 한 건가.’

이세훈이 상상으로 만들어냈다던 미래의 자신.

그 성격파탄자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에 루이제는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꿈에서 쌍욕을 들으면서 언령마법을 배우다 보니 쌓인 게 많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그 존재 자체가 짜증 났기 때문이다.

‘어차피 상상으로 만들어진 거면서 엄청 거들먹거린단 말이지…….’

매번 자신을 보고 독기가 없다면서 갈구는 것도 짜증 나고 이세훈에 대해서 잘 안다는 듯이 말하는 것도 짜증난다.

이번 일로도 꿈에서 무슨 개지랄을 해댈지 상상만으로 짜증이 밀려왔지만 루이제는 금방 그 감정을 털어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존재기도 하고 어찌됐든 도와준 덕분에 싸움에서도 이기지 않았는가.

‘마지막에 그것도 뭔가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심상이지만, 그것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단숨에 S급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을 확인한 루이제가 생각을 정리하면서 하티를 다시 마스크의 형태로 되돌렸다.

촤라락!

시체를 향해 다가간 루이제는 곧장 바닥에 멀쩡히 놓여 있는 탐구자의 왼팔을 살펴보았다.

그만한 전투가 있었음에도 상처하나 없는 팔.

마지막 언령마법 때는 일부러 공격 대상에서 제외하긴 했었지만 그걸 적중시켰어도 상처가 났을 것 같진 않았다.

‘진짜 징그러 죽겠네.’

속으로 혀를 차면서 탐구자의 왼팔을 주워든 루이제는 곧장 언령마법을 사용했다.

【Incineration】화르륵!

시체를 비롯한 모든 흔적들이 타오르면서 사라졌고, 주변을 확인한 루이제가 아카샤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래?”

아카샤의 페이지가 팔랑거리며 넘어가더니 잠시 후 허공에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냈다.

[보내고 먼저 돌아가라네.]

아카샤를 통해서 이세훈의 대답을 들은 루이제는 곧장 승천제의 반지를 사용해 탐구자의 왼팔을 전송했다.

후웅!

황금빛과 함께 탐구자의 왼팔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모습을 본 루이제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이번 계획에 자신이 맡은 역할은 끝.

남은 것은 맨해튼에 있는 이세훈이 무사히 귀환하는 것뿐이었다.

‘먼저 가라는 거보니까 뭔가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이쪽으로 넘어오려다가 학술회에 참가한 누군가에게 발목을 잡힌 것일까.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루이제는 그냥 이세훈의 지시에 따르기로 했다.

‘뭔가 도움이 필요했으면 방금 말했겠지.’

거기에 이세훈이라면 상대가 십악이라 할지라도 어떻게든 빠져나오리란 확신이 있었다.

괜히 도와주겠다고 뭣 모르고 찾아가서 짐 덩어리가 되는 것보다는 여기서 깔끔하게 빠지는 편이 좋으리라.

후웅!

결론을 내린 루이제가 재빠르게 공간이동을 준비했고, 게이트를 넘어가기 전에 아카샤를 챙겼다.

그리고 그것을 집어넣기 직전. 잠시 고민하던 루이제가 헛기침하며 이야기했다.

“거기서 삽질하고 돌아오면 나한테 죽는다고 전해.”

아카샤가 페이지를 넘기며 전달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루이제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게 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말하고 나니 뭔가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조금 덜었기 때문이다.

“……에이 씨. 몰라.”

여기서 괜히 수습해 봐야 이상하게 보일 뿐이다.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아카샤를 챙겨 넣은 루이제가 그대로 도망치듯이 게이트 안으로 몸을 내던졌다.

* * *

[실패해도 상관없으니까 제발 무사히만 돌아와 주세요. 내 사랑, 이라고 그 친구가 전해달라네.]

‘…….’

[진짜야. 조금 다르긴 한데 거의 그런 느낌이라니까?]

‘예예. 알겠으니까 조용히 하십쇼.’

헛소리하는 탐구자를 무시한 이세훈은 공간이동으로 넘어온 왼팔을 살펴보았다.

‘저쪽은 별문제 없었나 보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숲에다가 위르겐의 정예 언데드인 펜리르를 배치해 뒀는데 다행히 나서는 일없이 끝났다.

현장을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펜리르의 지루해하는 감정을 보건데 루이제가 위험한 순간 없이 이겼다는 뜻이리라.

‘아무래도 능력을 파훼한 게 컸겠지.’

아카식에 여러 정보를 저장하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불러낼 수 있었던 좌완.

그 덕분에 어떤 상처를 입어도 간단히 회복할 수 있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죽은 뒤에 부활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이세훈이 탐구자, 전지의 권능을 통해 저장된 정보를 삭제했고 루이제가 그 빈틈을 노려서 죽이는데 성공한 것이다.

‘증인은 사라졌고…… 남은 건 나한테 달렸구만.’

간단히 생각을 정리한 이세훈은 차분한 표정으로 주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우웅

허공에 뜬 채로 이쪽을 겨누고 있는 수십 개의 검은 말뚝.

겉으로만 봐도 상당히 살벌한 광경이었지만 진짜는 저 안에 담겨져 있는 힘 그 자체였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듯한 기괴한 힘.

사용자의 심상을 의심하게 만드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슬슬 결론을 내릴 때도 되지 않았나?”

이세훈의 목소리가 텅 빈 회의장에 퍼졌다가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거운 침묵이 감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구에 서있던 창백한 얼굴의 사내, 배교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반란을 꿈꿨기에 죽였다. 참으로 알량한 변명이구나.”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리는 배교자. 마치 모든 진상을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했지만, 이세훈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대답했다.

“우스운 꼴이기는 하지. 저런 멍청한 녀석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했으니.”

“계속 우길 생각이냐?”

“반대로 내가 묻고 싶군.”

이세훈이 몸을 돌리며 말하려던 순간. 그 움직임을 읽어낸 배교자의 말뚝이 매섭게 날아들었다.

눈과 목, 심장 등 급소의 바로 앞에 멈춘 말뚝. 조금이라도 더 움직였다간 그대로 쑤셔 버리겠다는 듯한 그 모습에 이세훈이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스윽

그대로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콰앙!

바닥에 꽂히는 수십 개의 검은 말뚝. 마치 빗나간 것처럼 보이는 그 모습에 배교자가 눈매를 찌푸려졌다.

‘통과했다고?’

자신의 힘을 강제로 불어 넣어 대상을 제압하는 신성마법인 ‘모독자의 낙인’.

접촉뿐만 아니라 근접하기만 해도 효과가 발휘하기 때문에 육체를 어떤 식으로 변형하든 간에 피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데 그것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그냥 흘려 보내다니.

보고도 무슨 수를 썼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까지 날 배신자로 몰아세울 이유가 있나? 의심되는 부분이라고 해봐야 내가 최근에 합류했다는 것뿐일 텐데.”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물어보는 이세훈의 모습에 배교자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대답했다.

“그 이외에 이유가 따로 필요하나?”

“물론 필요 없을 수도 있지.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본질’을 봐달라는 뜻이다.”

“…….”

“좌완이 오랫동안 다른 주시자와 만마전과 교류해 온 것은 알겠지만, 결국은 『여명』의 일원이다.”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배교자를 보며 이세훈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가 나의 사지를 잘라서 납치하려고 한 것도, 내가 뜻을 곡해하며 무지한 행동을 일삼던 그를 죽여 버린 것도 그분의 부활을 위해서지.”

“…….”

“그 과정과 결과가 어떻다고 한들 너희들이 간섭할 이유는 없다. 그분께서 바라신 일이며 그 뜻을 따르는 우리들의 일이니까.”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이야기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배교자가 말없이 바라보았다.

만약 글렌이 자신에게 배신의 가능성을 이야기했었다면 눈앞의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무시했을 것이다.

‘그분의 부활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사람입니다. 절대로 죽여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글렌은 단 한 번도 배신자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고 오히려 중요한 사람을 보호하듯이 이야기했다.

외부자가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지만 내부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잠시 동안 고민하던 배교자는 곧장 힘을 거둬들였다.

후웅!

바닥에 꽂혀 있던 말뚝이 모조리 사라졌고, 그 주변에 검은 빛으로 물들었던 세계도 본래대로 돌아왔다.

‘후우…….’

배교자가 완전히 힘을 거둔 것을 확인한 이세훈은 몸에 두르고 있는 여백의 휘장을 확인했다.

‘약간 빠듯하긴 하지만…… 조금만 더 버티자.’

처음보다 적의는 없어졌지만 회귀 전의 악명을 생각하면 갑자기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다.

계속해서 긴장을 유지한 채 이세훈이 맞은편에 있는 배교자를 바라보았다.

“납득했나?”

“건방떨지 마라. 좀 더 두고 보기로 한 것뿐이니.”

차가운 표정을 지은 배교자가 이세훈을 노려보았다.

“조금이라도 네게서 의심스러운 모습이 보인다면 그 즉시 사지를 찢어발겨서 내걸어둘 것이다. 알겠나?”

“명심하도록 하지.”

배교자로부터 의심을 사게 되었지만 이세훈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부터 몇몇에게는 의심받을 각오로 실행한 계획이기도 했고 저 정도 반응이라면 반쯤 설득되었다고 봐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탐구자의 힘을 보여준 게 정답이었나.’

만약 그게 없었다면 의심이 아니라 지금쯤 대판 싸운 다음에 주시자 잠입계획이 모조리 엎어졌을 수도 있으리라.

“…….”

입구에서 말없이 노려보던 배교자가 그대로 몸을 돌렸고, 당장이라도 떠날 것 같은 그 뒷모습에 이세훈이 입을 열었다.

“그냥 가나?”

그 물음에 배교자의 몸이 멈췄고, 그대로 뒤돌아보지 않은 채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처음부터 내게 용건이 있어서 남아있던 것 아닌가.”

글렌은 학술회 도중에 납치 계획을 취소했고 배교자 역시 굳이 회의장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배교자는 학술회가 끝난 뒤에 회의장에 남았고, 글렌이 공간이동을 당하고 난 뒤에야 기다렸다는 듯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누가 봐도 노린 거지.’

글렌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빌미로 자신을 살펴보려는 행동.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은 배교자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순례자에 관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대답해주지. 나도 신경 쓰고 있는 존재니.”

이세훈의 이야기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고, 이내 배교자가 몸을 돌려 눈을 마주보며 물었다.

“정말로 그를 죽일 수 있나?”

차가운 눈동자 너머로 느껴지는 살의. 그 눈을 마주한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권능의 파훼법만 알아낸다면 못 할 건 없지.”

마신이 완등자를 죽일 수 있었던 것은 상성관계를 통해 정면에서 권능을 파훼할 수 있었기 때문.

즉, 그게 가능하다면 마신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완등자를 죽일 수 있었고, 당장 회귀 전의 배교자만 해도 그렇게 순례자를 죽였었다.

‘정확한 병력은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 자리에 마신이 없었던 건 확실해.’

배교자는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순례자를 죽인 것일까.

회귀 전에는 배교자 역시 순례자와 함께 죽어버렸기에 의문으로 남았지만, 이번에는 그것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이세훈의 대답에 배교자가 말없이 바라보더니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그것을 가볍게 낚아챈 이세훈은 곧장 손에 쥐어진 물건을 내려다보았다.

우웅─

반으로 갈라진 검은색 고리.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검은빛으로 인해 분리되지 않고 고리의 형태가 유지되었는데 그 모습이 어딘가 익숙했다.

‘……스티그마?’

순례자가 직접 만든 성법기, 스티그마타의 재료이자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특수한 금속.

배교자가 건넨 고리에서 그 스티그마와 유사한 느낌이 풍겨나는 것이다.

“그 안에 권능을 파훼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

“방법을 찾아서 내게 가져와라. 그러면 네놈을 믿어주지…….”

후웅!

그 말을 끝으로 배교자가 검은 빛으로 물들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회의장 어디에도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상대가 완전히 떠난 것을 확인한 이세훈이 한숨을 내쉬며 손에 쥐어진 고리를 바라보았다.

“가능성이라…….”

배교자의 힘 그 자체가 순례자와 상성이라는 것일까.

마기에 변질되어 검은빛을 띈 신성력에 이세훈이 묘한 표정으로 보고 있을 때.

우웅!

몸 안쪽에서 갑자기 움직이는 신성력.

그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이세훈이 일단 억누르려고 했지만, 이전처럼 자신의 지시를 무시하며 계속해서 바깥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리고 배교자의 힘이 담긴 고리 속에 억지로 비집고 들어간 순간.

티잉─

고리가 떨리며 청명한 울림을 퍼뜨렸다.

“……?”

예상과 다른 반응에 이세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방금과 달라진 고리의 모습이 보였다.

한쪽에는 검은색, 다른 한쪽에는 황금색 신성력이 깃든 고리.

사이가 분리되어 있긴 하지만 힘을 교류하는 상태였는데 놀랍게도 충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맞물려 있었다.

우웅

거기에 두 조각 사이로 계속해서 진동이 울려 퍼졌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탐구자에게 물었다.

“……공명현상이죠?”

[……공명현상이네.]

얼빠진 탐구자의 대답에 이세훈이 고리를 다시 보았다.

상극이라 알려진 것과 달리 자연스럽게 맞물리며 공명현상까지 일으킨다.

거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아주 간단했다.

‘똑같은 거였어…….’

순례자와 배교자.

둘의 신성력이 본질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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