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79화
“흐으음…….”
자신의 다섯 손가락에 피어난 불꽃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류 메이린.
앞전에 다섯 개비를 한 번에 펴서 그런지 두 눈이 과할 정도로 반짝거렸는데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이 살짝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저런 걸 잘도 피우는구만.’
어지간한 A급 영웅도 한 개비만 피워도 6시간 동안 눈이 또렷하다는데 그걸 한 번에 저렇게 피웠으니 부작용이 날 수밖에 없으리라.
‘뭐, 사부면 죽지는 않겠지.’
다른 이들이라면 심장과 마력회로에 이상이 생겨서 위험하겠지만 영연신마법을 익힌 사람이라면 그쪽으로 문제가 생길 일은 없다.
불꽃에 심취한 류 메이린을 무시한 이세훈은 방금 건네받은 핏빛수정을 살펴보았다.
[마혈정魔血晶]
[등급 : 영웅] [품질 : 최상]
특수한 피로 만들어진 결정.
본질을 유지하려는 강력한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불순물을 정화하여 흡수할 수 있습니다.
*내구도를 소모하여 접촉한 물질의 불순물을 정화합니다.
*정화한 힘을 흡수하여 내구도를 회복합니다.
정보창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물건. 하지만 그 내용을 살피던 이세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엄청 흉흉한 물건이구만.’
단순히 효과만 보면 정화에 특화된 물건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었다.
마혈정이 정화하는 불순물. 그 ‘정의’가 어디까지 포함되는지가 명확히 적혀 있지 않은 것이다.
‘제대로 만들어졌다면…… 사부를 제외한 모든 것인가.’
류 메이린이 아닌 생명체와 물질은 모두 ‘불순물’로 여기고 정화한 뒤 흡수한다.
즉, 아무런 보호 장치도 없이 가볍게 사용했다가는 온몸이 마혈정에 흡수되어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정보창도 참 허술하단 말이야.’
대략적인 정보는 알려주지만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새삼스레 정보창의 문제점을 다시금 확인한 이세훈이 마혈정을 챙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영 늦는구만.’
자리를 비운 지 10분은 족히 되었을 텐데 주시자 중에 돌아온 이들이 거의 없었다.
완등자, 그것도 탐구자의 부활이 걸려 있는 사안인 만큼 어찌 보면 심각할 수밖에 없으리라.
‘결국 같이 나간 그 녀석에게 달린 건가.’
만약 좌완이 밖에서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면 주시자와 만마전은 반드시 자신을 생포하려고 할 것이다.
탐구자의 부활은 둘째 치고 이세훈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 자체가 매우 뛰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경우에는 나를 뺏길 수도 있지.’
『여명』이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을 안전하게 보관한 다음 탐구자를 부활시키는 것.
다른 주시자나 만마전에게 넘어가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기에 섣불리 정체를 공개할 가능성은 없었다.
‘일단 분위기를 잘 살펴봐야겠네.’
이세훈이 잠시 생각에 잠기던 그때.
끼이익
회의장 문이 열리며 자리를 비웠던 이들이 돌아왔고 그 사이사이에 주시자와 십악도 섞여 들어왔다.
“…….”
이대로 진행인가, 아니면 끝인가. 이세훈이 정신을 가다듬으며 기다리던 그때.
[괜찮다.]
뒤따라 들어온 글렌이 담담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받아들이기로 했으니.]
“…….”
글렌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주시자들을 슬쩍 훑어보았다.
이쪽을 향해 시선을 보내긴 하지만, 적의보다는 흥미와 기대가 깊게 느껴진다.
그 반응에 이세훈이 슬쩍 웃었다.
‘두 번째 고비도 통과구만.’
이제 남은 것은 학술회에서 얼마만큼의 이득을 챙길 것인가. 이세훈이 가만히 바라보는 사이 배교자가 움직였다.
후웅!
다시 한번 검은 빛이 회의장을 뒤덮었고 소름끼치는 적막이 자연스레 찾아온다.
두 번째로 보는 그 기술에 이세훈이 자연스레 주변을 살폈다.
‘이게 배교자의 신성마법인가.’
거짓된 우상과 마기를 기반으로 펼쳐내는 신성마법.
기본적인 발동 구조는 똑같지만 순례교에서는 당연히 이단의 기술이었기에 평범한 마법, 혹은 ‘역법逆法’이라고 불렀었다.
‘흐음…….’
회귀 전에 말로만 들었던 그 기술에 이세훈이 미묘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싼 힘을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기존의 신성력과 완전히 다른 힘이라고 생각했지만 보면 볼수록 유사한 부분들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것도 흡수할 수 있을까.’
시도할지말지 고민하던 이세훈은 곧장 그만뒀다.
마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힘인지라 인간의 몸에는 나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배교자의 눈에 들어서 좋을 게 없었다.
‘집요한 녀석이니까 말이야.’
실수로라도 배교자에게 시선을 주지 않기 위해 이세훈은 자연스럽게 옆에 있는 류 메이린을 바라보았다.
“흐음…… 이렇게…… 음…… 나쁘지 않아.”
그새 뭔가 느낌을 잡았는지 불꽃을 이리저리 뒤섞으며 새롭게 제작하는 류 메이린.
완전히 몰두해 있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속으로 혀를 찼다.
‘두 번 팔아먹긴 글렀구만.’
저 정도로 요령을 잡았다면 다음에 만났을 때는 어지간한 불꽃은 모두 만들었을 것이다.
차후 류 메이린과 거래할 만한 것이 뭐가 있을지 이세훈이 고민하고 있을 때. 주변을 살핀 글렌이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 계획 조정을 시작하겠습니다. 연구 일정과 새롭게 확보할 재료 등 모두 편안하게 말씀 나눠주십시오.”
글렌의 이야기에 실적 발표와 마찬가지로 『탈각』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 연구 때문에 생물 샘플을 여기저기서 구해볼 것 같은데. 혹시 건드리면 난감한 곳 있나?”
『탈각』의 물음에 『계승』의 여인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
“염화문은 놔둬주세요. 그쪽으로 간단하게 작업해 볼 생각이거든요.”
“그래? 조금 아쉬운데…….”
“대신 메르카토르의 지점 몇 개를 내드릴게요. 안 그래도 현 회장의 영향력을 줄일 생각이었거든요.”
“흐음. 그 정도면 괜찮네.”
두 주시자가 세세한 정보를 교환하는 사이 『초월』이 입을 열었다.
“불명자가 최근 들어 영혼의 연구에 다시 관심을 보인다던데…… 이에 관해서 아는 것 있나?”
“아미르 싱 때문이겠지.”
학술회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계승』 측의 사내가 여인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본래 몽환마의 직속비서로 일하던 자인데 이번 사건 이후 불명자의 휘하로 들어갔다더군. 그 이후로 연구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으니 아마 그와 관련되었을 거다.”
“그렇군. 참고하지.”
정보를 공유하고 계획을 미리 언급하여 서로 간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율하는 주시자들.
이세훈은 아직 계획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기에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이야기 사이사이에 자신을 향해 시선이 오는 것이 느껴졌다.
‘흐음. 기다리기 지루하니까 곧장 본론으로 가볼가.’
어느 쪽이 좋을지 잠시 고민하던 이세훈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승천제를 노리는 자는 없나?”
이세훈이 승천제, 루트비히를 언급한 순간. 회의장에 다시 한번 침묵이 찾아왔다.
그리고 잠시 서로를 살펴보던 끝에 『공양』의 사내, 케이든이 입을 열었다.
“슬슬 그쪽을 정하긴 해야겠군. 애초에 이번에는 그러기 위해서 모인 것이니.”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순간. 여태까지 아무런 말없이 회의를 지켜보던 무표정한 사내, 도플갱어가 입을 열었다.
“완등자를 죽이는 데 협력하면 근원의 파편을 연구할 기회와 재료를 무한정으로 지원하겠다니. 그러니 너희들이 노릴 수 있는 자들에 대해서 말해라.”
누가, 어떤 완등자를 노릴 것인가. 그 질문에 이번에도 『탈각』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
“선행자. 골치 아픈 놈이긴 한데 어느 정도 될 것 같아서.”
『탈각』의 이야기에 이어서 『초월』이 말했다.
“원견사. 계획의 초안이 잡히면 이야기하지.”
“저희는 불명자로 하도록 하죠. 안 그래도 그쪽으로도 손을 써볼 생각이었거든요.”
『계승』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고 이쪽으로 화제를 넘겼었던 케이든 역시 담담히 말했다.
“성화공으로 하지. 본래 노리고 있었으니까.”
전 세계를 주름잡는 네 명의 완등자들이 마치 경매장의 물품처럼 가볍게 언급된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허풍처럼 느껴졌겠지만 이세훈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실제로 그렇게 됐으니까 말이야.’
육대마신과 십악에 의해 목숨을 잃은 완등자들.
회귀 전의 미래를 떠올리며 이세훈이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주시자들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또 갈림길이군.’
승천제와 순례자.
둘 중 누구를 골라서 그와 관련된 계획에 간섭할 것인가.
잠시 머리를 굴린 이세훈은 금방 결론을 내리고 대답했다.
“승천제.”
“흐음. 꽤 어려운 길을…….”
“순례자.”
“……?”
“그리고 너희들이 언급한 모든 완등자.”
회의장에 모여 있는 이들을 바라본 이세훈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누구든 죽일 수 있게 해주지. 그러니 도움이 필요하다면 내게 와라.”
모든 완등자를 죽일 수 있게 해주겠다.
그 터무니없는 이야기에 불꽃에 정신이 팔려 있던 류 메이린도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쳐다보았고, 몸속에서 조용히 구경하던 탐구자조차 끼어들었다.
[야야. 너무 막나가는 거 아니야?]
자칫 잘못하면 앞서 힘들게 만들어낸 신뢰가 다시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이세훈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믿기지 않는다면 상관없다. 어차피 그분께서 부활하시면 자연스레 이뤄질 일이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이야기하는 이세훈. 그 모습에 회의장에 모인 이들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듣기에는 광신도의 맥락 없는 헛소리처럼 들리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미래를 직접 보고 온 예언자와 같은 신뢰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 알 수 없는 감정에 저마다 생각을 정리했고, 여느 때처럼 『탈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주 제대로 미친놈이구만. 탐구자도 저 정돈 아니었는데.”
“그분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마라.”
“그래그래. 뭐, 그래서 다들 더 할 말 있나? 없지?”
『탈각』의 물음에 다들 침묵으로 긍정했고, 그것을 확인한 그가 도플갱어에게 물었다.
“얼추 정해진 것 같은데. 나머지는 따로따로 문의하면 되는 거지?”
“좋을 대로 해라.”
“좋아. 그럼 나머지도 정리하자고. 『여명』은 완등자 말고는 노리는 거 없어?”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된 것을 확인한 이세훈이 대충 대답하려던 그때. 문득 머릿속에 한 가지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게 남았네.’
마지막으로 확인할 것을 떠올린 이세훈이 주시자들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분을 담아낼 그릇을 만들기 위한 재료가 필요하다. 그에 관한 도움이라면 뭐든 받아들이지.”
“재료라면?”
“이세훈.”
자신의 이름을 언급한 순간. 방금까지 온화하게 넘어가던 회의장의 분위기가 단숨에 변했다.
“그건 조금 곤란한데.”
“욕심이 과하군.”
“순번도 모르나요.”
“그는 최우선 영입 대상이다. 양보할 수 없어.”
『탈각』, 『초월』, 『계승』, 『공양』.
학술회에 참가한 모든 주시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반발심을 드러낸다.
마치 자기 물건에 함부로 손이라도 댄 것처럼 반응하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다들 벼루고 있었구만.”
“당연한 거 아닌가요? 기왕 말 나온 김에 확실히 정하죠.”
“그냥 먼저 확보하는 쪽이 얻는 건?”
“그런 재능을 가진 장인이 쉽게 나타나는 줄 아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기다렸다는 듯이 이세훈의 우선권을 두고 다투는 주시자들. 그 모습에 탐구자가 피식 웃었다.
[이야. 인기 많네?]
‘……그러게 말입니다.’
주시자 모두 자신을 노리고 있을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치열할 줄은 생각지도 못 했다.
서로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주시자들의 모습에 이세훈이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했다.
“일단 서로 필요한 것부터 확실히 하지. 나는 그분의 육체가 완성되기 전까지 권능을 담아둘 그릇으로 사용할 생각이다. 그게 끝난 뒤에는 아무래도 좋아.”
적당히 지어낸 말이었지만 어느 정도 그럴싸하게 들렸는지 다들 의문을 표하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이야기했다.
“저희는 한 번만 빌리면 돼요. 골칫덩어리를 설득하는데 쓸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녀석이 습득한 완등자들의 권능을 연구해 볼 수 있으면 나머지는 상관없다.”
“어쩔 수 없군. 영입은 포기하고 영혼만 챙기도록 하지.”
“그럼 시체는 내가 챙길게. 이야 딱 맞는구만!”
언제 싸웠냐는 듯이 화기애애하게 이야기하는 주시자들.
눈 깜짝할 사이에 영혼이고 시체고 모조리 입찰 당한 이세훈이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금 다짐했다.
“그래. 딱 맞군.”
이 건방진 놈들을 반드시 박살 내겠다고.
* * *
학술회가 마무리된 뒤. 위장용으로 열렸던 고전기술 진흥회도 자연스럽게 끝나면서 주시자들이 귀환했다.
마지막까지 정체를 숨긴 채 돌아가는 이들.
이세훈이 그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그때.
“이봐.”
옆으로 다가온 류 메이린이 작은 마혈정을 내밀었다.
“……이건?”
“나한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정리해 둔 물건이다. 다음에 필요하면 이쪽으로 연락해라.”
류 메이린이 건넨 마혈정을 받은 이세훈이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오래 있을 생각은 없나 보군.”
“솔직히 나랑 맞는 곳은 아니라서 말이야. 지금으로서는 받은 만큼만 일하고 빠질 생각이다.”
『공양』에 그리 애착이 없는 듯한 대답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이야기했다.
“발을 뺄 생각이라면 빨리 빼라.”
“음? 어째서?”
류 메이린의 물음에 이세훈이 담담히 대답했다.
“그래야 내가 널 고용할 테니.”
“…….”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류 메이린이 말없이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것도 나쁘진 않겠군. 기억해 두지.”
새로운 담배를 입에 문 류 메이린이 그대로 떠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속으로 살짝 안도했다.
‘처음부터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나보네.’
이유야 어찌 됐든 살아 있는 인간을 재료로 사용하는 『공양』에 적극적으로 협력한다면 훗날의 입장이 곤란해진다.
그렇기에 사부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될 수 있는 한 빠르게 『공양』에서 빼돌리는 것이 좋았다.
‘그럴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또 모를 일이지.’
회귀 전에는 사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모습을 보면 또 알 수 없었다.
당장 지금만 해도 학술회 동안 그렇게 많은 대화와 거래가 있었음에도 인연이 전혀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그대로인가.’
마지막까지 자신을 타인처럼 차갑게 바라보았던 사부. 그 모습을 떠올리던 이세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나중에 생각하자.’
우선은 남아 있는 숙제부터 해결한다. 그리 생각을 정리한 이세훈은 다시금 회의장으로 들어섰다.
모든 사람이 빠져나가 휑한 회의장.
안에 남은 것은 글렌 한 사람뿐이었는데 이세훈이 주변을 살펴보았다.
“십악은?”
“돌아갔다.”
“그래? 의외구만.”
담담히 이야기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글렌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역시 알고 있었군.”
자신들이 납치를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을 상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미 확신하고 있었음에도 그 답을 직접 확인하게 된 글렌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알고도 학술회에 참가하여 그런 대답을 했었던 건가.’
이세훈이 마지막에 자신의 처우를 직접 정리하는 것을 보았을 때. 글렌은 그것이 자신들을 향한 대답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이들에게 그분의 부활이 방해받지 않도록,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모두 대가로 지불한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발목을 붙잡을 생각하다니…… 그야말로 무지의 극치로군.’
얼마나 어리석은 실수를 할 뻔했는가.
오늘의 학술회로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글렌은 이세훈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우리들이 어리석고 무지했다. 부디 용서해다오.”
진심으로 사과하는 글렌의 모습에 이세훈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누구든 중요한 순간에는 긴장하는 법이니까. 뭐가 됐든 잘못된 길만 선택하지 않으면 돼.”
“이해해 줘서 고맙…….”
툭
어깨 위에 얹어지는 손.
그게 어느새 다가온 이세훈의 오른손이라는 것을 깨달은 글렌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위를 올려다보았고.
“넌 잘못된 길을 골랐지만.”
영웅의 반지가 빛남과 동시에 주변의 풍경이 변했다.
“?!”
어딘지도 알 수 없는 숲속. 그 모습에 글렌이 반사적으로 마법을 펼치려던 찰나.
【Set─】전신에 족쇄처럼 채워지는 수십 개의 붉은 마법진.
온몸의 마력을 짓누르는 그 어마어마한 힘에 글렌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적을 찾아 고개를 돌렸고.
“잘 왔다. 개새끼야.”
푸른 눈동자를 이글거리는 루이제가 준비해 둔 언령을 단숨에 내뱉었다.
【Explosion】콰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