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71화
본가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방.
곳곳에 호위와 식신들이 지키고 있던 다른 구역과 달리 이곳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그것 때문인지 몰라도 어딘가 엄숙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엄청 무게잡는구만.’
이세훈이 귀찮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길을 안내해 준 식신이 문 앞에 무릎을 꿇으며 조용히 이야기했다.
“이세훈 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식신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개의치 않고 방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들어가시지요.”
방 안으로 들어간 이세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별다른 가구도 없이 휑한 방과 한쪽에 펼쳐져 있는 얇은 장막. 그리고 그 너머에 비치는 사람의 그림자.
과거 렌의 기억을 훔쳐볼 때 본 적 있었던 그 광경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과연. 이런 느낌인가.’
장막 너머의 상대를 바라보던 이세훈은 곧장 그 맞은편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방 안에 적막이 감돌던 그때.
“─미안하게 됐군.”
장막 너머로 담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리를 비워 집안일에 손님을 휘말리게 하다니. 추태를 보이고 말았어.”
렌의 기억에서 들은 것과 똑같은 목소리. 그 모습에 이세훈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살다 보면 그럴 때도 있는 법이죠.”
“영웅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이번 습격은 히무라 가문과 아마네 가문, 정확히는 그 당주들이 만마전과 협력하여 독단적으로 벌인 행동이라더군.”
“그렇군요.”
“아마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였겠지. 지금은 협력했던 측근들과 함께 도주해서 추적 중이다. 만마전에서 따로 돕지 않는다면 금방 잡히겠지.”
“그럼 좋겠네요.”
돌아가는 상황을 줄줄이 설명해 주는 상대의 모습에 이세훈은 추임새를 넣듯이 가볍게 대답했다.
그 반응에 방 안에 잠시 침묵이 감돌더니 장막 너머의 그림자, 이노우에 류마가 슬쩍 웃었다.
“아무래도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게 아닌 모양이군.”
“삼대가문 출신이니 뭐니 해봐야 결국은 다 쓰인 장기말 아닙니까. 어떻게든 신경 쓸 필요는 없죠.”
“다 쓰인 장기말?”
흥미로워하는 류마의 반응에 이세훈이 담담히 대답했다.
“당주가 자리를 비워 결계가 느슨하고, 적들은 연구시설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지맥을 간단히 공략했으며, 때마침 모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장인과 재료가 존재했다.”
“…….”
“우연이라기보다는 누가 각본을 짜뒀다고 생각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이세훈의 물음에 류마가 피식 웃었다.
“그런 일들이 종종 일어나기에 우연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것이지. 모든 것을 너무 합리적으로 생각하려는군.”
“그것 참 편리한 말이네요.”
“편리하긴 하지. 하지만 그건 너도 그렇지 않나?”
장막 너머로 류마의 시선이 뚫어져라 응시했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보잘 것 없는 재능을 지녔던 청년이 불과 반 년 만에 전설 등급의 무구를 만들어낼 만큼 성장하여 완등자들에게 주목받고 십악의 죽음에 관여했다.”
“…….”
“이 역시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지 않나? 차라리 누군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낸 영웅이라고 하는 편이 그럴싸하겠군.”
류마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들으니까 조금 그렇긴 하구만…….’
회귀라는 우연으로 인해 여기까지 흘러간 것이니 어찌 보면 류마의 이야기가 그리 틀린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다고 해서 상대 또한 그러리라는 법은 없었기에 이세훈이 담담히 대답했다.
“저는 아닌 이유가 있습니다.”
“호오. 뭐지?”
“제가 천재인 겁니다.”
“…….”
“…….”
“……아무래도 농담이 아닌 모양이군.”
어처구니없어 하는 류마의 모습에 이세훈이 뻔뻔하게 이야기했다.
“정 못 미더우시다면 증거를 댈 수도 있습니다만.”
“……들어보지.”
“에리카와 함께 지하의 연구시설을 살폈을 때. 그곳이 이곳 본가와 완전히 대칭되는 장소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세훈이 검지로 바닥을 눌렀고, 류마의 시선이 그 손가락을 따라 움직였다.
“서로 호환시켜서 결계를 공유하는 게 목적이라면 뼈대 몇 개만 공유해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건물의 외형까지 완벽하게 흉내 냈죠.”
“…….”
“처음에는 땅 아래의 지맥을 효율적으로 끌어오기 위해서 그렇게 만든 건가 했었지만, 심층부를 보고 다른 가능성이 떠오르더군요.”
본가와 연구시설은 땅을 경계로 거울에 비춘 것처럼 대칭을 이루고 있고, 연구시설의 심층부에는 지맥과 맞닿아 있는 천정의 봉인시설이 존재한다.
만약 이노우에 가문이 건물을 대칭시키는 것으로 무언가 이루려고 한다면 천정의 봉인시설은 ‘어디’와 대칭하는가.
“영산의 꼭대기와 대칭시켰다기에는 별거 없고, 똑같은 높이의 하늘도 텅 비어 있죠. 주술적인 의미도 없을 테고.”
“…….”
“그렇다면, 살펴봐야 할 건 주술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의 상징성.”
영산의 지하 끝자락까지 이어지는 일직선의 통로와 지맥이라는 거대한 힘과 맞닿아 있는 접점.
“그리고 그 상징성에 부합되는 장소는…….”
바닥을 누르고 있던 검지를 떼어낸 이세훈이 그대로 천장 위를 가리켰다.
“완등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영웅의 탑 정상. 거기밖에 없겠더라고요.”
본래라면 영웅의 탑을 완등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장소와 힘을 주술을 통한 동조로 재현해 낸다.
그것이 바로 이노우에 가문의 연구시설에 숨겨져 있는 비밀이었던 것이다.
“…….”
이세훈의 이야기에 잠시 적막이 맴돌았고, 이내 장막 너머로 대답이 돌아왔다.
“대단하군.”
긴 설명 끝에 돌아온 대답치고는 성의가 없었지만, 그렇게 나쁜 반응은 아니었다.
‘부정은 안 하네.’
괜히 발뺌한다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한 이야기로 또 길어졌겠지만, 굳이 부정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부스럭
장막 너머의 류마가 움직이더니 소매의 그림자에서 끝에 무언가 붙어있는 기다란 막대가 나왔다.
‘곰방대?’
화륵!
이세훈의 추측이 맞다는 것을 알려주듯 안쪽에서 불꽃이 살짝 피어올랐고, 류마가 장막 너머에서 연기를 내뱉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네 말대로 우리들은 영웅의 탑을 오르지 않고도 완등의 힘을 얻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천정도, 에리카도 그것을 위해 존재하지.”
“왜 그런 걸?”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다.”
“…….”
“…….”
“……농담이 아니신가 보네요.”
말투에도, 장막 너머로 느껴지는 시선에서도 방금의 이야기가 진심이라는 게 느껴진다.
그 모습에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류마가 자세를 고치며 담담히 이야기했다.
“지금 만들어진 평화는 완등자라는 절대적인 힘에 의해서 이뤄지고 있다. 즉, 그들이 사라진다면 하룻밤 사이에 사라질 만큼 부질없는 것들이지.”
“그렇게 강한 분들이 죽을 정도면 이미 평화가 깨진 상태이지 않을까요.”
“글쎄.”
장막 너머로 이세훈을 바라본 류마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잠적한 것으로 알려진 탐구자도 만마전에 살해당했는데 두 번이 없을 것 같지는 않군.”
“……,”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이세훈의 두 눈이 커졌고, 그 반응을 본 류마가 의외라는 듯이 바라보았다.
“진작 알고 있었을 줄 알았는데…… 이게 세대차이인가 보군.”
“그게 무슨……,”
“천정은 과거 만마전과의 전쟁 중에 만들어진 주술무구다. 수많은 주술사가 참여했고, 그것을 조율하던 이들이 지금의 삼대가문의 윗세대지. 그리고 그걸 총괄한 것이…….”
“탐구자 그 사람이라는 거군요.”
류마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렸다.
천정이라는 신화 등급의 무구를 어디에서 구한 것인지 의문이기는 했지만 설마 탐구자가 튀어나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걸 왜 이야기 안 한 거지?’
탐구자가 자신을 속인 것인가. 그 의문에 이세훈은 불현 듯 좀 전에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뭐. 이노우에 가문도 나랑 협력했었냐고?]
‘아뇨. 그건 아닙니다.’
“…….”
탐구자가 협력했는지 궁금하냐고 물어봤지만, 자신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즉, 제대로 질문을 하지 않았기에 탐구자 역시 천정의 제작비화와 같은 이야기를 넘기고 인공생명체에 관한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이다.
‘자아가 있으니 모르진 않았을 테고…… 질문도 없었겠다 놀려먹으려고 그런 거겠구만.’
죽은 사람을 괴롭힐 방법이 없는지 이세훈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류마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천정은 탐구자가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졌고, 우리는 제작의 공로로 대여권을 얻었다. 그녀의 허락을 받으면 천정을 소환할 수 있는 방식이었지.”
그러던 어느 날 천정이 피범벅이 된 채로 이노우에 가문에 소환되었고, 당시의 당주는 탐구자가 잠적한 것을 보고 죽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수십 년 동안 천정을 활용한 지금의 연구가 시작된 것이다.
“완등자가 괴물 같은 존재인 것은 맞지만, 절대로 죽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러니 그 만일을 대비해 우리들 역시 준비가 필요한 법이지.”
“그래서 인공적으로 완등자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거군요. 에리카를…… 인공생명체를 만들어내면서까지 말입니다.”
이세훈의 물음에 류마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존의 인간을 개조하는 것보다야 몇 번을 실패하더라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낫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
“뭐, 대답할 필요는 없다. 도덕이니 윤리니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니까.”
다시 담배 연기를 내뱉은 류마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우리와 손을 잡지 않겠나?”
“…….”
“들었으니 알겠지만, 우리는 지금의 평화가 깨지지 않기를 원할 뿐이다. 인류를 저버리는 행동은 하지 않았어.”
“에리카는요?”
“식신이 인간과 똑같이 생기고 그리 행동한다고 한들 아무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지. 그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리자 류마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것을 문제 삼는다면 결국 가문과 함께 에리카도 ‘처분’될 뿐이다. 그것을 원할 것 같지는 않다만.”
“……참 다정하신 아버지네요.”
에리카를 두고 협박하는 모습에 이세훈이 빈정거리자 류마가 피식 웃었다.
“에리카를 돕고 싶다면 더욱더 우리와 협력하는 것이 좋을 거다. 그래야 곁에서 간섭할 기회라도 얻을 수 있을 테니. 대외적인 시선이 신경 쓰인다면 아예 약혼을 하는 것도…….”
“됐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세훈이 장막 너머를 바라보았다.
“오늘 있었던 이야기는 그냥 못 들은 걸로 하죠.”
“흐음. 그냥 넘겨주겠다는 건가?”
“더 좋은 해결법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급하게 굴 필요는 없으니까요.”
협력하지는 않겠지만 두고 보지는 않겠다. 그 이야기에 류마가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긍정적인 대답이군. 그 정도면 그냥 협력하는 게 낫지 않나?”
“글쎄요.”
류마의 그림자를 본 이세훈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그런 중요한 제안을 식신을 통해서 하는 시점에서 썩 신뢰가 가진 않네요.”
“…….”
“다음에는 직접 뵀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공평하게 속내를 떠볼 수 있게.”
이세훈이 방 밖으로 나갔고, 당주실 안쪽에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장막 너머의 류마가 작게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읽힌 건가…… 나름 준비해 둔 건데 모양새가 빠져 버렸군.”
주변 결계를 이용해서 본체와 거의 완벽하게 동조시켰는데 꿰뚫어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래서야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
실제로 관여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 봐야 벼랑 끝에 내몰려 있던 두 당주의 등을 살짝 떠밀었을 뿐.
처음부터 끝까지 설계했다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지금 선점해 두지 않으면 귀찮게 될 텐데…….’
어떻게 표식을 해둘 것인가. 잠시 고민하던 류마가 지하의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나쁘지 않겠군.”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당주실에서 나온 뒤. 이세훈은 방금 있었던 류마와의 대화를 곱씹었다.
‘거짓말은 크게 없어 보이지만…… 생략된 게 많네.’
주시자와의 연결고리, 완등자를 만들어내는 방법, 회귀 전 에리카의 변질 등등 미심쩍은 부분들이 아직 많았다.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고려하면 끝도 없었기에 이세훈은 지금 자신이 신경써야 할 부분들만 도려내서 생각했다.
‘천정과 에리카의 보호인가.’
주시자와 관련된 것은 파헤치다 보면 알아서 찾아내게 될 터. 지금 중요한 것은 저 두 개가 회귀 전처럼 탐망을 만들어내는 재료가 되지 않게끔 지키는 것이었다.
‘일단은……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건지부터 알아볼까.’
어디서부터 파헤쳐봐야 할지 이세훈이 생각에 잠기던 그때. 반사적으로 옆쪽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타악!
손에 움켜쥐어지는 푸른색 화살. 그 끝에 묶인 편지를 본 이세훈은 곧장 내용을 살펴보았다.
[보아하니 잘 풀린 것 같군.]
하백연이 보내온 편지. 그 내용에 이세훈은 이번 습격에 어째서 지원이 없었는지 깨달았다.
‘포착의 권능으로 이 결과를 유도한 겁니까?’
입모양으로 뻐끔거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화살이 날아와 손에 잡혔다.
[이런 흐름이 되게끔 돕기는 했었지. 도플갱어가 가로막아서 못 도와준 것도 있지만. 옆구리에다가 두발은 더 꽂았어야 했는데. 쯧.]
하백연의 답장에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면 렌과의 대련은 무슨 의미가 있었던 거지?’
이세훈이 의아함을 느끼자 또 한 발의 화살이 날아오며 편지를 전달했다.
[내가 대련을 걸지 않았으면 저녁쯤에 어디론가 나갔을 거다. 그 전부터 그럴 낌새가 보이기도 했었고. 이건 이미 지나간 이야기니까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마.]
마지막 편지가 날아오고 이세훈이 그 내용을 펼쳐보았다.
[이노우에 렌. 그놈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으니 잘 살펴봐라.]
화르륵
편지들이 모두 불타며 화살과 함께 사라졌고, 그 내용을 곱씹던 이세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꿍꿍이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에리카가 탐망이 되었던 것은 렌이 당주 자리를 물려받은 뒤의 이야기.
그렇다면 그 사건에 개입한 것은 료마가 아니라 렌이었던 것일까.
‘이건 좀 더 만나봐야 알겠네.’
어찌됐든 아버지와 다른 뜻이 있다면 렌에 대해서 알아내는 것만으로 모든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개학하고 나서라도 한 번 알아보기로 이세훈이 생각하고 있을 때. 자신의 방 앞에 에리카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음?”
이세훈이 의아해하며 다가가자 에리카가 고개를 돌렸고, 양손으로 들고 있는 검은 상자가 보였다.
빛을 모조리 흡수하는 것 같은 광택 없는 상자. 딱 봐도 심상치 않은 물건에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히무라 가문의 가보야.”
“……그게 왜 여기 있어?”
“이전에 세력 다툼 중에 빼앗은 거야. 대외적으로는 마인에 의한 분실물.”
에리카의 설명에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서로 악연이 깊긴 하구만.’
가보를 빼앗긴 전적까지 있었으면 수면 아래로 벌어졌던 삼대가문 간의 알력다툼이 보통이 아니었으리라.
‘뭐, 그것도 이번 일로 끝났지만 말이야.’
당주가 실종되고 만마전과의 내통혐의까지 붙어버렸으니 사실상 모든 영향력이 사라지게 될 터.
그리고 그 빈자리는 자연스레 이노우에 가문이 모두 먹어치우게 되리라.
‘노린 건 확실한데…… 결국 료마 그 양반은 어디에 있는 건지 모르겠네.’
이 정도로 얼굴을 안 보인다면 주시자와 연관된 어떤 일이 있는 게 아닐까.
이세훈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스윽
에리카가 검은 상자, 히무라 가문의 가보를 내밀었다.
“그건 왜?”
“당주님이 이번 일에 대한 답례로 받아달라고 하셨어.”
“가보를?”
딱 봐도 좋은 물건이라 나쁘진 않지만 히무라 가문을 턴 마인과 한패라는 식으로 누명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이세훈의 물음에 에리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보는 덤. 선물인 재료는 안에 있어.”
“재료?”
에리카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의아해면서 상자를 건네받았고, 이내 조심스레 뚜껑을 열었다.
스스스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심상치 않으면서도 익숙한 기운.
그 모습에 이세훈이 설마 싶으면서도 뚜껑을 마저 열었고.
꿀렁─
검은 늪, 천정의 일부분이 당장이라도 넘칠 것처럼 안쪽에서 꿀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