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68화
이노우에 가문을 보호하는 결계는 영산 전역에 펼쳐진 대결계.
중요시설이 모인 산중턱부터 펼쳐진 외결계.
그리고 본가에 펼쳐진 내결계까지해서 총 세 개로 이뤄져 있다.
삼중으로 펼쳐진 결계들은 지맥으로부터 힘을 공급받아 반영구적으로 유지되며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숨어들어온 침입자를 배제한다.
그 엄청난 효과 덕분에 이노우에 가문은 결계가 완성된 이래로 수십 년 동안이나 적들의 침입을 완벽히 막아냈지만.
콰아아앙!
오늘만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두꺼운 결계로 보호받고 있었던 건물들이 거대한 벼락 앞에 산산 조각났고, 사방으로 퍼진 전격에 불이 붙으며 거세게 타오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불길에 뒤덮여가는 이노우에 가문.
멀리 떨어진 하늘 위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던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중얼거렸다.
“진짜로…… 불타고 있어…….”
지난 수십 년 간 난공불락의 요새로 여겨졌던 이노우에 가문이, 그 본산이 자신들에 의해 타오르고 있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엄청난 성취감이 몰려왔고 또 한 편으로는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당주가 갑자기 돌아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원견사도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을 텐데…… 갑자기 화살 맞는 거 아닌가?’
‘만약 우리가 한 짓이라는 게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명령에 따라 아무 생각 없이 주술을 쏘아냈지만, 이제야 현실이 체감되기 시작한다.
타오르는 불길과 함께 혼란이 퍼져 나가려던 순간.
“깊이 생각하지 마라.”
그들의 앞에 서있던 중년의 여인, 아마네 가문의 당주인 마오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지금 우리들이 습격하는 곳은 만마전과 손을 잡은 내통자들의 거점이다. 그 이외에는 필요하지 않아.”
마오의 이야기에 아마네 가문의 정예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만마전과 손을 잡은 이가 누구인지는 자신들이 더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런 진위여부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에 살아남는 자가 누구인가.
그 사실을 되새긴 그들이 혼란에서 벗어나 두 눈을 차갑게 빛냈다.
“언제 지맥이 회복될지 모르니 기반 시설을 확실하게 부순 다음에 진입한다. 준비해.”
“예!”
마오의 지시에 다음 주술이 빠르게 준비되었고, 하늘 위의 먹구름에서 다시금 뇌전이 꿈틀거리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술이 준비되는 것을 올려다보던 마오는 처음 벼락이 떨어졌던 연무장 쪽을 바라보았다.
‘방금 일격으로 죽었을까…….’
가문의 정예들과 힘을 합쳐서 펼친 주술.
준비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S급에게 통용될 만큼 강력했고, 불시에 가해진 공격인 만큼 최소한 중상은 입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런 냉정한 판단과 별개로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뒤통수를 간질였다.
‘……역시 방심해서는 안 되겠지.’
주술사들 사이에서 천재라 칭송받는 이노우에 남매도, 완등자들에게 주목받고 있는 이세훈도 경험이 부족하다고 얕볼 수 있는 재능이 아니다.
생각을 정리한 마오가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고.
“흔적도 없이 없애 버린다.”
콰르르릉!
거대한 벼락이 빗줄기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은 물론이고 건물조차 남겨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공격.
그 무시무시한 벼락 속에 산 전체가 무너질 것처럼 뒤흔들렸고.
“신났구만…….”
연무장의 아래, 숨겨진 지하에 있던 이세훈이 혀를 찼다.
쿠구궁─
벼락이 쏟아질 때마다 조금씩 흔들리는 지하.
위쪽과 다르게 지하는 아직 결계가 펼쳐져 있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 기세면…… 5분 정도인가.’
적들이 언제 공격을 멈출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까지 오래 버틸 수는 없다.
천장을 올려다보던 이세훈은 자신을 지하로 데리고 온 남매를 바라보았다.
우웅!
굳게 닫힌 출입문을 열려고 하는 에리카와 렌.
바깥으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저쪽 통로를 이용해서 빠져나가야 했지만, 그 역시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파앙!
두 사람이 시도한 주술이 깔끔하게 튕겨져 나왔고 그 모습을 본 렌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당주 이외에는 안 되네.”
평상시에는 가문의 직계인 두 사람도 지하시설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적들을 침입을 대비하기 위해 모든 시설이 잠기면서 당주 이외에의 사람은 접근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부수면 안 됩니까?”
“그러면 아예 적으로 인식돼 버려. 이쪽에 펼쳐져있는 결계도 바로 해제될 거고.”
도망은커녕 적들의 공격에 노출될 수 있다. 어디로든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래서요?”
이세훈은 무심하게 되물었다.
“그러니까…….”
“결계가 해제되면 무너지기 전에 내려가면 그만이고, 시설이 가로막아도 다 받아치면 그만 아닙니까.”
너무 낙관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세훈의 눈에는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당장 구조를 알고 있는 사람만 둘인 데다 시설 자체도 위쪽에 펼쳐져있던 것들보다는 삼엄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보아하니 부수면 안 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 같은데 그냥 말씀해 주시죠. 이것저것 가릴 상황도 아니고.”
애초에 이런 지하시설을 만드는 이유는 두 가지밖에 없다.
비상시에 대피하기 위해서거나, 남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무언가를 숨겨두거나.
‘그런데 비상시에 대피가 안 된다고 하면 어떤 용도인지는 뻔하지.’
이세훈의 이야기에 렌이 잠시 동안 눈을 마주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될 수도 있으니까 권한을 확대하자고 그렇게 말했는데…… 에휴.”
방금까지 난처해하던 표정을 아무렇지 않게 고친 렌이 담담하게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일단 정정하자면 네 말대로 시설을 부수면서 탈출하는 건 충분히 가능해. 다만 내가 걱정하고 있는 건 그 뒤에 벌어질 일이야.”
“그 뒤?”
“앞에도 말했지만 강제로 부수는 건 시설에게 적으로 인식 돼. 그리고 비상대피로까지 내려가면 숨겨져 있는 자폭장치가 가동돼 버려.”
렌의 설명에 이세훈이 두 눈을 찌푸렸다.
‘하여간 이런 새끼들은 하는 짓이 똑같다니까.’
비밀이 새어나가느니 그냥 시설을 날려 버린다.
회귀 전에 주시자와 관련된 거점을 털면서 몇 번이고 봐온 유형이었기에 이세훈에게는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어떻게 자폭하는데요. 폭발?”
“그렇겠지. 영산을 중심으로 반경 10킬로미터 정도는 증발할 거야. 그러면…….”
“인근의 마을도 같이 날아가겠네요.”
지금이야 방문객들의 안전만 위험한 상황이지만 자폭장치가 가동되면 근처에 있는 마을들까지 모두 휩쓸린다.
‘경계의 권능으로 자폭장치를 처리하는 건…… 장담할 수가 없구만.’
최후의 발악보다는 증거인멸의 목적이기 때문에 그 정도 대비는 무조건 갖춰뒀을 것이다.
탈출하는 겸 지하시설을 살펴보려고 했던 이세훈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방법을 바꿨다.
‘일단 명계로 빠지는 게 낫겠네.’
정면돌파도 생각해 봤지만 시설을 무력화시킨 것도 그렇고 하백연의 지원이 여태까지 없는 것도 그렇고 적들이 심상치 않다.
무리하게 맞서 싸우기보다는 명계로 후퇴해서 상황을 살피다가 뭔가 위험한 일을 꾸미는 것 같으면 위르겐을 부르는 것이 가장 좋으리라.
빠르게 결정을 내린 이세훈이 막 입을 열려던 찰나.
─쿵
지하에서 올라오는 묵직한 진동.
천장을 두들기는 벼락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이세훈은 자신도 모르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건…….”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한 감각.
마력도, 마기도 아닌 꺼림칙한 느낌에 이세훈이 눈을 찌푸리고 있을 때. 뒤늦게 진동을 느낀 렌의 얼굴이 굳어졌다.
“……에리카. 어떻게 된 거야.”
렌의 물음에 에리카가 벽에 손을 짚은 채 바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고, 잠시 후 무언가 알아낸 듯 담담히 대답했다.
“누군가가 지맥을 통해 시설을 장악하려다가 실패한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설비가 불안정해져서…….”
─쿠웅!
방금보다 더욱 거세게 올라오는 진동.
그 심상치 않은 기세에 잠시 대화가 끊어졌다가 에리카가 이야기를 이었다.
“봉인이 느슨해졌어요. 이대로라면 곧 넘쳐흐를 거예요.”
이노우에 가문이 봉인하고 있던 무언가가 터져 나오려고 한다.
정확히 뭐가 뭔지 모르다보니 다 이해할 순 없었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대강 예상이 갔다.
“그러면 시설이 자폭하는 거고?”
“……응.”
예상한 그대로의 대답에 이세훈은 주변을 보았다.
쿠구궁─쿠웅!
위쪽은 벼락이 쏟아지며 무너질 것처럼 흔들리고, 아래쪽은 곧 폭발할 것처럼 불길하게 떨린다.
여기서는 어떻게 움직여야 맞는가. 잠시 고민하던 이세훈은 에리카를 바라보았다.
“에리카. 자폭하기 몇 초전까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
“30초 전까지는 파악할 수 있어.”
“내부구조는 다 알고 있고?”
“응.”
필요한 대답을 모두 들은 이세훈은 고개를 돌려 렌에게 물었다.
“내려가서 자폭을 막을 수 있습니까?”
“……어렵겠네. 나한테는 권한이 없기도 하고…… 강제로 막는 것도 기술이 안 맞아서 힘들어.”
“그럼 위에 녀석들이 아래로 못 내려오게 막는 건요?”
이세훈의 물음에 렌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5분은 되겠네. 저쪽은 반대로 상성이 좋아서.”
어느 쪽이 자신에게 더 이득인지, 그리고 서로가 어떤 역할을 맡아야하는지.
그 두 가지를 빠르게 계산한 이세훈은 자신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 남매를 바라보았다.
“에리카. 넌 나랑 같이 내려가서 어떻게든 자폭을 막는다. 싫으면 지금 말해.”
중요한 순간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곤란했기에 지금 확실히 정하고 내려가야 한다.
이세훈의 물음에 에리카가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
“좋아. 그리고…….”
렌을 바라본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렸다.
본인은 혼자서도 5분은 막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 말을 덥석 믿기에는 실력으로나 인성으로나 영 못 미덥다.
결정을 내린 이세훈이 경계의 권능을 끌어올리며 옆쪽으로 손을 뻗었고.
“쓸 만한 놈 하나 붙여줄게요.”
명계와 연결된 검은 구멍이 두 사람의 앞에 나타났다.
* * *
콰르릉!
쉴 새 없이 쏟아진 벼락에 의해 건물의 대부분이 형체가 남지 않을 정도로 초토화되었고, 파헤쳐진 땅 밑으로 희미한 결계가 드러났다.
‘역시 지하에도 시설이 따로 있었군.’
별도로 시설을 구축해 뒀는지 지맥의 공급이 없는데도 잘 버티고 있었지만, 그 역시 한계가 있는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벌써 지하로 빠져나갔으면 조금 골치 아프지만…… 그쪽은 히무라 쪽에 맡기면 되겠지.’
대규모 주술에 특화된 자신들이 전면에서 공격하고, 부적술에 뛰어난 히무라 가문이 지맥을 장악하여 시설의 제어권을 빼앗는다.
아직까지 결계가 멀쩡한 걸보면 제어권을 강탈하는 것은 실패한 것 같지만 내부구조 정도는 알아냈으리라.
‘지금까진 순조롭지만…… 너무 여유를 부려서도 안 돼.’
원견사를 확인한 도플갱어가 계획 중에 간섭을 막아주겠다고는 했지만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셋을 죽이고 시체를 회수해서 후퇴한다.
그 목적을 상기한 마오가 새로운 주술을 준비하려던 그때.
쿠구궁!
땅 아래에서 울려 퍼지는 거대한 진동.
그 심상치 않은 기세에 마오의 두 눈이 커졌고, 재빠르게 정예들에게 소리쳤다.
“놈들이 나온다! 요격준비!”
뭘 준비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들이 준비한 주술이라면 반드시 깨부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확신한 마오가 마력을 끌어올리며 땅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콰아아앙!!!
거대한 뱀의 머리뼈가 땅을 부수며 나타났다.
“고, 공격!!”
그 모습을 본 순간. 마오는 정체를 알아볼 틈도 없이 곧장 가문의 정예들과 함께 최대 화력으로 주술을 펼쳐냈다.
콰르르릉!
거대한 용의 형상을 한 벼락이 갈라진 땅 위로 떨어져 내렸고, 사방으로 번갯불이 솟구치며 눈을 가렸다.
정말로 영산이 반으로 쪼개질 것 같은 무시무시한 위력.
무엇이 나타나든 방금 일격이라면 충분히 제압하거나 치명상을 가했을 것이다.
드드드─
하지만 마오의 바람이 무색하게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천천히 움직였고, 잠시 후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신들은 안중에도 없이 영산 전체를 휘감기 시작하는 거대한 뱀의 뼈. 그 모습에 마오가 식은땀을 흘렸다.
‘이노우에 가문에…… 저런 식신이 있었던가……?’
설마 지하에 숨겨져 있던 결전병기가 저것인 걸까.
마오가 긴장한 눈으로 보고 있는 사이 흙먼지가 완전히 흩어지며 처음에 나타났던 머리뼈가 다시금 나타났다.
그리고 그 거대한 뱀, 요르문간드의 머리뼈에 올라탄 렌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뭘 빌려주나 했더니…… 설마 행성포식자를 꺼낼 줄이야.’
불명자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친자식에게도 넘겨주지 않던 언데드를 넘겨주다니.
상상을 뛰어넘은 지원에 렌이 헛웃음을 짓고 있을 때.
쿠구구궁!
위쪽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마력의 흐름.
처음에는 단순히 힘을 합쳐서 증폭시키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땅 아래의 지맥으로부터 미친 듯이 마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런…… 너무 위협적이었나.”
본의 아니게 상대방의 전력을 이끌어내게 된 렌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자신이 나온 지하를 힐끔 돌아보았다.
‘시간이 꽤 촉박해졌는데…… 과연 어떻게 될까.’
지하로 내려간 이세훈과 에리카의 모습을 떠올린 렌은 슬쩍 웃으며 다시금 앞의 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허리를 숙이며 손에 들린 검은 부채로 요르문간드의 머리뼈를 가볍게 두드렸고.
“실례하겠습니다.”
촤악!
오른쪽으로 뻗은 손끝으로 검은 부채가 경쾌하게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