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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267화 (267/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67화

당장에라도 싸울 것 같은 분위기가 되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일단은 손님이기도 하고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을 테니까. 나중에 저녁식사 뒤에나 하는 건 어때?”

당장 싸울 의사가 없어 보이는 렌의 모습에 이세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러죠. 급한 일도 아니니까요.”

“그럼 나중에 보자. 잘 안내해 주렴. 에리카.”

미소를 지어 보인 렌이 복도를 지나 건물로 들어갔고, 그 뒷모습이 사라진 것을 본 에리카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바로 대련을 준비하러 갔을 거야. 그런 성격이라서.”

“반칙?”

“그런 건 아니지만…… 아마 집에 있는 동안 살펴보면서 대비하지 않을까.”

“아아. 그런 느낌인가.”

어느 정도 예상한 반응이었기에 이세훈은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뭐, 괜찮아. 내 입장에선 준비가 철저할수록 좋기도 하고.”

“왜?”

“그래야 나중에 변명을 안 하거든. 이번에는 내 전력의 3할이었다든가 그런 거.”

“…….”

이세훈의 대답에 에리카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오라버니가 그렇게 약해보이는 건가……?’

성적만 놓고 봐도 바벨의 3학년 종합 수석.

거기에 생도들의 공식적으로 대련을 펼치는 무학관에서 3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것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지 않아서 그렇지 실질적으로는 2위나 다름없었다.

아리아라는 이레귤러 때문에 그렇지 실제로는 렌 역시 바벨의 역대 재학생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천재인 것이다.

“너무 방심하는 거 아니야?”

이세훈이 상당히 특수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너무 방심해서는 안 된다.

경고가 섞인 에리카의 물음에 이세훈이 담담히 대답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방심하고 있는 건 아니야. 네 오빠를 얕보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

“그냥 확신이 든 거지.”

하백연이 날린 화살을 쳐내던 렌. 그 가벼운 움직임을 떠올리던 이세훈이 슬쩍 웃었다.

“무난하게 이길 것 같다는 확신.”

이세훈의 이야기에 에리카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미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

“나중에 직접 보면 무슨 소리인지 알거야. 집이나 좀 소개해 줘.”

“응.”

고개를 끄덕인 에리카가 다시 앞장서서 걸었고 이세훈은 그 뒤를 따르면서 내부를 구경했다.

건물 안에는 경비들뿐만 아니라 잡일을 도맡는 일꾼, 그리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식신도 종종 보였는데 그 종류가 매우 다양했다.

‘흐음. 꽤 잘 만들었네.’

식신이란 주술 혹은 마법을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만들어내는 것.

흔히 보이는 골렘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느낌이었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뼈대가 틀렸다.

예를 들어 골렘이 물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라면 식신은 물 자체를 그릇으로 만들어 받아내는 것이다.

‘대장장이도 못 만드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썩 적성에 안 맞는단 말이지.’

사용자와 심상이 조금만 어긋나도 명령을 듣지 않으며 심할 때는 술사를 적으로 인식하여 공격한다.

그 때문에 식신은 보통 남에게 맡기기보다는 술사가 직접 제작하는 편이었고, 복도를 돌아다니는 식신들 역시 근처를 지키는 경비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저런 식신들은 보통 어디다 쓰는 거야?”

얼굴만 개구리인 식신을 쳐다보며 묻자 에리카가 계속해서 걸으면서 대답했다.

“근처에 있는 경비나 일꾼들하고 크게 다를 것 없어. 그냥 순찰 돌면서 필요한 일이 있으면 도와줘.”

“겸사겸사 결계도 구성하고?”

이세훈의 물음에 에리카가 걸음을 멈추더니 묘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어떻게 알았어?”

“음? 그냥 딱 보면 보이지 않나.”

식신과 호위들의 배치와 순찰경로.

그리고 거기에 맞춰서 흐르는 땅 아래의 지맥.

그런 요소들이 합쳐지면서 어떤 결계가 집안에 적용되고 있는지 대략적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흐음…….”

이세훈의 대답에 에리카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방향을 틀어서 다른 곳으로 안내했다.

책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방 안.

책장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책부터 두루마리 등등 종류가 다양했는데 곳곳에서 짙은 마력이 풍겨져 나왔다.

“본가의 서고야. 주로 주술과 관련된 책과 문서를 보관해 두고 있어.”

“오…… 구경해도 돼?”

“응. 편하게 봐.”

이세훈은 곧장 책장에서 눈에 띄는 몇 가지를 꺼내서 내용을 가볍게 읽어보았다.

‘전에 본 것들도 꽤 많네.’

회귀 전에 온갖 자료들을 찾아보던 시기를 떠올린 이세훈은 기억나는 것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아무런 말없이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에리카.

할 말이 있다기보다는 마치 뭔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보아하니 이 근처에 뭔가 있는 모양인데…….’

이세훈이 서고를 둘러보았고, 잠시 후 책장에 꽂혀있는 한 두루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겉보기에는 특별한 게 없는 낡은 물건.

그것을 가볍게 살피던 이세훈은 에리카가 자신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차렸다.

“좀 어지를 것 같은데. 상관없어?”

끄덕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에리카의 모습에 이세훈이 피식 웃으며 손에 들려 있던 두루마리를 다른 장소에 꽂아 넣었다.

스스스─

그러자 서고 내부의 흐름이 살짝 변했고, 그것을 살피던 이세훈은 이어서 다른 물건들도 여기저기에 옮겨놓았다.

그러자 의도적으로 어긋나 있던 서고 내부의 흐름이 바로 잡혔고 맨 안쪽의 책장에 희미한 일렁거림이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은 곧장 책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꿀렁!

책장의 뒤편에 숨겨져 있었던 또 다른 서고.

넓이만 세 배에 아무도 없던 바깥과 달리 책장마다 식신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는데 분위기 자체가 남달랐다.

‘과연…… 이쪽이 진짜였구만.’

이노우에 가문이 수집한 책들 치고는 너무 흔해빠진 것들이라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이쪽이 진짜였던 모양이다.

스윽

이세훈이 주변을 살피는 사이 에리카가 뒤따라 들어왔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그냥 보고 알아차린 거야?”

“뭐…… 일단은 그렇지. 근데 이게 그렇게 신기하냐?”

귀중품이 보관된 장소인 만큼 잘 숨겨두긴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까지 작정한 느낌은 없었다.

본가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되어있기도 하고 외부에 펼쳐진 방범설비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그냥 적당히 가려둔 정도지.’

에리카도 그 차이를 모르지 않을 텐데 왜 저렇게까지 흥미롭게 보는 것일까.

이세훈이 의아하게 바라보자 에리카가 의아해하다가 이내 무언가를 알아차리며 물었다.

“아무런 느낌도 못 받았어?”

“느낌?”

“본가는 영산의 마력이 집중되는 곳이라 감각이 둔해지기 쉬워. 마력이 특수한 성질을 띠고 있어서.”

에리카의 설명에 이세훈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건물 안쪽을 가득 채운 마력.

그냥 다른 마력과 별다른 차이를 못 느꼈는데 아무래도 뭔가 차이점이 있었던 모양이다.

‘보기에는 잘 모르겠는데…….’

허공에 손을 이리저리 휘적거리며 영산의 마력을 살피던 이세훈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건 잘 모르겠네. 내가 둔한 모양이야.”

“…….”

이세훈의 대답에 에리카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돌연 손목을 붙잡았다.

“이쪽으로.”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에리카가 서고 밖으로 데리고 나갔고, 잠시 후 본가의 안쪽에 있는 방에 도착했다.

“여긴…….”

수십 개의 새장이 빼곡하게 걸려 있는 방 안.

처음에는 새를 키우는 장소인가 싶었지만 안쪽에 책상이나 작은 책장 등 사람의 손길이 묻어나는 물건들이 보였다.

‘설마 여기가 에리카의 방인가?’

가벽이 아예 없는 류은하의 집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쪽 역시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텅 비어 있는 새장들의 모습에 이세훈이 묘한 표정으로 보고 있을 때.

철컹

걸려있는 새장 중 하나를 빼낸 에리카가 이세훈의 앞으로 다가왔다.

“이거.”

새장을 건네받은 이세훈 물건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흐음. 주술무구인가?’

특정한 술식이 새겨져 있음을 확인한 이세훈은 곧장 새장의 정보창을 펼쳤다.

[영농影籠]

[등급 : 희귀] [품질 : 최상]

주술이 새겨져 있는 새장.

그림자로 만들어진 까마귀를 식신으로 소환할 수 있습니다. 최대 다섯 마리까지 소환이 가능하며 사용자에 따라서 형태와 특성이 변합니다.

*마력을 부여할 경우 식신 ‘그림자 까마귀’를 소환합니다.

*스킬 ‘오안烏眼’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연습용인 것 같은데.’

실전에서 쓰기보다는 식신을 제어하는 요령을 가르쳐주기 위해 만든 것 같은 물건.

이세훈이 새장을 살피는 사이 에리카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한번 써봐.”

“뭔지는 모르겠다만…….”

아무리 봐도 설명해 줄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이세훈이 곧장 새장에다가 마력을 불어 넣었다.

우우웅!

새장의 바닥에 그림자가 차오르며 출렁거렸고, 잠시 후 위쪽으로 한 마리의 까마귀가 만들어졌다.

살아 있는 까마귀와 거의 흡사할 정도로 완벽한 형태.

차이점이라면 그림자 특유의 질감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는데 그 이외에는 그다지 특별한 게 없었다.

“…….”

에리카는 그대로 말없이 그림자 까마귀를 바라보았고, 잠시 후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이리와.”

현재 그림자 까마귀의 제어권은 이세훈에게 있는 상황.

그 말인즉 별도의 주술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에리카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야만 정상이었다.

총총

하지만 그림자 까마귀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새장 밖으로 나가 에리카의 어깨에 올라탔고,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지?’

아무런 주술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식신의 제어권을 빼앗긴 것인가.

그것도 당혹스러웠지만 더욱더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그림자 까마귀에게서 나타난 변화였다.

[까악]

반짝거리는 눈으로 울음을 터뜨리는 그림자 까마귀.

방금까지가 실물과 비슷한 모형 같았다면, 지금은 조금 흐트러져도 진짜로 살아 있는 까마귀처럼 보였다.

‘뭔가 있는데…… 아무리 봐도 모르겠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리고 있을 때.

“……그렇구나.”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에리카가 작게 중얼거렸다.

‘너무 뛰어나도 어긋나는 거였어.’

재능이 부족하여 자격미달인 이들은 수없이 봐왔지만, 설마 재능이 너무 뛰어난 탓에 자격미달이 되리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다.

“뭐가 그렇다는 거야?”

뭔가 깨달은 듯한 중얼거림에 이세훈이 의아해하며 물었고, 그에 에리카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마주보았다.

허무함과 씁쓸함. 그리고 실망감으로 가득 차 있는 에리카의 두 눈.

그 예상치 못한 반응에 이세훈의 두 눈이 커졌고.

“아무것도 아니야.”

에리카가 담담히 이야기를 잘라냈다.

* * *

건물의 동편에 마련되어 있는 연무장.

저녁식사를 끝내고 렌과 대련하기 위해 넘어온 이세훈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뭐, 정석적인 곳이구만.’

외형은 동양풍의 도장이었는데 외부로 충격이 새어나가지 않게끔 겹겹이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S급이 난동을 부려도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그 모습에 이세훈이 주변을 살피다가 시설을 점검 중이던 에리카와 눈이 마주쳤다.

“…….”

“…….”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더니 에리카가 먼저 고개를 돌린다.

시선을 피한다기보다는 흥미가 아예 없는 듯한 느낌. 그 반응을 본 이세훈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아무리 봐도 실망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포기한 것 같은데?’

그동안 봐온 에리카의 성격상 자신에게 뭔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일단 지적해서 개선되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개선은커녕 뭐 때문에 그러는지 이유를 물어봐도 대답을 피하며 아예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

그 말인즉 자신에게 개선의 여지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그렇게 판단을 내린 것이다.

‘사소한 부분이면 다른 걸로 어떻게든 보완을 할 텐데…… 반응을 보니 제일 중요한 부분에서 틀렸나 보구만.’

반년에 걸쳐서 잘 쌓아 올려온 관계가 원인도 모른 채 무너져 버린 상황이었지만, 이세훈은 그렇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 낙제점을 받았다고 해서 ‘재평가’를 받지 못하리란 보장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잘됐어. 슬슬 뭐가 중심인지 알아야 했으니까.’

만약 지금이 만마전과의 전쟁 중이라면 한가하게 에리카와의 수수께끼를 풀고 있을 여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충분히 시간의 여유가 있었고, 에리카가 자신을 채점하는 데 쓰인 도구가 바로 곁에 있었다.

그러니 이번 기회를 잘 살린다면 에리카가 자신에게 정확히 무엇을 평가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무엇을 바라는지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으리라.

‘일단 지금까지 찾아낸 키워드는…… 영산과 식신인가.’

영산의 마력과 자신이 만들어낸 그림자 까마귀.

이 둘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기에 에리카가 무언가를 보고, 또 실망한 것일까.

이세훈이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어?”

옆에 선 렌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노우에 가문은 남들 앞에서 갑자기 나타는 전통이라도 있는 겁니까?”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렌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뭐야. 설명 못 들었어?”

“예?”

“전통까진 아니지만 가문에서 권장하는 방법이야. 눈여겨보는 상대에게 이런 식으로 접근해서 실력을 보는 거지.”

“……진짜로요?”

그냥 재미로 하는 건가 했더니 실제로는 숨겨진 의미가 있었단 말인가.

그런 이세훈의 물음에 렌이 씩 웃었다.

“거짓말이야.”

“…….”

“너도 이런 거에 속는구나. 생각보다 순진한 면이 있네.”

제대로 걸렸다는 듯이 싱글벙글 웃는 렌의 모습에 이세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새끼…… 어째 삼견이랑 느낌이 똑같네.’

상대방의 속을 긁어놔야 개운함을 느끼는 속이 꼬인 인간.

대련이고 뭐고 이대로 한 대 갈겨야할지 이세훈이 고민하고 있을 때. 렌이 슬쩍 물러섰다.

“뭐,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야. 에리카는 그런 의도로 했었을 테니까.”

“…….”

“네가 꽤 마음에 드는…… 아, 이게 아닌가.”

이세훈을 바라본 렌이 담담히 중얼거렸다.

“이제는 마음에 들었었다, 라고 해야 하나?”

“……눈치가 참 빠르십니다.”

“내 여동생이니까.”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렌의 모습에 이세훈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럼 원인이 뭔지도 아시겠네요.”

만약 가문의 비전과 관련된 것이라면 차기당주인 렌이 모를 리가 없다.

그 질문에 렌이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아무리 그래도 속마음까지 다 아는 건 아니라서.”

“…….”

“내 추측이라면…….”

말꼬리를 늘리던 렌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네가 과대평가를 하고 있다, 일까.”

“과대평가……?”

“한번 고민해 봐. 너무 한 눈 팔지는 말고.”

그 말을 끝으로 렌이 반대쪽으로 걸어갔고, 그 뒷모습을 바라본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렸다.

‘여동생은 무슨…….’

당주가 되기 위해서라면 여동생이라도 죽이겠다고 다짐하던 놈이 무슨 양심으로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이전에 주술을 받아치면서 봤던 렌의 과거를 떠올리던 이세훈은 방금 나눈 대화를 곱씹었다.

‘과대평가라…….’

대련을 집중 못 하게 하려는 꼼수일까, 아니면 정말로 힌트를 준 것일까.

이세훈이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맞은편에 선 렌이 입을 열었다.

“대련은 원견사님이 정하신 대로 단판 승부. 유효타를 세 번 먼저 맞은 사람이 지는 거야. 이의는?”

“없습니다.”

“좋아. 그럼 정정당당하게 해보자고.”

이세훈이 마누엘에게 빌린 연금무구를 꺼내 움켜쥐었고, 렌도 그에 맞서 손에 들린 검은 부채를 펼쳤다.

촤락!

가만히 선 채로 상대를 살피는 두 사람과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는 에리카.

그리고 연무장 내의 긴장감이 팽팽히 당겨지며 끊어지려던 그 순간.

쿠구궁!

갑작스러운 지진과 함께 연무장을 뒤흔들렸고, 내부를 밝히던 불이 단숨에 나가 버렸다.

그리고 느껴지는 것은 숨이 막힐 것 같은 불쾌한 적막과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마력.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세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던 그때.

“……!”

콰르르릉!

거대한 벼락이 연무장의 천장을 꿰뚫으며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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