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64화
[새로운 최연소 S급 영웅의 탄생!]
[아리아 마이어스, 영웅업계의 새로운 역사를 쓰다!]
[류은하를 추격하는 아리아 마이어스. 새로운 완등자는 누가 될 것인가!]
“흐음…….”
휴대폰으로 뉴스를 살피던 이세훈은 영웅협회에서 승급을 마치고 나온 아리아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여느 때와 같이 환한 미소를 지은 얼굴. 허리춤에는 새로운 검, 수리한 글레어가 걸려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이 피식 웃었다.
‘어떻게 잘 맞아떨어졌나 보구만.’
아리아의 특징은 어떤 무구든 동화율이 0%라는 것.
간단히 말해 전설등급의 명검도, 길에서 주워온 나뭇가지도 똑같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는데 이세훈은 그 원인에 대해서 여러 추측을 해왔었다.
감각의 둔함, 마력의 특이성, 심상의 왜곡 등등 여러 가능성이 있었는데 그것이 이번에 제이크와의 대련을 통해 하나로 좁혀졌다.
‘마음속에 있는 검.’
검술을 단련하는 영웅들에게는 말 그대로 ‘심검心劍’이라 불리는 것으로 보통은 명확한 형태가 없는 종류였다.
하지만 두 남매는 처음 마력을 각성했을 때부터 남들보다 선명한 형태를 지닌 심검을 지녔고, 그게 심상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제이크는 무리하게 심검을 재현하려고 한 탓에 무구를 망가뜨리게 됐고, 아리아는 본인의 심검이 완벽한 탓에 다른 무구를 배척하게 됐지.’
원인은 같지만 발생된 현상은 완전히 반대인 상황.
거기서 이세훈은 아리아에게 필요한 무구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감을 잡게 되었다.
‘완벽하게 재현할 필요 없이 조금만 비슷하면 돼.’
친구와 닮은 사람을 보면 반사적으로 반가운 것처럼, 아리아의 심검을 유사하게 재현할 수 있는 기능을 만든다.
하지만 마음속에 존재하는 검인만큼 그 형태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 해결책이 바로 글레어에 남아 있던 백호의 힘이었다.
‘글레어에 남아 있는 백호의 힘에다가 내 피를 섞은 다음 경계의 권능으로 되살린다.’
어찌 보면 탐구자를 되살린 것과 비슷했는데 다른 점은 모든 힘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백호의 가죽, ‘서금피西金皮’의 효과만 적용시킨 것이었다.
‘접촉한 검기의 마력구조를 파악하여 상쇄시키는 힘. 그걸 응용하면 어설프게나마 검기를 따라 할 수 있지.’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쓸데없는 검기를 하나 더 만들어서 마력소모율만 높이는 검이지만, 아리아에게는 자신의 심검을 불완전하게나마 따라 할 수 있는 검이 되었다.
그 덕분에 동화율이 오르면서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검기와 검술을 펼칠 수 있게끔 된 것이다.
‘일단 방향성은 잡혔는데…… 문제는 다음이네.’
자신이 이렇게 쉽게 알아낸 것을 회귀 전의 사부가 몰랐을 리가 없다.
아마 아리아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심상에도 무언가 변화가 일어난 것일 터. 거기에 대응하는 데 실패한다면 회귀 전과 비슷한 꼴이 될지도 모르리라.
‘뭐, 이건 앞으로 차차 생각해 보고…….’
지금 생각해 봐야 골치 아픈 문제였기에 이세훈은 곧장 넘기면서 기사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흐음. 상상 이상으로 반응이 좋구만.’
아리아의 승급 소식이 눈 깜작할 사이에 세계 곳곳으로 퍼졌고, 사람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회귀 전과 다르게 세계정세가 불안정해지면서 뛰어난 영웅들에 대한 관심사가 높아진 상황.
거기에 아리아가 자신에 의해 회귀 전보다 더 빠르게 S급에 도달하면서 엄청난 상승효과가 일어난 것이다.
‘나쁠 건 없는데…… 문제는 만마전의 반응이네.’
몽환마의 토벌 이후로 상당히 뒤숭숭해진 만마전.
안 그래도 환락가라는 강력한 거점을 잃은 상황에서 분위기도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으니 슬슬 무언가 준비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제일 그럴싸한 건 역시 암살인가?’
몽환마가 토벌당한 것처럼 고위영웅, 아니면 완등자를 죽여서 상황을 바꾼다. 회귀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기에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유망주까지 노린다고 치면 내가 1순위겠구만’
완등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건드리기는 힘들겠지만, 반대로 그 점을 노려서 완등자를 유인하는 도구로 쓸 수도 있다.
이래저래 신경 쓸 부분이 많다고 느낀 이세훈이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빠악!
대련장 쪽에서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쿠웅─
한 박자 느리게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제야 이세훈이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바닥에 엎드린 채로 쓰러진 제이크와 진검을 어깨에 걸친 채 내려다보는 마광수.
벌써 열 번을 넘게 본 광경에 이세훈이 쓴웃음을 지었다.
“또 기절시키셨어요?”
“또 기절한 거지. 쯧쯧…….”
혀를 차며 대련장에서 내려온 마광수가 수건으로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출력을 유지하면 공격을 못 피하고, 공격을 피하면 출력을 유지 못 하고…… 완전히 삽질하는 기분이구만.”
제이크가 마광수에게 수련을 받기 시작한 지 사흘 차.
첫날부터 출력 조절에 성공하고 어검까지 유지하기에 하루 만에 끝나나 했는데 그 상태로 움직일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오늘까지 그 단점을 고치기 위해서 여러 수련법을 시도하고 있었는데 한쪽 구멍을 막으면 다른 쪽에 구멍이 뚫리듯이 계속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잘 움직이지 않습니까?”
“동네 산책하는 것처럼 터덜터덜 걷는 걸 잘 움직인다고 해야 되냐?”
“시작이 중요한 거죠. 점점 적응하고 있고.”
제이크의 문제점은 경험 부족으로 인한 과부화.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좋은지 아직 체계가 안 잡혀 있다 보니 그때그때 생각하느라 움직임이 뚝뚝 끊어진다.
본래 재능이 뛰어난 만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되는 것이기에 그렇게까지 답답하게 여길 필요는 없었다.
그런 이세훈의 이야기에 물을 마시던 마광수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숙제도 네놈이 냈고 수련도 네놈이 부탁해서 하고 있는 건데 왜 내가 나쁜 놈인 것처럼 말하는 거냐?”
“크흠. 열심히 하고 있으니 좋게 봐 달라 그 말씀이죠. 나쁘다는 게 아니라.”
“앉아서 구경만 하는 놈이 입만 살아서는…….”
불만스럽게 투덜거린 마광수가 땀을 닦아낸 수건을 대충 던졌고,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어떤 것 같습니까?”
“뭐가?”
“제이크 실력이요.”
이세훈의 물음에 마광수가 대련장을 힐끗 보았고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공격 S. 방어 A+. 체력 A. 근데 동시에 펼치면 제대로 못 해서 종합 A-다.”
“제가 생각한 거랑 비슷하네요.”
스펙은 좋지만 빈틈이 많아서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수준. 그 모습에 이세훈이 턱을 쓰다듬었다.
‘역시 실전에 투입하기에는 아직 이르네.’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다고 이세훈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그 모습을 살피던 마광수가 물었다.
“요즘 뭐 하고 다니는 거냐?”
“예?”
“이전에는 그냥 강해지려고 뭔가 배우려는 것 같았는데……. 요즘에는 명확한 목적이 생긴 것처럼 보이더군. 마치 준비가 끝난 것처럼 말이야.”
누군가에게 듣지는 않았지만, 마광수는 지난 몽환마 토벌전에서 이세훈의 영향력이 상상 이상으로 클 것이라 생각했다.
명확한 증거가 있다기보다는 감. 자신이 본 이세훈이라는 인물의 재능과 성격이라면 그리 허술하게 엮였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광수의 물음에 이세훈이 생각에 잠겼다.
‘흐음…… 슬슬 말할 시기가 왔나?’
그동안은 괜한 오해를 받을까 봐 여러 가지를 숨겼지만, 지금이라면 어느 정도 대등해진 만큼 서로에게 좀 더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회귀 전에 겪었던 마광수의 성격을 떠올린 이세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준비가 끝났다고 할 정도는 아니고……. 슬슬 병행해도 되겠다 싶어져서요.”
“뭐를?”
“그야 십악의 토벌이죠. 몽환마처럼.”
이세훈의 이야기에 마광수의 두 눈이 살짝 커졌고,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에 금방 진정되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음 상대는 정해진 거냐.”
“아직 못 정했어요. 쉽게 만날 수 있는 녀석들이 아니기도 하고, 지금은 저쪽도 경계하고 있을 테니까요.”
회귀 전의 경험으로 확실하게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해봐야 천안. 그리고 육대마경 중 ‘되풀이 숲’에 가둬져 있는 그 녀석뿐이다.
“…….”
그 설명에 마광수가 무언가 이야기하려다가 머뭇거렸고,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이 금방 속내를 알아차리며 대답했다.
“도플갱어는 교수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인형사나 조율자 다음으로 찾기가 어렵습니다. 능력도 능력이고 굉장히 신중한 편이니까요.”
부정적인 대답에 마광수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지려던 그때. 이세훈이 곧장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교수님이 도플갱어와 관련된 정보나 자료를 제공해 주신다면 못할 것도 없죠.”
회귀 전의 도플갱어는 주시자인 『계승』과 손잡고 악몽의 도시에 있던 근원의 파편을 사용해 멸각의 마신으로 각성했다.
지금은 자신에 의해 상황이 틀어지긴 했지만 근원의 파편이 남아 있는데 계획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을 터.
즉 『계승』을 중점으로 조사하다 보면 의외로 쉽게 도플갱어와 접촉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마광수가 도와준다는 전제하지만.’
도플갱어의 과거를 아는 것은 마광수뿐이었지만, 과거에 단 한 번도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본래 그런 개인적인 사연에 관심을 두는 편은 아니었지만 도플갱어는 변신을 간파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는 중요한 부분.
그렇기에 이 부분만큼은 마광수의 협조가 필요했다.
“…….”
이세훈이 말하는 정보와 자료가 어디까지인지 이해한 마광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은…… 생각해 보마.”
이 상황이 되어서도 과거를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마광수. 조금 답답하긴 하지만 재촉한다고 될 것도 아니었기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편하신 대로 하세요. 급한 건 아니니까요.”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이세훈의 모습에 마광수가 힐끗 보더니 이내 작게 중얼거렸다.
“……고맙다.”
못할 말이라도 한 것처럼 마광수가 곧장 대련장 위로 다시 올라갔고, 그 모습에 이세훈이 어이없는 눈으로 보았다.
‘나이도 먹을 대로 먹은 양반이 뭐 저런 거 가지고…….’
적응이 안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감정 표현에 마냥 인색한 것보다는 저렇게라도 보여주는 편이 낫다.
속으로 슬쩍 웃은 이세훈은 남은 여름방학 동안 할 만한 일들이 뭐가 있을지 떠올렸다.
‘전에 받은 재료로 신성무구 만들기. 창고에서 꺼내온 물건 정리하기. 그리고…… 아.’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명. 여름방학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얼굴에 이세훈이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우우웅
손에서 느껴지는 진동. 혹시나 싶은 마음에 이세훈이 도착한 메시지를 읽어보았고.
[집에 놀러 올래?] - 이노우에 에리카.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 * *
[내일 간다. 오전 11시까지 터미널로 마중 나와.] - 이세훈.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문자. 그 내용을 읽은 에리카가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몇 주 만에 갑자기 연락하는데도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받아주는 이세훈. 무신경하게 보일 수도 있었지만 에리카는 이쪽이 마음에 들었다.
‘너무 소란스러우면 그러니까…….’
답장도 보내지 않고 에리카가 계속해서 휴대폰을 보고 있을 때. 얼굴을 새하얀 천으로 가린 여인들이 조용히 속삭였다.
“아가씨. 들어가실 시간입니다.”
“……응.”
짧게 대답한 에리카가 휴대폰을 내려놓았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앞쪽을 바라보았다.
꿀렁─
금줄과 부적으로 완벽하게 봉인된 거대한 구멍.
그 안쪽에서 검은 늪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렸고, 그 모습에 에리카가 망설임 없이 걸어 들어갔다.
찰박찰박
땅 위를 걷듯이 간단히 중심부에 도착한 에리카.
그와 동시에 잠잠하던 늪의 표면이 크게 흔들렸고 잠시 후 위쪽으로 크게 솟구치기 시작했다.
까악─까악─
수천 마리의 까마귀가 동시에 울부짖는 듯 소리가 크게 울렸고 검은 늪이 거대한 날개처럼 에리카의 주변을 천천히 감싸간다.
조금씩 다가오는 검은 늪에 에리카가 가만히 쳐다보고 있을 때. 문득 이세훈에게 알려줬던 술식을 떠올렸다.
“…….”
병문안 때 종이에 남겨놨던 술식. 어렵긴 하지만, 그 이후로 시간도 꽤 지났으니 풀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일 만날 이세훈을 떠올린 에리카가 천천히 눈을 감았고.
“풀어오면 좋겠네…….”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검은 늪 속으로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