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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263화 (263/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63화

래피얼이 들고 있던 수정구는 정보창으로 봐도 특별한 게 없었다.

[수옥구水玉球]

[등급 : 영웅] [품질 : 하]

물의 결정을 깎아서 만들어낸 수정구.

수정구에 부여된 마력을 수속성마력으로 치환시키며 일정 이상 증폭시킬 수 있다.

내부에 수속성마력을 사용하는 기술을 저장할 수 있으며 마력을 소모하는 것으로 발동과정으로 생략하고 펼칠 수 있다.

*마력을 수속성마력으로 치환,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수속성마력을 응용하는 기술을 내부에 저장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저장량 : 89%

*스킬 ‘술식해방’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장한 기술을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무구.

보통 이런 물건들은 실력이 떨어지는 영웅들을 보조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는데 수옥구의 성능도 딱 그 정도였다.

사실상 장비로서 보관됐다기보다는 영웅등급의 재료로서 보관된 물건. 그렇기에 창고에 있는 다른 물건들과 비교하면 형편없었지만.

“아뇨. 이게 좋아요.”

이세훈은 단호하게 수옥구를 요구했다.

“…….”

아무리 설명을 해도 들은 척조차 안 하는 이세훈. 그 모습에 래피얼은 자신도 모르게 눈매를 일그러뜨릴 뻔했다.

‘왜…… 왜……!’

가장 중요한 계획을 다 망쳐놓고 이제는 작은 이득조차 망가뜨리려는 것인가.

마음과 같아서는 이세훈을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래피얼은 그 감정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몸속에 있는 카스파르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

래피얼의 물음에 카스파르가 그녀의 눈을 통해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이쪽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눈. 그 시선도 그렇고 계속해서 불리하게만 돌아가는 상황이 마치 자신들의 정체가 발각된 것처럼 느껴졌지만, 카스파르는 신중하게 생각했다.

‘갑자기 정체를 들켰다기보다는…… 세라핌 길드의 관계자로서 견제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겠지.’

거기에 아리아가 자신들을 견제하는 것을 보면 이세훈 역시 제이크에게 모종의 수작을 부렸음을 알고 있을 터.

그런 상황을 고려하면 수옥구의 비밀을 알아차렸다기보다는 뭔가 숨겨진 게 있을 거라고 질러본 것일 수도 있다.

‘관심을 보이면 저 추측에 확신을 심어줄 터. 여기서는 차라리 일찌감치 손을 떼야 한다.’

어차피 수옥구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다른 ‘조각’들이 필요한 만큼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한 카스파르는 빠르게 결론을 내리고 래피얼에게 명령했다.

[우선은 넘겨줘라.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수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어.]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감정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표정을 관리한 래피얼은 한숨을 내쉬며 질린 표정으로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하아…… 정 그러면 가져가세요.”

떠넘기다시피 수옥구를 내미는 래피얼. 그 모습에 이세훈이 슬쩍 웃으며 건네받았다.

“고맙습니다.”

“…….”

이세훈의 인사에 래피얼은 대답도 하지 않고 신경질적으로 두 사람을 지나쳐 밖으로 나갔고, 그 뒷모습을 본 마일즈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너 쟤 약 올리려고 그런 거냐?”

“그런 것도 있고, 꽤 재밌어 보이기도 해서요.”

이세훈이 수옥구를 래피얼에게서 빼앗은 것은 두 가지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계승』이 직접 골랐다는 점. 두 번째는 회귀 전에 들은 어떠한 ‘소문’과 유사한 물건이라는 점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니 확인이나 해볼까.’

수옥구를 움켜쥔 이세훈은 곧장 안쪽에 자신의 마력을 불어넣었다.

우우웅

안으로 들어간 마력이 조금씩 수속성마력으로 치환되었고 이내 찰랑거리는 물처럼 내부를 채워간다.

그리고 차오른 마력의 양에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기술들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이세훈은 그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흐름으로 찾는다고 했었지 아마…….’

안쪽에 차오른 마력이 수옥구 내부를 훑듯이 천천히 회전했고 겉으로도 그 움직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 마력의 소용돌이를 지그시 응시하던 이세훈은 이내 거기서 특정한 움직임을 발견했다.

‘저건가.’

수옥구에 기술을 저장하는 데 쓰이는 마력회로. 그것들이 만들어낸 아주 미세한 흐름을 포착한 이세훈은 거기에 맞춰서 마력을 움직였다.

그리고 내부에 소용돌이치는 마력이 일정한 형태로 만들어진 순간.

찰칵─

이세훈의 손끝으로 무언가 맞물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

느낌과 달리 아무런 변화도 없는 수옥구.

다른 사람이라면 자신이 착각한 것인가 싶겠지만, 이세훈은 오히려 확신하며 내려다보았다.

‘이거…… 진짜 수월옥경이잖아.’

과거 김인철이 보유했던 화천태도와 마찬가지로 오행무구에 속하는 전설등급의 무구인 ‘수월옥경水月玉鏡’.

정확히는 부서진 불꽃처럼 그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이세훈은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 소문이 사실이었을 줄이야…….’

본래 오행무구는 소유주가 바뀌면서 종적을 감추는 일이 잦았는데 수월옥경은 그중에서도 아주 오랫동안 보이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한 수집가가 마인에게 살해당하면서 갑작스레 나타났는데 소문에 의하면 그가 모으던 수속성 무구, 수정구가 합쳐지면서 수월옥경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입수경로를 몰라서 헛소문이 퍼지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이가 없네.’

수옥구, 수월옥경의 조각을 본 이세훈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회귀 전의 소문에 의하면 조각의 개수는 총 세 개.

즉 이와 비슷한 수정구를 두 개나 더 찾아야 수월옥경을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흐음…… 직접 찾기는 아무래도 힘들겠는데.’

이런 종류의 수정구가 한두 개인 것도 아닐뿐더러 조각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세훈이 신경 쓰이는 것은 회귀 전에 있었던 수집가의 죽음이었다.

‘『계승』이 정확히 노리고 찾아왔는데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그렇지.’

김인철의 화천태도가 『공양』과 엮였듯이 이 수월옥경에도 주시자의 손길이 닿아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추측을 떠올리던 이세훈은 적당히 생각을 정리한 다음 마일즈를 바라보았다.

“고른 물건은 바로 챙기면 됩니까?”

“어? 그렇기는 한데…… 너 진짜 그걸로 하려고?”

이해가 안 간다는 마일즈의 시선에 이세훈이 슬쩍 웃었다.

“재료로 쓰기 좋을 것 같아서요. 느낌이 좋기도 하고요.”

굳이 『계승』에게 넘겨줄 이유도 없고, 무엇보다도 자신에게는 본래의 성능을 이끌어낼 방법도 있었다.

“뭐, 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나중에라도 생각 바뀌면 언제든지 말해. 내가 형님 몰래 바꿔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조각을 챙긴 이세훈은 다시 마일즈와 함께 창고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여기서부터는 전부 도검류야.”

장식장 몇 개가 아니라 일정구획을 꽉 채운 도검류들.

오랫동안 모아온 물건들인 만큼 영웅등급도 심심찮게 보였고 그중에는 본래 전설등급이었던 무구들도 있었다.

‘전투 중에 파손되고 수리도 안 되는 물건들이었던가.’

보통 이런 종류는 수집품으로 놔두거나 다시 녹여서 재료로 재활용하는데 마이어스 가문은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지금처럼 장식해 두는 쪽이었다.

‘나 같으면 바로 녹여 버렸을 텐데……. 음?’

주변의 검들을 살피며 걷던 이세훈은 한 물건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길이만 2m에 넓이도 머리크기만 한 대검.

검날의 이가 다 빠진 데다 안쪽까지 균열이 퍼져서 사실상 무구로서 생명이 끝나 있었는데 이세훈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거기에 남은 ‘흔적’이었다.

“이거…… 무슨 검입니까?”

“음? 아아. 그건가.”

천천히 뒤따라오던 마일즈가 장식장에 들어 있는 대검을 바라보았다.

“글레어Glare라고 큰형님이 오랫동안 쓰셨던 검이야. 이렇게 돼버려서 말년에는 바꾸긴 했지만.”

마일즈의 큰형님, 길버트 마이어스가 사용했다는 이야기에 이세훈이 유심히 바라보았다.

“혹시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도 알고 계십니까?”

이세훈의 물음에 마일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백호 알지? 사신수. 그놈 모가지 날렸던 검이 저거야.”

“백호…….”

“말이 S급이지 몸뚱이가 얼마나 질기던지……. 저것도 원래 전설등급 무구였는데 그거 한 번으로 저렇게 돼버렸어.”

옛 기억을 떠올리며 혀를 내두르는 마일즈.

그 이야기를 들은 이세훈은 신기한 표정으로 글레어를 다시 보았다. 백호의 토벌전에 파괴됐다던 전설등급의 무구.

그게 바로 이 대검이었던 것이다.

‘회귀 전에는 본 기억이 없는데……. 그땐 이미 처리했나 보네.’

시기상으로 거의 20년이나 차이 나는 만큼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예상치 못한 물건을 마주하게 된 이세훈은 아까 발견했던 흔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스스스

균열 곳곳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빛.

언뜻 보기에는 조명이 반사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검신이 만들어내는 희미한 예기가 서로 맞물리면서 빛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게 그냥 남았을 리는 없고…… 백호의 피인가?’

마치 글레어에 침식한 것처럼 퍼져 있는 백호의 힘.

남겨진 형태를 보건대 처음 균열이 생겼을 때 그 사이로 피가 스며들면서 글레어의 기능을 망가뜨리고 저렇게 된 것이 분명하리라.

‘그때가 백호가 죽어가던 상황이라면…… 이렇게 오랫동안 흔적이 남아 있는 것도 이상하진 않네.’

어떻게 보면 백호의 원념이 담겨있는 물건.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조금 도박이긴 하지만,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하다. 결정을 내린 이세훈은 장식장을 열고 안쪽에서 글레어를 꺼내 들었다.

“음? 너 그걸로 하려고?”

앞에 수정구에 비하면 나쁘진 않지만 다 부서져 가는 검을 고르는 건 조금 그렇지 않은가.

마일즈의 물음에 이세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이걸 선배한테 드리려고요.”

“그걸 아리아한테……?”

이세훈의 이야기에 마일즈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조심스레 휘둘러도 바로 박살 날 것 같은 검을 그 난폭한 조카에게 주겠다니.

‘게다가 그 녀석이 휘두르기에는 크기가…….’

설마 아무거나 대충 골라주고 보상만 챙기려는 걸까. 아무리 이세훈이라도 끝이 안 좋을 것 같은 느낌에 마일즈가 말리려던 그때.

“조금만 손볼게요.”

이세훈이 글레어의 검면에 손바닥을 올렸고, 그대로 끝부분을 향해 쓸어 올렸다.

주르륵

손바닥의 상처에서 흘러나와 균열 속으로 스며드는 피.

영연신마법으로 피를 제어해서 일정 부분에만 피가 차오르게 만든 이세훈은 넘치기 직전에 경계의 권능을 발동했다.

스스스.

글레어의 안쪽에 그어진 선.

그 모습이 마치 작은 검이 안쪽에 새롭게 생겨난 것처럼 보였는데 이세훈은 그 부분을 삶과 죽음의 경계로 밀어 넣었다.

“…….”

아무런 변화도 없이 잠잠한 검. 그 모습에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있을 때.

꿀렁─

균열 속을 채운 피가 갑자기 움직였고, 이어서 표면에 기포가 생기며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마치 핏속에서 무언가 다시금 태어나려는 듯한 모습. 그에 이세훈이 재빠르게 아공간 포켓에서 소광의 망치를 꺼내 움켜쥐었고.

카아앙!!

경계에 둘러싸인 안쪽을 있는 힘껏 후려갈겼다.

* * *

저택의 뒤뜰.

홀로 테이블에 앉아서 차를 마시던 아리아는 자연스럽게 저택을 바라보았다.

차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반사적으로 향하는 시선. 마치 초조해하는 듯한 자신의 모습에 아리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너무 기대하는 것 같은데…….”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커지며, 아리아는 그동안 그런 허무함을 수없이 많이 겪어왔다.

그렇기에 무슨 일이든지 가급적 기대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

‘너무 잘해내도 문제구나.’

요 몇 년 사이 아리아의 예상이 빗나간 것은 딱 두 번.

첫 번째는 바벨의 습격 사건 때 이세훈이 만든 기묘한 검을 움켜쥐었을 때였고, 두 번째는 이번에 제이크가 심검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을 때였다.

그렇게 두 번의 빗나감이 모두 이세훈과 관련되어 있다 보니 기대를 안 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

이런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금방이라도 끝나 버릴 것 같다는 의심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그 애매한 감정 속에서 아리아가 말없이 차를 기울이고 있을 때. 뒤뜰로 이어지는 문이 열리며 마일즈가 걸어 나왔다.

“아리아. 검 가지고 왔다!”

터덜터덜 다가오는 마일즈의 모습에 아리아가 손에 들린 찻잔을 내려놓으며 바라보았다.

“어떤 검으로 골랐어요?”

“그게…… 직접 보는 게 빠를 거다.”

마일즈가 아공간 포켓에서 새로운 검을 꺼냈고, 그것을 건네받은 아리아는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은빛이 감도는 날카로운 세검. 그다지 특별한 것도 없었고, 실제로 정보창 역시 별다른 것은 없었다.

[글레어Glare]

[등급 : 영웅] [품질 : 최하]

특수한 광석으로 만들어진 세검.

본래 강력한 힘이 담긴 무구였으나 지금은 이전의 기능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

아무런 기능도 없는 검.

다 부서진 전설등급 검을 이렇게라도 만들어낸 것이 대단하긴 하지만, 어찌 됐든 성능만 놓고 보면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 모습에 아리아의 눈빛이 조금 가라앉으려던 찰나.

“……영 시원찮으면.”

마일즈가 애매한 표정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눈 딱 감고 검기 한 번만 뽑아보라고 하더라.”

“…….”

이런 검으로 검기를 뽑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까. 잠시 동안 바라보던 아리아는 이내 결정을 내린 듯 마력을 끌어올렸다.

우우웅─

글레어가 눈 깜짝할 사이에 황금빛 검기로 휩싸였고 그와 동시에 검 안쪽에서 무언가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검기?’

글레어를 코팅하듯이 얇게 펼쳐진 또 다른 검기.

그로 인해 두 개의 검기가 글레어를 동시에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아리아는 낯선 감각을 느꼈다.

키이잉!

자신이 아니면서 자신처럼 느껴지는, 마치 무기가 자신을 흉내 내는 듯한 감각.

다른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느끼는 무구와의 동화율. 그것이 늘 0%였던 아리아가 오늘 처음으로 10%에 도달했고.

“……이러면 또 기대해 버리는데.”

황금빛 섬광과 함께 최연소 S급 영웅의 기록이 경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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