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62화
약혼식이 끝난 뒤. 제이크는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바벨에서 최강으로 손꼽히는 자신의 누이를 상대로 대등하게 싸웠으며 마지막 격돌에서 검을 부러뜨리는 엄청난 활약상까지 펼쳤다.
물론 대련의 결과만 놓고 보면 기절한 자신의 패배지만 거기까지 도달한 것 자체가 엄청난 성과.
거기에 평생을 시달려온 가문으로부터 조금이지만 자유로워졌기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자신감이 마구 샘솟았다.
‘지금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아.’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자신감.
그렇기에 약혼식 다음 날 제이크는 당당하게 이세훈에게 찾아갔고.
“……그렇게 된 거야.”
“…….”
10분 동안 들은 세계의 비밀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십악보다 강력한 마인을 만들어내려는 집단. 이세훈의 몸에 깃들어 있는 탐구자. 가문의 탄생에 숨겨져 있던 비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약혼녀의 정체까지. 무엇하나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에 제이크가 미간을 꾹꾹 눌렀다.
“잠깐…… 그…… 지금 말한 거 전부 진짜야?”
“진짜야.”
“정말로? 아니, 널 못 믿는 게 아니라 이게…… 너무…….”
하나만 들었으면 그냥 깜짝 놀라고 말았을 텐데 수많은 이야기가 한 번에 쏟아지니 머릿속이 버벅거린다.
세간에 떠도는 음모론을 들은 것만 같은 느낌에 제이크가 머라고 말을 잇지 못하자 이세훈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어차피 급할 것도 없어. 차분하게 생각해.”
본래 바로바로 받아들일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이럴 때는 재촉해서 좋을 것이 없었다.
이세훈의 이야기에 한참 동안 생각을 정리하던 제이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믿기지는 않지만…… 그쪽이 훨씬 더 그럴싸하네.”
어째서 마이어스 가문만 대대로 고위영웅을 배출해 왔는가.
여태까지는 그냥 그런 혈통이라서, 라고 넘겼지만 완등자의 인체실험이라면 그 현실성이 달라진다.
‘그 두 사람 때문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전통이라는 명목으로 희생되어 온 가문의 사람들.
여태까지는 그래도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했기에 어느 정도 넘겨줄 수 있었지만, 만약에라도 그것이 ‘검의 정수’라 불리는 물질에 의한 것이라면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꽈악─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던 제이크는 잠시 동안 숨을 고르다가 힘을 풀었다.
‘그래도 외부에 피해자가 없는 게 다행인가.’
만약에라도 자신이 누려온 가문의 권세 속에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면 그때는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자괴감에 빠졌을 것이다.
어느 정도 마음을 정리하는 데 성공한 제이크는 말없이 기다리고 있던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건 왜 갑자기 말해준 거야?”
“주시자가 너희 가문에 접근하기 시작했으니까. 불시에 당하지 않으려면 알고 있어야지.”
“흠…….”
이세훈의 이야기에 제이크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선의로 말해준 것이기에 고맙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신뢰받지 못했다는 것처럼 들려서 묘하게 서운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이랑 비교하면 좀 못 미덥긴 했지만…… 으음…….’
한참을 고민하던 제이크는 이내 깔끔하게 생각을 정리한 다음 물었다.
“이제는 나 믿어주는 거지?”
이 이야기를 해준 시점에서 당연히 그렇겠지만, 그래도 직접 듣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그런 제이크의 속내를 어느 정도 알아차린 이세훈이 슬쩍 웃으면서 대답했다.
“믿지. 또 십악이랑 싸울 일 있으면 너도 데려갈게.”
자신을 향한 믿음이 느껴지는 이세훈의 눈빛. 그 모습에 제이크가 감동하며 바로 대답하려던 찰나.
‘잠깐…… 십악?’
이번 일로 아무리 실력에 자신감이 붙었다지만 S급 영웅들도 어찌 못 하는 괴물을 자신이 상대하기에는 힘들지 않을까.
상상 이상의 과제에 제이크가 대답하지 않고 머뭇거리자 이세훈이 이야기를 덧붙였다.
“걱정하지 마.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정면에서 싸우라고는 안 하니까.”
“흠흠. 그렇지? 뭐든 적재적소가 있는 거니까…….”
“그 부분은 걱정 말고, 그보다 새로 만든 검이나 좀 보여줘 봐. 시간이 없어서 그동안 못 봤네.”
“아, 응. 알았어.”
아공간 포켓에서 새로운 검을 꺼낸 제이크는 곧장 이세훈에게 건네줬다.
청록빛으로 이뤄진 깔끔한 손잡이.
휘광검처럼 검신은 따로 없었는데 무게는 이전과 똑같았다.
‘검신이 내부로 흡수된 건가.’
손잡이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이세훈은 곧장 정보창을 펼쳐보았다.
[풍인검風引劍]
[등급 : 영웅] [품질 : 최상]
특수한 수정과 바람의 광석을 압축해 낸 검.
마력을 소모하여 검신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손잡이에 가해진 압력과 사용자의 심상에 따라 형태가 결정된다.
대기 중의 마력과 공기를 흡수하여 검신을 강화할 수 있으며 그 크기에 따라 마력과 정신력이 추가로 소모됩니다.
*마력을 소모하여 바람으로 이뤄진 검신을 형성합니다.
*사용자의 힘과 심상에 따라서 검신의 형태가 변화합니다.
*대기 중의 마력과 공기를 흡수하여 검신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단, 힘이 커질수록 마력과 정신력 소모가 증가합니다.
*스킬 ‘풍경風鏡’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영웅 등급?”
정보창을 읽은 이세훈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전설 등급 무구였던 에위니아의 도신을 재료로 사용해서 만든 물건인데 어떻게 이런 등급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손잡이를 내려다보는 이세훈의 눈빛이 싸늘해지던 그때. 제이크가 무언가 깨닫고 황급히 이야기했다.
“그거 검신을 만들면 등급이 올라가! 어지간해서는 전설 등급이야!”
“…….”
제이크의 이야기에 다시 풍인검으로 시선을 돌린 이세훈은 곧장 손잡이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휘우우웅!
주변의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모이고 청록빛의 검신이 매끄럽게 형성된다.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은 다시금 등급을 살펴보았다.
[등급 : 영웅] [품질 : 최상]
“…….”
“내, 내가 다시 만들어볼게!”
이세훈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제이크는 재빠르게 풍인검을 가져온 다음 직접 검신을 만들어냈다.
우우웅!
은은한 빛이 감도는 검신.
심상에 영향을 받는다는 게 사실인 듯 앞서 만들어낸 것과는 형태나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는데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의 표정이 풀어졌다.
“이건…….”
상상 이상의 변화에 흥미를 드러낸 이세훈은 곧장 제이크가 쥐고 있는 상태로 풍인검의 등급을 살펴보았다.
[등급 : 전설] [품질 : 중]
영웅 등급에서 전설 등급, 거기에 품질까지 중으로 올라갔다.
완전히 다른 무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 모습에 이세훈이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용자에 따라서 무구의 완성도가 변한다라…… 특이한 물건이 만들어졌네.’
제작 과정에 제이크의 피, 검의 정수가 담겨진 탓일까. 보기 드문 특성에 이세훈이 탐구자를 깨웠다.
‘이거. 어떤 느낌입니까?’
[전에 만들던 그건가 보네. 어디보자…….]
탐구자가 이세훈의 몸을 통해 풍인검을 살펴보았고 이내 흥미로워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용자의 심상에 검의 정수가 보조하는 건가. 이야…… 이런 식으로 응용될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어렵습니까?’
[일반적으로는 심상을 보조하기보다는 잠식하려고 들지. 이런 구조면 사용자를 꽤 가리겠는걸.]
탐구자의 이야기에 이세훈은 자신이 만들었을 때 등급이 변동하지 않던 걸 떠올렸다.
‘아까 변화가 없던 게 정수 때문이었구만.’
검신은 만들 수 있지만 그 이상의 도움은 주지 않는다.
일반적인 무구들과 다르게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유동적인 성능에 이세훈이 살짝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러면 누가 봐도 생체무구인데…….’
회귀 전이야 문제없지만 지금 시점에서 생체무구는 법으로 엄격히 금지된 물건.
이걸로 괜한 소동에 휩쓸리지 않을까 고민하던 이세훈은 금방 결론을 내렸다.
‘아무렴 어때.’
어차피 검의 정수 자체가 탐구자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유전물질이고, 무엇보다도 효과만 생체무구와 유사한 것이니 문제는 없으리라.
“무구스킬도 한 번 써봐.”
고개를 끄덕인 제이크가 무구스킬인 ‘풍경’을 사용했고, 잠시 후 주변의 대가기 휘몰아치더니 청록빛의 검신들이 연달아 생겨났다.
‘사용자가 만들어낸 검신을 어검으로 재현하는 건가.’
바람의 거울이라는 이름에 딱 맞는 효과. 전설 등급 무구답게 파격적인 효과에 이세훈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잘 만들어졌네. 이 정도면 되겠어.”
“휴우…….”
풍인검이 해체되나 싶어 조마조마했던 제이크는 이세훈의 승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완성시킨 무구라 그런지 몰라도 나름의 애착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기량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으니까 앞으로 열심히 수련해.”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그보다…….”
주변을 슬쩍 살핀 제이크가 조심스레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이번에는 어떻게든 『계승』의 계획을 막아내긴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다.
제이크의 물음에 이세훈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계획이 틀어지긴 했지만 녀석들 입장에서는 완전히 실패한 건 아니야. 아마 약혼녀라는 신분을 이용해서 가문을 잠식하려고 하겠지.”
“그건…… 무섭네.”
만약 자신의 『계승』이라는 존재를 몰랐다면 거기에 대응할 수 있었을까.
긴장한 제이크의 모습에 이세훈이 손을 내저었다.
“너무 걱정할 것 없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리 쉽게 흘러가진 않을 테니까.
“……그래?”
“당연하지. 아마 네 아버지부터가 가만히 안 둘걸.”
가문을 장악하려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양반도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회귀 전에도 오랫동안 마이어스 가문을 이끌어온 사람이었다.
그때 마이어스 가문이 주시자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당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
“…….”
그런 이세훈의 설명에 제이크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주시자인 걸 알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가문의 전통을 위해서 래피얼과 손을 잡고 약혼식을 진행하려고 했던 아론.
제이크는 아버지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말 단순히 가문의 전통을 지킬 생각만 한 걸까…….’
아니면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는 걸까. 제이크가 깊이 생각에 잠기던 그때.
똑똑
객실의 방문이 두드려졌고, 그 모습에 이세훈이 주변에 펼쳐진 경계의 권능을 해제하며 고개를 돌렸다.
“누구세요?”
“창고에 간다면서. 안내하러 왔다.”
문 밖에서 들려오는 마일즈의 목소리에 이세훈이 약속한 시간이 됐음을 확인하고 제이크를 보았다.
“앞에도 말했지만 신경 쓰지 말고 수련에만 집중하면 돼.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아, 응. 알았어.”
“그럼 난 창고에 가서 물건 좀 보고 올게.”
어깨를 두드린 이세훈이 밖으로 나갔고 홀로 남은 제이크가 손에 들린 풍인검을 내려다보았다.
‘……그래.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지금 해야 할 일은 훗날 자신의 힘이 필요할 때 부족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단련하는 것.
마음을 다잡은 제이크가 수련을 위해서 자리에 일어서려던 그때.
“아, 맞다.”
닫혔던 방문이 열리며 이세훈이 고개를 내밀었다.
“수련할 거면 아까 만들어냈던 검신보다 세 배는 강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게 연습해 봐.”
“세 배……?”
이세훈의 이야기에 제이크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방금도 풍인검이 부서질까봐 나름 신경 써서 만든 것인데 거기서 출력을 세 배나 끌어올려야 하다니.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십악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해서는 그 정도 위력은 필요한 걸까. 잠시 고민하던 제이크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해볼게.”
“음음. 어검은 그 상태로 다섯 개만 만들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알았…… 뭐?”
출력을 세 배로 끌어올리는 것도 모자라 무구스킬을 사용해서 어검을 다섯 개나 만들어서 유지해야 한다.
듣기만 해도 아찔해지는 목표에 제이크가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한 가지 희망을 찾아냈다.
“올해 목표를 그렇게 잡으라는 거지?”
아무리 그래도 이걸 단기간에 하라고 하겠는가.
그런 제이크의 물음에 이세훈이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여름방학 끝나기 전까지.”
* * *
제이크에게 간단한 여름방학 숙제를 내준 뒤. 마일즈와 함께 계단을 내려가던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어려운 숙제도 아닌데…… 제이크 그놈 엄살이 너무 심한 거 아냐?’
듣기에는 조금 힘들어 보이지만 출력을 조절하는 요령만 붙으면 금방 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세상 무너진 표정을 짓다니. 누가 보면 자신이 일부러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흐음. 생각해 보면 반년 전까지 검도 제대로 못 휘두르던 녀석인데 내가 너무 심했나.’
아직 자신의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무작정 혼자서 수련을 하라고 했으니 조금 당혹스러울 만도 하다.
‘그렇다고 내가 가르쳐주는 건 도움이 안 될 것 같고…… 아, 마광수한테 부탁해볼까.’
수련이 조금 힘들어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마광수라면 남은 여름방학 동안 충분히 검술의 요령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제이크가 들었다면 기겁할 만한 계획을 이세훈이 머릿속으로 짜고 있을 때.
“여기다.”
앞서가던 마일즈가 걸음을 멈췄다.
저택의 2층 좌측복도.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고 해봐야 문과 문 사이에 있는 벽뿐이었지만, 이세훈의 눈에는 희미한 이질감이 보였다.
‘위치는 그대로인가 보구만.’
이세훈이 아무것도 없는 벽을 물끄러미 보고 있을 때. 그 모습을 보던 마일즈가 무언가 알아차린 듯 놀란 표정으로 보았다.
“너…… 설마 이것도 보이는 거냐?”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여기에 뭔가 있다는 정도는 느껴집니다.”
“…….”
그게 거창한 게 아니면 뭐가 거창한 건가 싶지만, 마일즈는 거기에 굳이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이 정도는 해야 완등자들의 관심을 받는 거겠지.’
적이었으면 모를까 자신들, 특히 제이크를 도와주고 있으니 쓸데없이 경계하면서 힘을 뺄 필요는 없다.
능숙하게 상황을 넘긴 마일즈는 곧장 품에서 열쇠를 꺼내 그 끝을 벽에다 가져다 댔다.
우우웅─
그러자 희미한 파동과 함께 본래 없던 문이 희미하게 나타났고, 마일즈가 잠금을 풀 듯 열쇠를 반 바퀴 돌렸다.
철컥!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선명하게 변한 문. 그 모습을 본 마일즈는 열쇠를 다시 챙기면서 이세훈을 보았다.
“들어가자.”
두 사람이 문을 열며 안쪽으로 들어섰고, 마이어스 가문의 비밀창고가 눈앞에 드러났다.
줄지어 놓인 거대한 장식장과 그 안쪽에 깔끔하게 보관된 물건들.
어림잡아도 수천 개는 넘어보였는데 하나같이 구하기 힘든 희귀한 물건들이었다.
‘회귀 전에 본 것들도 있고…… 아닌 것들도 있네.’
어떤 물건이 있을지 이세훈이 흥미진진해하며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때. 마일즈가 무언가 떠올린 듯 입을 열었다.
“아, 이걸 깜빡했군. 아리아가 부탁 하나만 하자더라.”
“저한테요?”
이세훈의 물음에 마일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쓰던 세검이 부러져서 새로 쓸 검을 골라야 하는데 네가 골라줬으면 한다네.”
“…….”
마일즈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굳이 자신에게 이렇게 부탁한다는 것은 이번 기회에 안목을 시험해 보려는 걸로 밖에 안 보였기 때문이다.
‘뭘 쓰든 똑같은 양반이 왜 굳이…….’
가벼운 마음으로 부탁한 걸 수도 있지만, 만약에라도 이걸로 괜히 실망했다가는 귀찮아질 수도 있다.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이세훈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그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마일즈가 덧붙였다.
“골라주면 창고에서 물건 하나 더 가져가도 된다고 했다.”
“……가주님도 허락하셨어요?”
“했지.”
“검은 어디 있습니까?”
귀찮긴 하지만 물건을 하나 더 챙길 수 있으면 해봐도 나쁠 건 없다. 마일즈의 안내를 받아서 이세훈이 안쪽으로 향하던 그때.
“아.”
“음?”
장식장 사이에서 걸어 나오다가 마주친 래피얼.
그 모습에 이세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보았고, 마일즈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넌 여기 왜 있는 거냐?”
“……가주님께서 약혼 기념으로 하나 골라가도 좋다고 하셔서 들어왔습니다.”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 열쇠를 꺼내 보이는 래피얼.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마일즈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상 파혼이나 다름없으니 보상차원에서 주는 건가.’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한 마일즈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래피얼에게 손을 내저었다.
“알았으니까 가봐.”
“실례하겠습니다.”
고개를 꾸벅이며 지나가려는 래피얼. 그 모습에 이세훈이 슬쩍 옆으로 발걸음을 옮겨 앞을 가로막았다.
“……?”
그 모습에 두 사람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이세훈이 유심히 바라보았다.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그걸로 고르신 거예요?”
“예? 아, 네…….”
당황하면서도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내보이는 래피얼.
푸른색이 감도는 주먹만 한 수정구로 그리 특별한 것이 없었는데 실제로 창고에서 오랫동안 방치된 물건이었다.
“너무 부담스러운 물건보다 기념할 만한 물건을…… 골랐…… 습니다만…….”
계속되는 이세훈의 시선에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이야기하는 래피얼. 그리고 그녀의 몸속에 있는 『계승』의 간부, 카스파르가 긴장했다.
‘설마……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아무리 그래도 이 수정구의 비밀을 한 눈에 알아챌 수 있을 리가 없다. 카스파르가 그렇게 확신했고.
“……저걸로 가져갈게요.”
이세훈이 두 눈을 빛내며 수정구를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