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61화
여러모로 떠들썩했던 전야제가 끝난 다음 날.
약혼식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저택의 1층 연회장으로 모여들었고, 빈 테이블에 앉으면서 작게 이야기를 나눴다.
“봤나?”
“봤지. 여기저기 수리한 흔적이 많던데`.”
“그럼 그 이야기가 진짜라는 건가…….”
전야제 도중 마이어스 가문의 장녀인 아리아가 장남인 로이드를 때려눕히고 차남인 제이크와 저택을 부수면서 난투를 벌였다.
워낙에 과격한 내용이라 처음에는 조금 과장된 줄 알았지만, 저택 곳곳에 남은 흔적이 그게 사실임을 알려주었다.
“약혼식에 불만을 가진 차남이 장녀랑 계획한 거라는 이야기도 있던데…… 이거 약혼식도 취소되는 거 아냐?”
“그랬으면 애초에 부르지도 않았겠지.”
“그건 그렇긴 한데…….”
그런 일이 있었는데 과연 약혼식이 무사히 진행될 것인가.
연회장에 모인 이들이 의아해하면서 상황을 주시했고.
“오늘 찾아와주신 귀빈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예정과 변함없이 약혼식이 진행되었다.
단상에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는 제이크와 그 곁에서 부드럽게 웃고 있는 래피얼.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는 그 평화로운 모습에 연회장의 사람들, 그중에서도 전야제의 사건을 직접 목격했던 이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진짜 약혼식을 진행한다고?’
‘아무리 봐도 취소될 것 같았는데…….’
도대체 자신들이 돌아가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연회장의 사람들이 당황하고 있을 때. 맨 뒤쪽의 테이블에 홀로 앉아있던 이세훈이 슬쩍 웃었다.
‘다들 난리구만.’
확실히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약혼식이 무사히 진행되고 있으니 당혹스러울 법도 하다.
연회장의 분위기를 살핀 이세훈은 그대로 무대 위에 있는 제이크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어젯밤, 모든 손님들이 돌아가고 난 뒤의 일들을 떠올렸다.
* * *
“약혼하겠습니다.”
뒤뜰로 돌아온 제이크의 첫 마디.
예상과 다른 대답에 뒤뜰에 모인 가문의 관계자들이 웅성거렸고, 마일즈가 깜짝 놀라서 쳐다봤다.
“너…….”
“과정이야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제가 결정한 일이니까요. 거기에 대한 책임은 지겠습니다.”
“얌마! 지금 무슨 답답한 소리를…….”
마일즈가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소리치려던 찰나. 제이크가 말없이 자신의 삼촌을 바라보았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처럼 피곤한 얼굴과 달리 흔들림 없는 눈동자. 여태까지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 녀석…… 진심으로 말하는 건가.’
마지못해 수락하던 때와는 달라진 모습.
그런 제이크의 시선에 마일즈가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있을 때. 조용히 지켜보던 아론이 입을 열었다.
“더 할 말이 있는 모양이구나. 계속 말해봐라.”
자식들이 난투를 벌이는 동안에도 개입하기는커녕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던 아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에 제이크가 두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이야기했다.
“대신 결혼식은 바벨을 졸업한 이후. 부부로서 지내는 것도 그 이후로 하고 싶습니다.”
“그럼 그때까지 바벨에서 얌전히 지낼 테냐?”
“아뇨. 해외나 위험지역, 그리고 순례길 너머의 오염된 땅도 필요하다면 갈 생각입니다.”
제이크의 대답에 주변이 웅성거렸다.
바벨에서만 지낸다고 했으면 모를까 외부, 순례길 너머까지 나가겠다는 것은 목숨을 반쯤 내놓은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안 됩니다! 만약에라도 도련님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면…….”
“맞습니다! 가문의 전통을 생각해서라도…….”
“그만.”
아론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려 퍼졌고, 소란스럽던 뒤뜰이 다시금 조용해졌다.
그리고 자신의 막내아들을 바라본 아론이 담담히 이야기를 이었다.
“이도저도 아닌 대답이구나.”
“…….”
“책임을 피하는 것도 아니고,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고. 그런 어중간한 선택으로 도대체 뭘 하려는 거냐.”
아론의 물음에 제이크는 자신을 바라보는 가문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철없는 아이를 보는 듯한 시선.
그 모습에 제이크가 숨을 고르며 자신의 대답을 꺼냈다.
“모든 걸 끝내고 싶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가문의 희생과 사명…… 제가 짊어져야 하는 모든 것을 끝낸 다음 깔끔하게 털어내는 것이 제 목적입니다.”
제이크의 이야기에 모두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마이어스 가문이 계승해 온 희생과 사명을 끝낸다.
그 말인즉 만마전을 토벌하고 만마의 늪을 없애 버리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허풍도 정도가 있지…….’
완등자들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일은 혼자서, 그것도 3년 안에 어떻게 해내겠다는 말인가. 사람들이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자 제이크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쉽지는 않겠죠. 수많은 사람이 실패했던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야기하던 제이크의 눈이 아론의 뒤쪽, 조용히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이세훈의 눈과 맞닿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저 시선에 담겨 있던 ‘신뢰’가 부담스럽고 미안해서 마주 볼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어.’
친구로부터 얻은 자신감을 다시금 곱씹으며 제이크가 자신을 부정하는 이들을 다시 마주보았다.
“저는 거기에 도전하는 것 역시 가문의 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이란 형식도 중요하지만 제이크는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뜻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몸을 바쳐 인류를 위협하는 적들과 싸우고 시민들을 보호한다.’
그것을 지키기만 한다면 실패할 지라도 선대에게 부끄럼 없이,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후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
제이크의 이야기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아무리 호기롭게 이야기한다고 한들 지금으로서는 믿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에 제이크가 쓴웃음을 짓던 그때.
저벅
가만히 지켜보던 이세훈이 걸음을 옮겼고, 뒤뜰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제이크의 옆에 선 이세훈이 어깨에 팔을 두르면서 담담히 말했다.
“제이크의 목표가 이뤄질 거라고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누가 보증하든 쉽사리 믿어질 만한 일이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십악의 토벌에 관련되었던 이세훈이 말한다면 그래도 무게감이 달라진다.
조금이지만 주변의 시선에서 혹시 모를 ‘가능성’을 느낀 제이크는 놀란 표정으로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뭐 해. 마무리해야지.”
이야기에 힘을 실어준 이세훈이 어깨를 툭 쳤고, 그 손길에 피식 웃은 제이크가 다시금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구구절절 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빠르겠죠.”
그리고 조금이지만 반항적인 얼굴로 이야기했다.
“누구 말대로 될지 한 번 두고 보세요.”
[대상 ‘제이크 마이어스’의 인연레벨이 Lv.3로 상승합니다.]
[인연레벨이 상승함에 따라 관계가 심화됩니다.]
* * *
[관계 : 신뢰信賴]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이들은 때때로 타인을 통해서 그것을 충족시키곤 합니다.
타인의 믿음에 의존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완전하다는 증거지만, 자신을 믿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의 믿음을 통해 자기 자신을 완전히 신뢰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새로운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대상의 신뢰에 보답할 때 인연석이 생성됩니다.
*대상에게 신뢰를 받고 있을 때 인연석의 숙성속도가 증가합니다.
*대상을 통해 자신을 신뢰하고 있을 때 인연석의 심상발현 확률을 증가시킵니다.
*현재 생성된 인연석 : 없음.
어젯밤 새롭게 갱신된 인연관계를 살피던 이세훈은 다시금 무대 위의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그렇게까지 활약상을 펼쳤는데 자기 자신을 못 믿다니…… 저 녀석도 참 어지간하단 말이야.’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리 나쁜 점은 없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며 삼견처럼 사고치는 일도 없을 테고, 무슨 일이든지 자신에게 상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승』에서 보내온 약혼녀도 묶어둘 수 있겠지.’
약간만 낌새가 보여도 꼬리를 자르고 사라지는 것이 주시자인 만큼 약혼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물론 이 사실을 숨기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제이크에게는 말해두는 것이 좋으리라.
‘그건 나중에 하기로 하고…… 슬슬 일어날까.’
약혼식이 끝나는 것을 본 이세훈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연회장 밖으로 빠져나왔다.
남은 행사라고 해봐야 테이블에서 앉아서 식사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건데 딱 봐도 귀찮아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할 것도 없으니 방에서…… 음?’
이세훈의 눈이 복도의 창밖으로 향했고, 거기서 익숙한 뒤통수가 눈에 들어왔다.
“…….”
못 본 척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다가가서 말을 걸 것인가.
잠시 고민하던 이세훈은 한숨을 내쉬며 저택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정원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 아리아의 옆에 서서 말을 걸었다.
“그래도 동생 약혼식인데 참석하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세훈의 물음에 아리아가 고개를 돌리더니 조금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냥 지나갈 줄 알았는데…… 의외인걸.”
“그럴까 싶었는데 제가 본 걸 알아차리신 것 같아서요.”
“원래라면 그래도 지나가잖아?”
집요하게 자신에게 온 이유를 물어보는 아리아. 그 모습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꽤 상심하신 것 같아서요.”
“……내가?”
“감정이 없으신 건 아니잖아요. 좀 무디시긴 하지만.”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아리아는 류은하처럼 감정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실망을 반복하면서 모든 일에 흥미가 떨어진 느낌. 한마디로 삶에 자극을 잃어버릴 정도로 질린 것에 가까웠던 것이다.
‘지금 귀찮다고 외면했다가 세상일에 질리기라도 했다간…….’
자신의 귀찮음 때문에 멸광의 마신이 탄생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것 때문이라도 아리아의 상태는 주의 깊게 살펴야 했다.
“…….”
이세훈의 대답에 아리아가 말없이 바라보았고, 이내 고개를 돌리며 화제를 돌렸다.
“약혼식은 어떻게 됐어?”
“지금쯤이면 끝났을 겁니다.”
“그래. 다행이네.”
무심한 대답.
뭔가 타이밍이 안 맞았나 싶어 이세훈이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그때.
“너도 알고 있었지?”
아리아가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래피얼이라는 애가 제이크한테 뭔가 했다는 걸.”
평범하게 물어보는 것 같지만, 그 안에 날이 서 있는 것이 느껴진다. 숨겨봐야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았기에 이세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아무것도 안 한 거니?”
“의미가 없으니까요.”
아리아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고, 이세훈은 그 반응에도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번에 제가 제이크를 도왔다면, 다음에는 어떻게 막았을까요. 무구? 소모품?”
“…….”
“대비할 방법이야 찾아보면 많겠죠. 하지만 뭐든지 대비책이 무한정으로 존재하는 건 아닙니다. 제이크의 적들도 그걸 알고 있을 테고요.”
래피얼, 『계승』이 자극한 것은 제이크가 본래 지니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
그 약점이 주시자에게 알려진 이상 무슨 대비를 하든 언젠가는 빈틈이 찔려 큰 위기를 겪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개입하는 대신 지켜보기로 한 겁니다. 제이크가 스스로 극복한다면 앞으로 뭘 하든 믿고 맡길 수 있고…….”
“실패한다면 뭘 하든지 개죽음 당할 테니 얌전히 집에 있는 편이 낫다.”
이세훈의 말을 가로 챈 아리아가 피식 웃었다.
“제이크가 들으면 상처받겠는걸.”
“……그 정도로 심한 말을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거의 비슷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뉘앙스의 차이가 있다. 그런 이세훈의 속내를 읽어낸 듯 아리아가 지그시 바라보았다.
“내 앞에서 거짓말하는 거야?”
“진짜입니다.”
“아무리 봐도 거짓말인데?”
“그럼 제이크한테 물어보죠. 누구 말이 진짜 같은지.”
조금 치사하긴 하지만 제이크한테 해준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뻔뻔하게 나가도 된다.
이세훈의 대답에 아리아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뭐, 정 그렇다면 그런 걸로 해줄게.”
그리고 몸을 돌리면서 담담히 중얼거렸다.
“나는 못된 누나니까.”
그 말을 끝으로 저택을 향하는 아리아.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세훈은 살짝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는 납득한 것 같긴 한데…… 뭐 때문에 상심했는지는 모르겠네.’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 바로 화제를 돌린 것도 그렇고 뭔가 말하기가 껄끄러운 걸까.
‘제이크한테 검이 부러진 게 굴욕적이라서? 아니면 추억이 깃든 정원이 망가져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거다 싶은 답이 떠오르지 않아 이세훈이 고민하던 그때. 문득 아리아가 마지막으로 했던 중얼거림을 떠올랐다.
‘못된 누나…….’
사람들은 아리아가 제이크의 실력을 보고 싶어서 막무가내로 움직였다고 생각했고, 이세훈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에 흥미를 보이던 게 그쪽이기도 했고 자신이 알고 있던 아리아라면 그쪽이 타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에 다른 속셈도 있었다면?’
제이크를 성장시킴으로서 정략결혼의 압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만든다.
당장 본인부터가 그런 방식으로 가문의 전통에서 벗어났으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제이크가 굳이 책임이니 뭐니 하면서 약혼을 받아들였으니 짜증이 났을 테고…….’
그래서 약혼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이곳에 나와 있었다. 그런 추측이 이세훈의 머릿속을 스친 순간.
[대상 ‘아리아 마이어스’의 인연레벨이 Lv.2로 상승합니다.]
[인연레벨이 상승함에 따라 관계가 정립됩니다. 대상 ‘아리아 마이어스’와의 관계는 ‘기대’입니다.]
[관계 : 기대期待]
이루어지지 않을 일을 기대하고 있는 것만큼 허무한 일이 없습니다.
한 번이라도 그 기대를 저버리는 순간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변하겠지만, 그것을 충족시킬 순간이 온다면 새로운 관계로 이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대상의 기대를 충족할 때 인연석이 생성됩니다.
*대상에게 기대 받고 있을 때 인연석의 숙성속도가 증가합니다.
*현재 생성된 인연석 : 1개.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
아리아의 마음을 이해하기 무섭게 올라간 인연레벨에 이세훈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조금 예상 밖인데…….’
겉보기와 달리 제이크를 신경 쓰고 있다는 건 이전부터 눈치채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만약 회귀 전에도 이랬다면…… 제이크의 죽음이 상상 이상으로 영향이 컸을 수도 있겠네.’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 경우를 떠올리던 이세훈은 약혼식이 열리는 연회장 쪽을 다시 보았다.
‘그러면 그때의 『계승』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이번 움직임이 자신에 의한 나비효과인지, 아니면 회귀 전에도 있었던 일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회귀 전에 있었던 수많은 일을 토대로 이세훈은 다시금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주시자 이놈들부터 뿌리를 뽑아야겠네.’
인류와 만마전을 오가는 저 미치광이들부터 먼저 제거해야겠다고.
* * *
“죄송합니다. 잠깐 화장 좀 고치고 올게요.”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인사 중이던 래피얼은 연회장에서 빠져나와 화장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세면대의 거울을 바라보며 화장을 고치고 있을 때. 거울에 비치던 얼굴이 돌연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게 자신만만해하더니 꼴이 가관이구나.]
“…….”
[세라핌 길드도 못 살려, 마이어스 가문의 핏줄도 확보 못 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네 모친한테 남아 있을 걸 그랬어.]
붉게 물든 눈동자로 자신을 비아냥거리는 거울 속의 자신. 그 모습에 래피얼은 두려움에 자신의 손끝이 희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자신의 몸에 깃들어 있는 괴물, 『계승』을 이끄는 세 명의 ‘마기Magi’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뭐, 그래도 이번은 넘어가주마. 얻어 걸리긴 했지만 꽤 쓸 만한 걸 알아냈으니까.]
거울 속의 마기, 카스파르의 이야기에 래피얼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번 일에 무언가 수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
[말하지 마라. 아리아 마이어스가 널 주시하고 있으니.]
카스파르의 이야기에 래피얼의 얼굴이 굳어졌다. 저택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말을 주의해야 하다니.
‘같은 나이대에 이 정도 격차라니…….’
래피얼이 열등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을 때. 카스파르가 주변을 힐끗 살피더니 이야기를 이었다.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다만…… 괜히 알아보려다가 수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으니 간단하게 말해주마.]
전야제에서 벌어진 두 남매의 격전.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검’을 떠올린 카스파르가 두 눈을 빛냈다.
[녀석들이 마신을 탄생시킬 재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