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59화
새로운 무구를 만들어낸 뒤. 제이크는 하루의 대부분을 정원에서 보냈다.
마력이 바닥날 때까지 바람을 통해 길버트의 검술을 익히고, 이후 약간이나마 이해한 검술을 몸으로 직접 펼친다.
“후우…… 후우…….”
하루가 다 지나갈 때쯤이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탈진 직전까지 몰렸고 어떨 때는 훈련 중에 현기증이 밀려와 쓰러지기도 했다.
“에헤이. 일어나 일어나.”
그때마다 이세훈은 제이크를 저택으로 돌려보내는 대신 혈류를 가속해 강제로 깨웠고, 그 결과 하루에도 수십 번의 기절을 반복하며 강행군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짧으면서도 길었던 닷새가 지난 뒤.
“……망했네.”
약혼식의 전야제를 맞이한 제이크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될 것 같았는데…… 진짜 조금인데…… 며칠만 더 있었으면…….”
마른세수를 하며 쉴 새 없이 중얼거리는 제이크.
제대로 멘탈이 나간 것 같은 그 모습에 이세훈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방금까지 보고 있던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흐음…….”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저택의 뒤뜰.
전야제를 위해 화려하게 꾸며진 회장에서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방문객들이 먼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S급 영웅부터 시작해 고위공무원과 기업의 회장 등등 상당한 유력가들이 모였는데 그 수가 상당했다.
‘저게 전부 마이어스 가문이랑 우호적이 녀석들이란 거지…….’
몇몇은 곧 생산되는 양산형 검기무구 때문에 찾아온 것이겠지만 전야제에 초청받은 시점에서 어느 정도 거래가 끝난 상태이리라.
‘이노우에 쪽은 안 왔으려나?’
본래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긴 했지만 세계정세를 보고 전략적 동맹을 맺는다든가 그런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혹시 눈여겨볼 만한 사람이 있을지 이세훈이 한 명씩 내려다보고 있을 때.
“세, 세훈아.”
어느새 다가온 제이크가 초조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지? 며칠 도망쳐서 시간이라도 끌어볼까?”
“언제는 집에 민폐 끼치기 싫다면서?”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제이크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 잠깐만 미루는 거잖아. 그 정도면 다른 사람들도…….”
“널 참 믿음직스럽게 생각하겠다. 그치?”
“…….”
장황하게 계획을 늘어놓으려던 제이크가 그대로 굳어졌고,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도 말했지만 그 정도면 준비는 충분하다니까? 어중간하게 완성해 둔 것보다 지금이 더 좋아.”
“하지만 오늘 대련 중에 완성 못 하면…….”
“그것도 어제 말했잖아. 그땐 그냥 운명이구나 생각하고 받아들여.”
“으윽…….”
아무리 말해도 부담감을 버리지 못하는 제이크의 모습에 이세훈이 어깨를 두드렸다.
“부담가지지 말라고는 안 할게.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니까.”
“…….”
“대신 후회가 남지 않게 전력을 다해. 마지막 조언이야.”
이야기를 끝낸 이세훈이 방 밖으로 나갔고, 홀로 남은 제이크가 방금 두드려진 어깨를 쓰다듬었다.
분명히 가벼운 손짓이었는데 어깨가 내려앉을 정도로 부담감이 느껴진다.
손이 희미하게 떨리는 것을 느낀 제이크가 반사적으로 꽉 움켜쥐었다.
‘매일같이 다짐했는데…… 아무런 의미가 없네.’
몇 번이고 각오를 해도 막상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불안감이 밀려 올라오며 마음이 흔들린다.
그렇게나 많은 도움을 받아놓고 자신의 마음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상태에 제이크가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똑똑
“들어갈게요.”
노크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
머리카락 색에 맞춰 붉은 드레스를 입은 래피얼이 안으로 들어왔고, 그 모습을 본 제이크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옷 때문인지 몰라도 평소보다 더욱 빛을 발하는 외모.
누구든 아름답다고 할 정도였지만, 막상 그녀와 마주보고 있는 제이크는 껄끄럽게 느껴졌다.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되네.’
뭐라고 딱 잘라 표현할 수 없는 불편함.
처음에는 정략결혼의 대상이라 그런 줄 알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 이해할 수 없는 감각에 제이크가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래피얼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많이 긴장하신 모양이네요?”
“그렇지는…….”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저희들이 할 일이라고 해봐야 웃으면서 인사하는 게 전부니까요.”
방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온 래피얼은 그대로 제이크의 앞에 서서 올려다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는 얼굴. 그 모습을 본 제이크는 평소보다도 더욱 껄끄러웠다.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는 자신과 달리 확신을 품고 있는 상대의 모습이 마치 이번 계획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제가 불편하세요?”
그 시선을 알아차린 래피얼이 나긋하게 물었고, 제이크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조금은요.”
“그 마음. 저도 이해해요.”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한 래피얼이 두 손을 뻗어 제이크의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미래가 정해지고, 아무런 저항도 못 해보고 이끌려가고만 있으니 모든 게 불편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손끝이 어깨를 부드럽게 쓸어내렸고 구겨졌던 정장이 깔끔하게 펼쳐졌다.
그 익숙한 손길에 제이크가 떨쳐내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을 때. 래피얼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그러한 불편함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순간이 찾아와요. 저도 예전에 그랬고, 이번에는 당신 차례인 거죠.”
“…….”
“그러니까 경험자로서 조언이에요.”
넥타이를 맞춰준 래피얼이 그대로 손을 올려 제이크의 볼을 쓰다듬었다.
“힘들게 발버둥치기보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편하게…….”
“그러면 편해지나요?”
“……네?”
갑작스러운 물음에 래피얼이 조금 당황한 눈으로 보자 제이크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물었다.
“그렇게 포기하면, 불안감 없이 편안해지는 건가요?”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에 래피얼이 당혹스럽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런 불안감은 계속 저항하려고해서 생기는 거니까요.”
저항하려고 하니 자신의 부족함이 보이고, 그것이 곧 불안감으로 번져나간다.
그렇기에 무언가에 불안감을 느낀다는 것은 반대로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
“……그렇구나.”
그런 래피얼의 이야기에 제이크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계속해서 불안감이 생겨났을 때. 사실은 자신이 포기하고 싶은 게 아닌 건가 의심했었다.
끝없이 솟아오르는 불안감이 마치 포기할 이유를 만들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도,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해도 포기하지 않으려 하기에 불안감이 생겨났던 것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건 거기에 꺾이지 않고 계속해서 저항하는 것.
무언가 개운해지는 것을 느낀 제이크가 래피얼의 두 손을 맞잡았다.
“고마워요! 조언 덕분에 뭔가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
포기하기는커녕 더욱더 의욕을 불태우는 제이크. 그 모습에 래피얼이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고.
“이래서 애새끼들은…….”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 * *
밖으로 나와 연회장으로 향하던 이세훈이 돌연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
주변의 조명 때문인지 평소보다 더욱 웅장하게 보이는 저택. 방금까지 제이크와 함께 있던 창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는데 별달리 수상쩍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이세훈은 이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남은 것은 제이크의 몫. 그렇게 생각하며 이세훈이 뒤뜰에 마련된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바벨에서 참가했었던 교류회처럼 곳곳에 자리 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그때와 차이점이라면 교류회는 부모들을 대시한 자식들의 대리전이었고, 이쪽은 당사자들이 찾아와서 직접 이야기를 나눈다는 점이었다.
‘역시 양산형 검기무구가 사업성이 좋긴 좋아.’
원래도 회귀 전의 갤럭시 컴퍼니, 레아의 회사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끌어올린 물건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타이밍도 적절했다.
몽환마의 토벌과 환락가의 붕괴. 그 거대한 사건으로 인해 만마전과의 전쟁이 언급되고 있고, 자연스레 무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지금은 만약을 대비하는 정도지만 사건이 하나만 더 터지면 그때는 그야말로 엄청난 양의 주문이 쇄도하리라.
‘그리고 다른 쪽으로도 관심이 활발해지겠지.’
만마전과 내통 중이던 이들은 넘어갈 기회를 볼 것이고, 주시자와 거래하는 영웅들은 무리해서라도 힘을 키우려고 할 것이다.
자신이 할 일은 그 순간을 파고들어 내통자들부터 뿌리째 뽑아내는 것.
그 목적을 곱씹은 이세훈이 한쪽에 놓인 과자를 집어먹으며 연회장을 바라보았다.
‘근데 어째 여기나 교류회나 다를 게 없네.’
시선은 종종 느껴지는데 근처로 다가오는 사람이 없다.
행적이야 어쨌든 그래 봐야 1학년짜리 생도인데 도대체 뭐가 그리 무서워서 저러는 걸까.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보고 있을 때.
“내려왔구나.”
정장을 입은 마일즈가 이세훈의 곁으로 다가왔다.
“제이크는 좀 어떻…… 뭘 그렇게 쳐다보는 거냐?
“……아뇨. 한결같으시다 싶어서요.”
옷도 여기저기 구겨져 있고 넥타이는커녕 와이셔츠 단추도 제대로 안 잠겨있다.
거기에 한 손에는 와인병이 통째로 들려 있었는데 딱 봐도 병째로 마시던 걸로 보였다.
“아, 옷 때문에? 그런 거 안 따질 줄 알았는데 의외네.”
손에 들린 와인을 벌컥벌컥 마신 마일즈가 피식 웃었다.
“마음에 안 드는데 할 수 있는 게 없거든.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라도 깽판 치는 거야.”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마일즈의 모습에 이세훈이 쓴웃음을 지었다.
‘제이크가 누굴 닮았나 했더니 제 삼촌을 닮았구만…….’
가문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러면서도 완전히 떠나가지 못하는 것도 모두 닮았다.
새로운 음식을 집어 먹은 이세훈은 지나가듯이 이야기했다.
“가문에서 벗어나실 생각은 안 하셨습니까?”
“했지. 당장 이번에만 해도 수십 번은 고민했어.”
“그럼 왜 안하시는 겁니까?”
두 사람은 도대체 가문에 무엇을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
그런 이세훈의 물음에 마일즈가 아무런 대답 없이 술만 마시다가 툭 내뱉었다.
“나만 희생된 게 아니니까.”
수많은 가족이 가문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왔고, 그 덕분에 지금의 자신이 존재할 수 있었다.
그것을 마음 속 깊이 이해하고 있었기에 미워할지언정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미련해 보이지?”
“조금은요.”
“아마 나 말고 다른 녀석들도 다 비슷하게 생각할 거야. 그래서 더 포기 못 하는 것도 있을 테고.”
와인병을 완전히 비운 마일즈가 탁자 아래에 내려놓으면서 담담히 말했다.
“네가 잘 다독여줘. 성공하든, 실패하든.”
마일즈의 부탁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맙다.”
쓸쓸하게 이야기한 마일즈가 다른 곳으로 향했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선대의 희생으로 쌓아올려진 권세와 책임. 언뜻 보면 비극적이고 숭고한 이야기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저것 역시 설계의 일부가 아닐까?’
윌리엄에게서 비롯된 검의 정수, 그 안에 담긴 어떠한 심상이 후손들로 하여금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충분히 가능성은 있었지만, 알 수는 없었다.
[그 녀석이 마음 속 깊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 거기서부턴 미지의 영역이야.]
탐구자의 이야기를 떠올린 이세훈이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몰려들었다.
저택을 나와 연회장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 제이크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꾸벅였고, 팔짱을 낀 래피얼을 화사하게 웃으며 눈인사를 보냈다.
그 모습에 이세훈이 멀리서 쳐다보고 있을 때. 시선을 알아차린 제이크가 멈칫 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
“…….”
한참동안 시선이 맞닿았고, 래피얼이 팔을 살짝 당김과 동시에 제이크가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자연스럽게 이뤄진 그 과정에 이세훈이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은 그렇게 됐나.’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거기서 고꾸라지는가. 여기서 바로 개입할지, 아니면 좀 더 지켜볼지 이세훈이 고민하고 있을 때.
또각
작은 구두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 크지도 않은데 귓가에 새겨지는 듯한 소리. 그에 사람들이 연회장의 입구로 고개를 돌렸고, 막 도착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반짝이는 금발에 어깨가 드러난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아리아. 그 남다른 존재감에 연회장의 사람들이 시선을 돌릴 생각도 못한 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두 사람의 앞에 선 아리아가 무심하게 바라보았고.
“한심하네.”
제이크의 멱살을 붙잡아 바닥에 내다꽂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