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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258화 (258/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58화

마이어스 가문의 혈통이 탐구자에 의해 개조됐다.

전 세계가 뒤집어질 만한 비밀에 이세훈이 한참동안 고민하다가 물었다.

‘정말입니까?’

[내 기억에 문제가 없다면 사실이겠지. 지금의 나는 알고 있는 대로 말할 뿐이니까.]

탐구자, 전지의 권능이 알려주는 사실에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렸다.

‘믿기지는 않지만…… 충분히 그럴싸해.’

마이어스 가문의 특수한 혈통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탐구자의 실험에 의해서.

어째서 회귀 전에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는가? 탐구자는 죽었고 마이어스 가문은 말해서 좋을 게 없으니.

적당히 맞춰지는 상황에 이세훈이 탐구자에게 다시 물었다.

‘어쩌다가 개조하게 된 겁니까?’

[윌리엄, 그러니까 마이어스 가문의 전전대 가주랑 아는 사이였는데 이놈이 사상이 좀 특이했거든.]

‘사상?’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신이 어리석은 시민들을 올바르게 이끌어야만 한다, 대충 그런 거.]

탐구자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재수 없는 양반이었네요.’

[그랬었지. 근데 또 그것 때문에 시민들을 보호하는 데 적극적이기도 했어. 그게 본인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었거든.]

힘을 가졌기에 지배하고, 힘을 가졌기에 보호한다.

만마전과의 전쟁 초창기부터 활동해온 1세대 영웅인 것을 생각해 보면 저런 극단적인 사상이 생긴 것도 나름대로 이해가 갔다.

[처음에는 완등자가 되어서 더 많은 시민을 지배하고 보호하려고 했었지만 아쉽게도 그 직전에 실패했어. 그래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게 혈통의 개조야.]

‘어떤 방식으로 개조한 겁니까?’

[힘을 고스란히 물려주는 건 힘들어서 기술이 쇠퇴하지 않게끔 설계했어. ‘검의 정수’라는 유전물질인데 이걸 각성시키면 윌리엄의 검술에 적합한 신체가 되는 거지.]

탐구자의 설명에 이세훈은 그동안 들었던 마이어스 가문의 전통에 대해서 떠올렸다.

아이를 임신한 후 2살까지 이어지는 마력전수. 전전대 가주, 윌리엄의 검기가 저장된 오리진으로 치러지는 계승식.

이 모든 것이 마이어스 가문의 혈통에 잠재된 검의 정수를 각성시키기 위한 절차였던 것이다.

[다만 외부의 핏줄이 유입되면 검의 정수가 희석될 수도 있거든. 그래서 그걸 방지할 수 있는 장치도 만들어줬어.]

인공적으로 피를 결합시켜서 자식세대에 검의 정수가 보존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분석 장치.

‘아마 그게 판별식에 쓰이는 물건이겠지.’

탐구자의 설명에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마이어스 가문이 숨기고 있는 모든 비밀에 대해서 모조리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인체실험이랑 관련된 이야기를 아무한테나 이야기할 리는 없고…… 가주들만 알고 있으려나?’

선대의 과격한 사상과 미치광이 완등자에 의해서 대대로 이어져온 인체개조.

그 결과 마이어스 가문은 윌리엄의 뜻대로 검술명가로서 막강한 권세를 누리게 되었고, 영웅으로서 수많은 시민을 보호하기도 했다.

그 상황에 이세훈이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만약 저 과정에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이 쓰인다면 단호하게 나쁘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런 악행이 없었다.

굳이 있다고 한다면 선대에 의해 본인의 의사와 관련 없이 하나의 길로 끌려가고 있는 후손들.

그리고 지금의 제이크 역시 그중 한 명이리라.

‘이건 내가 어떻게 할 게 아니구만.’

상황을 봐서 제이크, 아니면 아리아에게 이야기해서 두 사람이 어떻게 하는 것이 옳다.

생각을 정리한 이세훈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궁금하던 것들을 다시 물었다.

‘혹시 마이어스 가문 말고도 이런 식으로 개조받은 사람들이 있었습니까?’

[엄청 많았었지. 근데 지금까지 살아 있는 녀석들은 마이어스 가문 이외에는 없어.]

‘확실해요?’

[대외적으로는 그래. 그 녀석들이 이름을 버리고 살아 있으면 또 모를까.]

이름을 버렸다.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 탐구자의 설명에 이세훈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계승』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능성에 이세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너무 단정 지으면 안 되지.’

이쪽은 나중에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다.

길게 이어지려는 생각을 잘라낸 이세훈은 탐구자가 말해준 정보 중에 이번 계획에 쓸 만한 것들을 추려보았다.

‘아까 말한 검의 정수라는 게 핏속에서 정확히 어떻게 작용되는 겁니까?’

[이게 그렇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일단 설명해 보세요. 요령껏 알아먹을 테니까.’

[좋아. 우선은 마력회로의 구성패턴에 간섭하는 유전물질을 심상에 노출시켜서…….]

귓가로 탐구자의 설명이 끝없이 이어졌고, 이세훈은 정원 안을 천천히 걸으면서 그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모든 설명이 끝난 뒤. 30분 넘게 이어진 탐구자의 지식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한마디로 사람을 살아 있는 검으로 만든 거네요. 검이 창술이나 권법을 펼칠 순 없을 테니.’

[그게…… 어…… 듣고 보니 그러네? 이야 너 정리 잘한다?]

탐구자의 칭찬을 흘려들은 이세훈은 턱을 쓰다듬었다.

‘살아 있는 검이라…….’

저게 사실이라면 제이크의 기량을 단숨에 끌어올리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문제는 어떤 재료를 써야 가장 효율적인 것인가.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후우웅

정원을 훑고 지나가는 한줄기의 바람. 그 광경을 바라보던 이세훈의 눈이 잠시 가늘어졌고.

“……찾았다.”

완벽한 설계도가 머릿속에 완성되었다.

* * *

다음 날.

새로운 검을 만들기 위해 이세훈은 방에 갇혀 있던 제이크를 정원으로 데리고 나왔다.

“…….”

근처에서 대기하기는커녕 저택으로 들어가는 호위들의 모습에 제이크가 신기한 표정으로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아버지한테 뭐라고 했길래 이렇게 내보내준 거야?”

“그냥 약혼 기념으로 검 한 자루 만들어주고 싶다니까 마음대로 하라던데?”

“……내가 꺼내달라고 할 때는 들은 척도 안 하더니.”

불만스럽게 투덜거리는 제이크의 모습에 이세훈이 피식 웃었다.

“그때랑 지금은 상황이 다르잖아.”

“다르다고?”

“너랑 나랑 작정하고 나가면 막을 방법이 없잖아. 그러니까 그냥 알아서 하라는 거지.”

“그건…….”

이세훈의 이야기에 제이크가 뭐라고 이야기하려다가 이내 할 말이 없어졌는지 입을 다물었다.

처음에는 너무 과장된 말이 아닌가 했는데 곱씹어보니 정말로 막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쉽게 끝날 일을 나 때문에 어렵게 가고 있는 건가…….’

제이크가 살짝 미안한 표정을 하고 있을 때. 정원을 살피던 이세훈이 아공간 포켓에서 물건을 꺼냈다.

“이상한 표정 그만하고 이거나 잡아봐.”

탁!

이세훈이 던진 물건을 반사적으로 낚아챈 제이크는 곧장 그 물건을 살펴보았다.

“이건…….”

바람을 휘감은 초록색 도.

칼날은 곳곳에 이가 나가거나 구멍이 뚫려 있었고 손잡이는 초록색 결정을 깎아낸 것처럼 생겼는데 그 감촉이 어딘가 매우 익숙하게 느껴졌다.

“이거…… 손잡이는 휘광검 맞지?”

“맞아. 새로 만들기에는 시간이 빠듯해서 다른 재료랑 섞은 다음에 고친 거야.”

풍속성마력을 지닌 재료들과 제이크의 인연석인 축조석을 같이 사용했는데 압축되는 성질을 이용해서 하루 만에 고치는 데 성공했다.

“그럼 위에 칼날은?”

“그쪽은 에위니아라고 전설 등급 무구였는데 그대로 쓰기에는 애매해서 약간 손봤어.”

“아. 그런 물건…… 잠깐. 방금 무슨 등급이라고?”

도신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제이크가 기겁하며 고개를 돌렸고, 그 반응에 이세훈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전설 등급.”

“……진짜로?”

“가짜 같아?”

심드렁한 이세훈의 되물음에 제이크가 떨리는 눈으로 자신의 새로운 무구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어떤 물건을 만들어줄지 조금 기대하고는 있었지만 설마 전설 등급의 무구를 통째로 써먹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거 그거지? 등급만 높고 쓸데없어서 창고에만 넣어둔…….”

“몇 번 써봤는데 괜찮던데? 애초에 인형사의 싱글넘버가 쓰던 걸 뺏은 거니까 안 좋을 리가 없지.”

“그러면 원래 상태에서 손잡이만 분리한…….”

“거기 구멍이나 흠집 보이지? 전부 어제 개조하면서 만든 거야. 이제 수리도 못 해.”

“…….”

덜어내기는커녕 몇 배로 늘어난 부담감.

왠지 속이 쓰려오는 느낌에 제이크가 눈꼬리를 파르르 떨고 있을 때. 그 반응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슬쩍 웃었다.

“부담스럽냐?”

“엄청나게…….”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이세훈의 물음에 제이크가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가 다시 자세를 바로하며 대답했다.

“반드시 성공한다.”

“음. 좋은 대답이야.”

이 정도로 기겁하면 나중에 만들어다줄 무구는 부담스러워서 쓰지도 못한다.

힘차게 대답한 제이크의 모습에 이세훈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뒤쪽으로 갔다.

“그럼 슬슬 시작하자. 저쪽으로 가봐.”

양 어깨를 잡은 이세훈이 제이크를 정원의 안으로 밀었고, 중앙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멈춰 세웠다.

“흐음…… 키 차이도 있나. 여기서 조금 더…….”

주변을 살핀 이세훈이 몇 걸음 더 움직이게 했고 제이크는 의아해하면서도 얌전히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정원이 넓게 보이는 장소에 멈춰선 뒤. 이세훈이 이어서 지시를 내렸다.

“시선은 정면에서 조금 아래. 자세는 중단. 검 끝은 네 턱 끝으로 맞춰.”

“이렇게?”

“음…… 됐네. 그 상태로 손잡이를 전력으로 움켜쥐는 거야. 할 수 있지?”

“해볼게.”

제이크의 두 손이 손잡이를 천천히 움켜쥐었고, 안쪽에 가해지는 압력이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꽈악─

다른 재료들을 섞으면서 동화율이 떨어졌는지 손잡이가 부서질 것처럼 떨린다. 그 모습에 이세훈은 제이크를 멈춰 세우는 대신 영연신마법을 사용했다.

우우웅!

어깨에 얹은 손을 통해 제이크의 피, 그 안쪽에 잠재되어 있는 검의 정수를 찾아낸다.

인공적으로 만들었다고는 해도 유전물질인 만큼 전문적인 분석 장치 없이는 감지할 수 없었지만.

‘……이거구만.’

피 속에 기억까지 집어넣는 이세훈에게는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았다.

쩌적!

혈류를 조작하여 검의 정수를 손으로 밀어 넣었고, 그와 동시에 손잡이가 당장에라도 부서질 것처럼 떨린다.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이 재빠르게 경계의 권능을 조작하여 탐구자를 불러들였다.

‘준비됐으니까 바로 만들어요!’

[미친놈. 그걸 진짜 했네.]

헛웃음을 터뜨린 탐구자가 요청대로 새로운 술식을 만들어냈고, 이세훈은 그것을 곧장 우화하는 꿈으로 현실에 직접 펼쳐냈다.

스스슥

손잡이 안쪽에 자연스럽게 새겨진 복잡한 마법진.

우화하는 꿈의 특성상 스킬이 풀리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 충분한다.

주르륵

제이크의 손바닥에 얇은 상처가 생기며 피가 흘러나왔고 그것이 마법진을 덧그리듯이 손잡이 안쪽에 스며든다.

그리고 그 안에 잠재되어 있던 검의 정수가 마법진을 가득 채운 순간.

파앙!

초록빛 섬광과 함께 폭풍이 터져 나왔다.

“윽……!”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던 제이크는 빛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다음 잡고 있던 무구를 바라보았다.

‘……그대로네?’

처음과 달라진 게 없는 모습에 제이크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빛도 번쩍이고 바람도 터져 나오길래 뭐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나마 달라진 거라면 부서질 기미가 안 보인다는 건데…….’

손잡이를 꽉 움켜쥔 상태로 제이크가 애매한 표정으로 살펴보고 있을 때.

후우웅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

처음에는 착각인가 싶었지만 칼날에 희미한 바람이 맺히는가 싶더니 더욱 거세게 모여들었다.

“어…… 어어…….”

제어를 하려고 해도 꼼짝도 안 하는 그 거센 바람에 제이크가 당황하며 힘을 풀려고 했다.

“자세유지.”

하지만 그보다 먼저 이세훈이 양 어깨를 꽉 움켜쥐었고, 그 손길에 제이크가 반사적으로 자세를 다잡으며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바람에 집중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정확히 보는 거야.”

이세훈의 지시에 제이크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보라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바람이 휘몰아치는 정원을 계속해서 보고 있으니 어떤 ‘궤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보존마법에 의해 꼿꼿이 서 있는 정원의 수풀. 칼날에 새겨진 구멍과 흠집.

그 두 가지에 의해 바람이 특정한 궤적으로 빚어지고 거기서부터 한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리고 그것이 가문의 검술에서 비롯된 새로운 검술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파앙!

마력이 바닥나며 바람이 끊어졌다.

“하아…… 하아…….”

눈 깜짝할 사이에 마력을 전부 소진한 제이크는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왜 여기서 수련하나 했는데…… 이런 게 숨겨져 있었나.’

늘 정원에서 검을 휘두르던 어린 시절의 누이를 떠올린 제이크가 쓴웃음을 지으며 이세훈에게 물었다.

“흉내만으로는 부족하겠지?”

“그건 기본. 다음으로 넘어가야 무구도 완성될 거야.”

검술이 완성돼야 검도 완성된다.

그게 과연 며칠 안에 할 수 있는 일일까. 그에 대해서 고민하던 제이크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고.

“할 만하네.”

자신 있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정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복도의 창문.

그 앞에 선 아론이 말없이 정원의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고, 뒤쪽에 서있던 래피얼이 물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선물 같진 않은데…… 정말 저대로 놔둬도 괜찮으시겠어요?”

아무런 대답 없이 정원을 바라보는 아론. 그 반응에 래피얼이 눈매를 살짝 찌푸리며 다시 입을 열려던 그때.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아론이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승천제, 불명자, 원견사. 세 명의 완등자를 등에 업고 있는 저 폭탄덩어리를 상대로 힘 싸움이라도 할 참이냐?”

힘으로 눌러봐야 완등자들이 가문에 개입해 올 것이고, 애초에 힘으로 누를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럴 리가요.”

그런 아론의 물음에 래피얼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제이크 님을 설득하는 게 어떨지 말씀드리고 싶었을 뿐이랍니다.”

“제이크를?”

“예.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으니까요.”

짙은 미소를 지은 래피얼이 이야기를 이었다.

“제 이야기를 들으시면 꼭 이해해 주실 거예요.”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절대로 평범할 리는 없다. 그 제안에 아론이 잠시 동안 침묵을 지켰고.

“마음대로 해라.”

창문으로부터 눈을 떼며 무심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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