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57화
기본적으로 고위 영웅 중에는 동안이 많다.
체내에 마력이 충만해지고 심상이 견고해지면 노화가 느려지기 때문인데, 이세훈은 이들의 나이를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구분했다.
첫 번째는 전투와 수련에 의한 신체의 마모.
두 번째는 무의식중에 드러나는 습관이었는데 대부분은 이 두 가지가 같이 발견된다.
하지만 가끔씩 이중에서 후자만 보이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계승』, 정확히는 그들에게 ‘심상계승’ 시술을 받은 자들이었다.
‘수십 년의 세월을 살아온 타인의 심상을 고스란히 넘겨받는다.’
시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결과적으로 완성된 모습은 눈앞에 있는 래피얼과 흡사했다.
20대의 육체와 50대 이상으로 추정되는 습관. 그 모순적인 상태를 본 이세훈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언젠가 볼 줄은 알았지만 설마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물론 아직까지는 래피얼이 『계승』의 일원인지, 아니면 시술만 받은 고객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번 약혼식에 주시자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만큼 확실하다.
약혼식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알게 된 이세훈은 자연스럽게 표정을 관리하며 입을 열었다.
“세라핌 길드의 사람과 대화하기에는 조금 껄끄러운데.”
초면에 공격적이긴 하지만 류은하와의 관계나 마이어스 가문과 얽힌 것은 생각하면 이상할 건 없다.
이세훈의 까칠한 대답에 래피얼도 예상했다는 듯이 당황하지 않고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 부분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 약혼이 끝나면 가문과의 연을 완벽히 끊을 예정이니까요.”
“성씨가 바뀐다고 연이 끊어지나?”
“그렇게 될 거예요.”
단호하게 대답한 래피얼이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이제 저희 집안은 마이어스 가문에 아무런 득도 안 되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거든요.”
“흐음…….”
“제 잠재력을 인정받아서 추진된 결혼식인데 친가가 발목을 잡는다면 잘라내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미소를 지은 채 당돌하게 이야기하는 래피얼. 그 모습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꽤 세게 나오는데.’
둘러대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대답.
앞서 대화를 나눈 아론처럼 자신이 약혼식에 개입할까봐 확실하게 선을 긋는 것이 분명하리라.
‘아론이랑도 연관이 있으려나…….’
마이어스 가문의 ‘판별식’도 그렇고 생각해 보면 상당히 의심스러웠지만, 그렇다고 그것만 보고 의심할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회귀 전에 주시자에 관해서 대대적인 조사에 나섰을 때 마이어스 가문에서 발견된 흔적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라도 뒤통수쳤으면 모를까 아리아 빼면 그런 것도 없었고 말이지.’
특히 지금 의심 가는 아론은 멸검의 마신을 상대로 목숨을 바치며 싸웠던 인물인 만큼 정황만 놓고 의심할 수는 없다.
‘일단은 『계승』이 마이어스 가문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 정도로만 보는 게 좋겠네.’
그리고 이 추측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할 일은 한 가지밖에 없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이세훈은 자신을 바라보는 래피얼에게 손을 내저었다.
“알았어. 무슨 뜻인지 알겠으니까 그만 가봐.”
“그럼…….”
“명문가의 신부라면 빠질 때도 알아야지. 안 그래?”
이세훈의 이야기에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이내 래피얼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맞는 말씀이네요. 편안하게 말씀 나누세요.”
목적을 이룬 듯 래피얼이 들어왔을 때처럼 거침없이 나갔고, 복도를 지키고 있던 호위들이 다시 문을 닫아주었다.
다시 조용해진 방 안.
닫힌 문을 바라보던 이세훈은 옆에서 계속해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
믿었던 친구한테 칼로 찔린 것 같은 표정. 그 엄청난 얼굴에 이세훈이 피식 웃었다.
“표정이 왜 그래?”
“아, 아니. 그게…… 방금 그건 둘러댄 거지?”
마지막 희망을 담아 물어보는 제이크의 모습에 이세훈이 담담히 대답했다.
“진심으로 한 말인데?”
“뭐?”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 어쩌겠어. 결혼해야지.”
“그, 그런…….”
큰 충격을 받은 제이크의 모습에 이세훈이 다시 소파에 앉으면서 물었다.
“아니면 너도 아까 걔처럼 가문이랑 연 끊고 나갈래? 그러면 나도 어떻게든 도와줄 수 있어.”
“…….”
“대답은?”
이세훈의 물음에 제이크가 입술을 달싹거렸고, 이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대답했다.
“그건…… 못 해.”
“그렇겠지.”
어느 정도 예상한 대답에 이세훈이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제이크를 마이어스 가문에서 빼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강제적인 정략결혼과 외부활동 금지 등등 파고들 부분은 차고도 넘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은 당장 제이크부터가 가문, 가족들에게 그런 피해를 주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리아였으면 가족이고 나발이고 다 박살낸 다음에 나왔을 텐데…… 얘는 너무 물러서 탈이라니까.’
저 남매를 적절하게 섞으면 적당히 정의롭고 호구 같지 않은 검사가 나오지 않을까. 이세훈이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미안해.”
맞은편에 앉은 제이크가 한숨을 내쉬며 사과했다.
“뭐가 미안해?”
“어떻게 보면 내 전화 때문에 와준 건데…… 뭐라고 제시할 생각도 안하고 무작정 도와달라고만 하고 있었잖아.”
자신으로서는 방법이 없어서 도움을 요청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달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일방적으로 하소연만 하다가 막상 해결법을 제시하니 그건 못 하겠다고 거절만 하다니. 다른 사람이었다면 화를 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흐음. 그건 됐고 앞으로 어떻게 할래?”
“일단 약혼식 전까지 방법을 생각해 볼게. 그리고 그때까지 해결 못 한다면…… 네 말대로 그냥 결혼해야지. 내 수준이 그 정도라는 거니까.”
이런 약혼식 하나 어찌 못 하는데 그보다 더 가혹한 세상에서는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어떻게 하면 고지식한 가문의 어른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제이크가 고민하고 있을 때.
“저번에 전화했을 때 말이야.”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입을 열었다.
“네 누나한테 당한 거지?”
“뭐…… 그렇지.”
“다른 사람 없이 네 누나만 보낸 걸 보면 집안 어른들이 많이 신뢰하는 모양이야.”
“그야 누님 실력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던 제이크가 무언가 깨달은 듯 두 눈을 휘둥그레 떴고, 그 모습에 이세훈이 슬쩍 웃었다.
“그런 누나의 콧대를 꺾어주면, 어른들도 뭐라고 하지는 못하겠지?”
“…….”
이세훈의 이야기에 제이크의 두 눈이 흔들렸다.
가문에서도, 바벨에서도 역대 최강으로 손꼽히고 있는 천재.
평생을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꺾어본 적 없는 누이를, 아리아 마이어스를 상대로 이긴다.
머릿속에 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지만 이내 그 사이로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될지도 몰라.’
혼자라면 힘들겠지만 누님과 견줄 수 있는 천재, 자신의 검을 만들어준 이세훈의 도움을 받는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자신만만하게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이세훈의 모습에 제이크가 잠시 숨을 고르면서 물었다.
“가능할까?”
확신을 원하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가볍게 대답했다.
“네가 제대로 한다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 이야기에 제이크가 각오를 다지며 대답했다.
“그럼 해볼게.”
언제 풀 죽어 있었냐는 듯이 의욕을 불태우는 제이크. 그 모습에 이세훈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 정도 반응은 보여줘야지.’
사실 『계승』과 관련된 시점에서 이세훈은 이번 약혼식은 무조건 파토 낼 생각이었다.
그런데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며 제이크를 자극했던 것은 이번 기회에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좀 더 자세히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앞으로는 십악이나 마신하고 싸울 수도 있으니까.’
회귀 전처럼 전력이 빠듯한 상황도 아니니 수준 미달의 동료를 굳이 사지로 끌어들일 필요는 없으리라.
‘마음가짐은 아슬아슬하게 합격점이고…… 남은 건 실력이네.’
지금 제이크의 실력으로는 아리아를 이기는 것이 힘들지만, 휘광검을 조정해서 전략을 제대로 준비한다면 마냥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머릿속으로 계획을 정리한 이세훈은 제이크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단 휘광검부터 개조해야 하니까 잠깐 줘봐.”
“…….”
곧장 건네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과 다르게 아무런 대답이 없다. 예상과 다른 반응에 이세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달라니까 뭐 하…… 제이크?”
“…….”
식은땀을 삐질 거리며 시선을 피하는 제이크. 그 모습에 이세훈이 무언가 깨달으며 두 눈을 휘둥그레 떴고.
“그…… 누님하고 싸우다가 부서졌어.”
반으로 쪼개진 휘광검을 꺼낸 제이크가 멋쩍게 웃었다.
* * *
“…….”
객실에 놓인 고급스러운 소파.
그 위에 드러누운 이세훈은 손에 들린 휘광검, 그렇게 불렸었던 조각을 살펴보았다.
세로로 정확하게 반으로 쪼개진 조각. 안쪽에는 곳곳에 균열이 퍼져 있었는데 이전부터 충격이 누적되어온 것이 보였다.
‘세 번 만에 부러졌단 말이지…….’
며칠 전에 탈출을 시도했을 때 부러진 것이었는데 아리아가 그걸 보고 깜짝 놀란 덕분에 잠시 빠져나와 전화를 걸 수 있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시제품이니까 오래 못 갈 줄은 알았는데…… 타이밍이 영 안 좋네.’
이번까지 쓰고 버렸으면 딱 좋았을 텐데 본의 아니게 계획이 꼬여 버렸다.
제이크에게 새로운 무구를 만들어줘야 하는 상황에 이세훈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휘광검처럼 처음부터 숙성하는 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남은 조각을 응용해서…….’
머릿속에 나열되는 설계도를 하나씩 검토하며 점차 후보군을 좁혀가고 있을 때.
똑똑
“들어가도 될까?”
경쾌하게 울리는 노크와 반갑지 않은 목소리. 그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안 됩니다.”
“알았어.”
대답과 반대로 문이 활짝 열리며 누군가 걸어 들어왔고, 아리아가 머리 위에 서서 내려다보았다.
“잘 지냈니?”
“……방금 안 된다고 말씀드렸던 거 같은데요.”
이세훈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아리아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미안해. 된다는 것만 들렸어.”
“…….”
자신을 욕하는 건 수백 미터밖에서도 다 들으면서 이런 건 바로 앞에서도 안 들리는 모양이다.
뻔뻔하게 웃는 모습에 이세훈이 속으로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 아리아가 손에 들린 휘광검 조각을 발견했다.
“아아. 그거 보고 있었구나?”
“제이크 말로는 선배랑 싸우다가 부서졌다던데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돼버렸네. 제이크는 혼냈어?”
아리아의 물음에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보았다.
“그런 걸로 왜 혼냅니까. 애초에 제 물건도 아닌데.”
자신이 만들었다고 해도 제이크가 대가를 지불한 시점에서 휘광검의 소유권은 상대에게 있다.
그런데 그걸 두고 자신이 만든 무구를 부쉈다고 역정을 낸다니. 그건 대장장이가 아니라 미친놈이 분명했다.
“제이크가 엄청 걱정하길래 그런 성격인 줄 알았는데…… 조금 의외네.”
“안 그래도 그걸로 한 소리하긴 했습니다.”
자신의 성격이 객관적으로 봤을 때 조금 까칠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회귀 전의 삼견처럼 양심을 팔아먹은 수준은 아니다.
이세훈의 대답에 아리아가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아, 잠깐 시간 있니?”
“뭐하시려고요?”
“같이 산책이나 할까 해서.”
아리아의 제안에 이세훈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바빠서 안 되겠네요.”
새로운 무구를 만들기도 바쁜데 다른 곳에 시간을 낭비할 순 없다. 대충 대답한 이세훈이 다시 시선을 내리려던 찰나.
꽈악
휘광검의 조각과 함께 손을 붙잡는 새하얀 손. 그리고 얼굴을 더욱 가까이한 아리아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제이크랑 같이 날 쓰러뜨릴 생각이지?”
“…….”
“그러려면 나에 대해서 좀 더 파악해 두는 게 좋지 않을까?”
빤히 내려다보는 아리아의 모습에 이세훈이 말없이 올려다보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갑시다.”
두 사람이 객실을 빠져나왔고 곧장 저택 밖으로 나와 현관 앞의 정원으로 나왔다.
노을빛으로 물들어있는 단정한 정원 안쪽.
주변에 있는 흔적을 살핀 이세훈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칼춤이라도 췄나…… 흔적이 엄청 많네.’
제이크의 큰아버지, 길버트는 무슨 이유로 이렇게 자신의 흔적을 남겨둔 것일까.
이세훈이 의아해하며 보고 있는 사이 아리아가 고개를 돌렸다.
“여기는…….”
무언가 설명하려던 아리아가 멈칫했고, 이내 조금 놀란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너도 보이는구나?”
눈동자가 움직인 방향을 보고 알아차린 것일까. 본의 아니게 들켜 버린 상황에 이세훈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아니, 내가 착각한 모양이네. 신경 안 써도 돼.”
자신이 잘못 봤다는 듯이 자연스레 넘기는 아리아. 하지만 정말로 그럴 가능성은 낮았기에 이세훈은 금방 상대의 뜻을 파악했다.
‘못 본 척하겠다는 거네.’
길버트의 검술, 가문의 비전이 노출되는데도 신경 쓰지 않겠다.
의도를 알 수 없는 행동에 이세훈이 의아해하는 사이 아리아가 설명을 이어갔다.
“이야기를 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긴 돌아가신 큰아버님이 관리하신 정원이야.”
손을 뻗어 깔끔하게 손질된 수풀을 만지는 아리아.
보존마법 덕분에 곧장 뭉개지지 않고 본래 형태로 돌아왔는데 그 모습을 본 아리아가 계속해서 손바닥으로 훑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직접 뵌 적은 없었지만 이 정원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그분이 존경스럽게 느껴졌었어. 그래서 한때는 연무장 대신 이곳에서 수련한 적도 있었지.”
정원 곳곳에 무분별하게 펼쳐진 길버트의 흔적. 그 위로 아리아의 손이 천천히 훑고 지나가면서 이내 하나의 경로를 만들어냈다.
그 모습에 이세훈은 아리아가 자신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 곧장 알아차렸다.
‘길버트의 검술…… 자신의 뼈대를 보여주는 건가?’
몇 년에 걸쳐서 복원하고, 수련해 왔던 검술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아리아. 그 행동에 이세훈은 목적이 무엇인지 금방 이해했다.
‘부술 수 있으면 부숴봐라…… 이거구만.’
제이크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본인의 호기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신들의 도전을 환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나름대로 즐거웠지만, 조금 속상하기도 했어. 다른 사람들도 알아줬으면 했지만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었거든.”
“…….”
“그렇게 혼자서만 하다가, 결국은 질려 버렸고.”
수풀에서 손을 떼어낸 아리아가 그대로 뒤돌아서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네가 보기에는 어때?”
자신이 펼친 검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가. 그 물음에 이세훈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어린애도 아니고 이 정도에 재미를 느끼긴 힘들죠.”
아리아는 이미 길버트의 검술을 모두 습득하여 자신의 것으로 녹여낸 상황.
그렇다면 이번 대련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 역시 제이크를 그 단계까지 어떻게든 끌어올려야만 한다.
이세훈의 대답에 아리아가 노을을 등진 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너랑 나는 참 잘 맞는 것 같아.”
“착각이실 겁니다.”
“그런가? 확실히 아직은 모르겠네.”
아리아가 천천히 앞으로 다가왔고 그대로 눈을 마주보며 속삭였다.
“실망시키지 말아줘.”
그 말을 끝으로 아리아가 옆을 지나쳐 갔고, 고개를 돌려 그 뒷모습을 바라본 이세훈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성공하면 아리아의 인연레벨이 오르고…… 실패하면 마신에 한발자국 다가가는 건가.’
리스크가 너무 큰 게 아닌가도 싶었지만 자신의 실력 내에서 충분히 시도할 수 있는 정도니 나쁘지는 않다.
약혼식을 파토 내야 할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어난 이세훈은 길버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정원을 바라보았다.
‘기본적인 뼈대들은 다 파악했는데…… 응용법들이 문제구만.’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무구제작과 병행하기에는 너무 빠듯하다.
다른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던 이세훈은 금방 한 존재를 떠올렸다.
‘중요한 일들도 다 끝났으니…….’
지금이라면 불러도 큰 문제는 없다. 빠르게 결정을 내린 이세훈은 경계의 권능을 조정하여 탐구자를 되살렸다.
[하아아아…….]
되살아나자마자 한숨을 푹 내쉬는 탐구자. 노골적으로 섭섭함을 드러내는 탐구자의 반응에 이세훈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왜 그러긴. 재밌는 일에는 쏙 빼놓고 쓸데없는 일에만 부르니까 그렇지!]
불만스럽게 투덜거리는 탐구자의 모습에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왜 그랬는지 몰라서 그러십니까?’
[음? 모르겠는데?]
‘…….’
이전에 뇌를 잠식해서 조종하려 했던 것은 완전히 잊고 있는 탐구자. 아마 그 정도는 사소한 사건이라고 생각해서 저렇게 반응하는 것이리라.
[설마 전에 그것 때문에 아직도…… 음?]
이세훈에게 뭐라 하려던 탐구자의 말이 잠시 끊어졌고, 잠시 후 흥미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뭐야. 마이어스 가문이네?]
‘예. 행사 때문에 초대받아서 왔습니다.’
[아아. 약혼식인가. 여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네.]
전지의 권능으로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주변을 살피는 탐구자. 약간 친근함이 묻어나오는 그 말투에 이세훈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마이어스 가문이랑 친하셨나 보네요?’
[친하다고 하기에는 그렇고…… 좋은 협력 관계 정도?]
‘협력이라면 어떤…….’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탐구자와의 협력 관계. 그 심상치 않은 이야기에 이세훈이 조심스레 물었고.
[얘들 혈통 개조한 게 나거든.]
엄청난 대답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