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48화
아스쿠스 병동의 중환자실 앞.
입구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염성하의 뒷모습을 발견한 이세훈은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상태는 어떠셔.”
“……노환으로 인한 합병증. 그리고 마력회로가 괴사하기 시작하셨다.”
염성하의 설명에 이세훈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마력을 사용하는 데만 문제가 생기는 마력결상과 다르게 이쪽은 생명에 위협이 될 정도로 위험했기 때문이다.
“원인은…….”
“몸이 쇠약해진 탓이라더군.”
보통 마력회로가 괴사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영웅의 심상이 무너지면서 마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것.
두 번째는 몸이 쇠약해져 마력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었는데 비슷해보여도 엄연히 달랐다.
전자가 손이 떨려서 컵 안에 들어있는 물을 사방에 흘리는 느낌이라면 후자는 컵 자체가 산산조각 나는 것이다.
‘부상 때문이라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지만…….’
질병, 특히 노환에 인한 것이라면 사실상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생각보다 심각한 염진현의 상태에 이세훈이 중환자실을 바라보았다.
‘회귀 전에도 오래 못 살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죽지는 않았을 텐데.’
이렇게까지 시간이 앞당겨진 이유가 무엇인가.
그 원인을 생각해 보던 이세훈은 자연스레 방학 전에 있었던 염화문 측의 습격을 떠올렸다.
‘그것 때문이구만.’
약을 통해서 염진현의 체내에 은밀히 축적되고 있었던 몽환의 마력.
회귀 전에는 그 상태로 아주 오랫동안 몸을 갉아 먹혔었지만 이번에는 자신으로 인해 일찍 사용되면서 염진현의 몸에 문제를 만들어낸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일으킨 문제 건가…….’
두 사람을 위협하는 위험을 제거한 것이지만 그 여파조차 견디지 못할 만큼 염진현의 몸이 너무나도 약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세훈이 고민하고 있을 때.
“네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문을 바라보던 염성하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사부님의 몸 상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한계였다. 그날의 사건도 언젠가 더 위험한 형태로 일어났겠지.”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서도 염성하가 평소보다 낮게 깔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러니 이번 일에 대해서 아무런 죄책감도 가지지 마라. 사부님이 쓰러지기 전에 하셨던 말씀이다.”
언젠가 이렇게 쓰러질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걸까.
염성하를 통해 전해 들은 염진현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눈매를 매만졌다.
‘틀린 말은 아니다만…… 그렇게 말처럼 쉽지가 않단 말이지.’
이세훈의 목적은 염진현을 살린다기보다는 염성하가 회귀 전의 광견처럼 엇나가지 않게 바로잡는 것.
여태까지는 광견보다 협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긍정적이었지만, 만약에라도 염진현이 죽으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이전에 사부님이 죽더라도 자신의 길을 나아가겠다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거기에 영향을 완전히 안 받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죽더라도…… 이런 형태로는 안 돼.’
염화문의 문주, 하다못해 염성하가 그에 버금갈 정도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 서로 매듭을 지은 다음에 떠나는 것이 향후 엇나갈 가능성을 줄여준다.
뭔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이세훈이 고민하던 그때.
“선객이 있었군.”
뒤쪽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목소리.
그에 고개를 돌린 이세훈은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왼쪽 볼에 불꽃 모양의 흉터가 새겨진 짧은 적발머리의 중년인. 이전에 TV에서 봤었던 그 얼굴에 이세훈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이원룡…….’
염화문의 현 문주이자 염진현을 저렇게 만든 원흉이나 다름없는 인물.
달갑지 않은 손님의 방문에 이세훈이 불편한 눈초리로 바라보자 이원룡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오늘은 제자로서 찾아왔을 뿐이다만…… 아무래도 면회는 힘든 모양이군.”
중환자실을 바라보는 이원룡.
그 태연한 모습에 이세훈이 옆에 서 있는 염성하를 바라보았다.
“…….”
이원룡이 나타났는데도 말없이 중환자실의 입구만 쳐다보고 있는 염성하.
완전히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언제라도 이원룡에게 달려들 수 있을 정도로 전신이 곤두서있었다.
‘이러다가 사고 나겠네.’
여기서 싸워봐야 금방 무마되겠지만 굳이 귀찮은 일을 만들 필요는 없다.
한숨을 내쉰 이세훈이 두 사람 사이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병문안이면 다음에 다시 오시고, 다른 목적이 있으시다면 나가서 이야기하시죠.”
이세훈의 이야기에 이원룡이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지.”
이원룡이 먼저 몸을 돌리며 나갔고 그 뒷모습을 본 이세훈이 가만히 있는 염성하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다녀올 테니까. 여기서 지키고 있어.”
“…….”
아무런 대답 없는 염성하의 모습에 이세훈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이원룡을 뒤따라 병동의 주차장으로 나왔다.
차도 없는 한적한 곳에서 멈춰서는 이원룡.
습격하기에는 딱 좋았지만, 그래도 장소는 구분할 줄 아는지 주변에 매복은 보이지 않았다.
‘구분할 줄 몰랐으면 그냥 다 치워 버리면 끝인데…….’
이세훈이 아쉬워하고 있을 때. 이원룡이 몸을 돌리면서 바라보았다.
“길게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하니 간략하게 말하겠다.”
“하시죠.”
“반년만 시간을 다오.”
“……반년?”
예상과 다른 이야기에 이세훈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이원룡이 진중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염성하가 바벨을 졸업하면 본격적으로 염화문의 문주 자리를 노리겠지. 이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너희들과 싸움이 될 거라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본래도 이세훈이 개입하면서 상황이 어려워졌었지만 이번 몽환마 토벌전으로 인해 염화문의 입지는 매우 위태로워졌다.
바르무트를 통해 은밀히 구축했던 환락가와의 연결고리가 무너졌고 그것을 알아차린 세라핌 길드가 발을 뺏다.
그것만 해도 타격이 상당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이세훈의 새로운 배후, 위르겐의 UD그룹이 본격적으로 압박해 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UD그룹과 적대관계라는 소문이 돌면서 여기저기 연락이 끊어지고 있다. 이미 우리들이 패배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지.”
염화문이 아무리 한국에서 손꼽히는 무력집단이라고 해도 완등자와는 비교가 불가능했고, 하물며 대표가 S급도 아닌 A급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이원룡의 설명을 가만히 듣던 이세훈은 생각을 정리한 다음 물었다.
“그래서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날 테니까 조금이라도 재산을 빼돌려서 나갈 수 있게 반년만 시간을 달라…… 뭐 대충 그런 겁니까?”
“재산을 빼돌릴 생각은 전혀 없다. 그냥 외부로 독립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도망칠 시간만 주면 괜한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나가겠다.
이원룡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진짜 포기한 모양이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 이전에 몽환마와 연루된 사건도 있으니 영웅협회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을 터.
이 상황에 UD그룹까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들쑤실 기회를 엿보고 있으니 염화문, 이원룡 일파의 입장에서는 이미 망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으리라.
‘아마 반년 안에 남은 흔적은 최대한 없애고 조용히 빠져나갈 생각이겠지.’
염화문에 괜히 집착하느니 조금이라도 몸 멀쩡히 빠져나가겠다는 판단. 앞으로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안 될 것 같은데?”
그러기에는 이미 늦었다.
“도와준다면 답례도…….”
“답례의 문제가 아니야. 솔직히 십악의 시체라도 가져오는 게 아니라면 흥미도 없고.”
“…….”
“내가 안 된다고 한 건 염성하 그 녀석이 그럴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야.”
이세훈의 이야기에 이원룡의 눈매가 살짝 찌푸려졌다.
당연히 이세훈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발을 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염화문의 문주가 되는 걸 돕겠다고는 했지만 처음부터 다 떠먹여 줄 생각은 없었어. 염성하 그놈도 그렇게 문주가 되는 건 싫어할 거고.”
“…….”
“그 녀석의 목적은 배신자들을 처단하고 문주가 되어 사부님의 가르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것. 문주 자리는 어디까지나 곁다리에 불과하다는 거지.”
이원룡 일파라는 장애물을 부수고 넘어가는 것이 기본 전제인 만큼 만약에라도 도망치는 것을 도와줬다가는 그동안 쌓아올린 신뢰가 죄다 무너지리라.
“……그럼 염성하에게 죽을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란 말인가?”
“그렇지? 뭐, 그래도 옛날보다 성격이 유해졌으니까 죽이지는 않을 거야. 팔다리가 멀쩡하지는 않겠지만.”
다시는 염륜잔화창을 사용할 수 없게끔 만드는 정도로 만족하지 않을까.
이세훈의 여유로운 대답에 이원룡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생도 따위가 감히…….’
이미 평화협상은 물 건너갔음을 깨달은 이원룡이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굳이 싸워서 좋은 건 없을 텐데.”
“싸우면서 성장하는 거지. 오히려 지금 상태면 너무 싱거우니까 그때까지 열심히 수련이나 해둬.”
이원룡 일파가 강력해질수록 염성하 역시 더욱더 열심히 수련할 터. 이미 자신들을 수련도구처럼 여기는 듯한 이세훈의 말투에 이원룡이 이빨을 꽉 깨물었다.
“장담컨대…… 오늘의 선택을 후회가 될 것이다.”
“그래그래. 당신도 후회하기 전에 열심히 수련해서 S급이나 달라고. 이번 아니면 기회도 없을 테니까.”
“…….”
염화문에서도 금기처럼 여기지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후벼 파는 이세훈. 그 모습에 이원룡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가 이내 힘을 풀었다.
‘여기서 싸워봐야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여도 승천제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여기서 섣불리 덤벼봐야 공간마법에 저항도 못 해보고 제압당할 것이 분명하리라.
그렇게 분노를 가라앉힌 이원룡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이세훈을 노려보았다.
“다음에 보도록 하지.”
낮게 깔린 목소리로 경고한 이원룡이 그대로 이세훈을 지나치며 떠나려던 그때.
“야.”
이세훈의 싸늘한 목소리가 발목을 붙잡았다.
“사람답게 죽고 싶으면 염화문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별다른 마력도, 살의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
하지만 그 경고에 이원룡은 전신의 감각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감당할 수 없는 적을 만났을 때나 느껴지는 긴장감.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며 당장에라도 대응하라고 하지만, 몸은 완전히 얼어붙어서 움직이지를 않았다.
‘이게 무슨…….’
그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이원룡이 가만히 서 있을 때. 이세훈이 몸을 돌리면서 담담히 덧붙였다.
“이게 마지막 경고야.”
말을 끝낸 이세훈이 다시 병동으로 돌아갔고,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고나서야 굳어있던 이원룡이 비틀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허억…… 허억…….”
잠깐 사이에 식은땀으로 푹 젖은 몸.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본 이원룡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위르겐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렇다고 준 S급으로 평가받는 자신을 이렇게까지 압박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이미 사라진 이세훈의 뒷모습을 쫓던 이원룡은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끝났군.’
자신들이 살아남을 방법은 없다고.
* * *
“후우…….”
병동으로 다시 들어온 이세훈은 가볍게 몸을 풀어주면서 전신에 남아있는 잔재, 광견의 ‘기세’를 살펴보았다.
‘우화하는 꿈이 상상 이상으로 범용성이 좋네.’
광견의 힘을 재현하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서 기세만 재현해 봤는데 예상보다도 더 매끄럽게 적용된 것이다.
‘단점은 기세만으로도 마력 소모가 크다는 건데…… 뭐 필요할 때만 잠깐 쓰면 되겠지.’
이원룡처럼 경험이 풍부한 영웅을 상대로 완벽히 먹힌 걸 보면 이번처럼 허세를 부릴 때는 물론 전투 중에 빈틈을 만드는 용도로도 충분히 쓸 수 있으리라.
방금 얻은 성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던 이세훈은 이어서 이원룡과의 대화를 다시금 떠올렸다.
‘일단 경고는 제대로 먹힌 것 같지만…… 그래 봐야 잠깐이거나 조금 조심하는 정도겠군.’
필요에 의해서 만마전과도 손을 잡았던 녀석들이 이제 와서 겁을 먹고 발을 뺄 리가 없다.
아마 다른 방도를 찾거나 그도 아니라면 밤새 야반도주를 할지도 모르리라.
‘뭐, 도망치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경험이 될 테니 일단은 지켜보는 게 낫겠지.’
아미르와 하선우에게 부탁하여 앞으로 염화문의 움직임을 주시하기로 한 이세훈은 그대로 중환자실로 돌아왔다.
“…….”
여전히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염성하. 그 모습에 이세훈이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밤새 그러고 있을 거냐?”
“오늘밤이 고비라고 해서 남아 있는 거다.”
“……아니, 그걸 먼저 말해야 할 거 아냐.”
본의 아니게 개새끼가 되어버린 상황에 이세훈이 무안해하고 있을 때. 중환자실의 문이 열리며 안정완 교수가 나왔다.
“음? 자네도 있었나?”
“예. 아까 연락을 받아서요.”
“그렇군. 그럼 같이 설명해도 되겠나?”
“상관없습니다.”
염성하의 대답에 안정완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일단 고비는 넘긴 상황이네. 마력회로의 괴사도 멈췄고 폭주하던 마력도 조금씩 가라앉고 있어.”
“……그렇군요.”
“다만 그뿐일세. 이미 괴사가 진행된 부분은 수습할 수도 없고, 언제 다시 재발할지 모르는 상황이네. 입원해서 치료를 하더라도 진행을 더디게 만드는 것이 한계일 거야.”
안정완의 설명에 이세훈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한계군.’
지금부터는 이미 죽어버린 몸을 억지로 살려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염성하 역시 그것을 알고 있는지 굳은 표정으로 안정완에게 물었다.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은 없으십니까?”
“이 이상은 자네의 발목을 붙잡는 거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더군.”
안정완의 대답에 염성하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병동에서 치료를 받아봐야 끝없이 고통을 받을 뿐이고, 사부님은 더 이상 살아남기를 원치 않는다.
그리고 자신 역시 사부님의 죽음에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겠다고 맹세한 상황.
꽈악─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염성하는 섣불리 그렇게 하겠다고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자신이 직접 사부님을 죽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고민. 그 속에서 염성하는 자연스레 며칠 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꿈속의 인물, 자신의 미래라고 주장하던 미치광이를 떠올렸다.
‘강해지는 것만 생각해라. 다른 미련은 모두 끊어내.’
이런 사사로운 일에 얽매여서는 더 강해질 수 없다. 그 이야기를 떠올린 염성하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치료를 포기…….”
“만약.”
염성하의 말을 잘라낸 이세훈이 담담하게 물었다.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할래?”
이세훈의 갑작스러운 말에 염성하의 두 눈이 살짝 커졌고, 이내 다급히 물었다.
“방법이 있나?”
“나도 확실하게는 몰라.”
장난치는 듯한 말에 염성하가 매섭게 노려보았지만 이세훈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대답했다.
“하지만 찾아보면 있을 수도 있어. 근데 그 치료법이 너한테 필요 없다면 굳이 찾으려고 할 필요도 없지”
“…….”
“그러니까 만약에라도 찾았을 때 어떻게 할 건지 말해봐.”
치료법이 있는데도 염진현의 뜻을 존중하여,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죽게 놔둘 것인가.
그런 이세훈의 물음에 염성하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미 옳은 선택지가 무엇인지 아는데도, 치료할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만으로 그것을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어찌할지 모르는 염성하의 모습에 이세훈이 다시 물었다.
“간단하게 물을게. 이번 일로 사부님이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이세훈의 물음에 염성하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이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없다.”
“좋아. 그럼 후회하기 싫으면 얌전히 따라와.”
뭐가 됐든 간에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할 수 있는 건 전부 시도해 보는 것이 최선이다.
뒤도 안 돌아보고 어디론가 향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염성하아 당황하며 물었다.
“어디로 가는 거지?”
세계에서 세손가락 안에 꼽히는 병원도 어찌할 수 없는 병을 도대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어디긴 어디야.”
그런 염성하의 바보 같은 질문에 이세훈이 피식 웃었다.
“이 분야 최고 권위자한테 가는 거지.”
좋은 말씀을 들으러 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