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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243화 (243/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43화

백두산의 천지에 화살을 쏘았을 때보다 더욱 큰 물기둥.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

방금 일격으로 조율자가 완전히 죽었을 가능성은 없지만 어찌 됐든 당장의 안전은 확보됐다.

이제 명계로 후퇴하기만 하면 모든 일이 끝나는 상황. 그러나 생각과 달리 이세훈은 자신의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우우웅─

전신에 은은하게 서려 있는 황금빛의 기운.

루트비히에게서 받은 영웅의 반지가 만들어낸 그 무한에 가까운 힘이 바로 사라졌어야 할 백야궁을 유지시켰다.

‘시야가 계속 넓어지고 있어.’

수백 킬로미터로 한정되었던 시야가 더욱더 멀리 뻗어나갔고 잠시 후 이세훈의 눈에 한 장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고 끈적거리는 늪.

본래 남극 대륙이라 불리었던 새하얀 대지를 집어삼킨 마기의 근원이 두 눈을 가득 채웠다.

‘만마의 늪…….’

영웅의 탑과 함께 세계를 변혁시킨 시발점이자 회귀 전 세계를 멸망시킨 근본적인 원흉.

그 불길한 장소를 바라보던 이세훈은 자신도 모르게 눈매를 일그러뜨렸다.

마치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검은 늪이 차오르는 듯한 감각.

꿀렁

그 차오르는 불쾌감에 이세훈이 반사적으로 시선을 하늘로 돌렸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늘 곳곳으로 뻗어나가는 거대한 흐름.

언뜻 보기에는 구름과 비슷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 하나하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가능성’이 뭉쳐져 있는 것들이었다.

‘이게 하백연이 보는 세상인가…….’

저 가능성 중 하나를 포착하는 순간 세계의 일부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인다.

포착의 권능을 더욱 깊이 이해한 이세훈은 자연스럽게 가능성이 움직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스스스

하늘 높이 솟구쳐 올라가는 가능성. 그 뒤를 쫓은 이세훈의 시야는 어느새 별의 바깥으로 향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한 우주. 그동안 반짝이는 빛으로만 관측해 온 천체들이 하나하나 선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그 시선이 계속해서 나아가 마침내 그 끝에 닿으려던 순간.

주르륵─

입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리며 모든 것이 사라졌다.

털썩!

의식을 잃은 이세훈이 땅 위로 쓰러졌고, 하늘에서 내려오던 황금빛 기둥이 흩어지며 백야궁도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멸각의 군세와 망자의 군단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전투의 흔적만 남아 있는 황량한 주변. 그 위로 이세훈의 희미한 숨소리만이 고요히 울려 퍼지던 그때.

끼끼긱

요란스럽게 울려 퍼지는 쇳소리.

전투 내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인형사가 자잘한 부품들을 흘리면서 이세훈에게 다가와 하나밖에 없는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아래를 향해 손을 뻗으려던 그때.

“그만두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뒤쪽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끼긱

들려선 안 될 목소리에 인형사가 잘 안 움직이는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휘광과 그로 인해 반짝거리는 금발. 두 눈동자는 금색과 흰색이 뒤섞여 있었고 구김 없는 새하얀 신부복이 온몸을 단정하게 감쌌다.

자애로움과 신성함이 느껴지는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사내.

그 모습을 본 인형사가 눈매를 찌푸렸다.

“용케 여기까지 왔군.”

“유능한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이지요.”

담담히 대답한 사내, 순례자 칼 안데르센이 바닥에 쓰러진 이세훈을 힐끗 보고는 다시 인형사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꺼지라고 하고 싶다만…… 이래서야 의미도 없겠지.”

만전의 상태에서도 어찌할 수 없는 순례자를 이런 망가진 인형으로 어찌할 방법은 없다.

압그룬트가 뽑히면서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된 인형사는 언제든지 자신을 처리할 수 있는 순례자를 바라보았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나 하자고 전해줘.”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잘 고쳐놓으라고.”

와르르!

인형사의 몸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그 모습을 본 칼이 이세훈의 곁으로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로 심각한 부상.

심지어 심상에도 타격이 있었는지 마력회로가 여기저기 비틀려 있었는데 치료하더라도 폐인이 될 만한 상태였다.

“이 정도라면…….”

하지만 칼은 대수롭지 않게 이세훈의 몸에 손을 얹으며 신성력을 끌어올렸고, 잠시 후 하늘로부터 황금빛의 기둥이 내려와 두 사람을 감쌌다.

우우웅!

시간을 거스르듯 빠르게 회복되어가는 이세훈의 몸.

근육과 뼈, 마력회로가 순식간에 제자리를 되찾고 이어서 전신의 혈류가 빠르게 움직여서 온몸을 활성화시킨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세훈을 치료한 칼은 몸을 살펴보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신성력을 흡수한다고……?’

제인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에게도 들은 적 없는 이야기.

기절한 상태로 몸에 들어오는 신성력을 저장하고 있는 이세훈의 모습에 칼이 의아하게 바라보다 미소를 지었다.

‘비밀이 많은 사람이군.’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한 칼이 응급처치를 끝낸 다음 다시 한번 신성마법을 발동했고.

후웅!

두 사람의 모습은 오염된 대륙에서 사라졌다.

* * *

“……?”

자연스럽게 눈을 뜬 이세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천장과 큼지막한 책장들. 그리고 고급스러운 붉은 융단 위에 너저분하게 쌓인 각종 서류와 책.

눈앞에 보이는 빙견의 서재에 이세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왜 여기에…… 윽!’

기억을 떠올리려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밀려오는 두통. 머리가 통째로 으깨지는 듯한 감각에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렸다.

‘이건…… 기억이 없다기보다는 못 떠올리는 느낌인데.’

누군가 자신에게 금제를 걸었나 싶어 이세훈이 기억을 살살 떠올리려고 하면서 통증에 대해서 조사하던 그때.

“그러다가 머리 쪼개지십니다. 형님.”

한심스럽다는 목소리와 함께 탁자에 커피 잔이 놓였다.

‘이건…….’

자신의 앞에 놓인 커피 잔에 이세훈이 옆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와 동시에 앞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딜 보시는 거죠?”

어느새 앞의 소파에 앉아서 여유롭게 커피 잔을 기울이며 씩 웃는 빙견. 어린애 같은 장난으로 자신을 놀려먹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회귀 전 기억인가?’

몽환규도를 응용해서 종종 써먹었던 방법.

그때처럼 과거의 시점으로 빙의한 건가 싶어 이세훈이 몸을 살피려던 찰나.

“과거의 기억은 아닙니다.”

커피를 홀짝이던 빙견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흔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간단하게 꿈이라고 보는 편이 좋겠네요.”

“너……!”

빙견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고, 자신의 뜻대로 나온 목소리에 또 깜짝 놀랐다.

‘이게 도대체 뭔…….’

떠오르지 않는 기억과 빙견의 서재를 본 따서 만들어진 꿈.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읽어낸 것처럼 설명한 빙견.

무엇 하나 이해가지 않는 상황에 이세훈이 혼란스러워하다가 머릿속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진정하자.’

누군가에 납치당한 상황이라고 해도 일단은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순식간에 평정을 되찾은 이세훈은 다시 한번 기억을 떠올렸다.

지끈─

통증이 심하지 않는 기억들을 위주로 떠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대략적으로 모두 떠올렸다.

그것을 확인한 이세훈이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는 빙견을 바라보았다.

“너. 내가 재현한 아미르의 심상이냐?”

이세훈의 질문에 빙견이 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대강 그런 느낌이죠.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형님의 심상과 결합하면서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과거의 제가 아니라 회귀 전의 저로 나타난 거고요.”

자신의 상태를 여유롭게 소개하는 빙견의 모습에 이세훈이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설마 이런 부작용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단순히 아미르의 기억과 힘에 영향을 받는 정도일줄 알았는데 설마 회귀 전의 빙견으로 이렇게 재현해 낼 줄이야.

이세훈이 흥미롭게 바라보자 빙견이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이번 건 운이 좋으셨습니다. 저였으니까 이렇게 한가롭게 이야기하지 재수 없었으면 대참사가 났을 거예요.”

“대참사?”

“쉽게 예를 들자면…… 아리아 마이어스의 경우 형님이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멸광의 마신과 뒤섞여 나타났을 겁니다. 그 뒤에는 말 안 해도 아시겠죠?”

“……그건 진짜 대참사긴 하네.”

재수 없었으면 멸광의 마신에게 꿈속에서 끝도 없이 살해당할 뻔한 상황.

어쩌면 심상이 결합되는 과정에서 엄청난 문제점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리라.

“뭐, 이건 어디까지나 극단적인 거고 형님이 정상적인 상태라면 그리 문제되진 않을 겁니다.”

“그래? 그러면…….”

“문제는 지금까지 형님이 정상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거죠.”

“……지금까지?”

빙견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회귀 직후에야 몸 상태가 개판이긴 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성장하면서 꽤 궤도에 올라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문제라고 할 만한 게…….’

자신의 상태를 차근차근 되짚어보던 이세훈은 금방 회귀 전과 달라진 한 가지를 떠올렸다.

“영혼?”

“잘 아시네요.”

고개를 끄덕인 빙견이 은빛 눈동자로 이세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형님이 습득한 영연신마법은 순수한 영혼에서 비롯된 기술 아닙니까. 그런데 그걸 영혼이 변질된 상태에서 냅다 익혀 버렸으니 당연히 정상이 아니죠.”

“흠. 그건 그렇지.”

“게다가 회귀로 인해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비틀린 심상이 생겨 버린 상태…… 형님이라 멀쩡했지 다른 사람이면 진작 미쳐 버렸을 겁니다.”

빙견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렸다.

회귀 전에 없던 재능들의 발현.

여태까지는 그 덕분에 많은 것들을 해냈지만, 몸이 어느 정도 궤도에 들어서자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다.

“쯧…… 공짜는 없구만.”

“뭐,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인연재현이랑 마혈기만 자중하시면 문제없을 겁니다. 그리고…….”

빙견이 한쪽으로 손을 까닥였고,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서류 중 몇 개가 얼음집게에 집혀서 탁자 위에 놓였다.

“형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에 관련된 자료들입니다.”

“…….”

앞에 놓인 서류를 집어든 이세훈은 그 내용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혈공은 국제법에 어긋나는 위험한 무구를 만들어내 그것을 불법적으로 유통하고 희소한 재료를 도난해가는 등 양지와 음지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건을 일으켰다.

그로 인해 영웅 협회는 물론 음지의 조직들과도 대립관계를 만들며 지명수배를 받으며 현상금이 걸렸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위장신분을 만들어 무엇이 본명인지도 알 수가…….」

“이건…….”

회귀 전 성화공과 비견될 정도로 뛰어난 솜씨를 지녔던 장인이자 온갖 기행을 일삼아 사람들에게 경계 받았던 괴짜.

자신의 사부인 ‘혈공血工’과 관련된 자료들에 이세훈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워낙 신출귀몰했던 사람이라 명확한 정보는 없지만 그래도 본격적으로 지명수배되기 전이니까 잘하면 찾으실 수도 있을 겁니다.”

담담히 설명하는 빙견의 모습에 이세훈이 살짝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료를 다시 보았다.

‘딱 찾고 있던 자료긴 한데…… 이게 어디서 난 거지?’

아미르의 심상과 자신의 심상이 뒤섞여서 만들어진 게 눈앞의 빙견인데 자신의 안에 이런 자료들이 있었던 건가?

이전에 과거의 기억을 볼 때도 그렇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자료들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눈매를 찌푸렸다.

‘생각나는 게 없어. 아니 그보다 뭔가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느낌이…….’

평소보다 묘하게 머리가 느린 느낌에 이세훈이 눈매를 매만지자 앞에 앉아있던 빙견이 다시 커피를 홀짝이며 대답했다.

“아마 저 때문일걸요?”

“뭐?”

“형님의 머리만으로 절 재현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자칭 천재의 머리로 진짜 천재를 재현하고 있으니 과부하가…….”

탁!

이세훈이 내던진 서류를 가볍게 낚아챈 빙견이 다시 앞쪽에 돌려놓으면서 잔을 기울였다.

“올 수밖에 없는 거죠. 힘드시겠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전부 외워주세요.”

“……기억 속에 남겨주는 건?”

“그렇게 하면 정보가 희미해져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안전한 곳까지 이동된 상태니까 공부하러 왔다고 생각하고 마음 편하게 읽으세요.”

머리는 잘 안 돌아가지만 서로 심상이 연결된 상태라 그런지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이 은근하게 느껴졌다.

여유롭게 커피를 즐기는 빙견의 모습에 이세훈이 한숨을 내쉬며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래그래. 외운다 외워.”

이세훈은 소파에 앉은 채로 건네받은 서류들을 하나씩 꼼꼼하게 읽었고, 빙견은 마실 것과 간식을 가져오며 빈둥거렸다.

회귀 전에 하루도 빠짐없이 업무에 찌들어 있던 것과 다른 모습. 그 이질적인 모습에 이세훈은 새삼스레 이곳이 꿈이라고 다시금 느꼈다.

‘현실이었으면 저놈이 저렇게 쉬고 있었을 리가 없지.’

“그렇죠. 죽어서 편한 점도 있네요.”

“마음 읽지 마. 새끼야.”

“읽힌 사람이 잘못이죠. 딴 생각하지 말고 집중하세요.”

이세훈은 틈날 때마다 빙견에게 놀림 받으며 사부의 과거 행적에 관한 정보들을 암기했고, 총 25잔의 커피를 마신 다음에야 완벽하게 기억하는데 성공했다.

“흠. 이 정도면 되겠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서류를 정리해서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빙견. 그 모습에 지쳐서 늘어져 있던 이세훈이 올려다보았다.

“가냐?”

“간다기보다는 쫓겨나는 거죠. 형님 심장이 열심히 일해서 잔재를 다 지워 버렸으니…….”

무의식중에 펼쳐진 영연신마법. 그 덕분에 이세훈의 심상과 결합되어 있던 아미르의 심상이 분리되면서 본래의 상태로 회복된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도와줬는데 이런 꼴이라니…… 서글퍼서 눈물이 날 것 같네요.”

“…….”

눈물은커녕 실실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에 이세훈이 어이없게 바라보자 빙견이 피식 웃었다.

“아무튼 잘 쉬다 갑니다. 다음에는 좀 사람다운 상태로 보자고요.”

“그래그래. 썩 꺼져라.”

낯부끄러운 작별인사는 이전에 했기에 이세훈이 손을 대충 내저었고, 빙견도 알고 있다는 듯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꿈이 무너지려던 찰나.

“아, 참.”

무언가 떠올린 빙견이 씩 웃으면 이야기했다.

“일어나면 말씀 잘하셔야 할 겁니다. 그분도 성격은 저희 못지않았으니까요.”

“그게 뭔…….”

빙견에게 되묻기도 전에 시야가 암전되었고, 잠시 후 방금과 전혀 다른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전신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침대와 이불. 언제나 늘 그렇듯 병동에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이세훈이 천천히 눈을 떴다.

“…….”

그러자 보이는 것은 코앞에서 자신을 뚫어져라 내려다보는 붉은 머리칼의 미인.

눈동자에서 용암이 끓어 넘치는 듯한 그 뜨거운 시선에 이세훈이 뭐라 입을 떼지 못한 채 보고 있을 때.

“이세훈 생도.”

천천히 입을 연 류은하가 이세훈을 바라보며 무감정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저는 지금 매우 화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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