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42화
‘하필 이놈인가…….’
눈앞의 조율자를 본 이세훈은 두 눈을 찌푸렸다.
인형사와 마찬가지로 생명체를 거침없이 실험 재료로 삼으며 십악 중에서도 최우선 토벌리스트에 들어가는 존재.
회귀 전에도 주시자와 손잡고 멸검의 마신을 만들어내는 등 전적이 화려했었는데, 과거 이세훈이 특별히 경계하던 마인 중 하나였다.
‘나타났다 싶으면 대형 참사였으니까.’
인형사가 실패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움직인다면 조율자는 실패할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될 때만 나타난다.
즉, 이렇게 조율자가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 자체가 이미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위르겐이 안 보이는 걸 보면…….’
이세훈이 여러 상황을 가늠하던 그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조율자가 흥미를 드러냈다.
“이런 상황에서도 겁먹는 게 아니라 상황부터 파악한다라…… 이건 완전히 닳은 놈들이나 보여주는 반응인데.”
마스크의 턱 부분을 쓰다듬던 조율자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진지하게 물었다.
“혹시 뇌수술했냐?”
“…….”
“아닌가? 그래도 저게 배운다고 될 게 아닐 텐데…… 참 특이한 녀석이네.”
고개를 갸웃거리며 여유롭게 이야기하는 조율자의 모습에 이세훈의 눈매가 다시금 찌푸려졌다.
‘위르겐 그 양반한테 도움받긴 글렀나 보군.’
이 정도로 여유가 보일 정도면 어떤 수단으로 무력화시킨 것이 분명하다.
그런 이세훈의 생각을 읽어낸 듯 조율자가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예상이 맞아. 아마 1시간…… 열심히 해도 30분은 지나야 다시 올 수 있을 거야.”
“……무슨 수를 쓴 거지?”
조금이라도 변수를 늘려보기 위해 이세훈이 담담히 질문했고, 조율자도 받아주겠다는 듯이 대답했다.
“뭐, 그리 대단한 건 아니야.”
우드득─
로브의 안쪽에서 무언가 뒤틀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등 쪽에서 팔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러 신체 조직을 얼기설기 꿰매서 만들어낸 팔. 두께는 가늘지만 길이가 조율자의 키와 비슷해서 상당히 기괴했는데 그중에서도 눈이 가는 것은 곳곳에 드러난 뼈였다.
‘저건…….’
주술식이 빼곡히 새겨진 뼈. 그것이 누구의 뼈인지 알아차린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렸고, 조율자가 피식 웃었다.
“그냥 노인네가 칠칠맞게 흘린 걸 주워다 썼을 뿐이지. 어때. 잘 만들었지?”
위르겐의 뼈를 이용해서 만들어낸 인공팔을 장난스럽게 까딱이는 조율자. 그 모습에 이세훈은 상황이 대강 어떻게 흘러갔을지 이해했다.
‘경계의 권능에 간섭해서 명계나 아예 다른 곳으로 보내 버린 거구만.’
이번에 자신이 몽환마의 눈을 사용해 환락가를 무너뜨렸던 것과 비슷한 방식.
그 심상치 않은 상황에 이세훈이 굳은 표정으로 조율자를 바라보았다.
“하루 이틀 만에 만든 것 같진 않네.”
“어휴. 오래 걸렸지. 이 완등자의 육체라는 게 말이야 진짜 상상 이상으로 골치 아프거든. 뭐 조금이라도 고쳐보려고 하면 어찌나 반항하던지 날려먹은 재료들만 해도…….”
이세훈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 조율자. 비아냥거린다기보다는 정말로 신나서 이야기하는 듯한 모습에 이세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뭘 하고 싶은 거지?’
최소 30분의 여유가 있다고 쳐도 이렇게까지 어울려줄 필요는 없다. 그 모습에 이세훈이 경계하고 있던 그때.
두근─
심장에서 울려 퍼지는 이질적인 맥동.
전신의 혈류가 뒤흔들리는 현상에 이세훈의 몸이 흠칫 떨렸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신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던 조율자와 눈을 마주쳤다.
“……과연. 시간이 꼭 내 편인 건 아니었구만.”
몽환마를 쓰러뜨리기 위해 사용한 인연재현.
그 과정에서 재현된 아미르의 기억과 힘이 조금씩 통제불능으로 될 조짐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흐음. 몸에 대해서 잘 아는 모양이네?”
“내 몸이니까 남들보다야 잘 알지.”
퉁명스럽게 대답한 이세훈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버티는 건 5분이지만…… 싸운다 치면 2분밖에 안 되겠네.’
문제는 그 2분으로 만전의 십악, 그것도 위르겐의 권능을 훔쳐 쓰고 있는 조율자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봐도 회의적인 상황에 이세훈이 머리를 필사적으로 쥐어짜내고 있을 때.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무언가 고민하던 조율자가 툭 내뱉었다.
“너. 내 조수 안 해볼래?”
“……뭐?”
예상치 못한 질문에 이세훈이 당혹스럽게 바라보자 조율자가 능청스럽게 이야기했다.
“내가 원래 이런 제안은 잘 안 하는데 너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서. 재능도 있고, 어찌됐든 몽환마랑 마신도 처리할 만큼 머리도 잘 굴리니까.”
완등자에게 도움을 받았던, 무언가 약점을 공략했던 결국 중요한 것은 목표를 이룰 수 있느냐 없느냐.
그리고 조율자가 보기에 이세훈은 그중에서도 ‘반드시’ 목표를 이뤄내는 사람으로 보였다.
“어때? 나 같은 거물한테 스카우트 받을 상황이 그리 흔치 않다고.”
장난스러우면서도 진지하게 제안하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리고 있을 때. 조율자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럼 이렇게 하자. 내 조수가 된다면 그 뒤에 있는 친구들은 여기에 남겨줄게. 어차피 별 관심도 없으니까.”
“…….”
“대신 거절하면 네 친구들을 모두 실험 재료로 사용할 거야. 그걸 주도하는 건 뇌를 개조당한 네가 될 거고.”
자신이 희생하여 모두를 구할 것인가, 아니면 모두 함께 최악의 결말을 맞이할 것인가.
조율자의 제안에 이세훈이 머리를 굴렸다.
‘지금으로서는…… 따라가는 게 최선인가?’
자신의 육체도 거침없이 개조하는 조율자의 성향을 생각해 보면 조수가 되더라도 ‘선의’로 개조당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대로 거절해 봐야 지금처럼 불리한 상황에서 강제로 싸우게 될 뿐. 차라리 조수가 되겠다고 따라가서 다른 빈틈을 보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그런 빈틈이 있을 거냐는 건데…….’
조율자의 목적. 바깥의 상황.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을 것들을 떠올리며 이세훈이 고민하던 그때.
‘……목적?’
머릿속에 한 의문이 떠올랐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네 몸도 슬슬 한계 같으니까 빨리 물어봐. 기껏 얻은 재료를 버리고 싶진 않거든.”
태연히 대답하는 조율자의 모습에 이세훈이 방금 떠오른 의문을 물었다.
“왜 모든 일이 다 끝나고 온 거지?”
“그야…….”
“위르겐이 너무 강하니까 몽환마와 싸운 직후를 노렸다.”
조율자의 말을 가로챈 이세훈이 자신의 앞에선 마인을 바라보았다.
“그럴싸하지만 그것도 이상하지.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지닌 언데드가 싸움이 끝났다고 해서 약해질 리가 없으니까.”
정말로 빈틈을 노릴 생각이었다면 몽환마와 싸우던 순간을 노리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어째서 모든 것이 끝나고 나서야 나타났는가.
“할 수 있으면 그게 가장 좋지. 하지만 나도 놀다가 온 건 아니거든. 승천제가 이곳에 오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은 게 누구라고…….”
여유롭게 대답하던 조율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이세훈의 시선에 멈칫했다.
마치 어린아이의 어설픈 변명을 듣는 듯한 모습. 그 반응에 무언가 알아차린 조율자가 물었다.
“승천제가 손 뗀다고 미리 말했었어?”
“양해를 구하셨지. 이번에는 돕기 어려울 것 같다고.”
루트비히는 이곳으로 절대 오지 않는다. 이세훈의 대답에 조율자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평소처럼 착한 척이나 할 것이지…… 빌어먹을 영감탱이…….”
“이걸로 어쩔 수 없이 늦었다는 건 거짓말이고, 그러면 왜 이렇게 늦장을 부렸냐는 것만 남았는데…… 시간이 없는 건 내 쪽이니까 그냥 바로 말할게.”
몸을 가다듬은 이세훈이 조율자를 바라보았다.
“몽환마의 시체와 마신을 만들어낸 핵. 그게 네 목적이지?”
기본적으로 십악은 서로 간의 협동심이 떨어졌고, 회귀 전에도 육대마신이 탄생하며 전면전이 발생한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손을 잡고 움직였다.
물론 조율자는 만마전에 깊이 관여하며 서로 힘을 합치는데 적극적인 편이었지만 그게 꼭 ‘동료애’ 라는 보장은 없었다.
“이겼으면 그 자체로 만마전에게 득이 될 테니 상관없고, 죽었으면 그 몸에서 나온 부산물로 연구할 수 있으니 이득이 된다.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은데.”
“…….”
“틀렸나? 뭐, 그러면 이것도 필요 없겠네.”
어깨를 으쓱인 이세훈이 꽝꽝 얼어있는 몽환마의 심장을 박살 내려던 순간.
“항복!”
조율자가 재빠르게 세 팔을 들어올렸다.
“맞아! 네가 말한 거 전부 맞으니까 제발 그것만큼은 부수지 말아줘! 부탁이야!”
방금까지의 여유로움은 어디가고 다급히 애원하는 조율자. 손바닥 뒤집듯이 바뀐 태도가 우스꽝스럽게 보였지만, 그렇다고 착각해서는 안 됐다.
“그거 부서지면 나 진짜 눈 돌아가서 연구고 뭐고 피부 다 벗겨서 해체해 버릴지도 몰라…… 너도 그런 건 싫잖아. 응? 말로 하자 말로.”
이번에 알아낸 것은 어디까지나 조율자의 진짜 목적일 뿐. 불리하던 상황이 뒤집힌 것은 아니었기에 신중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게다가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점점 다가오는 인연재현의 부작용에 이세훈이 몸을 가다듬으며 조율자를 바라보았다.
“거래를 하자. 몽환마의 심장과 마신의 핵을 넘겨줄 테니까 나랑 내 친구들을 보내줘.”
“그 정도라면…….”
“그리고 위르겐님의 뼈로 만든 그 팔도 내놔.”
뒤에 덧붙은 조건에 저자세로 나오던 조율자가 살짝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건 조금 과한 것 같은데.”
“전혀 과하지 않아. 그게 없어야만 너한테서 도망칠 가능성이 생기니까.”
사람 말도 못 믿는 시대에 마인의 말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이 부분에 있어서는 협상의 여지가 없었기에 이세훈이 단호하게 몰아붙였다.
“어차피 공방에 가면 그거 말고도 더 있을 거 아냐. 너도 아쉬울 건 없을 텐데.”
“……완등자의 육체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거 아냐?”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니라 값어치를 이해하고 있는 거지. 그쪽은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하지만, 이쪽은 이제 다시는 구할 수 없으니까.”
꾸욱─
몽환마의 심장을 가볍게 움켜쥔 이세훈이 진지한 표정으로 조율자를 바라보았다.
“10초 안에 결정하지 않으면 이걸 부순 다음에 너랑 죽을 때까지 싸울 거야. 타협은 없어.”
지금 상황에서 이 이상의 선택지는 없다. 이세훈의 이야기에 조율자가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1초를 세기도 전에 등 쪽으로 손을 가져다댔다.
우드득!
뼈와 가죽이 뜯겨나가는 소리와 함께 인공팔이 떨어져 나왔고 그것을 움켜쥔 조율자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너도 핵 꺼내.”
거래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확인한 이세훈은 가볍게 숨을 고르며 명치에 손을 가져다댔다.
‘여기서 들키면 끝이다.’
조율자는 마신의 핵, 근원의 파편이 파괴됐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게 파괴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상황.
여기서 만약이라도 근원의 파편이 파괴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조건미달은 물론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그냥 공격할 가능성도 있으리라.
‘신중하게…….’
화르륵
몽상수납을 발동해 명치의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은 이세훈은 이번에 새로 습득된 스킬 ‘우화하는 꿈’을 발동했다.
스스슥
아직 어떤 스킬인지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는 법.
이세훈의 손끝으로 하나의 꿈이 뭉쳐 고치로 변해 얼마 지니자 않아 우화를 거쳐 현실 밖으로 나타난다.
손 안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감촉. 그것을 확인한 이세훈은 자연스럽게 그 꿈을 바깥으로 빼냈다.
우웅─
검붉은빛을 띤 원석.
회귀 전 경험과 방금 본 것을 토대로 만들어낸 ‘꿈’을 움켜쥔 이세훈이 보란 듯이 조율자에게 내밀었다.
“봐라.”
조율자가 이세훈이 내민 가짜를 유심히 살펴보았고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마치 이상을 알아차린 듯한 분위기.
하지만 그 긴장되는 상황 속에서도 이세훈이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조율자를 마주 보았다.
‘절대 안 들켜.’
멸각에 비할 정도는 아니어도 그에 근접한 힘. 거기에 근원의 파편은 자주 접한 물건인 만큼 대장장이로서 완벽하게 재현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이세훈과 조율자가 서로 마주보며 잠시 동안 긴장된 기류를 만들어냈고.
“거래는 어떻게 진행할 거지?”
의심을 거둔 조율자가 이세훈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가 팔을 내밀면 경계의 권능을 사용해서 제어권을 가져갈게. 그 다음 물건들을 던져줄 테니까 그대로 챙겨가.”
“너무 허술한 거 아닌가?”
“어차피 너도 팔에 뭔가 이상한 걸 달아뒀을 거 아냐. 어차피 이런 상황에서 만족스럽게 거래할 방법도 없어.”
가능한 것은 공평한 것 같으면서도 조금이라도 서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뿐. 그런 이세훈의 대답에 조율자가 슬쩍 웃었다.
“화끈해서 좋네.”
“그럼 시작한다.”
우웅─
이세훈의 발끝에서 뻗어 나온 파동이 선으로 압축되어 되어 앞으로 향했고, 조율자가 인공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스스스
경계의 권능이 인공팔을 둘렀고 안쪽에 있는 위르겐의 뼈가 자연스럽게 거기에 호응하며 보조한다.
그것을 확인한 이세훈이 몽환마의 심장과 마신의 핵을 하늘 높이 집어던졌고.
콰앙!
조율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이세훈을 향해 달려들었다.
빙결연금氷結鍊金 동극冬棘
콰가가각!
지면이 얼어붙으며 거대한 얼음가시들이 나무처럼 솟구쳐 올랐고, 그 모습에 조율자가 두 팔을 가볍게 휘둘렀다.
파카앙!
가벼운 손짓에도 깨져 나가는 가시들.
처음부터 유효타가 아니라 시간을 끄는 용도였기에 이세훈은 그새 인공팔의 제어하는데 집중했다.
우드득! 뚜득!
경계의 권능을 발동할 때마다 사납게 뒤틀리며 저항하는 팔.
뼈 자체는 호응을 보이지만 덕지덕지 붙어있는 다른 부위들이 저항하는 것이다.
“저건 이미 내 팔이라고!”
그 모습에 조율자가 이세훈을 비웃으며 남은 얼음가시들을 부순 다음 매섭게 달려들었고.
‘압그룬트.’
뒤쪽의 경계가 열리며 칠흑의 검이 쏘아졌다.
“?!”
머리를 노리고 날아오는 그 무시무시한 검에 조율자가 재빠르게 양팔을 교차하며 얼굴을 가렸다.
콰가가각!
압그룬트가 뼈와 근육을 가르며 파고들었고, 조율자의 몸은 그 힘을 견뎌내지 못하고 뒤로 밀려나갔다.
이대로라면 머리까지 관통할 기세. 눈앞에 다가오는 칼날에 조율자는 재빠르게 자신의 양팔에 걸려 있는 술식과 주술을 발동시켰다.
꾸우욱!
양팔이 두 배 가까이 부풀어 오르며 칼날을 꽉 조였고, 검 끝이 아슬아슬하게 마스크 앞에서 멈춰 섰다.
‘이게 무슨…….’
상상을 뛰어넘는 압그룬트의 위력에 조율자가 놀라던 그때. 이세훈이 그 빈틈을 노려서 인공팔의 제어권을 강탈했다.
퍼엉!
인공팔이 폭발하며 위르겐의 뼈만 추출되었고, 그것을 회수한 이세훈은 재빠르게 뒤에 있던 셋과 함께 명계로 보냈다.
후웅!
위르겐의 뼈에 사령마법을 걸어뒀으니 잠시 동안은 명계에 침식당하지 않는다.
약간의 시간을 확보한 이세훈은 이어서 하늘 위로 던졌던 몽환마와 심장과 가짜 핵에 손을 뻗었다.
우웅!
두 물건의 끝에 붙어있는 흑무사.
그것을 통해 여백의 휘장을 멀리서 발동시켰고, 두 물건이 그대로 감싸졌다.
‘됐다……!’
이걸로 조율자 쪽에서 몽환마의 심장에 간섭할 방법은 없을 터. 물건을 회수하자마자 도망치기 위해 이세훈이 경계의 권능을 끌어올렸고.
콰악!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 두 개를 움켜쥐었다.
“뭐…….”
그 모습에 이세훈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순간. 저 멀리 있던 조율자의 몸이 바로 앞에서 나타났다.
마치 ‘공간’을 뛰어넘은 듯한 그 모습에 이세훈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아차렸다.
‘공간─’
복부를 걷어차인 이세훈의 몸은 한참을 튕겨져 나가다가 바닥에 널브러졌고, 그 모습을 바라본 조율자가 휘두른 발을 내리면서 혀를 찼다.
“쯧…… 완전히 적자구만.”
허공에 우뚝 서 있는 두 물건이 내려왔고 이어서 양팔에 단단히 꽂혀있던 압그룬트가 자연스레 뽑혀져 나왔다.
상황을 정리한 조율자는 자신의 등에서 나온 보이지 않는 무언가, 공간의 팔을 다시 회수했다.
‘방금 걸로 50%…… 연비가 너무 안 좋단 말이야.’
세계 각지에서 힘겹게 모았던 루트비히의 권능이 순식간에 절반이나 날아갔다는 사실에 조율자가 한숨을 내쉬다가 금방 마음을 다잡았다.
“어쨌든 잡았으면 됐지.”
명계로 넘어간 세 명과 뼈가 조금 아쉽지만 그 정도야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는 정도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압그룬트를 주워서 살펴본 조율자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이만한 재능이라면…… 연구하는 맛이 있겠어.’
망가지지 않도록 차근차근, 이세훈이라는 인간의 모든 요소를 연구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다짐한 조율자가 잔뜩 기대하며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키이잉─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는 황금빛.
딱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빛에 조율자가 그 근원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세훈의 오른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 중앙에 하얀 선이 그어져 있는 황금색 반지의 모습에 조율자가 경계하던 그때.
투웅!
하늘로부터 거대한 황금빛의 기둥이 지상으로 내려와 이세훈의 몸을 감쌌다
“설마…….”
그제야 빛의 정체를 알아차린 조율자가 다급히 달려들던 순간. 시체처럼 쓰러져 있던 이세훈이 천천히 일어섰다.
흐릿하게 풀려 있으면서도 정확하게 자신을 응시하는 두 눈. 그와 시선을 마주한 조율자는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투웅!
50%밖에 안 남은 공간의 권능을 사용해 이동하고 이어서 육체를 변형하여 전력을 다해 도망친다.
“…….”
눈 깜짝할 사이에 조율자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지만, 이세훈은 당황하지 않고 몽상수납에 넣어둔 한 물건을 꺼냈다.
우우웅!
이 순간을 기다린 듯 새하얗게 떨리는 백야궁.
그것을 움켜쥔 이세훈이 천천히 활시위를 당겼고 활대로부터 어마어마한 힘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평범한 인간은 감당할 수 없는, 무한에 가까운 힘.
본래라면 몸이 터지고도 남았을 그것을 아주 간단히 받아들인 이세훈은 시야를 넓히며 저 멀리 도망치는 조율자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준비해 온 모든 밑천을 사용하여 도망치는 조율자.
이미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자신에게는 그 기회가 ‘포착’되었다.
끼기긱─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이 활시위를 더욱 당겼고, 활대로부터 황금빛을 띈 화살 한 발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세훈이 가볍게 활시위를 놓은 순간.
파앙──
검은 하늘에 구멍이 뚫리며 금빛의 유성이 적을 향했다.
실낱같은 틈조차 꿰뚫고 거침없이 나아가는 화살.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을 뒤쫓아 향해오는 그 거대한 황금빛 화살에 온힘을 다해 도망치던 조율자가 뒤돌아보았고.
“……개 같은 완등자놈들.”
콰아아앙!!!
지축을 뒤흔드는 거대한 화살이 십악을 짓뭉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