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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240화 (240/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40화

쿠구구궁!

멸각의 죽음과 동시에 더욱 빠르게 무너지는 세계.

힘을 공유하고 있던 몽환마 때문에 어느 정도는 버티고 있었지만 근원이 사라진 만큼 얼마 버티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어찌 잡긴 했나…….”

무너지기 시작한 하늘의 모습에 이세훈이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몽환마만 죽이러 왔더니 마신까지 한 명 잡게 될 줄이야.

결과적으로는 이득이긴 했지만 운이 좋아서 잘 풀린 일들이 많았기에 반성할 부분들이 많았다.

‘앞으로 회귀 전 정보는 무조건 참고만 한다.’

그만큼 일이 늘어나긴 하겠지만 그래도 비명횡사하는 것보다야 그쪽이 더 나으리라.

큰 교훈을 얻은 이세훈이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그때. 폭견이 곁으로 다가오더니 한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겨우 그거 만들었다고 그렇게 지치냐? 몸도 젊어진 놈이 빠져가지고는.”

“시끄러. 누가 50대 아니랄…… 악!”

말이 끝나기도 전에 폭견이 귀를 잡아당기면서 강제로 일으켰고, 그대로 사나운 눈매로 노려보았다.

“내 앞에서 나이 이야기하면 뒤진댔지. 사라지기 전에 같이 지옥으로 끌고 가줄까? 응?”

“으윽…… 치사한 새끼…….”

회귀 전이었으면 뭐라도 반항할 텐데 지금은 힘도 없는 데다 재수 없으면 진짜 끌려갈 수도 있어서 반항할 수가 없다.

이세훈이 체념하고 가만히 있자 살짝 의외라는 듯이 바라보던 폭견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거 재밌네. 살아 있을 때도 이렇게 가지고 놀걸…….”

“이제 마무리해야 되니까 비켜.”

양 볼을 잡아당기는 폭견의 손을 떼어낸 이세훈이 빙견과 광견을 향해 다가갔다.

우웅

빙결연금으로 새하얀 얼음공을 만들어내고 있는 빙견. 안쪽에는 진홍빛의 결정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 익숙한 형태에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자예드 형의 영혼과 피를 결정화시킨 겁니다. 형님의 기술을 살짝 응용해 봤죠.”

빙견의 설명에 이세훈이 얼음공, 자예드의 결정을 슬쩍 살펴보았다.

‘저건 좀 힘들겠는데…….’

멸각의 마신이 되면서 영구적으로 손상을 입기도 했고 심지어 죽어가던 와중에 수습한 터라 자예드의 영혼이라기보다는 남긴 흔적에 불과했다.

위르겐의 권능으로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미약한 존재감. 사실상 시체를 얼려둔 거나 다름없는 것이다.

“무의미한 짓을 하는군.”

그런 빙견의 행동을 본 광견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악의가 있다기보다는 정말 자기가 보기에 무의미해 보여서 내뱉은 말. 빙견 역시 그런 화법에 익숙했기에 불쾌해하지 않고 담담히 대답했다.

“복수에 성공했으니 과거의 저에게도 새로운 목표가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이 정도면 딱 이겠죠.”

몽환마를 죽이겠다는 원한이 아니라 자예드를 되살리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자신보다는 더 나은 형태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빙견이 아련한 눈으로 결정을 쓰다듬자 이세훈의 어깨에 팔을 얹은 폭견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그것도 나쁜 길로 빠지기 쉬운 느낌 아닌가? 형을 살리고 싶으면 우리한테 협조해라~ 같은.”

폭견의 이야기에 빙견이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이세훈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거야 형님이 알아서 하시겠죠.”

“뭐?”

“몽환마 죽이겠다고 여기저기 부려먹으셨잖습니까. 그러면 당연히 책임지고 도와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

뻔뻔하게 이야기하는 빙견의 모습에 이세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당연히 앞으로도 도와줄 생각이었는데 저놈이 저렇게 말하니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봐도 얄미운 놈들인 건 변함이 없구만.’

그립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하는 그 미묘한 기분에 이세훈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걱정 마라. 내가 책임지고 ‘반드시’ 도와줄 테니까.”

“과거의 저한테 화풀이하시려는 건 아니죠?”

“그래서 파편은 어디 있냐?”

“형님?”

빙견의 부름을 무시한 이세훈이 주변을 둘러보자 광견이 손에 쥐고 있던 것을 앞으로 건넸다.

녹아서 형체를 알아보기가 힘든 검붉은 원석.

겉보기에는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위험도로 따지면 전 세계에서도 손꼽힐 물건이었다.

‘이게 마경의 핵이라고 하면 아무도 안 믿겠지.’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무해하게 보이는 물건.

마음 같아서는 제대로 연구해 보고 싶기도 했지만 이세훈은 금방 생각을 털어냈다.

죽일 수 있을 때 죽이고, 부술 수 있을 때 부순다.

그것이 회귀 전에 수많은 경험 속에 깨달은 교훈이었기 때문이다.

“루이제. 이거 좀 같이 부수자.”

광견은 방금 일격으로 힘을 거의 다 썼고 빙견도 자예드의 결정을 만드느라 힘을 상당히 사용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폭견이 가장 적합하다.

폭견의 도움을 받아서 부수려던 이세훈은 문득 아무런 대답이 없음을 깨닫고 뒤를 돌아보았다.

“…….”

누구한테 뺨이라도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한 표정을 짓는 폭견. 그 모습에 이세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그냥 그것도 혼자서도 못 부수는 게 한심해서.”

뜬금없는 시비에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리다가 금방 감정을 털어냈다. 회귀 전에도 이런 식으로 갑자기 욕먹은 적이 많았기에 이제는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래그래. 이것도 혼자서 못 부수는 한심한 놈이니까 얼른 좀 도와줄래?”

“쯧. 앞으로 내밀어.”

이세훈이 파편을 쥔 손을 앞으로 내밀었고 폭견이 목을 가다듬으며 언령마법을 펼쳤다.

【Collapse】

우웅!

폭견의 언령이 파편 깊숙이 파고들었고 희미한 떨림과 함께 곳곳이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파편을 완전히 없앨 수 없었기에 이세훈은 미리 준비해뒀던 언령각인을 그 위에 더했다.

“〈연쇄붕괴〉”

스스스

이세훈의 언령각인이 폭견이 불어넣은 언령을 파편 곳곳으로 넓게 퍼트렸다.

언령마법과 파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기에 가능한 방식. 이걸로 모든 후환이 사라졌음을 확인한 이세훈이 한숨 돌리며 앞을 바라보았다.

“…….”

뭔가 묘한 표정으로 바스라지는 파편을 바라보는 폭견. 방금과 비슷한 시선에 이세훈이 삐딱하게 바라보았다.

“왜. 이번에는 언령 꼬라지가 왜 그러냐고 하려고?”

“그야…….”

바로 대답하려던 폭견이 잠시 멈칫했고, 이내 이세훈을 바라보며 슬쩍 웃었다.

“아니. 잘했어. 연습 많이 했나 보네.”

“…….”

예상치 못한 칭찬에 이세훈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을 때. 삼견의 몸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파스스

조금씩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세 사람.

본래도 조금씩 흩어지고 있었지만 방금 파편이 파괴되면서 붕괴가 더욱 가속된 것이다.

“흠. 슬슬 끝날 때가 됐네요.”

“그래서 여긴 결국 어디였던 거지?”

“설명할 때 들었어야지. 하여간…….”

사라져가는 와중에도 태연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셋.

기억을 토대로 재현된 것이었기에 진짜 삼견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지만, 이세훈은 그냥 그렇게 믿기로 했다.

‘어찌 됐든 내가 기억하던 그대로니까.’

성질 더럽고, 짜증나고, 괴팍하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믿고 싸울 수 있었던 동료이자 악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나한테 뭐 부탁하고 싶은 거 없냐?”

이세훈의 물음에 삼견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고, 잠시 후 빙견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과거의 제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그리고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러면 노예처럼 부려먹으셔도 용서해드리겠습니다.”

과거의 자신을 마음대로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빙견. 그 모습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마라. 이번에는 형님 말고 주인님이라고 부르게 만들어줄 테니까.”

“하하. 농담이시죠?”

“그래서 너희 둘은?”

“형님?”

빙견의 부름을 무시한 이세훈이 남은 두 사람을 바라보자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광견이 입을 열었다.

“과거로 돌아간 거냐?”

“아마도.”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광견이 잠시 고민하다 물었다.

“사부님은 살아계시나?”

“전에 봤을 때 상태가 안 좋긴 했는데 살아계시긴 해.”

“그렇군.”

이세훈의 대답에 광견이 잠시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이내 담담히 이야기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꺾이지 않도록, 날 누구보다 강하게 만들어라. 그거면 된다.”

간단명료한 대답. 그 안에 무언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 느껴졌지만, 이세훈은 굳이 캐묻지 않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말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들어서 더 문제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게.”

“난 그거면 됐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고, 이세훈은 마지막으로 폭견을 바라보았다.

“…….”

흩어져가는 자신의 몸을 말없이 내려다보는 폭견.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굳게 닫혀있던 입이 열렸다.

“내가 여기에 남는다고 하면 어떻게 할래?”

“뭐?”

놀란 이세훈의 물음에 폭견이 고개를 들어 마주보았다.

“이 정도로 기반이 갖춰져 있으면…… 적당히 비틀어서 남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거든.”

우웅!

거짓말이 아님을 증명하듯 흩어지던 폭견의 몸이 다시 복원되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이세훈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대신 과거의 나는 영원히 사라지게 될 거야. 그 녀석을 재료로 내가 만들어지는 거니까.”

“…….”

“그래서, 어떻게 할래?”

A급에 간신히 걸치는 루이제 발렌트 대신 S급조차 가볍게 제압하는 폭견을 남긴다.

함께 지내왔던 시간을 생각해도, 앞으로의 유용성을 생각해도 눈앞의 폭견을 남겨두는 편이 훨씬 나을 수도 있었다.

“…….”

그 선택지에 이세훈이 잠시 동안 고민했고,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안 돼.”

“왜?”

배신당한 것처럼 원망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폭견. 그 시선에 이세훈이 앞서 떠올렸던 이유를 솔직하게 말했다.

“네가 계속 후회하고 있는 걸 보기 싫으니까.”

폭견의 후회는 자신의 마음 속 깊이 남아 있는 상처, 끔찍했던 과거의 기억 그 자체였다.

그런데 과연 회귀 전에도 죽였었던 『여명』을 다시 한번 죽인다고 해서 그 후회가, 상처가 깔끔하게 사라질 것인가.

이세훈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얌전히 죽어서 사라지라고? 살아 있어 봐야 후회만 할 테니까?”

배신감을 넘어 분노마저 드러내는 폭견. 지친 몸이 무너질 것만 같았지만, 이세훈은 물러서지 않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사라지지 않아.”

“그게 뭔…….”

“내가 널 영원히 기억할 테니까.”

회귀 전의 일들이 모두 없었던 것이 되고, 훗날 그 쓰임새를 다하게 될지라도 이세훈은 그 기억들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그것이 멸망을 피해 홀로 과거로 도망친 자신의 속죄이자 그들과 함께 했었던 동료로서의 책임이었기 때문이다.

“…….”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폭견이 가만히 바라보았고.

“푸흡!”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야. 역시 몸이 젊어지니까 마음도 따라가는구만. 설마 다른 놈도 아니고 너한테 이렇게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네.”

“…….”

“야. 다시 말해봐. 누구를 영원히 뭐 어쩌겠다고? 응?”

실실 웃으며 볼을 꼬집어대는 폭견과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슬쩍 웃는 빙견과 광견.

큰마음 먹고 내뱉은 낯부끄러운 소리가 그대로 웃음거리가 되자 이세훈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잔말 말고 곱게 뒤지라고 했어야 했는데…….’

이세훈이 속으로 투덜거리던 그때. 폭견이 붙잡고 있던 볼을 쓰다듬듯이 천천히 놓았다.

그리고 조금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진짜 안 잊을 거야?”

“……그래.”

“흐음. 뭐, 좋아. 어차피 나도 다시 싸우기는 귀찮았으니까 이번에는 대충 믿어줄게.”

선심 썼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폭견의 모습에 살짝 욱했지만 이세훈은 자신이 너그럽게 넘어가기로 했다.

‘어찌 됐든 믿겠다고는 했으니까.’

자신이 알고 있는 폭견의 성격을 생각하면 사실상 믿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파스슥

대화를 나누는 사이 네 사람이 서 있는 곳을 제외한 모든 공간들이 사라졌고, 그 모습을 본 폭견이 얼마 남지 않은 힘을 끌어 모아 언령을 펼쳤다.

【Safe Return】

우웅!

새하얀 빛의 기둥이 주변을 둘러쌌고, 정말로 마지막이 다가왔음을 직감한 네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밖에 있는 몽환마도 깔끔하게 처리하셔야 합니다.”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알아서 잘하겠지.”

“멍청한 녀석이긴 해도 그 정도는 아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신경을 건드리는 삼견.

정말 개놈들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그 세 사람을 바라보며 이세훈이 피식 웃었다.

“다음에 또 보자. 어디에서든지.”

지옥이 있다면 지옥에서, 다른 차원이 있다면 거기에서. 살아서든 죽어서든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순간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세훈의 인사에 삼견이 피식 웃었고.

“싫다.”

“내키면.”

“시간보고요.”

마지막까지 고집을 부리며 떠났다.

* * *

쿠구궁─

멸각의 꽃봉오리에서 울려 퍼지는 거대한 진동.

대륙 전체에 울려 퍼지는 듯한 그 심상치 않은 떨림에 위르겐과 한참 싸우던 몽환마가 고개를 돌렸다.

파스슥

꽃봉오리 근처에 피어 있던 꽃들이 하나둘씩 바스러졌고 그 현상이 점차 주변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충만하게 퍼져 있던 멸각의 힘이 흩어져가는 것을 본 몽환마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 돼…….”

정말로 그 네 명이서 멸각을 쓰러뜨렸단 말인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몽환마의 두 눈이 흔들렸다.

정말로 멸각이 쓰러졌다면, 그 파편이 사라졌다면 누가 자신을 깨워준단 말인가.

멈추기는커녕 더욱더 빨라지는 붕괴에 몽환마가 막 움직이려던 그때.

푸욱!

“윽?!”

머리와 심장을 꿰뚫는 검은 창.

이제는 지긋지긋하기 그지없는 공격에 몽환마가 재생도 하지 않은 채 뒤돌아보았다.

하늘을 가득 채운 눈동자들이 절반 이상 감겼고, 망자의 군단은 멸각의 군세에게 완전히 파악되어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고 있었다.

이대로 전투가 계속 이어졌다면 충분히 위르겐을 죽일 수 있었을 상황.

[시간이 다된 모양이군.]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멸각의 힘이 존재했을 때의 이야기. 자신의 패배를 직감한 몽환마가 빠르게 판단했다.

‘지금은…… 어떻게든 도망치는 수밖에 없어.’

마신에 도달하는 방법을 알아냈으니 재료만 갖춘다면 얼마든지 다시 시도할 수 있다.

멸각의 힘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몽환마가 도주를 시도하려던 찰나.

콰아아앙!

멸각의 꽃봉오리가 폭발하며 새하얀빛의 기둥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고, 그 안쪽에서 네 사람이 천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모두 의식을 잃었는지 축 늘어져 있었는데 몽환마는 그들을 살피다가 한쪽으로 시선이 향했다.

초췌한 얼굴로 기절한 이세훈과 왼손에 쥐어져 있는 검붉은 원석. 근원의 파편이 무사하다는 것을 본 순간.

촤라락!

남아 있는 멸각의 힘이 공간을 비틀었다.

후웅!

눈 깜짝할 사이에 네 사람 앞에 나타난 몽환마.

이대로 죽여 봐야 위르겐이 되살릴 것이기에 의미도 없었고, 근원의 파편만 챙겨서 도망치는 것도 멸각의 힘을 모두 사용해서 불가능했다.

사실상 최악의 수나 다름없는 선택.

하지만 몽환마는 이것이야말로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세훈의 몸에 있는 눈을 이용해서 하나가 된다.’

실패하면 심상이 무너져서 죽겠지만, 성공한다면 자기모순을 이뤄내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멸각의 마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어차피 그냥 도망친다고 해도 죽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 그렇다면 자신의 뜻을 이루는 쪽으로 거는 것이 맞지 않은가.

왼쪽 눈을 보랏빛을 빛낸 몽환마가 이세훈이 쥐고 있는 근원의 파편을 향해 손을 뻗었고.

후웅─

검붉은 보석이 보랏빛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뭐…….”

몽환의 마력으로 만들어낸 가짜. 그 예상치 못한 상황에 몽환마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을 때.

꽈악!

이세훈의 왼손이 몽환마의 손을 재빠르게 맞잡았고, 그동안 감겨 있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의식을 잃기는커녕 또렷하기 그지없는 두 눈. 그제야 몽환마가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잡았다.”

이세훈이 붙잡힌 사냥감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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