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35화
끝없이 펼쳐진 칠흑 같은 어둠.
이세훈이 아미르와 함께 명계로 들어서자 허공에 실선이 그어지며 위르겐의 명안이 나타났다.
[어떻게 할 거지?]
“도망치려고 할 수도 있으니 일단 주변부터 봉쇄해 주세요. 저쪽에서 먼저 안 움직이면 건드리지 마시고요.”
[흐음…… 그렇게 하지.]
위르겐의 명안이 허공에 녹아들듯 사라졌고, 이세훈은 곧장 경계의 권능으로 공간을 확보한 다음 아미르를 눕혔다.
“으윽…….”
핏기 없는 얼굴로 신음을 내뱉는 아미르.
그 모습에 이세훈은 곧장 명치에 손을 얹어 영연신마법으로 몸 상태를 살폈다.
‘완전히 걸레짝이구만…….’
마력폭주로 전신의 마력회로가 너덜너덜해졌고 그 충격으로 장기나 근육에도 손상이 생겨났다.
그중에서 특히 안구의 손상이 가장 심각했는데 동천안으로 멸각의 본질을 봐버린 것이 악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아직 수습할 수 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정신을 집중한 이세훈은 명치에 올려둔 손에 몽환의 불꽃을 담아낸 다음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화르륵!
명치에 가볍게 파고드는 오른손. 그 상태로 아미르의 심장을 가볍게 움켜쥔 이세훈은 영연신마법으로 혈류를 대신 조작했다.
두근!
이세훈의 명령에 따라 아미르의 심장이 격렬하게 피를 퍼뜨렸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조금이라도 기존의 육체와 어긋나게 움직였다가는 곧장 내출혈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
아무리 인체에 해박하다고 해도 개개인의 차이점을 생각하면 무모한 방식이었지만, 이번에 한해서는 예외였다.
‘조금 다르긴 해도 역시 빙견이랑 비슷해.’
회귀 전에 질리도록 살펴봤었던 삼견의 육체.
만난 시기가 다른 만큼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뼈대가 비슷했기에 응급처치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우드득─뚜둑!
마력회로와 근육, 뼈를 모조리 이어붙이고 체내에 생겨난 불순물은 한 곳에 모은 다음 몽환의 불꽃으로 불태운다.
모든 작업을 끝낸 이세훈이 상상 속의 망치로 아미르의 몸을 후려쳤고.
카앙!
몸이 한 차례 들썩였다가 그대로 축 늘어졌다.
진짜 시체처럼 축 늘어진 아미르. 그 모습에 이세훈이 명치에 손을 얹어 몸 상태를 가볍게 살폈다.
‘……괜찮네.’
통증이 너무 심해서 다시 의식을 잃었을 뿐. 심각했던 상처들은 영연신마법으로 대부분 치료됐다.
아미르가 죽거나 폐인이 되는 최악의 상황을 넘겼음을 확인한 이세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눈매를 찌푸렸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회귀 전의 경험을 토대로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갖췄고, 가장 큰 변수라고 할 수 있는 마신조차 등장하기까지 수십 년이나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본래라면 큰 위기 없이 성공했어야 할 몽환마의 토벌전.
실제로 도중까지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기에 더더욱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으로서 가장 큰 원인이라면…… 역시 나인가.’
모든 정보를 종합해 보면 몽환마는 오래전부터 악몽의 도시와 환락가를 이용해 마신이 되고자 했었고, 회귀 전에는 결국 그 도전에 실패했었다.
그 결과 환락가를 악몽의 도시에 다른 장소로 이전, 마신의 파편은 주시자 『계승』과 도플갱어에게 양도하여 ‘멸각滅覺’의 마신을 탄생시킨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깨어나는 꿈, 내 심상을 보고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알게 됐다.’
확실한 방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가능성에 불과했지만, 환락가가 붕괴되는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몽환마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강행한다.
그 결과 회귀 전에는 본 적 없는 ‘멸각滅殼’의 마신이 새롭게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하.”
모든 상황을 곱씹은 이세훈은 헛웃음을 지었다.
회귀하면서 생겨난 자신의 변화, 그리고 공략 시점의 차이로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나비효과라는 게 본래 이런 것이지만 마신의 탄생까지 앞당겨진 것은 정말 상상 이상의 일이었다.
‘그래도 마냥 손해만 본 건 아닌가…….’
회귀 전. 육대마신이 육대마경에서 탄생한 것임을 알게 되면서 인류는 마경의 핵에 오랫동안 마기가 축적된 것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 멸각의 마신의 탄생으로 이세훈은 그 추측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마신의 탄생에 필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자격이었던 거야.’
아직 그 자격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마신들이 가진 특성을 생각한다면 어떤 종류일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회귀 전에는 알지 못했던 사실들에 이세훈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가던 그때.
스륵
위르겐의 명안이 다시금 곁에 나타났다.
[다 죽어가던 놈을 용케도 살려놨군.]
신기한 눈으로 아미르를 내려다보는 위르겐. 그 모습에 이세훈이 생각을 정리한 다음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일단 악몽의 도시를 중심으로 반경 300km를 경계로 둘러놨다. 별 다른 저항은 없더군.]
위르겐을 경계해서 도주하기 보다는 멸각의 안정화에 집중하기로 한 몽환마.
그 이야기에 이세훈이 살짝 안도했다.
‘불행 중 다행이구만.’
만약에라도 몽환마와 멸각이 곧장 움직였다면 위르겐의 도움만으로 맞서 싸워야 하는 상황.
물론 이쪽도 이길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지만, 지금 고를 수 있는 선택지 중에서는 가장 최악이었다.
‘남은 건 어떻게 싸우느냐는 건데…….’
이세훈이 머릿속으로 선택지를 떠올리던 그때.
[그래서.]
위르겐이 짜증스럽게 바라보았다.
[언제쯤 상황을 설명해 줄 거지? 나보고 알아서 알아내라 그런 거냐?]
“아, 죄송합니다.”
[사과는 필요 없고 상황부터 설명해라. 다른 곳도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으니.]
“알겠습니다.”
이세훈은 방금까지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했고, 그 내용을 들은 위르겐이 눈을 가늘게 떴다.
[상황은 알겠다만……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게 있군.]
“말씀하시죠.”
[어째서 그 멸각이라는 놈을 방치하는 거지?]
이세훈을 바라본 위르겐이 노골적으로 의심을 드러내며 이야기를 이었다.
[네 말에 따르면 그놈은 아직 불완전한 상태. 마경의 힘을 흡수한 존재가 얼마나 강할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놔둬서 좋을 게 없다는 정도는 명백하다.]
“…….”
[그런데 어째서 싸우지 않고 물러선 거지?]
침묵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위르겐은 더더욱 미심쩍게 바라보았다.
멸각이라는 괴물은 악몽의 도시와 몽환마, 그리고 이세훈의 힘이 더해져서 탄생한 존재.
본인은 이용당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거기에 의도적으로 도움을 줬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말실수했다가는 위르겐한테 죽겠구만.’
같이 보낸 시간은 어디로 가고 만마전의 끄나풀로 반쯤 확신하고 있는 위르겐의 모습에 이세훈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잠시 제 몸에 깃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왜지?]
“그냥 말로만 하면 지금처럼 의심하실 것 같아서요. 몸에 깃들면 진짜인지 아닌지 정도는 아실 수 있지 않습니까.”
[…….]
자신에게 의심받고 있는데도 긴장하기는커녕 담담하게 손을 내미는 이세훈의 모습에 위르겐이 잠시 고민하다가 명안을 이동시켰다.
스륵─
오른 손등에 위르겐의 명안이 깃들었고,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이 어느 정도 심상을 느슨하게 한 다음 입을 열었다.
“제가 물러난 이유는 거기서 싸웠으면 죽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네가?]
“아뇨.”
고개를 가로저은 이세훈이 위르겐을 내려다보았다.
“위르겐 님이 죽었을 거란 뜻입니다.”
이세훈의 대답에 위르겐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것이 한 치의 거짓말도 없는 진심이라는 것에 더더욱 놀랐다.
‘내가 죽는다고?’
다른 누구도 아닌 완등자인 자신이?
혹시 이세훈이 미쳐 버린 게 아닌지 진지하게 살펴보던 위르겐은 이내 문제가 없음을 깨닫고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헛소리를 하는 거냐?]
악몽의 도시를 봉쇄하면서 멸각이라 불린 마인을 직접 봤었지만 자신보다 강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불완전한 상태라는 것은 감안해도 몽환마보다 조금 강해보였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순수하게 힘의 크기만 놓고 보자면 멸각의 수준은 십악보다 조금 더 강한 정도, 위르겐 님이 지는 게 이상할 겁니다.”
완등자들이 십악 셋도 거뜬하게 상대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보다 조금 강한 멸각 정도야 간단히 제압할 수 있다.
하지만 십악과 마신 사이에는 힘의 격차를 뛰어넘는 차이점이 존재했다.
“다만 제가 걱정되는 것은 멸각에게서 느껴졌던 이질적인 힘, 규칙을 비틀어내는 ‘강제성’이 걱정됐습니다.”
[강제성?]
“예를 들어 성인과 아이가 싸울 때. 그 승부를 반드시 가위바위보로 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도 뭘 낼지 미리 정한 상태로 말이죠.”
이세훈의 질문에 위르겐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눈을 찌푸렸다.
[싸우기도 전에 승패가 이미 정해져 있었을 수도 있다…… 그걸 말하고 싶은 거냐?]
“맞습니다.”
위르겐에게는 추측처럼 말했지만, 이것은 실제로 회귀 전에 인류가 알아낸 마신들의 고유한 성질이었다.
힘의 격차를 무시하고 순수한 상성싸움으로 만들어내는 특성.
그것이 바로 육대마신이 완등자들을 단신으로 죽일 수 있었던 이유였던 것이다.
[…….]
이세훈의 이야기에 위르겐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다른 때라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무시했겠지만, 실제로 멸각을 보면서 묘한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힘의 격차를 무시하는 상성이라…….’
자신, 완등자의 대척점이라고 밖에 설명되지 않는 능력.
물론 이 모든 것이 1학년짜리 생도의 추측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무조건 믿을 필요는 없었지만, 그렇게 넘기기에는 그동안의 행적이 너무나도 우수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위르겐은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한 다음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네 추측이 맞다면 더더욱 방치하면 안 됐던 것 아니냐? 힘이 완전해지면 더 불리해질 텐데.]
“조금 다릅니다. 제가 경계한 건 근접한 상태에서 싸울 때 경계의 권능이 파훼되는 상황이라서요. 원거리에서 지원만 해주시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과연. 그걸 걱정한 거였나.]
이세훈이 왜 자신이 죽을 수 있다고 한 것인지 이해한 위르겐은 납득하면서도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이해는 했다만 그 방법에도 문제점이 있다.]
“문제점이요?”
이세훈이 의아하게 바라보자 위르겐이 설명을 이었다.
[지금 세계 각지에서 만마전의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 아마 이쪽으로 지원이 오지 못하게 막으려는 거겠지.]
자신은 불명자의 지골을 통해서 어찌 간섭이 가능했지만 다른 완등자들은 만마전의 견제 때문에 지원이 힘든 상황.
그렇기에 이세훈의 계획대로 자신이 지원하고 다른 사람이 멸각을 처리하는 것은 힘들었다.
[뭘 주의해야 할지 알겠으니 녀석이 더 안정화되기 전에…….]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위르겐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저 녀석은 제가 쓰러뜨릴 테니까요.”
이세훈의 대답에 위르겐의 눈이 다시 휘둥그레졌고, 그것이 한 치의 거짓말도 없는 진심이라는 것을 깨닫고 경악했다.
[너 혼자서 그 녀석을 쓰러뜨리겠다고?]
“혼자는 아니고 다른 사람도 데리고 갈 생각입니다.”
[그게 누구지?]
“일단은…….”
잠시 고민하던 이세훈이 바닥에 시체처럼 늘어져 있는 아미르를 가리켰다.
“이 녀석이요.”
[…….]
S급은커녕 A급도 간당해 보이는 아미르.
그 모습을 내려다본 위르겐이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완등자인 자신에게는 상성이 안 좋으니 뒤에서 지원이나 하라고 해놓고 저런 애송이를 데리고 가겠다니.
그놈의 상성이 도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봐도 미친 짓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한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굳이 저 지시를 따를 필요는 없었다.
자신이 약속한 것은 어디까지나 몽환마의 토벌에 돕는 것.
지시를 따르겠다고 약속한 적도 없었고, 멸각이라 불리는 저 정체불명의 괴물과 싸우기로 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저런 꺼림칙한 놈을 살려두는 것도 내키진 않아.’
그리고 이세훈 역시 미친놈처럼 보여도 몽환마의 빈틈을 파고들어 환락가를 무너뜨리지 않았던가.
거기에 멸각의 탄생에 일조한 만큼 힘의 성질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저렇게 판단을 내린 것이 분명하리라.
‘홧김에 자살할 만큼 멍청한 녀석은 아니다.’
그동안 봐온 능력과 활약상을 곱씹어보던 위르겐은 결정을 내린 다음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네놈이 죽으면 그 즉시 영혼만 챙겨서 빠져나갈 거다. 그래도 불만은 없겠지?]
“그 전까지 열심히 싸워주신다면 뭘 하셔도 좋습니다.”
[……좋다.]
망설임 없는 이세훈의 모습에 위르겐이 눈을 빛냈다.
[이번에는 네놈의 뜻대로 움직여주마. 마음껏 해봐라.]
“감사합니다.”
위르겐의 대답에 이세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라도 위르겐이 협조하지 않으면 어려워질 뻔했는데 다행히 큰 문제없이 승낙 받은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아미르 말고 누구를 데려갈지 결정한 이세훈은 위르겐을 바라보았다.
“여기로 두 명 정도 더 데려오고 싶은데 좀 도와주실 수 있을 까요?”
[문제는 없다만…… 누굴 데려올 거지?]
바닥에 엎어진 저 애송이를 데려간다는 시점에서 평범한 녀석들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 위르겐의 물음에 이세훈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건…….”
* * *
위이잉!
휴대폰에서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
밤새 마법 공부를 하다가 늦잠을 자고 있던 루이제는 얼굴을 찌푸리며 휴대폰에 떠오른 메시지를 읽어보았다.
[영웅협회]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만마전의 테러와 불온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들은 속히 인근의 쉘터로 피난해 주시길 바랍니다.
“……뭐?”
문자의 내용을 읽은 루이제는 잠기운이 달아나는 것을 느끼며 다급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부 지역도 아니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발송된 재난경보.
태어나서 처음 보는 규모의 재난경보에 루이제가 곧장 휴대폰으로 전 세계의 소식을 살폈다.
[인도네시아의 순례길 인근에서 순례자와 십악의 전투 발생. 상대는 괴검과 배교자로 확인.]
[세계 각지의 하늘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폭발들이 연속적으로 발생. 원견사와 천안의 저격전으로 추측.]
[육대마경 중 하나인 ‘검은 바다’가 남태평양해로 북상하여 바벨을 향해 접근 중. 조율자와 수왕의 모습이 확인됨.]
[중국 전역에서 마인들의 테러가…….]
“이게…… 무슨…….”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사고들.
심지어 완등자와 십악이 연루되어 있는 그 내용들에 루이제의 표정이 단숨에 굳어졌다.
‘설마…… 전면전인 건가?’
최근 들어 만마전과의 충돌이 늘어났으니 갑자기 전쟁이 시작되어도 그리 이상할 것은 없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루이제는 곧장 이세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을 수 없어…….]
“…….”
하지만 몇 번을 전화해도 돌아오는 것은 부재중 알림뿐. 그 상황에 루이제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갔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다른 일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세훈이라면 저 난장판 사이에 끼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몰라!”
한참을 고민하던 루이제가 승천제의 반지에 마력을 불어넣어 아카샤를 불러내려던 순간.
우웅!
허공에 경계가 열리면서 이세훈이 방안에 나타났다.
“너…….”
“지금 엄청 급하니까 일단 움직이자!”
이세훈이 곧장 손을 붙잡았고, 눈앞의 상대가 진짜라는 것을 알아본 루이제는 당황하면서도 손길에 이끌려갔다.
“여기는…….”
온통 어둠으로 가득 차 있는 세계.
앞쪽에는 높이만 4m에 발이 여덟 개나 있는 거대한 해골마가 서 있었는데 푸른 불꽃이 일렁이는 안광만 봐도 예사롭지 않았다
“저, 저건 또 뭔데?”
“슬레이프니르. 위르겐님이 예전에 죽인 S급 마수라네.”
“……뭐?”
설명을 듣고도 이해가 안 가는 상황에 루이제가 연신 당황하던 그때. 이세훈이 잽싸게 허리를 감싸 안고 슬레이프니르의 위에 올라탔다.
“으악!”
“도착하면 전부 설명해 줄게!”
이세훈이 슬레이프니르의 갈비뼈를 걷어찼고, 그와 동시에 거대한 해골마가 바닥을 박차며 명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다른 무언가가 보인다 싶을 때쯤.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가 좁혀지며 슬레이프니르가 멈춰 섰다.
“내리자.”
이세훈과 함께 슬레이프니르에서 내린 루이제는 어둠 속에 서 있는 둘을 보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쟤들은 또 왜…….’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는 염성하와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는 아미르.
의도를 알 수 없는 조합에 루이제가 의아해하던 그때.
“자. 주목.”
이세훈이 박수를 치며 세 사람의 이목을 모았다.
“지금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간단히 설명할게. 몽환마가 십악보다 강력한 괴물을 만들어냈고, 위르겐 님에게 도움을 받아서 싸울 예정이야.”
후웅!
허공을 향해 손을 휘두르자 경계가 허물어지며 바깥의 풍경이 드러났다.
붉은 꽃과 나무들로 가득 차 있는 땅. 그 가운데에 거대한 봉오리가 세워져 있었는데 육안으로만 봐도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함이 느껴졌다.
그에 세 사람이 모두 긴장하던 그때.
“거기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
이세훈이 세 사람, 삼견을 바라보며 담담히 이야기했다.
“저기로 쳐들어가서 놈을 죽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