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31화
쩌저적!
보랏빛 안개로 가득한 하늘에도, 그 아래에 펼쳐진 거대한 도시에도, 균열이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마치 깨진 거울로 보고 있는 것처럼 어긋나 버린 환락가의 풍경. 눈 깜짝할 사이에 펼쳐진 그 모습에 몽환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슨 짓을……!”
방금까지의 전투가 17구역 내부에 한해서만 이뤄졌다면, 지금은 그 여파가 환락가 전역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는 그 모습에 몽환마가 곧장 자신의 힘을 끌어올려 환락가에 퍼진 균열을 억눌렀다.
몽환술夢幻術 몽중몽夢中夢
촤라라락!
도시 전역에서 몽환의 나비들이 날아올라 균열에 달라붙었고 그것을 고스란히 꿈으로 치환해낸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본래의 형태로 복원되어가는 환락가. 그 모습만 보자면 어떻게든 수습한 것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여, 여긴 뭐지?”
“방금까지 환락가에 있었는데…… 도대체…….”
환락가 곳곳에 눈동자가 또렷해진 이들이 겁먹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고,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다른 주민들이 의아하게 반응했다.
“야. 왜 그래? 뭐가 보이는데?”
“뭐라고 말 좀 해봐 새끼야!”
자신들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주변만 두리번거리는 모습. 그에 열 받은 마인이 멱살을 잡아채려고 손을 뻗었다.
후웅!
“……어?”
하지만 앞으로 뻗은 손은 허무하게 스쳐 지나갔고, 환영을 만진 것처럼 아무런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기괴한 상황에 모두가 당황하고 있을 때. 눈동자가 또렷해진 이들이 무언가 깨닫더니 소리치기 시작했다.
“여, 여기가 현실이었어…… 안 돼! 환락가로…… 다시 꿈으로 돌려보내줘!! 싫─”
겁에 질린 채 소리치던 한 마인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고, 그와 비슷한 일들이 환락가 전역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쩌저적!
그와 동시에 수복됐던 균열들이 다시금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몽환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가능하다고……?’
환락가는 꿈과 현실의 경계에 만들어진 도시.
첫 뼈대는 몽환마가 직접 세워 올렸지만, 그것이 지금처럼 넓어질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주민들의 ‘심상’이 함께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수백만 명이 환락가라는 꿈을 같이 꾸며, 그곳이 현실이라고 믿는다.
그게 이 거대한 도시를 유지시킬 수 있었던 이유였던 것이다.
쿠구궁!
그런데 지금 그 거대한 꿈속에서 누군가 깨어나 버렸다.
수백만 명이 뒤섞여 있는 그 혼탁한 심상 속에서 자기 자신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 비정상적인 존재.
그리고 그 존재가 함께 잠들어 있던 다른 이들에게 이렇게 외친 것이다.
‘이곳은 꿈이다. 깨어나라.’
그 외침을 듣고 깨어난 이가 한 명뿐이라 해도 그 모습을 보고 열 명이 깨어나게 되고, 또 그 열 명을 보고 백 명이 깨어나게 된다.
완등자조차 어찌하지 못했던 꿈의 도시가 이세훈 단 한 사람에 의해 근본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쿠르르릉!
균열이 더욱더 퍼지며 하늘의 일부분이 무너지고, 그 너머로 전혀 다른 풍경이 비춰지기 시작했다.
검은 하늘에 황폐한 대지. 그리고 보라색으로 물들어 기괴하게 비틀려 있는 건축물들.
환락가가 무너지면서 드러나기 시작한 ‘바깥’의 모습에 몽환마가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풋.”
입꼬리가 비틀어지며 웃음이 새어나왔고, 이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크게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환락가 전역에 울려 퍼지는 미성의 웃음소리. 어딘가 섬뜩한 웃음소리에 혼란스러워하던 이들이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몽환마가 돌연 웃음을 그쳤다.
“그래…… 이제 일어날 시간이군요.”
조금 더 확실하게 준비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되어버렸다면 거기에 맞춰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생각을 정리한 몽환마가 이세훈이 서 있던 빌딩의 옥상을 다시 바라보았다.
“또 숨어버리셨네요.”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소리 없이 사라진 모습. 아마도 자신의 눈을 사용해서 환락가를 자유자재로 오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리라.
오른쪽 눈가를 쓰다듬은 몽환마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수십 년간 쌓아올린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분노와 허탈감.
당장 미쳐서 날뛰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가슴 한편에서는 다른 감정이 샘솟는다.
두근─
가슴이 터질 것처럼 밀려오는 기대감과 기쁨.
눈앞까지 다가온 꿈의 끝에 몽환마가 흥분을 가라앉히며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아직 환락가가 무너져서는 안 돼. 일단 안정화부터 시켜놓고 이세훈 그 사람을 찾아야…….’
또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를 만큼 최대한 빠르게 이세훈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게 결정한 몽환마가 환락가를 수습하며 움직이려던 그때.
콰아아앙!
몽환마의 얼굴 앞에 멈춰선 거대한 주먹.
간발의 차로 싱글넘버의 공격을 왜곡시켜 막아낸 몽환마는 그대로 아래쪽으로 내려다보았다.
“……하아.”
자신을 향한 적의만을 불태우는 인형사. 이 지경이 돼서도 정신을 못 차리는 그 멍청한 모습에 몽환마가 짜증이 밀려왔다.
‘지금은 환락가를 수습하기도 벅차.’
방금과 다르게 혼자서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빠르게 판단을 내린 몽환마는 왼쪽 눈을 보랏빛으로 빛냈다.
촤라락!
몽환의 나비가 폭풍처럼 주변을 휩쓸자 주먹을 휘두른 싱글넘버, 포가 재빠르게 아래로 물러섰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머리에 뿔이 돋아나 있는 마인들. 몽환마에게 힘을 하사받은 구역장들이 일제히 소환된 것이다.
“여전히 물러날 생각은 없으시겠죠?”
빌딩의 끝에서 내려다보는 몽환마. 그 모습에 인형사가 담담히 대답했다.
“자살하면 물러설게.”
“……그렇군요.”
이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하다. 이야기를 끝낸 두 십악이 다시 한번 서로를 바라보았고.
콰아앙!!
무너져 내리는 환락가 속에서 다시 한번 격돌했다.
* * *
나이트메어 타워의 최상층에 위치한 직속비서실.
몽환마의 명령에 따라 환락가를 관리하던 그들은 사방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소식에 어쩔 줄 몰랐다.
“실장님! 최근에 증축한 지역의 건물들이 모조리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9구역에 거대한 싱크홀 발생! 악몽과 연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13구역에 주민들이 보라색으로 물들면서 기괴하게 변형되는 사건들이 연달아…….”
하나만 일어나도 엄청난 재앙들이 전 구역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며 혼란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야말로 ‘악몽’과도 같은 상황.
수습할 길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 비서실장인 알렉스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옆의 비서를 바라보았다.
“파이프라인 복구는 어떻게 되고 있지?”
“기존 구역 위주로 복원을 시도하고 있지만 그보다 균열이 퍼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고 합니다. 게다가 구역장님들이 모두 소집되셔서…….”
“큭…….”
몽환성과 환락가를 연결시켜 주는 거대한 파이프라인.
환락가의 유지를 돕는 핵심 시설 중 하나였기에 반드시 지켜야 했는데 저 정체 모를 균열 탓에 곳곳이 끊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그 혼란을 수습해야 할 구역장들이 인형사와 싸우기 위해 모두 불려나갔다.
그 상황을 종합한 알렉스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방법이 없어.’
몽환마가 인형사를 제압하고 저 정체모를 균열을 봉합하지 않으면 이 소란을 잠재울 방법이 없다.
눈앞까지 다가오는 거대한 재난에 알렉스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설마 완등자라도 쳐들어온 건가?’
환락가가 멀쩡했다면 모를까 이 상황에서 완등자가 쳐들어온다면 몽환마라 할지라도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알렉스의 얼굴이 더욱 창백하게 질리던 그때.
툭
그의 시야가 한 바퀴 회전했다.
“……아?”
알렉스의 머리가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책상 위로 떨어졌고, 이어서 다른 비서들의 머리 역시 아래로 툭하고 굴러 떨어졌다.
방금까지의 소란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침묵에 휩싸인 방 안. 그리고 유일하게 머리가 온전한 청년, 아미르가 마력을 거둬들였다.
스르륵
빙결연금으로 만들어낸 투명한 칼날 ‘투빙인透氷刃’이 허공에 녹아내리며 사라졌고, 자리에서 일어난 아미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쉽게 풀렸어.’
환락가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틈을 노려서 직속비서들을 처리해 수뇌부를 완전히 마비시킨다.
직속비서들의 전투력이 구역장들에 비해 떨어지기는 해도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이었는데, 모두 공황상태에 빠진 덕분에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각 구역에서 전해진 정보들을 살핀 아미르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기껏 해봐야 새로 증축한 구역에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다든가 그런 경우를 상상했었는데 정말로 환락가 전체를 완전히 무너뜨리다니.
도대체 무슨 방법을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이세훈이 자신 있게 이야기한 이유를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이 뒤부터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물며 지금부터 들어가야 할 곳을 생각하면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
두 눈을 빛낸 아미르는 곧장 빙결연금으로 단검을 만들어낸 다음 밖으로 나섰다.
“이 지경이 됐는데 십악이고 뭐고 무슨 지랄이야!”
“비켜 개새끼들아!!”
나이트메어 타워는 몽환성의 바로 위에 있어서 그런지 비교적 안전했지만, 외부의 소식을 전해 듣고 도망치는 이들이 늘어났다.
엘리베이터가 계단이고 할 것 없이 북적거리는 상황.
그로 인해 싸움은 물론이고 살인도 벌어지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나 다름없었다.
‘다 죽이고 지나가야 하나.’
그냥 내려가기에는 상당히 벅차 보이는 상황에 아미르가 눈매를 찌푸리던 그때.
“아미르.”
그 옆에 나타난 이세훈이 담담히 불렀다.
“당신…… 어떻게?”
반사적으로 단검을 휘두를 뻔했던 아미르는 이세훈의 모습에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이트메어 타워 내부는 몽환마의 힘에 의해 공간이동과 같은 이동이 불가능했었기 때문이다.
“몽환마의 눈을 오른쪽 눈에 박아 넣어서 대충 흉내 낼 수 있거든.”
“그게 무슨…….”
“놀라운 건 알겠는데 지금 생각보다 여유가 없어서. 일단 움직이면서 설명할게.”
이세훈의 오른쪽 눈이 보랏빛으로 일렁였고, 주변의 풍경이 순식간에 엘리베이터의 안쪽으로 변했다.
띵!
청아한 소리와 함께 나이트메어 타워의 지하, 몽환성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하는 엘리베이터. 그 상태를 확인한 이세훈이 곧장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상당히 순조로운 상태야. 환락가는 붕괴 중이고 몽환마는 인형사를 상대하느라 수습할 여력이 없어. 당분간은 지금 같은 대치가 이어지겠지.”
이제 남은 것은 몽환성에 숨어들어 아미르의 사촌형인 자예드 싱을 구출해 혹시 모를 변수를 차단한다.
그리고 위르겐을 불러서 약해진 몽환마를 죽이기만 하면 끝이었지만, 여기에 한 가지 변수가 생겨났다.
“그런데 환락가가 세워진 장소가 내가 예상했던 곳이랑 완전히 달라.”
“……세워진 곳이 다르다고요?”
이세훈의 이야기에 아미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환락가는 몽환의 마력에 의해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세워진 것이 아니었던가.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세워졌다는 건 어쨌든 현실의 위에도 걸쳐져 있다는 거야. 그리고 나는 그 장소가 만마의 늪에 오염된 대륙 어딘가라고 생각했었지.”
실제로 회귀 전 환락가의 뼈대는 만마의 늪에 오염당한 남아메리카 대륙 아르헨티나에 위치해 있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이번에도 그곳에 있으리라 생각했었지만, 방금 환락가를 무너뜨리면서 전혀 다른 풍경을 봐버렸다.
“그런데 그냥 오염된 대륙이 아니야.”
“그냥이 아니라는 건…….”
“악몽의 도시.”
눈매를 찌푸린 이세훈이 설명을 덧붙였다.
“우린 지금 육대마경의 위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