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29화
“여기야.”
“…….”
인형사의 소개에 레아가 눈앞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것 같은 어중간한 건물.
겉보기에는 공방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간판도 없는 데다 문이 활짝 열려있어 수리 중인 건물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아무것도 안 보여.’
문 너머를 가득 채운 칠흑 같은 어둠.
당장에라도 자신을 집어삼킬 듯한 그 모습에 레아가 긴장한 눈으로 바라보자 인형사가 슬쩍 웃었다.
“어두운 곳을 무서워하는 건 어릴 때랑 변함이 없네.”
“…….”
“걱정할 필요 없단다. 저건 채집 좀 하려고 저렇게 만들어둔 거니까.”
“……채집?”
레아의 짧은 되물음에 인형사가 입꼬리를 올렸다.
“저렇게 열어두면 뭔가 있나 싶어서 들어오거든. 그러면 그대로 재료로 쓰는 거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인형사의 모습에 레아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물건을 훔치러 들어오는 환락가의 주민들을 그대로 실험체로 사용한다.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행위를 길가의 풀뿌리를 뽑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인형사의 모습에 절로 소름끼쳤다.
“자자. 궁금한 것들은 안에서 차차 이야기해 줄 테니까 일단 들어가자. 여긴 보는 눈이 많으니까.”
인형사가 공방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레아가 뒤따라서 들어갔다.
딸깍!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자 공방 내부에 불이 들어왔다.
작업대와 각종 재료 상자, 그 이외에도 탁자와 소파 등등 여러 가구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탁 트인 공방의 풍경을 바라보던 레아는 문득 천장이 여전히 어두운 것을 깨닫고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윽.”
그러자 보이는 것은 목을 매단 것처럼 축 늘어져 있는 수십 개의 인영.
윤곽만 희미하게 보여 인형인지 시체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지만, 어느 쪽이든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인형사의 인형에는 반드시 시체가 재료로 쓰였기 때문이다.
“저기 자리에 앉으렴.”
소파를 향해 턱짓을 한 인형사는 곧장 벽에 있는 냉장고로 다가가 음료를 살펴보았다.
“뭐 마시고 싶은 것 있니?”
“…….”
“그럼 아무거나 가지고 갈게.”
냉장고에 있는 음료를 한 가득 챙긴 인형사가 탁자에 올려놓으며 맞은편의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레아는 시선을 내려 탁자에 놓인 음료들을 살펴보았다.
어릴 때 집에서 자주 먹던 음료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옛 기억들에 레아가 눈매를 찌푸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또 한숨 쉬니? 그러다가 습관…….”
“이해가 안 가네.”
인형사의 말을 잘라낸 레아가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기로 어떻게 불러낸 건지 기억 안 나? 안 오면 할머니도, 후배도 다 죽이겠다고 협박해서 온 거잖아.”
“…….”
“근데 이런 같잖은 장난질로 내가 당신을 좋게 볼 수 있을 것 같아?”
쿵─
발로 탁자의 아래를 걷어찬 레아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인형사를 바라보았다.
“자꾸 인간인 척…… 살아 있는 사람인척 하지 말고 그냥 용건이나 말해. 그런 연기해 봐야 구역질나니까.”
어쩌면 옛날의 인격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날의 일에도 모종의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유도해서 이리저리 휘두르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레아의 입장에서는 보기 역겨울 뿐이었다.
“흐음.”
레아의 이야기에 인형사가 탁자 위에 쓰러진 음료들을 바라보았고, 이내 그중 녹차를 집어 들었다.
아버지, 데인이 생전에 즐겨마시던 음료.
그 선택에 레아가 눈매를 찌푸리자 인형사가 뚜껑을 열고 보란 듯이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자신을 노려보는 레아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런 것치고는 많이 동요하는구나. 이런 별거 아닌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뭐…….”
“됐다. 본래 사춘기의 자식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법이니까. 지금 당장은 용건만 말하는 게 좋겠지.”
녹차를 탁자에 내려놓은 인형사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촤르륵─
천장에서 쇠사슬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고, 잠시 후 정장을 차려입은 깡마른 노인이 부드럽게 착지해 인형사의 옆에 반듯이 섰다.
“이쪽은 일레븐Eleven이야. 싱글넘버 중 하나지.”
인형사의 설명에 레아가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꾸벅이는 노인, 자동인형 ‘No.11’을 바라보았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노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S급 영웅에 근접하는 괴물.
자신 정도는 간단하게 죽일 수 있는 존재에 레아가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이 녀석의 역할은 레아 너를 돌봐주는 거니까.”
“……날 돌본다고?”
예상치 못한 답변에 레아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자 인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여기서 생활하면서 생명인챈트의 기초부터 익히렴. 나중에 익숙해지고 나면 인형의 가공법도 가르쳐줄게.”
인형사의 눈짓하자 일레븐이 허공에 가볍게 손을 휘저으면서 두꺼운 책들을 연달아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어디서 꺼냈는지 알 수 없는 움직임. 하지만 레아는 그것보다도 인형사의 말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당신……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야?”
“말 그대로 너에게 기술을 가르치려는 거지.”
“그러니까 그딴 걸 왜 나한테…….”
“재능이 있으니까.”
담담하게 대답한 인형사가 레아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뛰어난 재능이 있고, 그에 맞는 기술이 있어. 그 이외에 또 이유가 필요하니?”
“…….”
“그리고 무엇보다도 승천제의 정원, 바벨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장소가 아니야. 도덕이니 윤리니 하등 쓸모없는 것들로 뻗어나가는 재능을 가로막지.”
자유를 표방하면서도 원하는 방향으로 자라나게끔 잎을 자르고 가지를 쳐낸다. 그렇기에 인형사는 레아의 잠재력을 확인하자마자 그곳에서 빼내기로 결심했었다.
“넌 지금보다 더욱더 나아질 수 있어. 장담컨대 그 쓸모없는 족쇄들을 벗어던질 때마다 더욱더 일취월장할 거야.”
지금이 팔레트에 10가지 색상밖에 없다면, 상식을 벗어던질 때마다 그 수가 수십 배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물론 색상이 많아진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온전히 다룰 수 있는 것까지 재능의 영역인 법. 그리고 레아에게는 그런 재능이 존재했다.
“오늘부터 제대로 시작한다면 5년 안에 싱글넘버를 만들어내는 것도…….”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인형사를 바라본 레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이 말하는 대로 인간성을 포기하고 그 구역질나는 기술들을 대성해서 재능을 널리 펼치고 나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인형사의 후계자가 되어서 눈앞의 미치광이를 이해하는 동반자가 되는 것일까. 레아는 그것이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그럴 리가 없을뿐더러 인형사 역시 그럴 존재가 절대로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야기하기에는 이른 이야기 같은데.”
“그래? 그럼 질문을 바꿀게.”
탁자에 놓인 생명인챈트 책을 힐끗 본 레아가 인형사에게 물었다.
“왜 나를 설득하려는 건데?”
“…….”
“그냥 인형으로 만든 다음에 강제로 기술을 익히게 만들면 편할 텐데 왜 같잖은 연기에 헛소리까지 해대면서 설득하려고 하는 거냐고.”
아무런 대답도 없는 인형사의 모습에 레아가 피식 웃었다.
“이것도 지금 하기에는 이른 이야기인가 보네. 그럼 그냥 나 혼자서 계속 주절거릴게. 내 추측을 말하자면 인형은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야.”
인형사를 죽이겠다고 다짐한 이후. 레아는 나름대로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서 인형에 대해서 연구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은 한 번 인형이 되어버린 존재들은 그 이상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더 강력한 부품으로 바꾸고 다른 이들의 재능과 기술을 큐브로 만들어 사용한다. 단순히 스펙으로만 보면 강해지고 있지만, 거기에 근본적인 발전은 없지.”
컴퓨로 따지자면 바뀌는 것은 하드웨어뿐. 그것을 통제하는 소프트웨어는 육체를 포기하고 인형이 되어버린 그 시점에서 발전이 막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사례도 찾아보니 꽤 많더라고. 동일한 스펙의 영웅들에게 이기지 못하는 퍼펫들, 제약이 많은데도 반드시 자아가 희박한 자동인형으로만 만들어지는 싱글넘버들. 그리고…….”
인형사를 바라본 레아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계속 제자리걸음인 당신의 기술까지 말이야.”
“…….”
“뭐 이래저래 주절주절 말했지만 결론은 하나네.”
여전히 묵묵부답인 인형사를 본 레아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혐오감과 경멸을 담아서 이야기했다.
“넌 진짜 개쓰레기 새끼라는 거야.”
남편을 죽이고 딸을 버린 채 떠난 뒤, 자신의 정체된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딸을 키워서 죽이려고 한다.
레아의 결론에 인형사가 조용히 바라보다가 녹차를 한 모금 마신 다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라고 해도 안 믿겠지?”
“너 같으면 믿겠어?”
“……그것도 그러네.”
한숨을 내쉰 인형사가 다 마신 녹차를 내려놓으며 이야기했다.
“그럼 그냥 알아서 할게.”
따악!
인형사가 손가락을 튕긴 순간. 레아의 몸이 공중으로 낚아채지듯이 솟구쳐 올라갔다.
“윽……?!”
언제부터 몸에 걸려 있었는지 알 수 없는 투명한 실. 단숨에 레아를 허공에 박제한 인형사가 일레븐을 바라보았다.
“수술할 거니까 가서 준비해둬.”
일레븐이 고개를 꾸벅이며 어디론가 사라졌고 인형사가 레아를 올려다보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렴.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뇌 속에 살짝 인챈트할 뿐이니까.”
가볍게 주의를 주듯이 이야기하는 인형사. 그 모습에 레아가 구역질난다는 듯이 내려다보았다.
“진짜 역겹네.”
“예의범절도 같이 넣어둬야겠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본 인형사가 팔짱을 끼며 바라보았다.
“네 아군은 언제쯤 도착하니?”
“뭐?”
“아무 생각 없이 오진 않았을 거 아니야. 뭣보다 진짜 체념한 얼굴도 아니었고.”
레아를 본 인형사가 무심하게 이야기했다.
“시간낭비하기 싫으니까 슬슬 부르렴.”
“자신감 넘치네.”
“내가 할 소리란다. 혹시 완등자라도 끌어들인 거야?”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인형사. 십악인 자신을 눈앞에 두고 이렇게 자신만만한 게 이해가 안 가리라.
“아니.”
그런 인형사의 모습에 레아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너랑 비슷한 녀석이랑 손잡았지.”
촤라락!
허공에서 나타난 수백, 수천 마리의 나비들.
눈 깜짝할 사이에 레아의 몸을 집어삼키고 사라진 그 모습에 인형사의 두 눈이 휘둥그레 졌다.
“뭐…….”
몽환마만이 다룰 수 있는 몽환의 나비.
그 상상치도 못한 훼방에 인형사가 굳어 있던 그때. 연이어서 앞쪽의 공간이 갈라졌다.
투웅!
처음 보는 칠흑의 검.
어마어마한 힘이 담긴 그 칼날에 인형사가 재빠르게 허공에 매달려 있는 다른 싱글넘버를 불러서 막아내려 했다.
꿀렁─
하지만 보라색 안개가 공방의 천장을 둘러싸며 명령을 가로막았고, 칠흑의 검이 그 빈틈을 파고들었다.
콰드득!
어지간한 A급 영웅보다 단단한 육체가 단숨에 꿰뚫리고 이어서 벽면을 부수며 튕겨져 나간다.
콰아아앙!!
그대로 수백 미터 떨어진 공터의 위에 처박힌 몸.
간신히 형체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 인형사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가슴을 관통한 칠흑의 검을 바라보았다.
‘레아가 몽환마랑 손을 잡았다고?’
확실히 그 녀석과 손을 잡았다면 환락가에 들어와 자신을 마주하면서도 주눅 들지 않은 것이 충분히 설명이 가능했다.
다른 곳이면 몰라도 환락가 내부에서 자신보다 훨씬 강할 테니.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어째서 몽환마가 그런 선택을 했냐는 것이다.
‘내가 잘못 본 건가? 하지만 아까 그 나비는…….’
인형사가 혼란스러워하고 있던 그때. 허공에 보랏빛 안개가 뭉치더니 몽환마가 자연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갑자기 무슨 일이죠?”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어보는 몽환마. 그 반응을 본 인형사가 머릿속으로 무언가 생각하려던 그때.
우웅─
칠흑의 검, 압그룬트의 표면에 별자리가 떠올랐다.
“…….”
인형사의 두 눈에 초점이 살짝 풀렸고, 그 모습을 본 몽환마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자신의 힘이 인형사의 공방에서 느껴지길래 찾아와 봤는데 이게 무슨 난장판이란 말인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을…….”
“네가 그걸 물어봐?”
싸늘한 인형사의 대답. 살의가 담긴 목소리에 몽환마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그게 무슨 뜻이죠?”
“이제 와서 발뺌인가…… 눈앞에서 내 딸을 빼돌려놓고 아주 뻔뻔하네.”
갑작스러운 인형사의 이야기에 몽환마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내 헛웃음을 지었다.
“설마 정말로 제가 그랬다고 믿고 있는 건가요?”
자세한 사정은 보지 못했지만 조금만 살펴봐도 누군가의 이간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기처럼 보이지 않는 몽환마의 반응에 인형사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그래…… 상식이 있다면 저 녀석이─’
범인일 리가 없다. 그렇게 당연한 사실이 추론되려던 순간.
우웅─
압그룬트의 표면에 떠오른 별자리가 다시 한번 빛났고, 빌딩의 옥상에 선 레아의 스피어가 거기에 호응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체 동기화.”
촤르륵!
빠르게 움직이는 다섯 개의 궤도.
그 위로 황금색으로 빛나는 별자리들이 떠오르며 인형사, 그 자아가 자리 잡고 있던 인형에 경계를 둘러서 본체와 독립시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었던 몽환마를 향한 의심과 분노. 두 감정을 몇 배로 증폭시켰고.
‘─범인이 아닐 리가 없지.’
인형사의 자아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따악!
엄지와 중지만 남은 인형사의 왼손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냈고, 저 멀리 떨어진 공방의 천장이 부서지며 네 개의 인영들이 공터 위로 착지했다.
환락가에 배치한 네 개의 싱글넘버.
완전히 전투태세를 갖춘 인형사의 모습에 몽환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무슨…….’
어째서 저런 단순한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낸단 말인가.
마치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인형’처럼 변해 버린 인형사의 모습에 몽환마가 당황하며 바라보았고.
“죽여.”
네 체의 싱글넘버가 몽환마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