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26화
이쪽을 향한 시선과 확신이 담긴 목소리.
눈앞에 보이는 인형의 모습에 레아의 몸이 얼어붙었다.
인형사를 쓰러뜨리려면, 이곳을 탈출하려면, 살아남으려면 자신이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그 거듭되는 의문 속에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린 것이다.
‘만약에……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지금 한 방이라도 먹여야 하지 않을까.
그 충동적인 생각에 레아가 허벅지의 홀더에 꽂아둔 비녀를 움켜쥐려던 순간.
툭툭
이세훈의 손가락이 볼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 손길에 레아가 흠칫 떨며 옆쪽을 바라보았고, 고개를 살짝 돌린 이세훈이 지그시 바라보았다.
“…….”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동요하지 않는 표정.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침착하게 서 있는 이세훈의 모습에 레아가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금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검은 인형. 눈동자들에게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당장에라도 비녀를 쑤셔 버리고 싶었지만, 레아는 그 충동을 꾹 눌렀다.
그리고 그 기묘한 대치가 계속되던 그때.
“……아닌가?”
레아를 바라보던 인형사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주변을 살피는 인형사.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이상한 점이 보이지 않자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우우웅!
인형사의 손짓에 따라 천장에 떠오른 천체가 천천히 움직였고 잠시 후 시설 곳곳에서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그 모습에 이세훈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이건…… 시설을 영혼과 동화시킨 건가?’
거점 전체를 자신의 육체로 삼아서 살핀다.
회귀 전에도 들어본 적 없는 경우였지만, 이세훈은 동요하지 않고 가만히 인형사를 주시했다.
이 안에 들어올 때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전부했다. 그러니 불안하다고 해도 지금은 자신의 판단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옳았다.
스스스─
수많은 시선이 주변을 훑고 지나갔고, 잠시 후 가만히 서 있던 검은 인형이 다시금 움직였다.
“아니었나 보네…….”
고개를 가로저은 인형사가 몸을 돌려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고, 가만히 서 있던 이세훈과 레아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철컹!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멀어지는 기척.
그제야 이세훈은 레아의 입을 가리고 있던 손을 떼어내며 조용히 이야기했다.
“일단 나가자.”
레아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스피어를 챙겨 넣은 이세훈은 그대로 뒤쪽의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쪽 외벽에 어떤 장치가 있을지 모르니 들어왔을 때처럼 복도를 통해서 빠져나가기로 한 것이다.
스륵─
여명의 휘장을 꺼내 문에 두른 다음 그대로 바깥의 복도로 걸어 나간다.
“!!”
그러자 보이는 것은 문 바로 앞에 얼굴을 가져다대고 있는 검은 인형. 돌아가는 척하고 다시 내부를 살피고 있는 인형사의 모습에 이세훈이 식은땀을 흘렸다.
‘진짜 철저하구만…….’
자신이 착각했다고 생각해놓고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기척을 죽여서 다시 돌아와 있었다.
만약 여백의 휘장을 사용하지 않고 문을 통과했다면 곧장 인형사에게 감지되었으리라.
스윽
인형사를 피해서 문 앞을 빠져나온 이세훈은 복도의 천장에 여백의 휘장을 붙인 다음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주변을 완전히 뒤덮은 땅. 그 모습을 본 레아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흐아…….”
처음에는 생매장 당하는 것 같아 불쾌했지만 지금은 자신을 숨겨주는 듯한 기분이 들어 포근함이 느껴진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나른함과 탈력감. 긴장이 풀리려는 몸 상태에 레아가 고개를 강하게 털어내며 이세훈에게 물었다.
“들키진 않겠지?”
“아마 그럴 거야. 대응하기 보다는 간단하게 살펴보기만 했으니까.”
자신들을 확실하게 알아차렸다면 시설을 점검하는 게 아니라 폐쇄, 혹은 싱글넘버를 대동해서 살펴봤을 터.
즉, 겉보기에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착각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본래 철저한 성격이었으니까 평상시에도 비슷한 일들이 많은 거겠지.’
불 꺼진 방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면 괜히 불을 켜서 확인해 보는 것처럼, 인형사 역시 뭔가 기시감이 느껴지면 시설 전체를 샅샅이 살펴봤을 뿐.
흔적을 남겼다면 큰일이 됐겠지만 그쪽은 확실하게 처리해뒀으니 아마 별다른 문제는 없으리라.
“그래…… 그럼 다행이네…….”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린 레아가 힘겹게 팔에 매달렸고, 이세훈은 그대로 땅에서 빠져나와 숙소로 돌아왔다.
후웅!
전신을 감싼 몽환의 마력이 사라지고, 현실의 공기를 마시게 된 레아가 두 다리를 파들파들 떨면서 침대 위에 힘겹게 걸터앉았다.
“난 잠입이나 이런 쪽은 안 맞는 것 같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다 끝나고 나니까 자신이 어떻게 했었는지 모를 만큼 식은땀이 흐르며 손발이 떨렸다.
조금만 실수했어도 인형사에게 발각됐을 위험천만한 상황.
난생 처음 느껴보는 압박감에 레아가 심호흡을 하고 있을 때.
“그래?”
이세훈이 의자에 앉으면서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보기에는 꽤 잘 맞는 것 같던데.”
“뭐가…….”
“들켰다고 생각했을 때 포기하는 게 아니라 대응하려고 했었잖아. 잠입에는 그런 대범함이 제일 중요해.”
물론 틀린 판단을 해서 더 위험해질 수도 있지만,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굳어있는 것보다는 훨씬 생존율이 높았다.
“이번에 잘했어. 그 정도면 소질 있는 거야.”
생각지 못한 이세훈의 칭찬에 레아가 멋쩍게 웃었다.
“크흠. 뭘 그 정도까지…….”
“진짜라니까.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꼭 맡기고 싶을 정도야.”
“어허. 그만 치켜세…… 어…… 음…….”
머쓱해하다가 갑자기 두 눈을 가늘게 뜨더니 허탈한 표정을 짓는 레아. 갑작스러운 표정변화에 이세훈이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왜 그래?”
“아니. 그냥 인챈트가 아니라 잠입 실력으로 칭찬받는 걸 기뻐하는 게 맞나 싶어져서…….”
갑자기 인형사의 거점으로 끌려와서 잊고 있었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 95점, 솔직히 100점도 가능하다고 봤던 인챈트가 겨우 90점밖에 못 받지 않았던가.
‘인챈트는 부업으로 하고 확 암살자 같은 거나 해버릴까?’
인챈트를 할줄 안다고 해서 무조건 인챈터가 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레아가 그런 잡생각을 하는 사이 이세훈이 피식 웃었다.
“인챈트를 잘하는 건 당연한 거니까 굳이 말 안한 거지. 아까 만들어낸 인챈트도 대단했어.”
“진짜로?”
“진짜지.”
“그럼 몇 점인데?”
빤히 바라보는 레아의 모습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91점.”
“……이럴 때는 95점이나 100점으로 팍팍 줘야 되는 거 아니야?”
힘이 빠지기도 애매하고 힘이 나기도 애매한 수준. 레아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자 이세훈이 담담히 대답했다.
“91점부터는 자랑스러워해도 돼. 거기서부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
“그게 무슨…….”
“내 무구로는 흉내 낼 수 없단 뜻이야.”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협력자의 도움이 필요한 효과.
그게 91점 이상의 인챈트였고, 레아는 방금 거기에 도달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
이세훈의 말을 이해한 레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이내 입꼬리가 씰룩거리기 시작했다.
방금까지의 지친 얼굴이 어디로 갔는지 기운이 펄펄 넘치는 모습. 그렇게 한껏 기분이 좋아진 레아가 한껏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크흠. 앞으로도 힘든 거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 선배로서 도와줄게.”
[대상 ‘레아 클로델’이 우위에 섰습니다.]
[대상 ‘레아 클로델’의 인연석이 생성됩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알림창.
어느 정도 자신감도 돌아오고 기운을 차린 것을 확인한 이세훈이 레아를 바라보았다.
“그럼 한 가지 의논하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인형사가 천체마법을 사용하는 것에 관해서 뭔가 짚이는 게 있어?”
이세훈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레아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알기로는 천체마법을 달가워하지도 않았고…… 적성도 별로였거든. 저렇게 능숙하게 다루는 것 자체가 의아할 정도야.”
“적성이 별로였다…….”
일반적으로 적성도 없는 기술을 저렇게 능숙하게 다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 이세훈은 자연스럽게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큐브?’
생물의 육체를 재료로 삼아서 생전의 능력을 부여해 주는 생체무구.
본인이 개발한 물건이었으니 그걸로 천체마법에 대한 능력을 얻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구’의 육체를 이용해서 천체마법의 재능이 담긴 큐브를 만들어냈는가.
‘이건…… 일단 좀 더 봐야겠네.’
확인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자칫 잘못하면 인형사에게 의심을 살 수도 있다.
몽환마의 토벌이 끝나고 나서 레아와 함께 확인해 보기로 하며 이세훈이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이건 나중에 생각하자.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생각해 봐야 이상한 길로 빠지기 쉬우니까.”
“으음…… 알았어. 그럼 이걸로 준비는 다 끝난 거야?”
레아의 물음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서는 끝났지.”
자신이 알고 있는 환락가와 몽환마라면 이것으로 완벽하게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세훈은 바로 작전을 실행하기보다는 조금 더 살펴보기로 했다.
‘무슨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최대한 기회를 살펴야 한다.’
어차피 자신이 준비한 작전은 증축 프로젝트가 완공에 가까울수록 효과가 커지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살펴보고 있어도 손해볼 건 없다.
그렇기에 이세훈은 급하게 움직이기 보다는 아미르를 통해 환락가의 상황을 살피면서 최적의 순간을 노릴 생각이었다.
‘가장 좋은 건 변수가 없는 건데…… 그게 가능할까?’
자신의 행동으로 수많은 것들이 변했는데 환락가와 몽환마에게만 변수가 없는 것이 가능할까.
‘지금으로써는 그 녀석을 믿는 수밖에 없지.’
아미르가 어떤 정보를 물고 오느냐에 따라서 이번 몽환마의 토벌전의 방향성이 정해질 것이다.
코앞까지 다가온 결전의 날에 이세훈이 창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흘러갈지 보자고.”
* * *
환락가의 제 1구역 중심지에 자리 잡은 ‘나이트메어 타워’.
몽환마의 거점이자 환락가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그 거대한 빌딩에 들어선 아미르가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외부에 수배된 마인과 범죄자들로 우글거리는 1층의 로비. 그 사이를 지나친 아미르는 그대로 한쪽 벽면을 향해 걸어들어 갔다.
꿀렁─
아미르의 몸이 벽 안쪽으로 자연스럽게 파고들었고, 관계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전용 엘리베이터 룸이 나타났다.
그중 1층에 도착해 있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아미르는 품에서 보라색 카드를 꺼내 버튼 아래에 있는 패널에 가져다댔다.
띵!
청아한 소리와 함께 문이 조용히 닫혔고, 엘리베이터가 지상이 아니라 지하 깊숙이 내려간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지, 그리고 그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 갈 정도로 조용히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그냥 제자리에 멈춰 서 있는 게 아닐지 생각하려던 찰나.
띵!
다시 한번 청아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위쪽의 로비와 다른 고풍스럽게 꾸며진 복도가 나타났다.
마치 중세에 만들어진 대저택을 방불케 하는 내부. 그 위로 발을 내디딘 아미르가 자신도 모르게 눈매를 살짝 찌푸렸다.
‘농도가 전보다 심해졌군…….’
주변에 휘몰아치는 보랏빛 아지랑이.
어지러움마저 느껴지는 그 광경에 아미르가 자신의 고유스킬인 동천안의 힘을 억눌렀다.
우웅
그제야 눈을 어지럽히던 아지랑이들이 사라졌고, 자세를 추스른 아미르가 복도로 걸어 들어가 한 문 앞에 섰다.
똑똑
“들어와요.”
안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아미르가 조심스레 문을 열었고, 사치스럽게 꾸며진 응접실의 안쪽에는 몽환마가 서 있었다.
“일하는 중에 불러서 미안해요. 혹시 많이 바빴나요?”
“간단한 서류 정리만 남은 상태였으니 신경 써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일단 자리에 앉아요.”
“알겠습니다.”
몽환마가 시키는 대로 아미르가 소파에 앉았고, 몽환마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요즘 일은 어떤가요?”
“가능한 완벽하게 처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건 알아요. 주변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당신에 관한 칭찬이 아주 자자하더라고요.”
비서실에서도 칭찬이 자자하며 구역장들은 벌써부터 아미르를 의식하고 있다. 그만큼 일처리에 있어 실수가 없다는 뜻.
자신이 상상한 것 이상으로 빠르게 적응하여 일처리를 맡고 있었기에 몽환마로서는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과찬이십니다.”
“노력한 만큼 평가받는 법이죠. 그래서 조금 궁금해졌어요.”
아미르가 앉은 소파의 등받이에 손을 얹으며 몽환마가 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당신의 눈으로 보기에 지금의 증축 프로젝트가 어떻게 보일지.”
“…….”
몽환마의 질문에 아미르가 잠시 멈칫했다.
이번 증축 프로젝트는 몽환마가 추진한 계획.
그러니 무난하게 대답하자면 적당히 극찬하면서 약간의 아쉬운 점들만 조심스레 제안하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지금 굳이 이런 질문을 했다는 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또 어떻게 말해야 자신이 의심받지 않을 것인가. 빠르게 머리를 굴린 아미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무 성급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가요?”
“환락가의 확장 자체는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거기에 수반되고 있는 입주민들의 확인 절차가 느슨해졌습니다.”
“흐음.”
계속 말해보라는 듯 몽환마가 대답하지 않았고, 아미르는 비서실에 일하면서 얻은 정보들을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입주민들이 전년대비 500% 이상 늘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이대로라면 협회나 다른 세력들의 스파이가 숨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증축되고 있는 환락가의 빈틈을 노려져서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라는 거죠?”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담담하게 되묻는 몽환마의 물음에 아미르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흐음…… 모두 당연한 이야기들이네요.”
실망했다는 듯이 담담히 중얼거린 몽환마가 그대로 아미르의 뒤에 서서 자연스레 어깨를 붙잡았다.
“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이야기들이기도 하죠.”
구역장과 직속 비서들은 이런 빈틈이 보이더라도 절대로 지적하거나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빈틈 안에 자신들이 모르는 의도가 담겨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리 생각하며 언급하기를 꺼리는 것이다.
“명령에 복종하고 그 이외에는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이쪽이 편하긴 했지만…… 또 하나하나 명령을 내려야하니 피곤하긴 하더라고요.”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어깨를 쓰다듬는 몽환마. 그 손길에 아미르는 온몸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만약 지금도 그쪽이 편했다면…… 방금 그걸로 끝이었겠군.’
쓰임새를 다한 도구는 버린다.
그것이 몽환마의 지론이었고, 방금 자신은 그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오갔다.
칼날 위를 걷는 듯한 기분에 아미르가 감정을 가다듬고 있을 때. 몽환마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그래서 쓸 만한 사람들을 골라서 몇 명 정도는 자율권을 줄까 싶어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맡겨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권유한 순간 거절하는 선택지는 없다. 아미르의 대답에 몽환마가 만족스러워하며 웃었다.
“다행이네요. 그럼 앞으로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증축 프로젝트 다음으로 진행할 프로젝트를 먼저 보여줄게요.”
촤라락─
보라색 나비들이 여기저기 날아들어 눈앞에 거대한 보라색 거울을 만들어냈고, 그 너머로 여러 장면들이 동시에 비춰지기 시작했다.
후웅! 카가강!
1 대 1로 대련을 펼치고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 그 모습에 아미르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몽환마가 설명을 이어갔다.
“이번 프로젝트는 ‘투영’이에요. 몽환의 마력으로 다양한 표본의 적들을 만들어내는 거죠. 지금은 대련에 쓰이는 정도지만, 최종적으로는 현실에 강림시킬 수 있는 군단으로 만드는 게 목표예요.”
몽환마의 설명에 아미르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군단이라니…….’
몽환의 마력으로 이뤄진 군단. 만약에라도 그것이 정말 실현된다면, 몽환마의 세력은 지금보다 더욱더 강력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 놀라운 이야기에 아미르가 눈앞의 풍경을 다시 차분히 바라보았다.
‘어차피 증축이 완료된 뒤의 일이니 지금은 신경 쓸 필요 없어. 아니지, 이쪽으로 뭔가 파고들 빈틈을…….’
거울에 비친 수많은 대련 장면들을 바라보던 아미르의 눈에 문득 이상한 것이 보였다.
한쪽은 다양한 사람이 맞서 싸우고 있는데 반대편은 무구와 기술이 다르지만 어딘가 같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한 것이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그 느낌 자체가 익숙하게 다가온다. 그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아미르가 거울을 보던 그때.
“그런데 지금은 마땅한 표본이 없어서 제가 가지고 있는 표본 중에 가장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을 베이스로 양산 중이에요. 아마 당신에게도 익숙하겠네요.”
“그게…… 무슨…….”
“아. 잘 안 보이나요?”
거울 속의 화면이 하나로 확대되었고,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시금 보였다.
[죽어!!]
단검을 든 상대를 제압해 검으로 난도질하는 마인. 그 아래에 깔린 상대를 본 아미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딘가 흐리멍텅한 눈으로 난도질당하는 구릿빛 피부의 청년. 그 얼굴은 분명히 자신을 대신해서 몽환마의 인질이 된 사촌형 자예드였다.
“…….”
그 모습에 아미르가 굳어 있을 때. 몽환마가 부드럽게 웃으며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디까지나 복사체일 뿐이니까요.”
“…….”
“적당한 표본이 갖춰질 때까지만 쓸까 싶은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어깨를 쓰다듬는 몽환마의 손길. 그리고 눈앞에서 수십 명에게 난도질당하는 자예드의 모습.
그 악몽과도 상황 속에 아미르가 수많은 감정을 곱씹으며 다시 한번 각오했다.
“영광입니다.”
반드시 몽환마를 죽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