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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225화 (225/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25화

‘여기가 그 녀석의…….’

주변을 둘러본 레아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앞으로 쭉 뻗은 새하얀 복도.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환기구나 전등에서 나오는 희미한 소음조차 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숨소리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적막함.

그 광경에 레아는 이곳이 평범한 거점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보통은 창고처럼 생겼다던데…… 여긴 약간 연구실 같네.’

이곳이 정말 중요한 거점이라면 안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레아가 주변을 차분히 살피는 사이 이세훈이 조용히 속삭였다.

“일단 앞으로 가자.”

“알았어.”

몸을 딱 붙인 채 보폭을 맞추며 걸어가는 두 사람.

복도는 어디까지 이어진 것인지 끝이 보이지 않았고, 사이사이에 갈림길이나 문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가 갑자기 뭔가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싶어 레아가 살짝 긴장하고 있을 때.

“……음?”

공기 중에 보이는 희미한 일렁거림.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 본 것인가 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그런 일렁거림이 복도 전체에 퍼져 있다.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레아가 곧장 이세훈의 허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후배. 주변 공기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아. 그거라면 아마 독일 거야.”

“……독?”

“인형사랑 퍼펫은 숨을 안 쉬어도 되잖아. 그러니까 공기 중에 무색무취의 독을 뿌려두는 거지.”

대비할 수 없으면 그대로 중독되어 죽는 거고, 설령 대비를 하더라도 마력을 사용할 테니 곧장 감지할 수 있다.

침입자의 대응과 색출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함정. 회귀 전 토벌대의 이야기에 의하면 중요 거점에는 대부분 이런 시설을 갖췄는데, 상당히 대응하기 까다롭다고 했었다.

“골 때리는 함정이네…….”

“자신의 장점을 잘 활용할 줄 안다는 거지. 우리도 원래라면 이렇게 쉽게 들어오긴 힘들었을 거야.”

이번에 이렇게 쉽게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몽환의 마력과 경계의 권능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는 특이성 때문일 뿐.

순수하게 실력으로 따진다면 인형사의 중요 거점은 절대로 건드릴 수 없는 위험한 구역이었다.

‘그리고 이 방법도 두 번은 안 통하겠지.’

이번 몽환마의 토벌이 끝나고 나면 인형사도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터.

한마디로 인형사의 거점을 이런 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기에 최대한 많은 이득을 얻어야 했다.

‘건질게 많으면 좋겠는데…….’

이세훈이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무언가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잠깐만 천천히 걸어봐.”

“음? 알았어.”

감각을 곤두세운 이세훈은 앞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잠시 후 아무것도 없는 복도 앞에서 멈춰 섰다.

“여기야.”

“여기라고……?”

겉보기에는 방금까지 지나오던 복도와 전혀 다를 게 없는 모습. 하지만 레아와 다르게 이세훈의 눈에는 그 차이점이 선명하게 보였다.

우우웅

희미하게 일렁거리는 복도의 풍경.

침입자가 다음 구역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공간 마법으로 복도의 양끝을 연결해 같은 곳을 계속 헤매게 만들어놨는데, 그 접합 부위가 바로 이 앞이었던 것이다.

‘큰일 날 뻔했네…….’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레아처럼 인지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냥 같은 장소를 계속 돌겠지만, 자신은 이곳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껴 버렸다.

만약 그 상태로 이 앞을 지나갔다면 자신도 모르게 몽환의 마력으로 공간 마법을 파훼하고 숨겨진 공간에 들어섰으리라.

‘그리고 인형사는 침입자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겠지.’

거점을 파괴하는 게 목적이라면 상관없지만, 이번 목적은 간단한 장치만 숨겨두고 몰래 빠져나오는 것. 그렇기에 시설을 파훼하는 것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됐다.

‘여기서는…….’

어떤 방법이 좋을지 고민하던 이세훈은 곧장 왼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스륵─

왼손에 자연스럽게 쥐어지는 여백의 휘장. 그것을 움켜쥔 이세훈은 곧장 정면을 향해 펼쳤다.

촤악!

여백의 휘장이 두 사람의 앞을 완전히 가로막았고 레아가 묘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으음……?”

손짓을 보니 뭔가 한 것 같은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레아가 아리송해하는 사이 이세훈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이제 가자.”

“아, 응.”

레아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이세훈을 따라 걸음을 옮겼고, 두 사람이 여백의 휘장을 스쳐지나갔다.

후웅

그러자 나타난 것은 끝없이 이어지던 복도 대신 큼지막한 문.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한 그 모습에 레아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오오…… 뭘 어떻게 한 거야?”

“그런 게 있어.”

대답을 얼버무린 이세훈이 뒤쪽에 남은 여백의 휘장을 거두며 복도에 걸려 있는 공간 마법을 살폈다.

‘훼손된 곳도 없고, 지나온 흔적도 안 보이네.’

여백이란 공간의 사이에 존재하는 공백이 모여서 만들어진 힘. 그렇기에 방금처럼 이용하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지나가는 것처럼 공간 마법도 무시할 수 있는 것이다.

‘공간 마법에 상극 같다고 느끼긴 했지만…… 직접 보니까 상상 이상인데.’

이 정도라면 어지간한 기밀 시설은 간단히 드나들 수 있지 않을까. 살짝 감탄한 이세훈이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들어가자.”

“오케이.”

혹시 모를 장치를 대비해 문에다가 여백의 휘장을 두른 이세훈은 곧장 레아와 함께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후웅

문을 넘어서자 나타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방.

천장은 돔 형태로 되어 있으며 일정한 간격으로 선들이 그어져 있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형태였다.

“저건…….”

“천구 좌표계.”

옆에서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레아가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천체를 관측하고 위치를 표시하는…… 천체 마법의 뼈대로 사용되는 방식이야.”

이세훈에게 설명한 레아는 천장에 그려진 천구 좌표계를 믿기지 않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인형사, 레이나 클로델이 연구하던 기술은 생명인챈트학. 천체 마법에는 별다른 관심도 없었고 한계가 뚜렷하다며 배우지 말라고 하던 사람이었다.

“뻔뻔한 새끼…….”

그래놓고 자신이 죽인 남편의, 아빠의 연구물을 이렇게 활용하고 있었다니.

당장에라도 눈앞의 시설을 남김없이 부숴 버리고 싶었지만 레아는 필사적으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후우…… 후우…….”

허리를 꽉 움켜쥐며 심호흡하는 레아.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주변을 살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나.’

인형사가 천체 마법을 활용한다.

레아에게는 상상치도 못 한 일이었겠지만, 이세훈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회귀 전 인형사가 최후의 순간에 사용했다던 스피어와 비슷한 장치. 그 원형이 스피어였다면 천체 마법을 다루더라도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아를 죽인 다음에 천체 마법을 사용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실제로는 그전부터 다뤄왔던 건가?’

인형사는 무슨 생각으로 자신이 직접 죽인 남편의 기술을 이용한 것일까.

이세훈이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이야…….]

거점에 들어온 뒤로 쭉 말이 없던 탐구자가 감탄하며 속삭였다.

[범상치 않은 녀석이라는 건 느낌이 왔었지만…… 이건 상상을 뛰어넘네. 살아 있었다면 제자로 삼고 싶을 정도야.]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을 보며 극찬하는 탐구자. 그 모습에 이세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뭘 보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뭐야 못 알아본 거야? 흐흐. 역시 천재여도 지식이 폭 넓지 못한 건 어쩔 수가…….]

우웅

[중앙! 방의 중앙에 가보면 무슨 말인지 알 거야!]

탐구자의 자아를 놔둔 이세훈은 그대로 방의 중앙을 살펴보았다.

‘흐음. 딱히 특별한 건 안 보이는데…….’

자신이 잘 모르는 천체 마법을 활용한 장치가 있는 것일까. 혹시라도 탐구자가 속였을 가능성을 생각하며 차분히 살피고 있을 때.

“후배.”

감정을 가라앉힌 레아가 팔을 살짝 잡아당겼다.

“저기에 가보자.”

탐구자와 마찬가지로 방의 중앙을 가리키는 레아. 그 모습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저기에 뭔가 있어?”

“저쪽이 ‘관측점’이거든. 그 녀석이 천체 마법을 제대로 사용했다면…… 여기서 보는 것과 다른 풍경이 펼쳐질 거야.”

어디에서 관측하느냐에 따라서 같은 장소라도 풍경이 달라진다. 레아의 설명에 이세훈이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가보자.”

레아와 함께 안으로 걸어 들어간 이세훈은 그대로 방의 중앙에 해당되는 지점에 들어섰다.

후웅!

중앙에 들어섬과 동시에 바뀐 풍경.

새하얗던 방안이 순식간에 검은색으로 물들었고 천장에 그려져 있던 천구 좌표계가 푸른색으로 빛나며 별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밤하늘을 고스란히 재현해낸 천장.

그 모습만 보면 무척이나 아름다웠지만, 그 사이사이에 한 가지 이질적인 풍경들이 뒤섞여 있었다.

우우웅!

다른 별들보다 크고 선명하게 반짝이는 여덟 개의 별.

그 아래로 늘어진 새하얀 실 끝에 사람만 한 인형들이 축 늘어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목을 매단 것처럼 보였다.

찬란한 밤하늘과는 어울리지 않는 기괴한 풍경. 그 모습을 살피던 이세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거…… 고대 인챈트지?”

“……아마 그럴 거야.”

여덟 개의 인형으로 태양계의 행성들을 모방한 다음 천체의 힘을 모조리 이끌어낸다. 술식의 규모부터 매우 거대했으며 그 효과 역시 만만치 않았다.

[자신의 영혼이 담긴 그릇으로 지구를 모방하고 천체의 중심으로서 동기화시킨다…… 이 구조 덕분에 전 세계 곳곳을 오가며 인형들을 조종할 수 있었던 거네.]

‘엄청 거창한 기술이네요.’

[거창할 수밖에 없지. 이 정도면 생명인챈트와 천체 마법 두 가지 모두 대성해야 가능한 기술이야. 하나라도 어설펐으면 진작 폐인이 됐을 걸.]

두 기술을 완벽히 활용했기에 가능한 기술. 탐구자의 설명에 이세훈이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

어딘가 답답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는 레아.

인형사는 어째서 천체 마법을 이렇게까지 연구한 것일까.

그냥 필요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거기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레아로서는 기분이 뒤숭숭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원수라고 할지라도 과거에는 사랑하는 부모님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후우.”

한참 동안 천장을 올려다보던 레아가 깊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살짝 털어냈다.

‘변하는 건 없어.’

어떤 사연이 있었고 무슨 일이 숨겨져 있을지는 자신도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날의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어찌 됐든 지금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 온 마인. 어떤 이유에서든 그 행적을 정당화할 수는 없었다.

그걸로 생각을 정리한 레아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제 뭐 하면 돼?”

금방 마음을 다잡은 레아의 모습에 이세훈이 살짝 안심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형사는 이 시설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전 세계에 숨겨둔 인형에 자유롭게 이동시키는 거야. 즉 이 시설이 마비된다면 인형사의 움직임도 봉쇄되는 거지.”

“흐음. 그럼 그걸로 환락가에 있는 인형 안에다가 그 녀석의 영혼을 봉인하려는 거야?”

“비슷한데 조금 달라. 내가 노리는 게 뭐냐면…….”

이세훈이 몽환마의 토벌전 때 인형사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대해서 설명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레아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게…… 된다고?”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

“그건…… 아니…… 하지만…… 으음…….”

듣기에는 말이 안 된다 싶지만, 또 차분히 곱씹어보면 마냥 불가능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눈매를 찌푸리며 한참 고민하던 레아가 잠시 후 결론을 내렸다.

“그래. 까짓것 한번 해보자. 저 새끼도 했는데 나라고 못 할 게 뭐야.”

“좋아. 그럼 말 나온 김에 바로 시작하자고.”

왼손으로는 아공간 포켓에서 꺼낸 스피어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레아의 어깨를 잡아 은신 상태를 유지한다.

작업하기 쉽게 자세를 바꾼 이세훈은 손가락을 풀고 있는 레아를 바라보았다.

“이번 인챈트에 필요한 건 크게 두 가지야. 첫 번째는 우리가 신호를 보냈을 때만 발동되도록 트리거를 갖출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인형사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은밀해야 할 것.”

첫 번째 조건만 갖춘다면 비교적 간단하지만 거기에 두 번째까지 더해지면 상당히 까다로워진다.

트리거와 인챈트 술식 전체를 기존의 술식에 자연스럽게 덧대서 티가 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엄청 까다롭네.”

“할 수 있겠어?”

이 부분은 순전히 레아의 재능과 실력에 달린 문제였기에 완전히 장담할 수는 없다.

이세훈의 질문에 레아는 대답 대신 원피스의 안쪽, 허벅지의 홀더에 끼워둔 비녀를 하나 꺼내 들었다.

“…….”

과거 아빠에게서 받은 비녀. 그걸로 틀어 올린 머리를 고정한 레아는 자신의 양 뺨을 가볍게 두들긴 다음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백업. 제대로 해.”

자신이 실수할 일은 없을 거라고, 그렇게 확신하며 이야기하는 레아의 모습에 이세훈이 슬쩍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그럼 시작한다.”

레아가 스피어를 향해 두 손을 뻗은 순간. 표면에 황금빛 기운이 일렁이며 솟구치기 시작했다.

스피어의 관측 기능을 사용하면 방안의 술식을 바로 파악할 수 있지만, 그 방법을 쓰면 흔적이 남은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레아는 직접 술식의 구조를 살피면서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스피어에 입력하기 시작했다.

‘아주 다 가져다 썼구만……!’

원래 이렇게 눈으로 술식을 보고 베끼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눈앞에 펼쳐진 술식은 레아가 어린 시절부터 몇 번이고 봐왔던 부모님의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

그 뿌리를 알고 형태가 눈에 보인다면, 비슷하게 베끼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웅!

레아의 눈동자가 핏발이 선채 빠르게 움직였고, 스피어의 표면에 고스란히 술식의 형태가 재현되기 시작한다.

완전히 집중 상태에 들어간 모습에 이세훈이 슬쩍 웃었고, 탐구자가 살짝 감탄했다.

[이야…… 꽤 한다?]

‘제가 말했잖습니까. 시키면 다 한다고.’

[쓰레기 같은 소리를 엄청 자랑스럽게 하네…… 아, 저쪽 마감 어설프니까 고쳐.]

‘이쪽도 좀 과하지 않습니까?’

[거기도 같이 다듬으면 되겠네.]

레아가 뼈대를 만들면 탐구자와 의논해서 세밀하게 가다듬는다.

서로 역할을 나누자 금방 술식이 완성되어갔고, 잠시 후 스피어의 표면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우웅─

겉으로 보기에는 기존의 천체 마법을 완벽하게 옮겨놓은 듯한 형상.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자신들이 새롭게 추가한 술식이 아주 은밀하게 스며들어 있었다.

“어때?”

레아의 물음에 이세훈은 고민하지 않고 곧장 대답했다.

“완벽해.”

이 정도라면 인형사가 갑자기 미쳐서 거점의 술식을 하나하나 분해해 살펴보지 않는 이상 절대로 모를 것이다.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이세훈이 주변을 살핀 다음 이야기했다.

“내가 신호를 주면, 그때 바로 스피어를 동기화시켜서 인챈트를 적용시켜. 가능한 빨리 끝내야 돼.”

“알았어.”

여기서부터는 사실상 운의 영역.

아무리 자신들이 빨리 해치운다고 해도 인형사가 우연히 이 거점을 살펴보고 있었다면 곧장 들킬 위험도 있다.

‘여기까지 완벽하기를 발랄 순 없지.’

인형사라는 거물을 이용해먹으려면 약간의 위험은 감수해야만 한다.

각오를 다진 이세훈이 스피어를 둘러싼 몽환의 마력을 조절해 현실로 내보냈고.

“지금!”

“천체 동기화!”

이세훈의 신호와 함께 스피어가 황금빛을 내뿜으며 방 안의 술식과 완벽히 연결되었다.

촤르륵─

다섯 개의 고리들이 축을 바꿔가며 회전했고 천체 마법 사이사이에 레아가 만들어낸 인챈트가 아주 자연스럽게 추가된다.

언제 어떻게 인형사가 알아차릴지 몰랐기에 두 사람은 전신의 감각을 곤두세우며 주변을 살폈고, 잠시 후 모든 인챈트가 추가되었다.

“끝!”

레아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곧장 스피어를 꿈속으로 거둬들였고, 방 안으로 무거운 적막이 감돌았다.

아무런 변화도 없이 조용한 내부의 모습에 레아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뭔 일 터지는 줄 알았네…….’

이거라면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그리 생각한 레아가 입을 열려던 찰나.

이세훈의 손이 그 입을 가로막았다.

“……!”

갑작스러운 행동에 레아가 의아해하던 그때. 뒤쪽에서부터 무언가가 몸을 통과하며 느릿하게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 형용할 수 없는 오싹한 감각에 레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몸을 통과한 검은 인영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끼리릭

다른 이목구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온통 눈이 자리 잡고 있는 검은 인형. 그 눈들이 제각기 다른 곳을 바라보며 주변을 살피더니 다시금 두 사람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그리고 2m는 족히 되는 몸을 천천히 숙여 레아의 얼굴 앞으로 다가온 순간.

끼릭─

다른 곳을 살피던 눈동자들이 일제히 레아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이쪽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소름끼치는 시선. 혹시라도 무언가 알아차릴까봐 레아가 정면에 보이는 눈동자들을 가만히 응시했고.

“누구야?”

인형사의 싸늘한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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