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22화
투두두두─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비처럼 쏟아지는 천지의 물.
자신이 만들어낸 오색빛깔의 소나기에 이세훈은 살짝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게 진짜 되네…….’
지금이 하백연을 설득할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뿐인데 백야궁이 화살의 위력을 기하급수적으로 상승시켰다.
결과에 과정이 따라붙는 것 같은 기묘한 작용.
보고도 믿기지 않는 결과에 이세훈이 떨떠름하게 서 있자 옆에 서 있던 하백연이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이 정도면 9점…… 아니, 8점이 딱 맞겠군.”
엄청 좋지는 않지만 꽤 호의적인 평가. 그 모습에 이세훈이 살짝 저려오는 오른팔을 탈탈 털어내며 물었다.
“감점 사유는 뭡니까?”
“화살을 쐈을 때 자세가 흐트러져서 마이너스 1점. 화살의 마력 밸런스가 흐트러져서 마이너스 1점이다.”
“즉, 쏘는 방법은 이게 맞았다는 거군요.”
이세훈의 물음에 하백연이 파문이 일어나고 있는 천지를 내려다보며 이야기했다.
“포착의 권능은 맞다 틀리다로 나뉘는 게 아니야. 내가 어디까지 볼 수 있느냐로 결착이 나지.”
발치의 조약돌을 요령 좋게 걷어 차올린 하백연이 가볍게 낚아채며 물었다.
“하나 예시를 들어주마. 내가 지금 이 조약돌을 천지에 집어던지면 어떻게 될까?”
“음…….”
하백연의 물음에 백야궁을 슬쩍 바라보았지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그에 이세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알 수 없죠.”
평범한 조약돌이지만 완등자인 하백연의 손에 쥐어지면 어떤 효과를 보일지는 장담할 수 없는 법이다.
이세훈의 대답에 하백연이 삐딱하게 바라보았다.
“대답에 성의가 없군.”
“그야…….”
“하지만 그게 정답이다.”
조약돌을 위로 던졌다 받으며 하백연이 설명을 이어갔다.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어떤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있기 마련. 그리고 그건 기회 역시 마찬가지지.”
자신이 보기에 최적의 기회라 생각했던 것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최악의 기회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올바른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눈에 담을 수 있어야 했다.
“다시 한번 물어보지. 나는 이 조약돌로 천지를 증발시킬 수도 있고, 잠잠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내가 이걸 집어던지면 어떻게 될까?”
방금보다 세밀해진 하백연의 질문에 이세훈은 자연스럽게 백야궁의 힘을 끌어올렸다.
우우웅─
손에 타고 오르는 마력과 시야가 탁 트이는 감각. 두 번째로 느끼는 포착의 권능에 이세훈이 잠시 생각을 곱씹은 다음 대답했다.
“저는…….”
후웅!
이세훈이 입을 연 순간. 하백연이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가볍게 털어내며 조약돌을 던졌다.
천지의 끝자락에 떨어져 그대로 반대편까지 통통 튀듯이 날아가는 조약돌. 그 움직임을 따라 파문이 넓게 퍼져 나갔고 잠시 후 표면이 거짓말처럼 잠잠하게 변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세훈이 덧붙였다.
“……잠잠하게 만드실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로요.”
“그렇겠지. 제대로 본 거라면 말이야.”
손을 가볍게 털어낸 하백연이 이세훈의 손에 쥐어진 백야궁을 바라보았다.
“나에게 했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도와주는 것과 맞먹은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거다. 한 번이면 끝날 테니 신중하게 써라.”
하백연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백야궁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자신이 몽환마를 토벌할 수 있는 기회를 제대로 포착했다면 백야궁이 적절하게 힘을 발휘할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변변찮은 위력이 나올 것이다.
‘결국 내가 하기 나름이다 이거구만.’
최선의 결과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
백야궁을 챙긴 이세훈이 하백연에게 고개를 꾸벅였다.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그래. 두 번은 안 줄 거니까 괜히 연구한답시고 부숴먹지 말고. 알겠어?”
“……설마 그런 은혜도 모르는 짓을 하겠습니까. 하하.”
뻔뻔하게 웃는 이세훈의 모습에 하백연이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런 녀석이 있을 수 있을까…….’
본직이 대장장이라고 해도 이만큼 기반이 쌓여 있다면 전투에서도 특유의 버릇과 심상이 녹아들기 마련.
하지만 이전의 전투에서도, 방금 궁술을 펼쳤을 때도 이세훈의 기술에서는 본인만의 심상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또 재능은 있어서 흉내는 잘 내고.’
자세를 조금만 지적해 줘도 금방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몸에 맞게 효율적으로 개량한다.
대성은 못하더라도 중간은 쉽게 갈 수 있는 기묘한 재능.
특이하긴 해도 썩 좋은 자질은 아니었지만, 이세훈에게는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특징이 있었다.
‘다른 녀석들보다 권능을 쉽게 다뤄내는 것도 아마 저 기묘한 재능 때문일 테지.’
완등자들의 권능이란 것은 단순히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세훈은 자신이 조금 도와준 것만으로 포착의 권능을 이해했고, 곧장 스스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한 일.
아마 루트비히와 위르겐이 흥미를 보인 것도 저 특징 때문일 가능성이 높으리라.
‘대장장이로서의 자질일까…… 아니면 미래를 내다보는 듯한 저 기묘한 관점 때문일까…….’
만약 후자라면 이세훈이 펼쳐내는 포착의 권능은 자신과 조금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을 떠올리던 하백연이 생각을 정리하며 이야기했다.
“또 이야기할 건 없고?”
“음…… 혹시 탐구자가 어떤 분인지 알고 계십니까?”
처음에는 루트비히에게 먼저 물어볼까 했었지만, 그보다는 전 세계를 살피는 하백연이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세훈의 질문에 하백연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나탈리아? 그 자식은 왜?”
생각보다 거친 반응에 이세훈이 살짝 놀라면서 대답했다.
“그냥 대외적으로 알려진 게 거의 없는 분이다보니 어르신이라면 뭔가 아시는 게 있지 않을까 해서…….”
“그 자식은 알 필요 없어. 그리고 혹시라도 찾아오면 루트비히든 나든 바로 불러라. 안 그러면 귀찮아질 테니까.”
“……혹시 옛날에 무슨 사건이라도 있었습니까?”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완등자들 간의 갈등이 있었던 걸까.
이세훈의 물음에 하백연이 눈썹을 찌푸린 채 대답했다.
“내 눈을 베이스로 사역마를 만들고 싶다고 세 달 동안 쫓아다닌 적이 있었지. 부상으로 정신이 혼미할 때 동의서에 사인시키려고 한 적도 있었고.”
“…….”
“나중에는 타협안이랍시고 장기 기증서까지 들고 오고…… 아마 완등자가 안 됐으면 지금도 찾아왔을 거다.”
질린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하백연의 모습에 이세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탐구자가 정상이 아니라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설마 저 정도로 나사가 풀려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주의해야겠네. 아카샤도 자주 체크하고.’
이세훈이 다시 한번 다짐하고 있을 때. 하백연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미 만났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그냥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물어본 겁니다.”
“흐음…….”
미심쩍게 바라보는 하백연의 모습에 이세훈이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표정을 관리했다.
원래는 탐구자의 시체나 『여명』에 관해서도 말할까 싶었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썩 좋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나를 위한다고 뺏어갈 수도 있으니까.’
지금으로써는 하백연도 탐구자의 죽음을 모르고 있었다는 정보에 만족하는 것이 좋으리라.
“뭐, 흔적이 없는 걸 보니 만났을 리는 없겠군. 아무튼 그 자식은 만나면 조심해. 알겠어?”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아, 그래. 계획은 정확히 언제쯤이지?”
하백연의 물음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아마 2주 안에는 실행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미르에게 환락가를 잘 살펴보라고 했으니 조만간 반응이 올 것이다.
이세훈의 대답에 하백연이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해두고 있으마. 이제 가봐라. 뒤에서 목 빠지게 기다리는 놈도 있으니까.”
“예?”
하백연의 이야기에 뒤를 돌아보자 계단 부근에 서 있는 마광수와 하선우가 눈에 보였다.
앞의 사격을 본 것인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 있는 두 사람.
특히 마광수는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 모습에 이세훈이 피식 웃었다.
“빨리 가봐야겠네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얼른 가라는 듯 손을 내젓는 하백연. 그 모습에 이세훈이 고개를 꾸벅인 다음 마광수에게 향했다.
“이제 돌아가죠. 교수님.”
“……그래.”
조용히 대답한 마광수가 계단 아래로 터덜터덜 내려갔고, 이세훈이 옆에서 멍하니 보고 있는 하선우를 바라보았다.
“다음에 보자. 사질.”
“아, 예.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두 사람은 아래로 향했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하선우가 조심스레 하백연에게 다가갔다.
“저…… 고모할머님.”
“뭐냐?”
하백연의 물음에 하선우가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히 물었다.
“혹시 이세훈 생도에게 권능을 전수하신 겁니까?”
자신이 알고 있는 이세훈의 기량으로는 절대로 방금과 같은 위력을 낼 수 없다.
그런데도 그게 가능했다면 남은 것은 단 하나.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만들어내는 완등자의 권능밖에 없는 것이다.
“전수보단 빌려준 것에 가깝지.”
“아. 그렇…….”
“하지만 조만간 쓸 수 있게 될 거다. 그런 녀석이니까.”
“…….”
확신에 가까운 하백연의 말에 하선우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완등자에게 권능을 전수받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던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세훈 생도에게 그만한 재능이 있다는 건가…….’
본래라면 협회에 곧장 보고했어야 할 사안이지만, 조사관으로서 참가한 자리가 아니었기에 또 고민되었다.
그에 하선우가 속으로 갈등하고 있을 때. 잠잠해진 천지를 내려다보던 하백연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혼란스러워지겠구나.”
“예?”
“얼마나 혼란스러워질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야.”
고개를 들어 올린 하백연은 백두산의 정상, 그 너머로 보이는 전 세계를 눈 안에 담았다.
자신들에 의해 유지되어 왔던 불완전한 평화. 그 냉전이 깨어질 조짐이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이 혼란의 끝은 어떻게 될까…….’
두 눈을 감은 채 그 미래를 내다보던 하백연은 고개를 더 올려 하늘 너머를 보았다.
“……내려가자.”
그리고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몸을 돌려 계단 아래로 향했다.
* * *
쿠구궁─
공간 전체에 울리는 거대한 진동. 그와 동시에 보랏빛 연기가 지상에서 요동치더니 거대한 건물의 뼈대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허허벌판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만들어진 거대한 단지. 그 모습을 바라본 뿔이 돋아난 마인, 20번 구역장이 박수를 치며 일꾼들에게 소리쳤다.
“자자. 내일이면 입주민들 올 테니까 빨리빨리 만들자고!”
구역장의 외침에 평상복 위에 작업조끼만 대충 걸쳐 입은 일꾼들이 우르르 움직였고, 뼈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던 건물들을 빠르게 다듬기 시작했다.
그 비정상적인 건설 속도에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청년, 아미르가 묘한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수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구획이 이렇게 간단하게 만들어지다니…….’
건물 완공에 걸리는 시간이라고 해봐야 이틀. 그 뒤에 입주민들이 가구를 챙겨서 들어오면 순식간에 작은 동네 하나가 완성되는 것이다.
바깥에서는 볼 수 없는 비정상적인 속도. 그 광경을 바라보던 아미르는 자연스레 일꾼들이 챙기고 가는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하나씩만 들고 가세요.”
끝에 녹빛의 보석이 끼워져 있는 보라색 완드.
환락가를 구성하는 몽환의 마력을 제어해서 건물을 가공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 ‘드림툴’로 바르무트 가문이 새롭게 개발한 물건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 활동이기에 증거는 따로 없었지만 현 가주의 차남인 펠릭스 바르무트가 자주 오가는 것만 봐도 확실했다.
‘본래 주력 분야였던 연금술은 여전한가 보군.’
차기 가주가 바뀌면서 기존의 무구산업 대신 연금술을 중점으로 다시 공격적으로 움직인다는 게 아무래도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외부에서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정보에 아미르가 유심히 살펴보고 있을 때. 일꾼들을 지시하던 구역장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뭔가 걸리는 거라도 있나?”
몽환마의 힘을 하사받은 구역장들은 환락가에서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직속 비서들만큼은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직속 비서라는 직책 자체가 몽환마의 뜻에 따라는 도구 같은 위치다보니 자칫 잘못하면 주인의 뜻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점검 항목 중에 새로 보급된 드림툴의 성능을 확인해 보라는 항목이 있어서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아. 저 마술봉?”
“예. 구역장님이 보시기에 어떠셨습니까?”
일꾼들이 건네받고 있는 드림툴을 바라본 구역장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이전에 온 것들보다 성능이 더 좋아진 것 같긴 하네. 버벅거림이 줄어들었다고 해야 하나?”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음…… 아마 이전에 보급된 물건이었으면 완공까지 반나절은 더 필요했을 거야.”
“차이가 상당하군요.”
구역장의 이야기를 들은 아미르는 빠르게 완성되어가고 있는 현장을 살피다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 점검은 이 정도면 된 것 같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가라고.”
노골적으로 기뻐하는 구역장을 뒤로한 채 아미르는 다음 공사 현장으로 향하면서 눈매를 찌푸렸다.
‘증축 프로젝트의 진행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빨라지고 있어……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건가?’
손을 써뒀으니 자연스레 징조가 보일 것이라고 했지만 어딜 봐도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가 몽환마의 계획이 먼저 완성하는 게 아닌가 싶어 아미르가 초조함을 느끼던 그때.
쿠궁─
“……?”
뒤편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진동.
건물이 완성될 때마다 울려 퍼지는 익숙한 소리였지만, 아미르는 왠지 모를 기시감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쾌청한 하늘. 바깥이라면 그리 이상할 것 없지만, 문제는 이곳이 환락가라는 것이었다.
‘저건…….’
아미르가 놀란 눈으로 보고 있을 때. 쾌청하던 하늘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우중충한 보랏빛 안개로 뒤덮인다.
그 광경에 아미르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내리며 주변을 살폈고, 방금 상황에 자신만 반응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동천안?’
타인의 감정과 심상을 볼 수 있는 자신의 고유스킬. 하지만 생명체도 아닌 대상에게 어째서 발동된 것일까.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쿠궁─
이세훈의 계획이 환락가 안쪽에서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