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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220화 (220/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20화

이른 아침.

아공간 터미널에 도착한 이세훈은 로비의 의자에 앉은 채로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24시간 언제나 붐비는 터미널 내부.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들을 한 몸에 받으며 이세훈은 어젯밤 하백연과의 통화를 떠올렸다.

‘얼굴이나 보자라…….’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평범한 말이지만, 상대가 원견사 하백연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에베레스트 위에서 전 세계를 내려다볼 수 있는 괴물. 그 독보적인 시야 때문에 원견사는 사람을 상대할 얼굴을 맞대는 경우가 잘 없었다.

상대에게 흥미를 느끼면 전화, 아니면 화살에 편지를 달아서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이 전부인 것이다.

‘그런데 나보고 얼굴을 보자고 이렇게 불렀단 말이지.’

회귀 전에 마신들과의 전쟁 중에도 겪어본 적 없는 상황이기에 좀처럼 하백연의 의중을 짐작기가 어려웠다.

나중에 만나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이세훈이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하아…….”

뒤쪽에서 여러 감정이 담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자다가 끌려 나온 사람처럼 얼굴에 불만이 줄줄 흘러내리는 노인, 마광수의 등장에 이세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은 아침입니다. 교수님.”

“…….”

이세훈의 인사에 마광수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 좋아 보이냐?”

“……안 좋아 보이시네요.”

“근데 왜 좋은 아침이라고 해. 나한테 시비 거냐?”

아침부터 말꼬투리를 잡아대는 마광수의 모습에 이세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세 살짜리 애도 아니고…….’

유치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지만, 윗사람이 저렇게 물고 늘어지면 뭐라고 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하백연이 부탁한 거긴 하지만 자신을 호위하기 위해서 이른 아침부터 나온 것이니 이세훈은 너그럽게 넘어가기로 했다.

“앞으로는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쯧.”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본 마광수가 B급 위험지역의 개찰구로 향했고 이세훈도 곧장 그 뒤를 따라갔다.

[이세훈 생도. B급 위험지역 진입허가가…….]

“동행.”

[마광수 교수. B급 위험지역 동행 확인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순서대로 생도증과 신분증을 가져다 대며 개찰구를 넘어섰고, 통로를 따라서 들어가자 금방 푸른색 게이트가 보였다.

그동안 이용해 온 게이트들과 똑같은 모습. 하지만 그 주변을 살핀 이세훈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저건…… 뭐지?’

푸른색 게이트 안쪽에 그어져 있는 새하얀 빗금무늬.

어디서 본 것 같은 그 익숙한 감각에 잠시 감각을 집중하던 이세훈은 금방 그 정체를 알아차렸다.

‘아. 여백으로 만들어낸 건가.’

구조를 보건대 게이트를 보조하는 용도로 보였는데 그 형태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여태까지는 게이트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루트비히가 하나하나 다 손을 써놨던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두면 확실히 다른 공간능력자들이 뭘 해보려고 해도 소용없겠네.’

여백을 다룰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면 게이트 내부에 간섭을 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으리라.

회귀 전에 아공간 터미널이 멀쩡했던 이유를 알게 된 이세훈은 그 구조를 살피면서 게이트를 넘어섰다.

“빨리 좀 움직여.”

먼저 넘어갔던 마광수가 신경질적으로 이야기했고, 그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지금 바로 갑니다.”

마광수와 함께 터미널 밖으로 나온 이세훈은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장벽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산맥. 푸른 하늘 아래로 보이는 자연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는데 산 곳곳에 껴 있는 오색 구름들이 신비로움을 더했다.

‘여기도 오랜만이구만…….’

B급 위험지역 백두산白頭山.

과거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유명했고 지금은 특수한 위험지역이자 하백연의 본가가 자리 잡은 장소로 유명한 곳이었다.

회귀 전에도 몇 번이고 봤었던 백두산의 모습에 이세훈이 가만히 쳐다보고 있을 때. 마광수가 귀찮은 표정으로 뒤돌아보았다.

“등산에서 벗어나면 위험하니까 헛짓거리하지 말고 얌전히 따라와라. 알겠냐?”

“알겠습니다.”

“따라와.”

두 사람은 곧장 동쪽으로 향했고 잠시 후 출입구와 연결되어 있는 등산로와 함께 안내판이 나타났다.

[하백문(2600m)->]

정상 부근에 위치한 하백연의 본가 ‘하백문夏白門’.

그 안내판을 지난 두 사람은 곧장 깔끔하게 닦인 등산로를 타고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후웅!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자연스럽게 밀려오는 묵직한 공기. 다른 위험지역이라면 마기가 담겨 있기에 잠시 적응 기간이 필요했지만, 백두산은 조금 달랐다.

마기에 침식당한 위험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마력으로만 가득 차 있는 대기. 백두산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상태에 이세훈이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때도 분위기는 거의 비슷했네.’

올라가는 길목에 하나둘씩 보이는 영웅들.

가볍게 뜀박질을 하며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사람들도 꽤 있었고, 공터 쪽에 아예 돗자리를 깔고 눕거나 앉아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동네 뒷산에 놀러 온 듯한 기묘한 분위기. 위험지역의 내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평화로운 광경에 이세훈이 여유롭게 살피던 그때.

“크흠.”

앞서 걸어가던 마광수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위르겐 그놈한테 뭘 배우고 왔다던데……. 진짜냐?”

“예. 조금 배우고 왔습니다.”

이세훈의 대답에 마광수가 잠시 말없이 걷더니 다시금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그래서 뭐, 쓸 만해? 그놈 그거 성격이 더러워서 뭐 하나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을 텐데.”

1세대 영웅답게 위르겐과도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것일까. 걱정이 섞인 마광수의 물음에 이세훈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저는 유용하게 잘 쓰고 있습니다.”

“……그래?”

“예. 그리고 천운철의 제련 작업도 도와주신 덕분에 무구를 완성…….”

“뭐?”

고개를 훽 돌린 마광수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뭐, 뭘로 뭔 만들어?”

“천운철로 무구를 만들었다고요. 한번 보실래요?”

후웅!

이세훈의 부름에 경계를 가르고 나타난 압그룬트. 자신의 눈앞으로 날아온 칠흑의 검을 살핀 마광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게…… 무슨…….’

전설등급에 위르겐의 권능인 경계의 힘이 서려진 무구.

완성도도 완성도지만 마광수가 무엇보다 놀란 것은 위르겐이 이걸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는 사실이다.

‘그놈이 자기 권능을 무구에 담아줬다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만 그 결과가 눈앞에 뻔하니 있으니 부정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근데 이렇게 만들면 경계의 권능을 사용할 줄 알아야 제대로…….’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에 자연스럽게 해답이 떠올랐고, 마광수가 두 눈동자를 파르르 떨며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너…… 설마 권능을 배워 온 거냐?”

“예. 조금 배웠습니다.”

본인의 자식들에게도 자격이 없으면 가르쳐 주지 않는 권능. 그것을 타인, 그것도 대장장이인 이세훈에게 가르쳐 줬다는 사실에 마광수는 오싹함을 느꼈다.

천충검을 배워볼 생각은 안 하고 위르겐이나 하백연한테만 쫄래쫄래 가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서 살짝 짜증을 냈는데 생각보다 상황이 더 심각했던 것이다.

‘내 천충검이 모자란 건 아니지만……. 이건 좋지 않아.’

완등자의 기술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건 아니지만 본래 이름값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

천충검의 전수에 큰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낀 마광수가 압그룬트를 돌려주며 헛기침했다.

“크흠. 그래도 너무 가깝게 지내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친해지면 피곤한 놈이니까.”

“아아. 안 그래도 갑자기 맞선 볼 생각이 없냐고 하셔서 조금 당황하긴 했어요.”

“……혹시 사업체도 준다고 하던?”

“할 생각 있으면 연락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세훈이 생각 이상으로 위르겐에게 잘 보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마광수가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함부로 연락하지 마라. 완전히 미친놈이니까.”

“그래요?”

“그래. 이런 말하면 뭐하지만 기본적으로 완등자란 놈들은 죄다…….”

카앙!

이야기하던 마광수가 재빠르게 옆으로 손날을 휘둘렀고, 푸른색 화살이 반 토막 나면서 허공에 흩어졌다.

갑자기 끼어든 훼방꾼에 두 사람이 묘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이세훈의 휴대폰에 진동이 울려 퍼졌다.

[주접떨지 말고 빨리 올라오라고 해라.] - 하백연

“……주접떨지 말고 빨리 올라오시라는데요?”

하백연의 전언에 정상을 노려보던 마광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가자. 더 쏠라.”

“예.”

두 사람이 다시금 부지런히 등산로를 올랐고, 잠시 후 하백문의 현판이 걸려 있는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던 도복의 사내, 하선우가 두 사람을 맞이하며 고개를 숙였다.

“두 분 모두 먼 길 오시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본가의 손님으로서 맞이해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욱 깍듯하게 인사하는 하선우. 회귀 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 그 모습에 이세훈이 신기해하며 고개를 꾸벅였다.

“오랜만에 뵙네요.”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사숙.”

공손한 하선우의 대답에 이세훈이 뒤늦게 배분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익숙지가 않으니 자주 까먹네. 어르신은?”

“고모 할머님은 ‘천지정天池亭’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하선우가 거대한 문을 열며 앞장섰고, 두 사람이 그 뒤를 따라서 안쪽으로 들어섰다.

산봉우리까지 쭉 이어지는 계단과 그 양옆으로 지어진 한옥들. 문밖에서 보이던 풍경과 완전히 달랐는데 대기의 흐름을 살펴보니 결계를 펼쳐둔 것으로 보였다.

‘회귀 전에는 요새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때는 은신처 같은 느낌이었네.’

하선우를 따라서 계단을 오르던 이세훈은 주변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겉으로 보이는 이들도, 몸을 숨긴 이들도 전체적으로 수준이 뛰어나다.

흔히들 하백문을 하백연의 휘광에 얹혀 가는 그저 그런 집단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조금 다르다.

규모는 작아도 순수하게 무력으로 따지면 염화문보다 뛰어나며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것이 바로 하백문이기 때문이다.

“정운이 그놈은 어디 갔냐?”

“문주님은 영웅협회에 호출을 받아 잠시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협회인가. 쯧……. 보나 마나 귀찮은 일이겠구만.”

마광수의 대답에 하선우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중요한 안건이니 어쩔 수 없지요. 그런데…….”

이세훈을 슬쩍 바라본 하선우가 조심스레 물었다.

“사숙께서는 오늘 무슨 일로 찾아오신 겁니까?”

개인적으로나 조사관으로서나 오늘의 만남에 대해 궁금해하는 듯한 하선우. 그 모습에 이세훈이 담담히 대답했다.

“글쎄. 나도 어르신이 얼굴 좀 보자고 하셔서 온 거라.”

“고모 할머님께서…….”

하백연이 먼저 얼굴을 보자고 하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알고 있는 하선우가 진중한 표정을 지었고, 마광수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혹시 뭐 가르쳐 주거나 그러면 섣불리 배우지 마라.”

“예?”

“새로운 걸 너무 연달아 배우면 어중간해져서 빈틈이 생기기 쉽다. 그보다는 알고 있던 기술을 갈고닦는 게 좋아.”

또 화살이 날아오는 게 아닐지 정상 쪽을 힐끔 보면서 이야기하는 마광수. 그 모습에 이세훈이 속으로 슬쩍 웃었다.

‘아침부터 왜 그렇게 난리인가 했더니 그런 거였구만.’

살다 살다 마광수가 질투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성질 고약한 노인네가 그러는 모습이 썩 보기 좋지는 않았지만 이해가 가긴 했다.

도플갱어를 찾을 수 있는 유용한 놈을 찾아냈는데 다른 놈들한테 홀라당 넘어가면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근데 그러면 그냥 그렇다고 말하면 될 것이지 그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쯧쯧.’

속으로 혀를 찬 이세훈은 불안해하는 마광수의 모습에 담담히 이야기했다.

“그것도 그렇죠. 안 그래도 당분간은 기존의 기술들을 갈고닦을 생각이었습니다.”

“크흠. 그래. 뭐가 유용할지도 잘 생각해 보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세 사람이 계단의 끝자락에 도착했고, 산봉우리 위에 지어진 작은 정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새하얀 코트에 중절모를 걸친 뒷모습. 그에 세 사람이 다가가려던 그때.

“거기까지.”

하백연이 왼손을 들면서 멈춰 세웠다.

“광수랑 선우는 내려가서 기다리고 있어.”

뒤도 안 돌아보고 명령조로 이야기하는 하백연의 모습에 마광수의 눈매가 팍 찡그러졌다.

“내가 무슨 동네 똥개…….”

“쓸데없는 소리하면 도플갱어 찾는 거 안 도와준다.”

“……쯧.”

하백연의 이야기에 마광수가 잠시 노려보더니 이내 혀를 차며 아래로 내려갔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하선우도 아쉬워하면서도 순순히 내려갔고, 홀로 남은 이세훈이 하백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까딱까딱.

이리 오라는 듯 검지를 까딱이는 하백연.

그 뒷모습에 이세훈이 정자로 다가갔고 자연스럽게 정상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백두산의 분화구에 차 있는 오색빛깔의 호수. 마기의 침식으로 변질된 ‘천지天池’의 모습에 이세훈이 잠시 동안 내려다보았다.

‘회귀 전이랑 비교하면…… 조금 맑나.’

아주 미묘한 차이를 비교하며 보고 있을 때. 정자에 앉아 있던 하백연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천지는 처음 보겠군.”

“아, 예. 사진으로만 몇 번 봤습니다.”

“마기에 침식되면서 이전보다 훨씬 예뻐졌지. 사람을 집어삼키는 구름을 만들어내지만 말이야.”

백두산 곳곳에 맺혀 있던 오색구름.

멀리서 볼 때는 신비롭게 보일 뿐이지만, 그 실체는 살아 있는 생물에 달라붙어 전신을 녹여 버리는 흉악한 구름이었다.

백두산이 B급 위험지역이 된 이유이자 몬스터가 한 마리도 없는 이유. 지금은 정보가 알려져 피해자가 거의 없지만 과거에는 수많은 영웅들을 죽인 것으로 유명했다.

“서 있지 말고 앉아.”

“알겠습니다.”

천지정이라 불리는 정자의 안으로 들어온 이세훈은 자신의 대각선에 앉아 있는 하백연을 바라보았다.

하얀색 중절모에 한 줄기로 묶은 긴 머리카락. 옷은 하얀색 코트 안에 검은색 조끼와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키가 180이 넘는 데다 다리까지 길어서 그런지 상당히 잘 어울렸다.

‘온통 하얀색이라더니 진짜네.’

소문으로만 들었던 하백연의 모습에 이세훈이 신기하게 보고 있을 때,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하백연이 슬쩍 웃었다.

“신기한 동물을 보듯이 보는구나.”

“그렇지는…….”

“변명할 필요 없다. 원래 완등자처럼 인간 같지 않은 놈들은 그런 눈으로 볼 수밖에 없으니까. 나나 다른 녀석들도 그런 건 신경 안 쓸 거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자신이 실수했나 싶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겠지만, 이세훈은 그게 비꼬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도 그럴 것이 회귀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전화를 통해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비슷…… 아니, 완전히 똑같아.’

고위 영웅쯤 되면 심상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기에 성격이나 가치관이 잘 변하지 않지만, 그래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예외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눈앞의 하백연, 정확히 말해서는 완등자들이었다.

‘수십 년 뒤와 지금이 전혀 차이가 없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이게 정말 한결같다는 말로 넘길 수 있는 걸까. 완등자들의 심상이 얼마나 견고한 것인지 이세훈이 의문을 느끼던 그때.

“잡단은 여기까지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하백연이 이세훈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이야기했다.

“솔직하게 말해도 되고, 거짓말을 해도 상관없다. 다만 네가 한 말에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거야.”

담담한 말투 속에서 느껴지는 서늘함. 그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지.”

두 눈을 감은 하백연이 이세훈을 바라보며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주시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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