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18화
기숙실로 빠져나오기 무섭게 떠오른 알림창.
딱 봐도 심상치 않은 이름에 이세훈은 곧장 그 정보를 살펴보았다.
[여백의 휘장]『A』
완등에 성공한 절대자, ‘루트비히 슈베르트’의 기술.
자신 주위의 공백을 연결하여 여백을 형성할 수 있으며 마력을 소모하여 휘장의 형태로 제어할 수 있습니다.
여백을 두르는 것으로 공간능력에 강력한 저항력을 가지며 공간 자체에 간섭할 수 있습니다.
*여백을 형성, 제어할 수 있습니다.
*여백을 두르는 것으로 공간능력에 강력한 저항력을 가지며 일정이하의 공간능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습니다.
*여백이 둘러진 공간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
새롭게 습득한 스킬 ‘여백의 휘장’을 살펴본 이세훈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공간능력의 상위호한인 줄 알았는데…… 뭔가 느낌이 다르네.’
이세훈이 예상한 것은 여백을 다룰 수 있게 됨으로써 공간도 겸사겸사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그와 거리가 멀었다.
상위호환이라기보다는 비슷하면서도 상극인 느낌 .
그 내용에 이세훈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때.
“ 야!”
바로 옆에서 우렁찬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 들리니까 작게 말해도 돼.”
“그래? 후우……"
피곤한 표정으로 목을 쓰다듬는 마누엘의 모습을 보고 이세훈이 거실에 있는 시계를 살펴보았다.
‘내가 온 시간을 생각하면…… 2시간은 지난 건가.’
집중 상태에 들어가면 종종 이런 일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공간을 인지하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던 모양이다.
“도대체 뭘한 거냐?”
“글쎄. 나도 확인해 봐야 알겠네.”
여백에서 빠져나오긴 했지만 기숙실은 어떨지 아직 장담할 수 없다.
현관문으로 향한 이세훈은 곧장 문고리를 잡았다.
철컥!
별다른 저항 없이 열리는 문. 평범한 복도의 풍경을 본 이세훈은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됐다.’
자신은 기숙실에 갇힌 것이 아니라 거기에 겹쳐져 있던 여백에 갇혔던 것이기에 바깥을 오가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다.
복도 바깥을 잠시 살펴본 이세훈은 다시금 고개를 돌려 현관문 안쪽을 바라보았다.
"-------"
허공에 두 손을 짚은 채 뭐라고 이야기하는 마누엘.
마임이라도 하는 것 같은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이세훈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
그 모습이 뭔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마누엘이 허공을 두드리기 시작했는데 무섭기는커녕 더 웃기기만 했다.
‘크흠. 너무 비웃으면 안 되지.’
회귀 전의 단골이기도 하고 인연도 만들어야 하니 너무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좋지 않다.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진정시킨 이세훈은 흥분한 마누엘에게 뒤로 물러서라고 손짓한 뒤 다시 기숙실 안으로 들어섰다.
“성공한 거 맞네.”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이세훈. 그 모습에 마누엘은 잠시 멈칫하더니 화를 가라앉히며 물었다.
“어떻게 한거냐?”
자신은 일주일 넘게 손도 못쓰던 것을 방에 들어온 지 1 시간도 채 안 돼서 해결해 버리다니.
너무 압도적이다 보니 자존심이 상하다기보다는 눈앞의 녀석이 이상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으음. 설명하기가 좀 난해한데 그냥 간단하게 해결하는 건 어때.”
“간단하게?”
“내가 널 여기서 꺼내주는 거지.”
벌써 일주일이 넘게 기숙실에 갇혀 있는 상황.
마누엘의 성격상 밖으로 못 나가는 것까지는 그러려니 하겠지만 뭔가 배우려고 왔는데 아무것도 못 배우는 것은 상당히 짜증나리라.
“ 흐음........"
그런 이세훈의 물음에 마누엘도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런 도움은 필요 없어."
“재수 없으면 방학 내내 갇혀 있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담담하게 대답한 마누엘이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실패하면 실패했지 도망치고 싶진 않아.”
"........"
“잘 가라.”
할 말을 끝내고 다시 거실로 향하는 마누엘. 그 뒷모습을 바라본 이세훈은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릴때도 똑같았네.’
회귀 전의 웨폰마스터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한 번 목표를 잡으면 성공할 때까지 도전하였다.
그런 도전적인 성향이야말로 웨폰마스터를 S급으로 만들어낸 비결이었지만, 반대로 그것이 괴검에게 살해당하는 원흉이 기도했었다.
‘……어쨌든 이걸로 대강 정리는 됐구만.’
웨폰마스터, 지금의 마누엘이 어떤 인물인지 확실히 파악한 이세훈은 거실로 들어섰다.
“ 뭐야?”
막 소파에 누우려던 마누엘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이세훈이 맞은편에 앉았다.
“공간을 벨 수 있게 도와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이세훈의 이야기에 마누엘이 몸을 일으키면서 마주보았다.
“ 말해봐.”
“첫 번째 조건은 다음에 내가 도와달라고 하면 한 번은 군말 없이 도와주는 거야.”
상당히 애매한 조건. 그 내용에 마누엘이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청부살인 같은 건 아니겠지?”
“불법적인 일은 안 시킬 테니까 걱정 마.”
“뭐, 그렇다면야……"
다른 것도 아니고 공간을 벨 수 있게 되는 건데 그 정도야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고개를 끄덕이는 마누엘의 모습에 이세훈이 다음 조건을 이야기했다.
“두 번째 조건은 아까 내 뒤통수에다가 휘둘렀던 노란색 검을 빌려주는 거야.”
“뭐?”
예상치 못한 조건에 마누엘이 놀란 표정을 짓자 이세훈이 설명을 이어갔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흥미가 생겨서. 방학 동안만 살펴보고 돌려줄게.”
사실은 몽환마와 싸울 때 유용하겠다 싶어서 챙기는 거지만, 굳이 그걸 모두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어찌 됐든 잘 쓴 다음에 깔끔하게 손질해서 돌려주면 그만 아닌가.
“……좋아. 네가 굳이 이런 걸 훔치진 않을 테니까.”
오랜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린 마누엘이 아공간 포켓에서 노란색 무늬가 새겨진 원통형 막대기를 꺼냈다.
처음 보았던 칼날을 온데간데없는 모습.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던 이세훈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뭔가 했더니 연금 무구였었네. 어디서 난 거야?”
여러 형태로 변형하는 것이 가능한 연금 무구. 회귀 전 웨폰마스터의 주력 무구였는데 이만큼 잘 만들어진 물건은 보기가 힘들었다.
“이번에 새로 계약한 스폰서한테 받은 물건이다.”
“스폰서라면…… 바르무트?”
“아니. 그쪽은 전 스폰서. 지금은 다른 곳이야.”
“……그렇구만.”
마누엘의 대답에 이세훈이 슬쩍 웃었다.
본래 웨폰마스터는 바르무트 가문과 스폰서 계약을 맺고 그들로부터 연금 무구의 시제품을 지원받았다가 폭발 사고가 일어나 가슴에 큰 흉터가 생겼었다.
그게 바로 이세훈이 입학 초기에 노블레스 교류회에서 잠깐 가지고 놀았던 ‘철장’이었는데 미래가 바뀌면서 아예 없던 일 이 된 것이다.
‘바르무트 가문이 휘청거리니까 옮겼나 보구만.’
연금무구를 챙긴 이세훈은 나중에 살펴보기로 하며 다음 조건을 꺼냈다.
“그리고 세 번째.
“너무 많은 거 아냐?”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참고 들어.”
“ 흐음......"
내키지 않아 하는 마누엘의 모습에 이세훈이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훈련에 얌전히 따를 것. 이게 마지막 조건이야”
별다른 친분도 없는 상대에게 훈련으로 자신의 몸을 완전히 맡긴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게 가장 거부감이 강할 수도 있었지만, 마누엘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당연하지.”
애초에 어떤 훈련이든 받아들일 각오를 했기 때문에 조건을 들어보기로 한 것이고, 무엇보다 생도가 짠 훈련에 기겁할 만큼 나약하지는 않다.
“흐음…… 그래?”
자신감 넘치는 마누엘의 대답에 이세훈이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이내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그럼 다행이네.”
* * *
우우웅
끝없이 펼쳐진 새하얀 공간, 여백의 안쪽에서 황금빛의 구체가 찬란하게 빛났다.
타오르는 태양조차 반딧불로 만들만큼 찬란한 빛. 그 엄청난 힘을 올려다본 루트비히가 천천히 오른손을 뻗었다.
꾸우욱一
앞으로 내밀어진 오른손으로 천천히 움켜쥐어졌고, 그 정도에 따라서 황금빛의 구체가 압축되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루트비히의 오른손이 완벽히 쥔 순간.
파앙一!
충격파와 함께 황금빛이 하나의 점으로 변했다.
키이잉
구체의 중심에 떠 있는 작은 점. 그에 루트비히가 손짓을 하자 압축된 결과물이 바로 앞에 나타났다.
중앙에 새하얀 줄이 그어져 있는 황금색 반지.
외형은 상당히 단정했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영웅의 반지]
[등급: 전설] [품질: 중]
최초로 완등에 성공한 절대자, ‘루트비히 슈베르트’가 직접 만든 반지.
세계를 바꾸고자 하는 영웅만이 착용할 수 있는 반지이며 그 능력과 성품에 따라 반지의 성능이 정해진다.
*알 수 없음.
빈약한 설명과 제대로 정리되지도 않은 효과.
언뜻 보기에는 실패작처럼 보일 정도였지만 루트비히는 오히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군.”
이 정도라면 보상으로 적절하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며 루트비히가 영웅의 반지를 챙기고 밖으로 나서려던 그때.
멈춰라.
등 뒤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울림.
순수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뿐인데도 그 힘이 주변의 공간을 모조리 짓누르듯이 펼쳐진다.
그 지독한 압력 속에서 루트비히가 아무렇지 않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꼭 그렇게까지 반대해야겠소?”
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 그게 연구 성과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말이야.
쿠구궁!
불쾌감을 드러냈을 뿐인데도 다시 한번 공간이 크게 요동친다.
S급 영웅들도 견디기 힘들 그 힘의 압력 속에서 루트비히가 눈매를 매만졌다.
어지간한 불평은 습관 같은 것이기에 그냥 흘려들으면 그만이지만, 이렇게까지 반대할 때는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철저해서 나쁠 건 없지만…… 조금 피곤하기도 하군.’
어찌 됐든 함께 만들어낸 것이니 그 지분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좀 더 설득해 보기로 한 루트비히가 등 뒤의 목소리에게 이야기했다.
“그대도 직접 봤으니 알지 않는가. 이 정도까지는 충분히 허용할 수 있는 투자일세.”
아니. 나는 반대다.
루트비히의 말을 단칼에 잘라낸 목소리가 이야기했다.
그놈은 너무 이질적이다. 특히 네놈의 권능, 그중에 여백만 이해하고 습득한 건 정상이 아니야.
뛰어남을 넘어서 이제는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재능. 루트비히는 그것을 유용하다고 판단했지만 목소리는 반대로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마음과 같아서는 당장 그놈을 죽여 변수를 없애고 싶지만…… 그건 네놈이 허락하지 않겠지. 그러니 이 정도로 타협해라.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한 확고한 의지. 예상보다 격렬한 반대에 루트비히가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그럼 이건 어떤가? 반지에 금제를 걸어서 우선은 기능을 제한하는 것이지.”
애초에 그걸 주는 것 자체가…….
“금제를 푸는 조건은 두 가지로 하겠네. 첫 번째는 십악에 속한 마인을 한 마리 토벌하는 것."
천천히 몸을 돌린 루트비히가 여백의 안, 목소리의 주인을 올려다보며 이야기했다.
“두 번째는 육대마경에 심어져 있는 근원의 파편을 하나 파괴하는 것. 이거라면 충분하지 않겠소?”
루트비히의 이야기에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고, 목소리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 거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그러니 타협점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하네.”
다시 한번 침묵이 흐르더니 이내 불쾌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쯧…… 꺼져라.
쿠구궁!
밖으로 밀어내는 듯한 거대한 압력.
그 축객령에 루트비히가 미소를 지으며 여백의 바깥으로 나섰다.
후웅!
주변의 풍경이 학원장실로 돌아왔고 루트비히는 시간을 확인했다.
‘12시간 정도 됐나.’
루트비히가 두 사람을 한 장소에 둔 것은 서로를 관찰하고 이상한 점을 알아차리게끔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여백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다른 공간과 겹쳐져 있다는 특수성을 파악해야 했고, 공간을 베기 위해서는 그것이 존재하다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힌트인 상황.
그렇게 상부상조하며 빠져나오는 것이 루트비히의 노림수였지만, 예상보다 이세훈이 빨리 빠져나오면서 상황이 틀어진 것이다.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모양새가 되긴 했지만…… 이것도 나쁘지는 않군.’
과연 어떤 방법으로 가르치고 있을까.
흥미가 동한 루트비히가 보상도 전해줄 겸 상황을 살피기 위해 두 사람이 있는 기숙실로 향했고.
빠악!!
안대와 귀마개를 착용한 마누엘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 이세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커헉……"
복부를 후려 맞고 폐에 있는 공기를 모조리 토해내는 마누엘. 그 모습만 봐도 고통이 절로 느껴졌지만, 이세훈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게 공간이다! 죽기 싫으면 느껴!”
마누엘에게 쉴 새 없이 퍼부어지는 주먹. 거기에 휘감겨진 새하얀 휘장, 여백을 본 루트비히는 그제야 어떻게 된 상황인지 깨달았다.
‘볼 수 없으니 몸으로 느끼게 한다는 건가……'
시각과 청각을 차단해 감각을 극대화시키고 여백을 두른 주먹으로 때려서 간접적으로 공간을 느끼게 만든다.
무식하지만 그만큼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식에 루트비히가 가만히 보고 있을 때.
“자세 무너진……?!”
뒤늦게 루트비히를 발견한 이세훈이 주먹질을 멈췄다.
효율은 그렇다 치고 아무래도 모양새가 그렇다 보니 안 좋게 보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학원장님. 이게 보기에는 그렇습니다만……"
“계속하게.”
“......예?”
예상과 다른 대답에 이세훈이 떨떠름하게 바라보자 루트비히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마누엘 생도에게 딱 맞는 훈련법인 것 같군.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게나.”
"........"
“아아. 그렇지.”
루트비히가 가볍게 손을 휘저었고, 이세훈의 주먹에 감싸져 있던 여백이 살짝 변형되기 시작했다.
뭉툭한 가시가 돋아나 너클처럼 변한 여백.
그에 이세훈이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 루트비히가 미소를 지었다.
“그쪽이 더 효과가 좋을 것 같더군. 해보게나.”
말리기는커녕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루트비히. 그 모습에 이세훈은 확실하게 깨달았다.
‘이 양반도 완등자가 맞긴 하구나.’
루트비히도 절대 정상은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