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16화
[승천제의 반지]
[등급: 전설] [품질: 하]
최초로 완등에 성공한 절대자, ‘루트비히 슈베르트’가 직접 만든 반지.
공간을 다루는 승천제의 권능이 깃들어 있으며 마력을 소모하는 것으로 그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공간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부여된 마법이 변화합니다.
*마력을 소모하여 공간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킬 ‘공간조작’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킬 ‘공간장악’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새롭게 갱신된 정보창의 내용에 이세훈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카샤 때문이 아니잖아?’
상황이 상황인 만큼 당연히 아공간에 넣어둔 탐구자의 오른팔이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했는데 정보창에는 그와 관련된 내용이 일절 없었다.
오히려 승급에 영향을 끼친 것은 공간에 대한 이해도. 제작 중에 여백을 활용한 것이 승천제의 반지를 변화시킨 것이다.
‘부여된 마법도 달라졌네.’
오른손 약지에서 반지를 빼낸 이세훈은 승천제가 안쪽에 새겨놓은 글귀. 그 사이사이에 몇 가지 글자들이 더 추가됐는데 그로 인해 마법이 변한 것으로 보였다.
‘보아하니 기존의 마법들은 공간조작으로 합쳐지고 공간장악이 새롭게 생긴 것 같은데…… 처음부터 염두에 둔 건가?’
승천제의 반지를 연구해서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때마다 새로운 마법들이 나타난다.
보통 이런 장비를 만들어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장비에 의한 사용자의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그리고 두 번째는 장비를 통해 사용자에게 자신의 기술을 체계적으로 전수하기 위해서였다.
‘루트비히는 어느 쪽일까……'
이세훈이 승천제의 반지를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을 때.
옆에서 바라보던 루이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 해? 반지에 뭐 문제라도 생겼어?”
“아. 그런 건 아니고 새로운 기능이 생겨서.”
“그럼 뭐, 제대로 만들어진 거야?”
“일단은 그런 셈이지.”
탐구자의 오른팔도 성공적으로 봉인됐고 자아 역시 아카샤로 안전하게 개조되었다.
이거라면 이전보다 훨씬 편리하게 전 지의 권능을 써먹을 수 있으리라.
거리낌 없이 백과사전을 두드리는 이세훈의 모습에 루이제가 두 눈을 살짝 찌푸렸다.
“으…… 나는 그래도 싫어.”
탐구자, 정확히는 그녀의 육체가『여명」에게 일방적으로 이용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긴 했지만 그런데도 그 존재가 꺼림칙 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목을 침식했던 마력의 근원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이세훈을 침식하려는 미친 짓거리도 벌이지 않았던가.
‘아무리 봉인됐다고 해도 안심이 안 된단 말이지.’
저런 건 그냥 없애 버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렇게 경계심과 혐오감이 뒤섞인 루이제의 반응에 이세훈이 슬쩍 웃었다.
“그거 잘됐네.”
“ 뭐가?”
루이제의 물음에 이세훈은 대답 대신 왼손을 잡은 다음에 손바닥을 펼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손에 들고 있던 승천제의 반지를 올려놓았다.
“당분간네가가지고 있어.”
"......?"
“전에 말했었잖아. 언령마법은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중요하다고.”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에 대한 심상이 견고해지고 그것이 곧 언령마법에 대한 이해도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지금 루이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양한 마법을 다각도로 알려줄 스승.
이세훈은 거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탐구자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니까 아카샤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배워. 헛짓거리 못 하게 단단히 봉인해뒀으니 문제는 없을 거야.”
"........"
이세훈의 설명에 루이제가 복잡한 표정으로 손바닥에 올려진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마음과 같아서는 당장 쓰레기통으로 내던지고 싶었지만, 이세훈의 설명도 충분히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탐구자의 지식을 온전히 가지고 있다면 바벨에 어지간한 교수들보다는 낫겠지……'
다른 마법사들이라면 부작용이고 뭐고 좋다고 받아들였을 상황. 그에 루이제가 한참을 고민하다 이세훈을 보았다.
“너는 필요 없어?”
“나는 체내에 따로 있으니까.”
이번에 만들어낸 아카샤는 탐구자의 오른팔로 만들어낸 것. 체내의 침식된 마력회로는 여전히 존재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탐구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건 위험하다고……"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알아냈으니 괜찮아. 어차피『여명』때문에 없애지도 못하고."
최소한 몽환마를 없앨 때까지는 이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이세훈의 이야기에 루이제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 였다.
“알았어. 한번 써보지 뭐.”
아무리 봐도 꺼림칙하지만, 이 경계심을 계속해서 유지한다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승천제의 반지를 집어든 루이제가 조심스레 끼우던 찰나.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왼손의 약지에 끼워진 반지. 그 모습에 루이제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두 눈을 부릅뜨며 재빠르게 반지를 갈아 끼웠다.
착!
오른손 약지에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가는 반지. 그것을 본 루이제가 반사적으로 이세훈을 살폈다.
“왜? 반지가 커? 크기 조절은 자동으로 될 텐데.”
“……아니. 아무것도 아냐.”
다른 건 몰라도 방금 그걸로 놀림 받았으면 눈이 그대로 돌아갔을 것이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루이제는 승천제의 반지를 살펴보았다.
“근데 진짜 괜찮아? 너 이거 없으면 공간능력 못 쓰잖아.”
“그렇긴 한데…… 그건 또 해결법이 있어서.”
병실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영웅의 탑을 바라본 이세훈이 다시금 이야기를 이었다.
“아무튼 필요한 일 생기면 가지러 갈 테니까 그전까지 열심히 수련해. 반지로 공간마법도 연습해 보고.”
“으음……일단은 알았어.”
공간마법은 자신이 없는지 애매한 표정을 짓는 루이제. 워낙에 어려운 분야라 걱정하는 듯 했지만 이세훈은 잘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회귀 전. 승천제가 죽으면서 아공간 터미널이 마비됐을 때 그것을 불완전하게나마 가동시키며 세계 곳곳으로 이동할 수 있 게 만든 것이 폭견이었기 때문이다.
“너라면 무조건 할 수 있으니까 괜히 의심하지 마. 그런 사고방식도 배우는데 방해되니까.”
“……의심한적 없거든?”
살짝 퉁명스럽게 바라보는 루이제. 그 모습에 이세훈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난간다. 용건 있으면 연락하고.”
“네네. 알겠으니까 잔소리 그만하고 빨리 가기나 하세요.”
손을 휘젓는 루이제의 모습에 이세훈이 쓴웃음을 지으며 병실 밖으로 나갔다.
"........"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한 루이제는 그대로 자신의 오른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슬쩍 바라보았다.
‘전에 뉴스 보니까 그때도 끼고 있던데.’
특이한 형태는 아니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괜한 생각에 루이제가 반지를 슬쩍 만져보려던 그 때.
“ 아참."
“으앗?!”
갑자기 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 이세훈. 그 모습에 루이제가 화들짝 놀라면서 노려보았다.
“아까 까먹고 못한 말이 있어서.”
“또 뭐!”
까칠한 루이제의 모습에 이세훈이 입꼬리를 슬쩍 올려 웃었다.
“왼손 약지에 끼고 싶으면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콰앙!
애꿎은 병실 문만 두드리고 떨어지는 사과. 잽싸게 도망친 이세훈의 모습에 루이제가 부들부들 떨다가 그대로 침대의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
그리고 차마 다른 사람에게 들려줄 수 없는 욕을 베개 속에 퍼부으며 침대 위에서 한참을 펄떡거렸다.
* * *
병동의 정문으로 나온 이세훈은 수치심에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던 루이제를 떠올리며 상쾌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도 안되면서 까불기는……"
회귀 전 삼견도 그렇지만 너무 오냐오냐하면 끝도 없이 기어오르는 법. 조금 건방지다 싶을 때 이렇게 서열정리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재밌기도 하고.’
세 번 써먹으면 반지를 빼서 집어던질 수도 있으니 적당히 틈을 봐서 한 번 정도는 더 놀려먹어도 될 것 같다.
그렇기에 이세훈이 세밀하게 계획을 짜고 있을 때.
“용무는 다 끝났는가?”
아무도 없는 정면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그에 이세훈은 크게 놀라지 않고 대답했다.
“예. 끝났습니다.”
사라락
대답과 동시에 껍질처럼 벗겨지는 공간. 그 너머로 펼쳐진 새하얀 공간, 여백의 풍경에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위르겐이 십악에게 습격당한 곳이 새하얀 공간이라고 했었던가.’
어쩌면 그곳은 이 여백의 안이 아니었을까. 이세훈이 그렇게 추측을 하는 사이 뒤편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이전에는 막연하게 뭔가 존재한다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그 안에서 시선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에 이세훈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학원장님?”
루트비히가 뒷짐을 진채 서 있었다.
당연히 학원장실로 부른다고 생각했던 이세훈이 당혹스럽게 바라보자 루트비히가 슬쩍 웃었다.
“훌륭하군.”
“예?”
뜬금없는 칭찬에 이세훈이 의아해하자 루트비히가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었다.
“지금 이곳에 남아 있다는 것이 훌륭하다는 뜻일세. 이전의 자네였다면 지금쯤이면 학원장실로 이동됐을 테니.”
여백을 인지할 순 있지만 이해하지는 못한 상태.
그것이 얼마 전까지의 이세훈이었는데 불과 몇 달 사이에 여백이 어떤 공간인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 것이다.
“자네가 어디까지 이해했을지 궁금하군. 여백에 대해서 한번 설명해 보겠나?”
갑자기 성취를 확인해 보려는 루트비히. 조금 당혹스럽긴 했지만, 이세훈은 금방 아카샤를 만들면서 느꼈던 부분들을 곱씹으며 대답했다.
“제 생각에는 공간과 공간의 사이……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어떤 공백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공백들이 하나로 이어지면 만들어지는 곳이 이 여백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비유하자면 일종의 착시.
정면에서 볼 때와 측면에서 볼 때 내용물이 완전히 달라지는 특수한 그림처럼 공간 역시 시선에 따라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세훈의 대답에 루트비히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추측이 맞네. 여백이란 보이지 않는 공백의 집합체, 내가 완등자가 되고 나서 발견하게 된 제3의 공간이지.”
위르겐이 완등자가 되면서 망자들의 종착점인 명계를 발견했다면 루트비히는 공간 속에 숨겨진 공간을 발견했다.
그 이야기에 이세훈은 두 완등자 사이에서 한 가지 공통점이 느껴졌다.
‘기존에 없던 세계를 발견했다? 아냐. 그거랑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좀 더 근본적인 곳에서의 변화. 그 의문에 이세훈이 한참 생각에 잠기려던 그때.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까 하네만 괜찮은가?”
“아, 예. 괜찮습니다.”
루트비히의 물음에 어쩔 수 없이 생각을 끊고 대답했다.
“자네를 이곳에 부른 것은 성취뿐만 아니라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일세.”
“ 말씀하시죠.”
“혹시 이번 여름방학 중에 뭔가 큰일을 벌일 셈인가?”
예상했던 것보다 저돌적이 질문. 그에 이세훈은 곧장 대답하지 않고 루트비히와 눈을 마주보았다.
추궁한다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려는 듯한 질문.
그 모습에 이세훈은 지금이 분기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루트비히를 끌어들일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
위르겐과 만났을 때만 해도 루트비히는 끌어들이지 않는다는 쪽이었지만, 방금 대화로 조금이지만 가능성이 생겼다.
루트비히도 완등자가 되고 나서야 겨우 깨달았다는 여백. 아무리 도움을 받았다지만 그것을 벌써 깨우친 자신은 절대 평범 한존재는아닐 터.
그리고 루트비히의 성격상 이런 연구감을 위험한 곳에 그냥 보내고 싶을 리가 없다.
‘이번 질문도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냐는 질문이겠지.’
어느 쪽이 올바른 선택인가. 한참을 고민하던 이세훈은 이내 결론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없습니다.”
루트비히의 능력은 분명히 유용하지만, 아직은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이세훈의 대답에 루트비히가 여전히 부드럽게 웃으면서 되물었다.
“정말인가?”
“예. 학원장님께서 걱정하실 정도의 일은 아닙니다.”
당신의 도움은 필요 없다. 그렇게 딱 잘라 이야기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루트비히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되지 않을까 예상하긴 했었지만 정말로 거절당하니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런. 휩쓸릴 뻔했군.’
처음부터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궁금함을 느껴 버리다니. 자신을 다잡은 루트비히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그렇게 판단했다면 그런 것이겠지. 잘 알겠네.”
“예. 걱정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환락가의 공략도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으니 굳이 루트비히의 도움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그렇게 이세 훈이 생각하던 그때.
“하지만 사람마다 기준은 다른 법.”
루트비히가 어딘가 불길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특히 자네는 위기의식이 조금 결여된 것 같더군.”
“그렇지는……"
“자네를 믿고 있지만 이런 것은 확실히 해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 바벨의 학원장이자 자네를 후원하는 투자자로서 간단한 테스트를 치르겠네.”
계속해서 자기 할 말만 이야기하는 루트비히. 그 모습에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이세훈이 다급히 말하려던 찰나.
“탈출하게.”
후웅!
루트비히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학원장님?”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새하얀 공간에 이세훈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 노친네가노망이 났나......'
서로 주고받은 거지 무슨 후원이니 투자자니 거들먹거린단 말인가.
완등자고 나발이고 얼굴에 주먹을 꽂아주고 싶은 충동에 이세훈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있을 때.
“ 뭐야.”
뒤쪽에서 들리는 살짝 놀란 듯한 목소리. 그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에 이세훈이 고개를 돌렸고.
“신참이잖아?”
2학년 학년수석 마누엘 오르테가, 회귀 전의 단골이었던 그가 바닥에 드러누운 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