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12화
"........"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에 이세훈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자신이 탐구자라니. 이건 또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이세훈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몸 상태를 살폈다.
‘정신분열……은 아닌 것 같은데.’
침식당한 마력회로는 경계의 권능으로 깔끔하게 분리되어 있는 상황.
정신이 분열될 수도 없고 그랬다면 먼저 징조가 있었을 것이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세훈이 고민하던 그때. 귓가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나 몰라? 내가 활동을 좀 안 하긴 했어도 나름 유명한 편인데.]
‘……알긴 압니다.’
탐구자 나탈리아 카나예바.
마력과 관한 수많은 이론을 정립시켜 현대에 존재하는 모든 기수의 기반을 만들어낸 천재 마법사.
활동이 왕성하지는 않았지만 만마의 늪과 마기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등 만마전과의 전쟁에서도 완등자다운 활약상을 펼친 인물이었다.
‘다만 당신이 진짜인지는 모르겠네요.’
탐구자의 행적이 묘연하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런 말을 넙죽 믿기는 힘들다.
[그런가? 하긴 나 같아도 안 믿겠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아!]
잠시 고민하던 목소리가 무언가 떠오른 듯 소리쳤다.
[저기 앞에 저 녀석. 오른팔 보여?]
‘보이죠.’
[기다려봐.]
목소리가 잦아들었고, 잠시 후 눈앞의 알렌의 오른팔이 꿈틀거리더니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쪽으로 쭉 뻗은 엄지. 그것만 보면 무슨 장난인가 싶지만, 놀라운 점은 알렌 본인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건......'
[휴…… 아슬아슬했네. 이거면 대충 어떻게 된 건지 알겠지?]
다른 사람이라면 저게 뭐냐고 하겠지만, 회귀 전에 폭견을 통해서『여명」에 대한 정보를 들은 이세훈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당신이 그분이었군요.’
『여명』의 핵심 간부인 리전은 자신들이 추종하는 ‘그분’의 육체를 이식해서 강력한 힘을 얻었다고 했었다.
회귀 전의 폭견은 그걸 단순히 창시자의 몸 혹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물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정체는 바로 실종된 탐구자의 시체였던 것이다.
[아마도 그런 모양이야. ‘그분’이라고 불리는 건 조금 오그라들지만.]
‘오그라든다니…… 마치 관계가 없다는 것처럼 말하네요.’
[그야……어이쿠. 일단 앞에 집중하자고.]
탐구자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자연스럽게 앞을 바라보았다.
"........"
뭔가 묘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알렌. 그 모습에 이세훈이 시선을 피하지도 않고 지그시 바라보며 되물었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이제 막 속삭임을 듣게 되어서 그런지 상당히 흐리멍덩해진 눈.
그 모습에 알렌이 잠시 바라보다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주 잠깐 기묘한 감각이 느껴지기에 ‘계시’라도 들었나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리전도 아닌데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자신이 착각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알렌이 시간을 확인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 봐. 여기서 있었던 일은 누가 물어봐도 대충 얼버무리고. 무슨 뜻인지 알지?”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창고 밖으로 나왔고 알렌이 부른 택시가 집 앞으로 와서 이세훈을 태웠다.
그리고 알렌의 공방으로부터 어느 정도 멀어진 뒤. 이세훈이 다시금 머릿속으로 말을 걸었다.
‘살아 있습니까?’
[응? 죽었는데?]
태연하게 돌아오는 탐구자의 대답.
혹시 저 공간 안에서만 목소리가 들리는 것인가 했지만 지금 모습을 보니 확실하게 자신의 몸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어쩌다가 이런 상태가 된 것일까. 그 의문에 이세훈은 어렵지 않게 답을 찾아냈다.
‘경계의 권능인가.’
『여명』이 다루는 힘은 모두 그분, 탐구자로부터 파생된 힘.
즉, 이번에 체내에 침식한 마력 역시 탐구자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침식된 마력회로를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집어넣었으니 죽은 탐구자의 정신이 부활하는 것도 마냥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문제는 그게 정말로 가능하냐는 건데……'
마력회로 일부, 그것도 침식현상을 통해 만들어진 어중간한 정도로 완등자의 정신을 부활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위르겐 본인이라면 몰라도 겨우 흉내만 내는 자신이 그것을 무의식중에 해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곰곰이 생각하던 이세훈은 다시금 탐구자에게 물었다.
‘아까 이미 죽은 상태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제 몸에서 부활하신 겁니까?’
[부활? 나 부활 안 했는데?]
무슨 헛소리냐는 듯 되묻는 탐구자. 그 물음에 이세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저랑 대화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으음.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아! 너 내 권능이 뭔지는 알아?]
‘아뇨. 들어본 적 없습니다.’
탐구자의 활동이 워낙에 적다 보니 다양한 마법을 엄청난 규모로 펼친다는 것 이외에는 들은 게 없었다.
이세훈의 설명에 탐구자는 곧장 자신의 권능을 설명했다.
[내 권능은 ‘전지全知’의 권능이야. 이름이 좀 거창하긴 한데 쉽게 말하자면 인공지능 같은 거지.]
‘인공지능……'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을 학습하여 대답해 주는 인공지능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느낌이라고 보면 돼.]
탐구자의 설명에 이세훈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설명만으로도 터무니없는 권능이었기 때문이다.
‘아. 그럼 혹시 제 귓가에 들리던 속삭임도 전지의 권능이었던 겁니까?’
[맞아. 너와 대화하고 있는 나도 그렇고.]
탐구자가 아니라 탐구자의 권능.
그 설명에 이세훈은 자신이 경계의 권능으로 무엇을 되살린 건지 깨달았다.
‘탐구자의 자아였나.’
전지의 권능에는 세상의 모든 지식이 담겨져 있으며 거기에는 탐구자의 지식과 기억 역시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지식과 기억을 알고 있다고 해서 탐구자 본인이 될 수는 없는 법.
거기에 변수로 작용된 것이 경계의 권능을 통해 깃든 ‘영혼’인 것이다.
‘탐구자의 마력에 침식된 마력회로에 명계의 어둠이 스며들어서 자아가 부활했다…… 이거 완전히 언데드구만.’
두 권능이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완성된 결과.
어떻게 보면 우연의 산물이었기에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무구를 만들 때도 이렇게 얻어걸릴 때도 있기는 했지만 설마 죽은 완등자를 되살릴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것도 완전히 믿을 순 없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는 없지.’
어차피『여명』을 속이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 그때까지만 살펴본다면 큰 문제는 없으리라.
‘근데 도대체 뭘 하다가 죽으신 겁니까? 시체는 왜 저런 녀석들이 가지고 있고요.’
[음…….]
이세훈의 물음에 탐구자가 한참 동안 고민하더니 간단하게 대답했다.
[모르겠는데?]
‘……모든 지식을 안다면서요?’
[대충 느낌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진짜로 모든 지식을 알고 있었으면 저렇게 토막 나서 여기저기 붙어 있었겠어?]
"........"
너무 당당한 태도에 이세훈이 어이없어하고 있을 때. 탐구자가 다시금 이야기를 이었다.
[마지막 기억은 만마의 늪으로 잠입할 준비를 하던 게 전부야. 상황을 보면 아마 거기서 죽은 거겠지. 시체는 십악 같은 놈들이 넘긴 걸 테고.]
‘만마의 늪……"
세상을 오염시키는 마기의 근원이자 모든 재앙의 원흉.
탐구자가 그곳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렸다.
주시자와 만마전과의 협력관계를 생각하면 마냥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 당신은 그냥 이용당하고 있는 거고요?’
[이용당한다고 해야 하나 그냥 죽은 다음에 권능이 남아 있으니 저놈들이 주워서 쓰는 거지. 이걸 재활용이라고 봐야 하 나…….]
탐구자는 죽었지만 그 권능은 육체에 깃든 채 남아 있었고 『여명,은 그것을 이용해 탐구자, 그분을 부활시키려한다.
회귀 전에는 알지 못했던 그 비밀에 이세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주시자가 완등자를 부활시키려 한다니…… 삼견한테 말했으면 약 빨았냐고 했겠지.’
여전히 믿기지 않지만 상황을 보면 어느 정도는 맞아 떨어진다.
탐구자의 이야기를 잠시 곱씹던 이세훈이 이어서 물었다.
‘아까 오른팔을 가지고 있던 녀석도 당신과 이렇게 대화할 수 있는 겁니까?’
[흐음. 어쩌다가 한 번씩 문답을 주고받는 건 되겠지만 이렇게 자유롭게 대화하는 건 안 될 거야.]
‘왜 그런 겁니까?’
[너는 내가 정리해서 답만 이야기해 주니까 괜찮지만 저쪽은 연산과정까지 전부 직접 겪어야 하거든. 정보량이 너무 많아서 뇌가 녹아버릴걸?]
‘……살벌하네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완등자의 권능. 조금만 비끗해도 골로 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세훈이 생각에 잠겼다.
‘탐구자와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건 지금으로서는 나뿐이고…… 리전의 몸에 이식된 육체에도 개입하는 것이 가능해.’
회귀 전 폭견의 이야기에 따르면『여명』의 행동원리는 오직 그분, 탐구자의 부활뿐.
자신들이 손해를 보더라도 그것이 부활의 바탕이 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미치광이들이었다.
"........"
차장 너머로 야경을 바라보던 이세훈의 눈이 차분히 가라앉았고 머릿속에 소용돌이치던 생각이 하나로 정리되었다.
그리고 그것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쓸데없는 이야기를 귓가에 속삭이던 탐구자에게 물었고.
[……너도 제정신은 아니구나?]
웃음기를 머금은 대답이 돌아왔다.
* * *
마리오넷 팩토리의 공방.
오토마톤의 생산라인으로 들어온 알렌은 맨 앞에서 뒤따라오는 이들을 바라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오토마톤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상황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인데 이걸 위해서 제작 과정에……"
유리창 너머의 생산라인을 가리키며 차근차근 설명하서도 알렌의 관심은 온통 맨 뒷자리에 위치한 두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왜 이렇게 멍 때려?”
“아. 어제 뭐 좀 생각한다고 잠을 못자서.”
루이제의 짜증에 피곤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이세훈. 겉보기에는 큰 이상이 없었지만, 알렌은 오른팔을 통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밤새도록 속삭임을 들은 건가.’
아무것도 모르던 무지한 상태에서 모든 지식에 통달한 그분의 속삭임을 듣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
혹시 너무 많이 들어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리전으로서의 적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큰 문제는 없어보였다.
‘이제 남은 건 루이제 발렌트인데……'
이세훈의 옆에서 퉁명스럽게 걷고 있는 루이제의 모습에 알렌이 고민에 잠겼다.
본래 계획은 오늘 작전을 결행해서 두 사람 모두 동화시키는 것.
하지만 생각보다 이세훈을 원활하게 영입하면서 새로운 선택지가 생겨났다.
‘괜히 무리하지 말고 이세훈을 통해서 차츰차츰 끌어들이는 것도 괜찮아 보인단 말이지.’
이세훈은 자발적으로 받아들였기에 거부반응이 없었지만 루이제는 강제로 동화시킬 예정인 만큼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렇게 돼도 결국에는 그분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겠지만 몸에 부상이라도 생겼다가는 골치 아파지는 것이다.
‘목소리에 적성을 가진 사람을 찾기가 쉬운 것도 아니고…… 이번에는 그냥 넘겨야 하나?’
조금 무리해서라도 두 사람을 한 번에 손에 넣을 것인가, 아니면 먼 미래를 보고 신중하게 움직일 것인가.
알렌이 계속해서 고민하던 그때.
행하라
귓가에 선명히 들려오는 속삭임.
그 내용에 다음 구역으로 넘어가던 알렌의 몸이 굳어졌고, 뒤따라가던 이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알렌씨?”
"........"
“뭔가 문제라도……"
아무런 대답도 없는 모습에 모두가 의아하게 보고 있을 때. 알렌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멋쩍게 웃었다.
“아. 죄송합니다. 보안팀에서 온 무전 때문에 잠시 한 눈 팔았네요.”
알렌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걸음을 옮겼고, 오른손목을 쓰다듬는 그의 왼손이 덜덜 떨렸다.
‘계시……계시가 오다니……'
수많은 지식을 무작정 알려주는 속삭임과 다르게 마음속에 품은 의문에 대한 해답을 알려주는 계시.
리전이 되고 딱 네 번만 겪어봤던 그 현상에 알렌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 그분께서도 하루빨리 부활하고 싶으신 거겠지.’
진리를 외면하고 거짓된 마법을 익히는 가짜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무지함이 역병처럼 퍼지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빨리 그분이 돌아오셔야 한다.
그렇게 다짐한 알렌은 망설임을 떨쳐내고 공방 안쪽에 있는 작업실로 들어섰다.
“자. 그럼 지금부터 오토마톤의 제작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람씩 짝을 지으면 직원들이 한 명씩 전담해서 도와드릴 테니까 빠르게 나눕시다.”
알렌의 이야기에 따라 유망주들이 두 명씩 나뉘었고, 이세훈과 루이제는 당연하게 한 조가 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는 직원들 대신 알렌이 다가왔다.
“두 분은 우등생이니까 제가 전담하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으시죠?”
"........"
알렌의 물음에 루이제가 눈매를 찌푸리면서도 옆을 바라보았고, 이세훈이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저도요.”
“좋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두 사람은 알렌의 참관 하에 오토마톤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가르치는 족족 별다른 어려움 없이 완수해냈다.
그렇게 평화롭게 작업이 계속되던 그때.
콰아아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공방 전체가 뒤흔들렸다.
사방에서 울리는 사이렌과 점멸등.
갑작스러운 혼란에 모든 사람의 이목이 다른 곳으로 향한 것을 알아챈 알렌은 재빠르게 오른손으로 자신의 바지 주머니를 두드렸다.
후웅
이세훈의 품속으로 전송되는 심상 저장기.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알렌은 재빠르게 소리쳤다.
“제 3구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마인의 테러로 의심되니 외부에서의 습격을 대비해 공방의 쉘터를 거쳐서 피난하겠습니다! 모두 따라오세요!”
알렌의 인도에 따라 일행들이 신속하게 움직였고, 이세훈과 루이제는 이번에도 맨 뒷줄에서 따라왔다.
자신의 의도를 빠르게 파악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알렌이 속으로 미소를 지으면서 쉘터로 향하는 출입구를 열었다.
“내부로 들어가면 보안팀이 안내할 겁니다. 신속하게 움직이세요!”
유망주들이 앞다투어 안쪽으로 들어가고 맨 끝의 두 사람만 남은 그 순간.
콰아앙!
거대한 대검이 천장을 부수며 쉘터의 입구를 가로막았다.
철컹!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재빠르게 폐쇄되는 쉘터 입구.
그 모습에 남은 세 사람이 굳어 있는 사이 부서진 천장을 통해 마인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찾았네.”
“저놈들 맞지?”
마기로 인해 육체 곳곳이 변이된 마인들. 특이한 점이라면 네 명 모두 의체를 착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하나같이 변이된 육체에 뒤지지 않을 만큼 투박하고 거친 모습이었다.
“이런......"
딱 봐도 심상치 않은 마인들의 모습에 루이제가 재빠르게 언령마법을 펼치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렸고.
툭
이세훈이 뒤에서 꽉 끌어안으며 목의 초커에 심상저장기를 가져다댔다.
키이잉!
방 전체를 가득 채우는 검푸른색이 뒤섞인 주홍빛.
그 모습에 당장에라도 덤벼들 것 같던 마인들이 멈췄고, 옆에 서 있던 알렌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빛이 완전히 가라앉은 뒤. 이세훈이 심상저장기를 떼어내며 이야기했다.
“끝났습니다.”
이세훈에게 안긴 채 축 늘어진 루이제. 그 모습에 알렌은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쉽게 끝나다니……'
바로 뒤에서 기습을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탓일까.
걱정하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질 만큼 쉽게 풀린 상황에 알 렌은 그분을 향한 존경심이 밀려왔다.
‘그분께서 계시를 내린 이유가 있었구나.’
십악이든 완등자든 그분의 지식과 지혜 앞에서는 무지한 버러지에 불과하다.
그것을 다시금 확인하며 알렌이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어디 한번 보자.”
별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사안이 사안인 만큼 제대로 확인해야 한다.
알렌은 기대를 담아 루이제를 살피기 위해 오른팔을 뻗었고.
“―압그룬트."
푸욱!
경계를 찢고 나타난 칠흑의 검이 그의 몸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