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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211화 (211/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11화

“무슨 생각이야?”

바벨에서 숙소로 잡은 도심의 호텔. 이세훈의 객실로 찾아온 루이제가 팔짱을 낀 채로 바라보았다.

“ 뭐가?”

“뭘 뭐가야. 도중부터 노골적으로 유혹했잖아.”

“……표현이 좀 그렇다?”

“아무튼.”

떨떠름해하는 이세훈의 말을 끊은 채 루이제가 엄격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놈들이 어떤 녀석인지는 네가 더 잘 알 테고……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야?”

루이제의 물음에 이세훈은 자신을 향한 눈빛을 살폈다. 사소한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한 집요한 시선.

그 모습에 이세훈은 루이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벌써 문제가 생긴 건지 의심하고 있는 건가.’

마력침식기를 사용한다고 했으니 걱정스럽게 볼만도 하다.

그런 루이제의 시선에 이세훈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쳐다보면 부끄러워서 대답 못하……"

“ 뒤질래?”

징그럽다는 듯이 눈매를 왈칵 일그러뜨리는 루이제.

하지만 그 덕분인지 눈에 담긴 의심이 조금 가라앉았다.

“뭐, 아직까지 구체적인 생각이 있는 건 아니야. 다만 어중간하게 건드리는 것보다는 좀 더 가까이서 살펴보는 게 좋아보여서.”

“……위험하지 않겠어?”

“안 위험할수는 없지. 상대가 상대니.”

주시자가 까다로운 이유는 사회에 녹아들어 있어 일반인들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그렇기에 삼견처럼 앞뒤 안 가리고 다 들이박고 보는 미치광이들이 아닌 이상 녀석들에게 끌려 다니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더 가까이 가려는 거야. 거리가 벌어지면 저쪽에서도 마음껏 뭔가를 준비할 수 있으니까.”

영입의 가능성을 보여줘서 끌어들이고 그 틈을 이용해서 녀석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방법을 떠올린다.

만약 들킨다 해도 그때는 그냥 삼견처럼 목부터 따고 잘 수습하면 될 테니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가능하면 안 들키는 쪽이 좋겠지만.’

나중에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이세훈이 고민하던 그때. 무언가 고민하던 루이제가 입을 열었다.

“그럼 난 뭐 하고?”

“ 흐음......"

회귀 전의 폭견이었다면 뒤에서 지켜봐달라고 부탁했겠지만 아직은 그런 수준까지는 안 된다.

루이제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이세훈은 이내 그럭저럭 괜찮은 방법을 떠올렸다.

“미행해 줘.”

“미행? 으음……그쪽으로는 자신이……"

“아니. 알렌 그 사람 말고 날 미행하라는 거야.”

“……뭐?”

도대체 뭐 하러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한단 말인가? 루이제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이세훈이 슬쩍 웃었다.

“저쪽이 처음부터 노리던 건 너잖아. 그러니까 네가 나를 특별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일수록 나에 대한 값어치도 더욱더 올 라가는 거지.”

이세훈만 끌어들이면 루이제도 쉽게 끌어들일 수 있다.

그런 인식을 심어준다면 오늘 만남에서 좀 더 적극적인 반응을 유도할 수 있으리라.

"........"

이세훈의 이야기에 루이제가 입술을 꾹 깨물더니 귓불이 살짝 붉어졌다.

“그러니까 내가 널 좋…… 신경 쓰는 것처럼 보이게 하란 거야?”

“맞아. 기왕이면 좋아 죽을 것 같은 느낌으로.”

"........"

돌려 말한 것이 무의미하게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 이세훈. 그 모습에 루이제가 눈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다른 때라면 개소리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겠지만 지금은 이세훈이 말이 어느 정도 그럴싸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도……'

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간 루이제가 잠깐 심호흡을 한 다음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알았어. 일단 한번 해볼게……"

“좋아. 뭐, 그래도 너무 부담가질 필요는 없어. 약간 시늉만 하는 거니까.”

“나중에 출발할 때 말해.”

퉁명스럽게 이야기한 루이제가 그대로 방문으로 향하더니 문고리를 잡은 채 작게 덧붙였다.

“몸 조심하고.”

쾅!

힘차게 문을 닫으며 밖으로 나가는 루이제. 그 뒷모습에 이세훈이 피식 웃었다.

“자존심이 좀 상했나 보네.”

실력 부족으로 어중간한 일을 떠맡게 됐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반응이다.

그런 루이제의 뒷모습을 바라본 이세훈이 턱을 쓰다듬었다.

‘언령도 좀 익숙해진 거 같고…… 슬슬 무구도 만들어줄까.’

그동안 만들어준 마스크들도 무구가 맞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보조기구.

언령마법의 위력을 증폭시키기 위한 무구는 또 따로 있었다.

회귀 전의 기억을 곱씹으며 이세훈이 머리를 굴리던 그때.

똑똑

“이세훈 생도. 잠시 들어가도 되겠나?”

밖에서 들려오는 란 페이의 목소리. 그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예. 괜찮습니다.”

“실례하지.”

문을 열고 들어온 란 페이가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주변을 살짝 살폈다.

“누가 다녀간 모양이군.”

“루이제가 아까 잠시 다녀갔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찾아오신 겁니까?”

이세훈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란 페이가 잠시 바라보다가 물었다.

“오늘 저녁에 알렌 모건과 만나기로 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아아. 예. 밥 먹고 공방도 구경시켜준다고 해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

공방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란 페이의 눈빛이 더욱 깊어지더니 이내 결심을 내린 듯 입을 열었다.

“한가지 거래를 하고 싶다."

진중한 표정으로 물어보는 란 페이. 평상시와 사뭇 다른 그 분위기에 이세훈이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계속 말씀하시죠.”

“알렌 모건의 공방에서 무언가 특별한 게 있는지 알아봐줬으면 한다.”

“특별한 거라면……"

“네 기준에서 특별하다고 느껴지는 거라면 뭐든 좋다.”

이쪽의 안목을 믿어주는 것과 별개로 상당히 두루뭉술한 조건. 그 내용에 이세훈은 란 페이의 상태가 어떤지 대강 알아차 렸다.

‘뭔가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는 건가 보네.’

이 제안을 어떻게 할 것인가. 란 페이와 눈을 마주 바라보던 이세훈이 생각을 정리한 다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교수님께는 신세진 적도 있으니까요.”

이전에 란 페이가 자신을 박람회의 현장 스태프로 받아주지 않았다면 바벨의 습격에 대응하기도 상당히 번거로워졌을 터.

향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란 페이처럼 적당히 융통성 있는 인물과는 사이를 유지해두는 편이 좋았다.

‘그리고 겸사겸사 출신도 알아내고 말이야.’

짐작이 가는 곳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확실한 편이 좋다.

이세훈의 대답에 란 페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사례는 확실하게 하지."

“예. 돌아와서 말씀드릴게요.”

“그럼……"

자리에서 일어난 란 페이가 그대로 밖으로 나왔고, 복도를 걸으면서 방금의 만남을 떠올렸다.

‘……역시 모르겠군.’

이세훈은 어느 쪽인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이번 일이 끝난다면 갈피를 잡을 수 있으리라.

그리 생각한 란 페이가 담담하게 걸음을 옮겼다.

* * *

도심지에 위치한 고급 레스토랑.

안쪽의 호화로운 별실로 안내받은 이세훈이 자신을 초대한 상대를 바라보았다.

“어서오십시오. 이세훈 생도.”

미소를 지으며 맞이해 주는 알렌. 그 모습에 이세훈이 고개를 꾸벅이며 맞은편에 앉았다.

“엄청 비싼 곳으로 부르셔서 조금 놀랐습니다.”

“중요한 손님을 대접하는 자리인데 정성을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씩 웃은 알렌이 옆으로 시선을 보내자 웨이터가 빠르게 음식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잡담과 함께 진행되는 식사. 그에 이세훈이 상대방이 본론을 꺼내오기를 잠자코 기다리고 있을 때.

“아,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스테이크를 썰던 알렌이 한 가지 떠오른 듯 물었다.

“혹시 지금 따로 연구 중이신 게 있으십니까?”

“그건......,”

“아, 별다른 뜻으로 말씀드린 건 아닙니다. 그냥 저처럼 기술직에 속한 사람들은 이세훈 생도의 연구에 관심이 매우 많아서 말입니다.”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은 알렌이 가만히 바라보았다.

“검기 양산화처럼 기존에 난제라고 여겨졌던 부분들을 차례차례 도전하여 격파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기대가 있죠.”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지만, 이세훈은 그 의도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부담감을 아주 팍팍 주는구만.’

이쪽의 고민을 조금이라도 더 가중시키려는 것일까. 그런 알렌의 시도에 이세훈은 순순히 받아주기로 했다.

“말씀하신 대로 난제로 꼽히는 기술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중이긴 합니다. 다만 이쪽은 이전처럼 그렇게 쉽지가 않네요.”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리는 이세훈의 모습에 알렌이 두 눈을 빛냈다.

“아무래도 고민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자극을 찾아 헤매시는 것도 그렇고.”

"........"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해봐서 잘 압니다.”

와인으로 목을 축인 알렌이 이세훈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지식을 이해하고, 상상을 재현해내는데 아무런 막힘도 없던 시절. 그때 느껴지는 고양감은 자신이 전지전능한 신이 된 게 아닐까 싶은 기분이 들게 하죠.”

"........"

“그 순간이 영원하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경우는 잘 없더군요.”

빈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알렌이 씁쓸하게 이야기했다.

“어느 순간부터 지식이 난해하게 느껴지고, 상상은 모호하고 불확실하게 변하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사라져가죠.”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는 듯 알렌의 목소리가 조금 고양되었다.

그 순간에 느꼈던 분노와 좌절감. 그리고 그 악몽 같던 나날 에서 구원받은 기쁨.

그 수많은 감정을 숨기지 않고 내비치며 알렌이 이세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어떻습니까 이세훈 생도. 평범한 사람이 되어가는 감각은.”

“……어떠냐고요?”

알렌의 물음에 이세훈이 손에 쥐고 있던 나이프와 포크를 꽉 움켜쥐었다.

까드득

두 손잡이가 우그러지며 찌그러졌고, 이세훈이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바라보았다.

“아주거지같죠. 지금처럼.”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얼굴.분노와 열등감, 그리고 간절함이 뒤섞인 그 모습에 알렌이 두 눈을 빛냈다.

‘나쁘지 않은데.’

저 부정적인 감정들이 기적을 목도했을 때 그분을 향한 믿음으로 바뀔 것이다. 이세훈의 상태를 모두 확인한 알렌이 쓴 웃음을 지었다.

“제가 너무 직설적으로 말씀드린 모양이군요. 죄송……"

“그딴 사과는 필요 없습니다.”

알렌의 말을 잘라낸 이세훈이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한테 굳이 이런 말을 했다는 건 해결해 줄 자신이 있으니까 그런 거겠죠?”

“……일단은 그렇습니다.”

“그럼 그거나 보여주세요. 만약 납득가지 않는다면 저랑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볼 일은 두 번 다시없을 겁니다.”

더는 못 기다리겠다는 듯이 이세훈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고, 그 모습에 알렌이 눈을 가늘게 떴다.

‘버르장머리 없게……'

마음 같아서는 한 소리하고 싶었지만, 지금처럼 흥분한 상태가 오히려 작업을 수월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

결정을 내린 알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말 나온 김에 바로 이동하도록 하죠.”

계산을 마치고 나온 두 사람은 곧장 택시를 타고 이동했고, 알렌의 눈이 슬쩍 뒤편으로 향했다.

골목길에서 이쪽 택시를 바라보는 루이제. 계속 따라 오는가 했지만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한번에 처리할수 있었는데……아깝네.’

그래도 저쪽은 차후 처리하면 될 것이다. 택시가 도심 외곽의 공방 앞에 도착했고, 알렌이 앞장서서 걸었다.

“들어오시죠.”

"........"

알렌과 함께 공방의 안으로 들어선 이세훈은 표정 연기를 유지하면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무슨 정육점 같은 느낌이네.’

천장에 걸려 있는 의체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알렌이 막 움직이려다가 슬쩍 뒤돌아보았다.

“어디 가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철컥!

천장에 걸린 의체 하나를 당기자마자 나타나는 지하 계단.

그 모습에 이세훈이 두 눈을 빛냈다.

‘꽤 과감한데?’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지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데 손패를 망설임 없이 공개한다.

그 모습에 이세훈은 상대가 무엇을 노리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나는 오늘 안에 처리하겠다 이거구만.’

어떻게 보면 제 발로 함정까지 걸어들어 와준 셈이니 저쪽에서 거절할 이유도 없다.

두 사람이 계단 아래로 내려갔고, 지하창고에 도착한 알렌은 한쪽에 놓인 고급스러운 나무상자 앞으로 다가갔다.

딸깍

잠금이 풀리며 뚜껑이 열렸고 그 안쪽에 가지런히 놓인 의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이게 고위 영웅을 위한 의수입니다. 곧 납품될 예정인 완성품이죠.”

앞으로 내밀어지는 의수.

겉보기에는 이전에 본 것과 다르지만 이세훈은 금방 그것이 안토니오 재활병원에서 본 것과 똑같은 것임을 알아차렸다.

‘이놈이 만드는 거였나.’

완성도가 상당하다 싶었는데 『여명』의 간부가 만들었다고 하면 확실히 납득갈 만하다.

의수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이세훈은 이내 애매한 표정으로 알렌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완성도가 뛰어나긴 하지만…… 뭔가 특별한 게 느껴지지는 않네요.”

“겉보기에는 그렇겠죠. 중요한 건 안쪽입니다.”

알렌이 의수의 몇 군데를 건드렸고, 잠시 후 겉면이 열리면서 내부 회로가 드러났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이전에 보았던 녹빛의 보석. 그 모습에 이세훈이 놀란 표정을 만들어냈다.

“제가 만든 ‘심상저장기’라는 물건입니다. 착용자의 심상을 저장하여 의수의 사용에 저항감을 없애주고.”

스윽

의수 안쪽에서 녹빛의 보석을 꺼낸 알렌이 이세훈을 바라보며 담담히 이야기했다.

“다른 이에게 심상을 전수하는 데도 쓰일 수 있죠.”

"........"

이세훈이 경계가 섞인 눈으로 바라보며 뒷걸음질 쳤고, 그 모습에 알렌이 허튼 짓을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양팔을 들어 올렸다.

“의심스럽다는 것 압니다. 하지만 이세훈 생도도 보면 알겠지만 이 심상저장기는 평범한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천재, 아니, 그런 단어로도 표현이 안 될 위대한 분이 만들어내신 거죠.”

“……그 사람이 당신을 슬럼프에서 벗어나게 도와줬다는 겁니까?”

“예. 평생 벽이라고 여겨왔던 난관을 아무렇지 않게 허물어주셨습니다.”

“대가는 뭡니까?”

“없습니다.”

이세훈을 바라본 알렌이 흔들림 없는 눈으로 이야기했다.

“이세훈 생도가 깨달음을 얻고 그 뜻을 널리 알린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게 그분이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전부입니다.”

올바른 지식, 올바른 마법을 널리 알리는 것.

그것이『여명』의 사명이었고, 여기에 다른 생각은 눈곱만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알렌의 모습에 이세훈이 한참을 갈등하다가 이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만약 제게 문제가 생기면 학원장님께서 가만히 두시지 않을 겁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심상저장기를 앞으로 내민 알렌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무능한 녀석은 금방 잊어버릴 테니까.”

키이잉!

검푸른색이 뒤섞인 주홍빛. 마치 여명을 떠올리게 하는 마력이 알렌의 오른팔에서부터 솟구쳐 단숨에 심상저장기를 통해 이세훈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콰드득!

거기에 잠자코 웅크리고 있던 녹빛의 마력이 기다렸다는 듯이 마중을 나왔고, 두 마력이 한데 뒤섞이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이세훈의 몸 곳곳에 뿌리를 내렸다.

이전에 마력침식기로 일어났던 침식현상은 장난처럼 느껴질 만큼 무시무시한 속도.

그렇게 이세훈이 만들어낸 임시회로가 통째로 장악 당했고, 이내 기묘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자신의 고민에 대답해 주는 작은 속삭임.

귓가에 끝없이 들려오는 소리에 이세훈이 멍한 표정을 지으며 귀를 기울인다.

그런 이세훈의 모습을 본 알렌은 오른팔로 체내를 훑어보며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됐네.”

정화에 이어 동화까지 모두 완료되었다.

이로써 기회만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이세훈의 몸 안에 그분의 심장을 이식할 준비가 된 것이다.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쉽게 끝난 임무에 알렌이 이세훈을 바라보며 물었다.

“기분이 어때?”

“뭔가……뭔가 계속들리고 있습니다……"

“그게 그분께서 네게 알려주는 지식들이야. 앞으로 틈틈이 귀를 기울이며 쌓아가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공방을 돌아다닐 때 방금이랑 똑같은 심상 저장기를 너한테 몰래 줄 거야. 주변이 혼란스러워지면 그걸 루이 제에게 각인시켜. 방법은 그분이 알려주실 거다.”

“예.”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이세훈. 그 모습에 알렌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걸로 쉽게 풀리겠네.’

루이제까지 동화시키는데 성공하면 그 뒤로는 몽환마와의 거래에서 충분히 이득을 챙긴 다음 저 둘을 빼돌리면 되리라.

새롭게 탄생할 두 명의 리전을 떠올리며 알렌이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역시 현장체험 중에 습격하려 했구만.’

멍한 표정을 연기하고 있는 이세훈이 두 눈을 빛냈다.

임시 마력회로를 통째로 집어삼키고 전신에 뿌리내린 여명의 마력.

본래라면 당장 인격에 문제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지만, 이세훈은 조금 사정이 달랐다.

위르겐에 직접 교육받은 경계의 권능.

그것을 활용하여 침식당한 마력회로 전체를 경계선에 밀어 넣은 것이다.

‘침식했으면서도 침식하지 않은, 애매한 경계지.’

영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위험하다 싶어지면 곧장 경계 너머로 완전히 넘겨 버려서 없애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이게 바로 이세훈이 마력침식기를 망설임 없이 사용하고 알렌을 뒤따라온 이유였던 것이다.

‘근데 이거 생각보다 특이한데……'

마력에 침식당했을 뿐인데 자신이 모르는 지식이 귓가에 속삭여진다니.

도대체 근원이 무엇이길래 이런 효과가 나오는 것일까.

[글쎄. 내 권능의 일부 아닐까?]

‘그게 무슨 권능……?’ 자연스럽게 대답하던 이세훈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이내 귓가에서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린다.

[야야. 표정관리해. 들키겠다.]

이쪽을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 그에 이세훈이 혼란을 느끼다가 금방 냉정을 되찾았다.

이와 비슷한 일이라면 지난 학기시험 때도 경험했었기 때문이다.

‘당신…… 누굽니까?’

[흐음. 뭐라고 설명하는 게 이해하기 쉬우려나…… 아! 그거면 되겠네.]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였다.

[탐구자야.]

세계가 멸망할 때까지 나타나지 않은 완등자. 그가 이세훈의 몸속에서 나타났다.

[이미 죽었지만.]

그것도 죽은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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