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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209화 (209/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09화

류은하에게 식사를 잔뜩 대접한 뒤 이세훈은 기숙실로 돌아가기 전에 레아의 공방을 찾아갔다.

후웅一

이세훈의 명령을 따라 공방의 천장에 원을 그리며 날아다니는 압그룬트.

그 새카만 검을 따라서 고개를 빙글빙글 돌리던 레아가 기묘한 탄성을 내뱉었다.

“오...... 오오......"

비행 중에 흘러나오는 마력의 파동만 봐도 얼마나 엄청난 물건인지 느껴져 온다.

그 엄청난 완성도에 눈을 떼지 못하던 레아가 이세훈의 시선을 느끼고 헛기침했다.

“크흠! 그래서 이걸로 완성이야?”

“일단은.”

“......하긴 여기서 더해봐야 잡스러워지기 쉬우니까.”

무구에 담겨져 있는 힘이 강력할수록 술식이 마모되기 쉽기 때문에 고위 등급 무구들은 인챈트하기가 매우 까다로웠다.

그렇기에 레아는 이세훈이 혼자서 무구를 완성해 버린 것에 어느 정도 납득은 했지만, 그래도 불만이 없을 수는 없었다.

‘이럴 거면 인챈트하게 해주겠다고 말이라도 하질 말든가……'

학과수석이 되면 기회를 주겠다는 말에 자신이 얼마나 밤을 새가며 공부를 해왔던가.

게다가 요 며칠 동안 이세훈이 어떤 말도 안 되는 성능을 요구해 와도 곧장 대응할 수 있게끔 인챈트 술식의 설계도만 수십 장을 만들어뒀다.

그 모든 고생이 무의미했다는 사실에 레아가 입술을 비죽 내밀고 있을 때.

“잡스럽기는 지금이 더 잡스럽지.”

이세훈이 공중에 떠다니는 압그룬트를 아래로 불러 검신을 툭 때렸다.

“힘을 정착시키기만 했지 끌어올리는 과정이 많이 투박해. 못 쓰는 건 아니지만 효율이 떨어져서 오래 쓰기는 힘들어 보이 더라고.”

개선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이세훈의 이야기에 레아가 무언가 알아차린 듯 두 눈을 반짝였다.

“어때. 고칠수 있겠어?”

“ 당연하지!”

전설 등급 무구에 인챈트하는 걸 겁내기는커녕 오히려 의욕을 더 불태우는 레아.

학과수석을 따서 그런지 이전보다 훨씬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모습에 이세훈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좋아. 미리 준비해둔 설계도 같은 거 있어?”

“응. 우리 사장님을 위해서 아주 한가득 만들어뒀다고."

책상으로 간 레아가 두꺼운 설계도 파일을 가져왔고, 그것을 건네받은 이세훈이 슬쩍 훑어보았다.

‘흐음. 천체랑 밤과 연결지은 건가.’

다행히 자신이 생각해둔 것과 방향성이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것들이 많아 보였다.

이세훈이 한 장씩 넘겨보며 구조를 살피고 있을 때. 한 설계도에 시선이 닿았다.

“이거……묵주환이야?”

설계도에 그려져 있는 네 개의 팔찌. 그것을 가리키며 물어보자 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맞아. 후배가 오랫동안 쓴 물건이기도 하고 공명 현상도 있으니까 제어장치로는 적절하지 않을까 싶어서.”

“흐음…… 괜찮은데.”

각 팔찌마다 특정 천체와 관련된 인챈트를 새겨 넣은 다음 필요할 때마다 압그룬트와 연결시켜 제어한다.

발동 방식도 괜찮았고 무엇보다도 신체능력이 증가하면서 효율이 떨어진 묵주환을 재활용한다는 점에서 좋았다.

“흐음…… 좋아.”

손목과 발목에 착용하고 있던 묵주환을 풀어낸 이세훈이 압그룬트와 함께 레아에게 건네주었다.

“같이 살펴봐봐. 실제로 적용가능할지는 또 모르니까.”

“어이쿠. 잘 먹겠습니다.”

두 손으로 묵주환을 건네받은 레아는 히죽거리며 곧장 측정도구를 가져와 압그룬트와 함께 살펴보기 시작했다.

“오오…… 이거 생각보다 상태가 좋은데……"

묵주환과 압그룬트에 가볍게 인챈트를 새기고 반응을 살피며 두 눈을 반짝이는 레아.

새 장난감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그 모습에 이세훈은 피식 웃으며 남은 설계도를 마저 살펴보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별다른 말없이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을 때.

이세훈이 뒤늦게 말하지 않은 것을 깨달으며 이야기했다.

“아 맞다. 나 독일에서 싱글넘버랑 싸웠어.”

“그래? 안 다쳐서 다행…… 잠깐, 방금 뭐라고?”

집중하느라 건성으로 대답했던 레아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고 이세훈은 여전히 설계도를 살피며 대답했다.

“싱글넘버랑 싸웠다고. 보니까 나 죽이려고 온 것 같더라.”

"........"

심각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반응.

놀란 자신이 바보 같아지는 그 모습에 레아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설계도는 나중에 보고 자세히 좀 설명해 봐.”

“그러니까……"

이세훈은 싱글넘버, 흐레스벨그의 습격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설명했고 그 내용을 모두 들은 레아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협박이네.”

“아마 그렇겠지. 눈에 띄지 말라고 했는데 학과수석으로 뽑히고 그랬으니까.”

"........"

자신의 경고를 듣지 않았기에 경고의 의미로 이세훈을 죽이거나 중상을 입히려 했다. 그 상황에 레아의 두 눈이 깊이 가라 앉았다.

인형사에 대한 분노와 후배에게 피해를 줬다는 죄책감.

두 감정이 뒤섞이면서 머릿속에서 더욱 격렬하게 끓어오른다.

“ 후우......"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금방 감정을 가라앉힌 레아는 두 손으로 얼굴을 마구 문지르다가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물었다.

“뭔가 알아낸 건 있어?”

끌어들인 것을 후회하기보다는 해결에 집중한다.

빠르게 냉정을 되찾은 레아의 모습에 이세훈이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형사의 숨겨진 거점을 찾아냈어. 싱글넘버가 마지막에 도망치려고 했던 곳이니까 아마 확실할 거야.”

“거점인가……"

이세훈의 이야기에 레아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 숨겨진 거점이라고 하면 적들의 비밀을 찾아낼 수 있는 중요한 장소지만, 인형사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보통은…… 창고지.’

인형사와 그 수하인 퍼펫은 본체가 파괴되지 않으면 새로운 육체로 끝없이 부활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본체를 숨겨두고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 사용하는 것이 거점인데 대부분 육체를 만들기 위한 재료들만 보관되어 있어 따로 단서라고 할 만한 것들은 일절 없었다.

‘게다가 외부에 발각되면 그 즉시 버려 버리고 말이야.’

인형사에게 싱글넘버나 퍼펫이나 결국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면 완전히 도려낸다.

그런 인형사의 거점에서 뭔가 얻어내는 것이 가능할까.

아무리 봐도 어려운 상황에 레아가 끙끙거리고 있을 때.

“걱정할 필요 없어.”

이세훈이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거점이라면 절대 평범한 곳은 아닐 테니까.”

추측이 아니라 거의 확신에 가까운 대답. 그 이야기에 레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전에 학원장님이 한번 싹 쓸어버리셨거든.”

이전에 검은연꽃 수해에서 인형사의 수하인 퍼펫들에게 습격당했을 때.

사건이 끝난 뒤 루트비히가 직접 대응에 나선 적이 있었다.

그때 얼마나 많은 거점을 파괴했을지는 모르지만 루트비히의 성격상 한 번 움직였으면 눈에 보이는 것들은 모조리 없애 버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싱글넘버가 도망치려고 했던 곳이니 아마도 높은 확률로 송신소일 가능성이 높겠지.’

인형사가 거점과 퍼펫을 통솔하는데 쓰이는 지휘소.

본거지까지는 아니지만 운이 좋다면 거기에 다다르는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리라.

“흐음……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사람들 모아서 기습?”

“아니. 일단은 잠입하는 쪽으로 보려고.”

“잠입인가……엄청 까다로울 것같네.”

다른 녀석도 아니고 그 철두철미한 인형사가 중요하게 여기는 거점이라면 얼마나 삼엄할까.

질색하는 레아의 모습에 이세훈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준비만 철저하면 의외로 쉬울 테니까.”

“말로는 참 쉬운데 말이지…… 그래서 언제쯤 갈 건데?”

“지금은 많이 예민해져있을 테니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 가야지. 내일 또 나가 봐야 되기도 하고.”

“……우리 후배. 담력 하나는 진짜 끝내주네.”

바로 며칠 전에 싱글넘버한테 암살당할 뻔해놓고 또 바벨 밖으로 나가겠다니.

이 정도면 만마전 측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어 안 건드리지 않을까.

어이없어하는 레아의 모습에 이세훈이 담담히 대답했다.

“다 기세로 하는거지. 별거아냐.”

“별거 아니기는 무슨…… 그래서 이번에는 또 뭐 하러 나가는데?”

레아의 물음에 이세훈이 설계도를 만지작거리며 씩 웃었다.

“물건좀 바꿔치기하려고.”

* * *

덴마크의 오르후스.

바닷가에 인접한 항구도시의 외곽, 수천 평을 아우르는 거대한 공장의 1 층 로비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번 현장체험 학습에 참가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찾아온 유망주들.

저마다 실력과 명성을 갖춘 이들로 동업자나 다름없다 보니 서로를 알아보며 인사를 나눴다.

“이번 신형 오토마톤 장난 아니라던데.”

“조만간 B급 위험지역도 대응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더라고.”

“의체분야도 순례교랑 협업한 덕분에 반응이……"

장소가 장소다 보니 마리오넷 팩토리에 관련된 이야기를 주로 하는 유망주들.

그렇게 한참을 떠들던 그들의 시선이 불현 듯 한쪽으로 향했다.

"........"

"........"

로비의 소파에 앉아서 늘어져 있는 검은머리의 청년과 그 옆에 한 칸 떨어진 채 휴대폰을 보는 은발머리의 소녀.

두 사람 모두 인상이 사나운 데다 흘러나오는 기세도 심상치 않아 그 누구도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저게 이세훈인가…… 생각보다 느슨한 느낌인데.’

‘오히려 옆에 앉은 사람 때문에 더 다가가기 힘드네.’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떠들고 이야기를 하든 말든 눈곱만큼도 관심을 주지 않는 두 사람.

그렇게 유망주들이 힐끗 거리고 있을 때. 휴대폰을 보던 은발머리의 소녀, 루이제가 시선을 슬쩍 올리며 주변을 노려보았다.

“크흠.”

“아까 무슨이야기했더라?”

괜히 시비라도 걸릴까봐 재빠르게 시선을 피하는 유망주들. 그 모습에 루이제가 눈매를 살짝 찌푸렸다가 발로 이세훈의 다리를 툭툭 쳤다.

“야. 너 때문에 나까지 쳐다보잖아.”

“애냐? 쳐다보는 거 가지고 짜증 내게?”

대답 대신 계속해서 발로 다리를 치는 루이제. 겉보기에는 연신 짜증내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긴장을 숨기기 위한 행동에 가까웠다.

‘나름의 연기인가.’

누군가 습격해 올 것을 대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적들도 자신들의 존재가 알려졌다는 것을 알게 될 터.

같이 다닌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능숙해진 루이제의 모습에 이세훈이 살짝 대견하게 바라보다가 물었다.

“어때 보여?”

"......뭐가.”

“여기시설들 말이야.”

뭔가 특별한 게 느껴지는가.

그런 이세훈의 뜻을 알아차린 루이제가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은 잘 모르겠네.”

“잘 둘러봐. 도움이 될 테니까.”

어지간한 건 이쪽에서 감지할 수 있지만, 루이제가 더 잘 느끼는 부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세훈의 이야기에 루이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쳐다보던 그때.

안쪽으로 들어갔던 인솔자들이 밖으로 나왔다.

“주목해라.”

바벨에서 온 15명의 생도를 불러 모은 란 페이가 챙겨온 출입증 목걸이를 보여줬다.

“안쪽을 돌아다닐 때는 반드시 이 출입증을 목에 걸고 있어야 한다. 허가받지 않은 장소로 이동하면 즉시 보안팀이 출동한 다고 하니 괜히 사고치지 말도록.”

란 페이의 설명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출입증을 바라보았다.

‘출입증이란 말이지......'

저걸로 각 구역의 출입 여부를 판단한다면 반대로 다른 출입증만 확보한다면 쉽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일까.

이세훈이 여러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 사이 란 페이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공방은 총 3구획으로 나뉘며 오늘은 의체 제작 시설을 살피고 간단한 제작 과정을 경험할 예정이다. 질문사항 있나?”

아무런 대답 없는 생도들의 모습에 란 페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출입증을 내밀었다.

“와서 하나씩 받아가도록.”

한 명씩 출입증을 건네받았고, 목에 건 이세훈은 그 구조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대강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 파악했을 때쯤.

“이세훈 생도.”

출입증을 건네줬던 란 페이가 작게 불렀다.

“이번 체험학습에 참가한 이유가 뭐지?”

갑작스러운 란 페이의 물음에 이세훈이 의아해하다가 다시금 되물었다.

“이유가 있어야 합니까?”

“그런 건 아니지만......"

뭔가 말하려고 하던 란 페이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냥 못 들은 걸로 해라.”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얼버무리는 란 페이.

그 모습에 이세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 양반은 또 왜이래?’

뭔가 숨긴 게 있다고 티를 팍팍 내는 란 페이의 모습에 이세훈이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금방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은 놔두자.’

지금 중요한 것은 『여명」이지 란 페이의 배경 따위가 아니다.

안쪽에서 어떻게 탐색을 해야 할지 이세훈이 고민하던 그때.

“아, 이분이이세훈 생도시군요.”

옆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에 고개를 돌리자 정장을 차려입은 청년이 다가왔다.

짙은 초록빛 머리칼에 쾌활한 인상. 정장이 어색한지 자세가 엉거주춤해 영업보다는 기술직에 가까워보였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듣던 것보다 훨씬 건장하시네요. 키도 크시고요.”

유명인을 바라보는 것처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청년. 그 모습에 이세훈이 옆을 슬쩍 보자 란 페이가 설명했다.

“마리오넷 팩토리의 수석연구원이신 알렌 모건 씨다. 오늘 하루 우리들을 안내해 주시기로 하셨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세훈 생도.”

쾌활하게 웃으며 장갑을 낀 오른손을 앞으로 내미는 알렌 모건.

그 모습에 이세훈이 잠시 바라보다가 손을 맞잡았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이나 평범할 게 없는 모습.

하지만 그 손을 맞잡은 이세훈은 한 가지 감각을 느꼈다.

꾸득---

몸 안쪽에서 요동치는 녹빛의 마력. 그 감각을 느낀 이세훈은 곧장 확신했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눈앞의 사내, 알렌 모건이 『여명」의 간부인 리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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