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207화 (207/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07화

[…….]

이세훈의 제안에 위르겐은 진심이냐고 되물으려다가 이내 멈췄다.

눈빛과 분위기만 봐도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몽환마인가……'

십악 중에서도 초창기부터 살아남은 원로 중 한 명.

경험도 풍부하고 몽환의 마력이 가진 특성 때문에 완등자가 되기 전부터 지금까지 몇 번이고 부딪쳤지만 매번 죽이는데 실패했었던 귀찮은 녀석이기도 했다.

‘그런 놈을 죽이겠단 말이지.’

멋모르고 기세로 이야기하는 건가 싶었지만 마냥 그렇게 보기에는 묘한 확신 같은 것이 느껴진다.

자신의 손가락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던 때처럼 마치 몽환마를 이미 죽여본 적 있는 것 같은 모습.

그 모습에 위르겐은 잠시 고민하다가 굴었다.

[루트비히가 계획한거냐?]

눈앞의 녀석이 아니라 루트비히가 계획한 것이라면 확실히 현실성이 있다.

그런 위르겐의 추측에 이세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학원장님은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말씀도 안 드렸고요.’

[……왜지? 나보다는 녀석에게 도움 받는 것이 쉬울 텐데. 이전에 빚진 것도 있고.]

바벨을 기습했던 십악 중 한 명이니 루트비히도 가능성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겠는가.

그런 위르겐의 물음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지만…… 별로 내키지 않아하실 것 같았거든요.”

[호오…… 루트비히가?]

“예.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회귀 전의 행보와 자신이 보고 느낀 것으로 추측하는 것이기에 아무래도 딱 잘라서 설명하기가 힘들다.

머릿속으로 한참을 고민하던 이세훈은 이내 적절한 대답을 떠올리며 이야기했다.

“이미 완성된 설계도에 뭣도 모르는 녀석이 수정하라고 하면 짜증나잖아요?”

비밀리에 영웅의 탑을 연구했던 것도 그렇고 루트비히도 분명 무언가 준비 중인 계획이 있을 터.

거기에 필요한 일이라면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오히려 훼방을 놓을지도 모른다.

‘아직 확신할 수 없으니까 조심하는 편이 좋지.’

회귀 전이야 오랜 전쟁으로 영웅들이 많이 죽어 삼견 같은 망나니놈들을 끌어들이면서까지 싸운 거지만, 지금은 넘치는 게 사람들이다.

굳이 모호한 인물을 설득하려다가 계획을 꼬이게 만드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아군이 될 것 같은 사람만 끌어들이는 것이 좋으리라.

[…….]

그런 이세훈의 대답에 위르겐이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확실히 일리 있군. 루트비히 그놈이라면 그렇게 하겠지.]

“그래서…… 위르겐 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눈앞의 완등자를 끌어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계획의 판도가 바뀐다.

이세훈의 물음에 위르겐이 담담히 굴었다.

[계획은다 준비되어있나?]

“대략적인 윤곽은 나왔고 차근차근 준비 중입니다."

[한번 이야기해 봐라. 다 듣고 판단하지.]

이세훈은 환락가를 공략할 방법에 대해서 차근차근 설명했고, 그 내용에 위르겐은 별다른 말없이 경청했다.

그리고 모든 설명이 끝난 뒤.

무언가 고민하던 위르겐이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내가 얻게 되는 이득이 뭐지?]

“그야......"

[명성 같은 걸 말할 거라면 집어치우는 게 좋을 거다. 그딴 건 이미 차고 넘칠 만큼 있으니.]

재수 없는 말이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UD그룹 총수이자 일곱 명의 완등자 중 한 사람.

그런 인물에게 명성이 더 있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글쎄요.”

그렇기에 이세훈은 미리 생각해둔 부분을 이야기했다.

“협회한테서 위험지역 관리권을 뺏어오기에는 좀 부족하지 않을까요?”

[........]

“명성이라는 것도 종류가 있으니까 말이죠.’

만약 지금 당장 UD그룹이 영웅 협회를 압박하여 위험지역의 관리권을 받아내려 하면 다른 완등자들이 속해 있는 세력들도 대거 난입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영웅 협회가 스스로 위험지역의 일부분을 넘기게끔 만들 수 있는 대의명분.

일종의 타협점이 필요했다.

“십악, 그것도 몽환마를 잡는 데 큰 활약을 펼쳤다면 영웅협회도 지금처럼 안 된다고 버티진 않을 겁니다. 그렇게 발을 걸쳐두면…… 뭐, 그다음은 전문분야시잖아요?”

내부에서부터 야금야금 갉아먹어 단숨에 먹어치운다. 자세한 과정은 모르겠지만 이쪽으로 이골이 난 게 위르겐이니 알아서 처리하리라.

[……정말로 영웅 협회를 믿지 않는군.]

“누구 앞인데 감히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지금도 하고 있으면서 잘도 말하는군 그래.]

이세훈이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것 정도는 말만 들어도 알 수 있지만, 개인적은 비밀에 관한 것이라면 딱히 듣지 않아도 상관없다.

앞서 들은 계획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던 위르겐이 이내 결정을 내리고 공중에 떠 있는 불명자의 지골을 겨눴다.

[가만히 있어라.]

툭!

물명자의 지골이 이세훈의 명치를 툭 찔렀고 짜릿한 감각과 함께 안쪽으로 무언가 새겨졌다.

[쿨명자의 지골을 물러낼 수 있는 술식을 새겨뒀다. 그걸로 계획을 시작할 때 나를 물러내라.]

“그 전에도 필요한 일이 생기면 사용해도 됩니까?”

[전설 등급 재료나 영혼의 일부를 넘긴다면 빌려주지.]

"........"

더럽게 비싼 재료긴 하지만 이번 전투 때 쓰임새를 생각하면 싸게 먹힌다고 몰 수도 있었다.

‘그래도 가급적이면 쓰면 안 되겠네.’

전설 등급 재료를 얻을 수 있을 때나 써먹어야겠다고 이세훈이 다짐하던 그때. 위르겐이 무언가 떠오른 듯 물었다.

[류은하 그녀석도 참가하나?]

“아. 그건……"

위르겐의 물음에 이세훈이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회귀 전에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인 만큼 류은하의 전력은 모두 파악하고 있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투입해야 할지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망설이게 되는 것은 회귀하면서 생겨난 류은하와의 관계 변화였다.

‘왠지 말릴 것 같단 말이지.’

블랙 암즈 때는 몇 가지 조건으로 어찌 설득했지만 아무래도 십악과 정면에서 승부한다는 것은 까다로울 수박에 없다.

어떻게든 설득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비밀로 할 것인가.

이세훈이 고민하던 그때.

[벌써 왔군.]

콰아앙!

스위트룸의 문이 박살 나며 류은하가 들어왔다.

“하, 학과장님?”

"........"

얼마나 서둘러왔는지 머리카락이며 옷이며 잔뜩 흐트러져 있는 모습.

그 상태에 이세훈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류은하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콱!

류은하의 두 손이 이세훈의 양 어깨를 붙잡더니 그대로 몸 곳곳을 살펴봤다.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외상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위르겐을 바라보며 굴었다.

“크게 다치셨던 겁니까?”

“아니, 그렇지는……"

“이세훈 생도는 잠깐 가만히 계십시오.”

류은하가 이세훈의 말을 가로막았고, 위르겐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히죽거리며 대답했다.

[그래. 내가 없었다면 중상, 재수 없었다면 죽었을지도 모르겠군.]

"......."

위르겐의 대답에 류은하의 몸이 흠칫 떨렸고, 이내 방 안의 공기가 희미하게 떨렸다.

고위 영웅의 감정에 마력이 호응을 일으키는 현상.

S급 영웅쯤 되면 흔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그게 누구냐는 것이었다.

‘이게 뭔……"

회귀 전에 류은하와 그렇게 알고 지냈지만 이 정도로 감정의 동요를 드러낸 적은 없었다.

그에 이세훈이 당황하던 그때. 위르겐을 바라보던 류은하의 고개가 다시 천천히 돌아왔다.

"........"

그러자 보이는 것은 평소와 같이 무표정하면서도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은 눈빛.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은 자연스럽게 그것이 무슨 감정인지 알아차렸다.

빠드득一

자신의 무능함에 대한 분노라고.

[대상 ‘류은하’의 인연레벨이 Lv. 3로 상승합니다.]

[인연레벨이 상승함에 따라 관계가 심화됩니다.]

[관계 : 공감共感]

고립된 이에게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란 든든한 버팀목이자 절대로 빼앗기고 싶지 않은 보물이 되기도 합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깊어질수록 그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물안감이 커질 것이며 그것이 사라졌을 때의 상실감은 한 사람을 완전히 변모시키기에 충분합니다.

그 집착에서 벗어나 서로를 이해하며 공감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관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대상이 공감을 느낄 때마다 인연석이 생성됩니다.

*대상이 이해받을 때마다 인연석의 숙성 속도가 증가합니다.

*대상의 불안감이 해소될 때 인연석의 심상발현 확률을 증가시킵니다.

* 현재 생성된 인연석: 1 개.

눈앞의 연달아 떠오른 알림창.

그 내용에 이세훈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렸다.

‘물안감에…… 상실감……?’

이게 정녕 류은하가 자신에게 느끼는 감정이란 말인가?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내용에 이세훈이 당황하던 그때.

“이세훈 생도.”

류은하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불렀다.

“아, 예. 말씀하세요.”

“세라핌 길드와 스폰서 계약을 파기하려고 합니다."

“……?”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나오는가 싶어 이세훈이 의아하게 바라보자 류은하가 뚫어져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었다.

“세 달…… 아니, 두 달 안에 정리할 테니 그 사이에 딱 한 가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뭐죠.”

“무리하지 마십시오.”

어깨를 꽉 뭍잡은 류은하가 두 눈을 이글거리며 빛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위험한 일을 하지 말아주십시오. 아시겠습니까?”

"........"

말을 듣지 않으면 팔다리를 묶어서 감금하려는 듯한 눈빛.

그 살벌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이세훈은 자연스레 깨달았다.

“무, 물론이죠.”

류은하는 몽환마의 토벌 작전에서 빼야겠다고.

* * *

각종 의체가 정육점의 고기들처럼 걸려 있는 공방.

이곳의 주인이자 마리오넷 팩토리의 수석 연구원인 알렌 모건은 열 시간 넘게 계속된 작업을 끝마치며 처음으로 의자에서 일어났다.

“끄으응……"

영웅의 강력한 육체라 할지라도 피로를 느끼지 못한다거나 몸의 버근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가볍게 몸을 굴어준 알렌은 다른 곳에 비해 쌩쌩한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여기에 반의반만 따라가도 행복할 텐데…… 하아.”

아쉬움이 담긴 한숨을 내쉬며 오른팔을 뚫어져라 보며 쓰다듬는 알렌.

자신의 팔을 만지기보다는 뛰어난 발명품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과 손길.

그렇게 알렌이 뜨거운 눈으로 오른팔을 보고 있을 때.

우웅一

팔 안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진동.

그에 알렌의 눈이 살짝 커졌다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방에 걸린 의체 중 하나를 아래로 잡아당겼다.

쿠르릉!

벽의 일부가 갈라지며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타났고 알렌은 그대로 아래로 내려가 방 안에 들어섰다.

완성된 의체나 골렘의 파츠를 비롯한 핵심 부품들이 보관된 창고.

그 한쪽에 놓인 의자에 앉은 알렌은 오른팔의 소매를 어깨까지 걷어붙였다.

왼팔에 비해서 피부색이 새하얄 뿐만 아니라 굵기도 가늘고 길이도 조금 길다.

마치 다른 사람의 팔을 이식한 듯한 모습.

그 오른팔을 앞으로 내민 알렌은 그대로 자신의 마력을 물어넣었다.

우우웅!

체내의 마력이 오른팔로 흘러들어간 순간.

여명과 같은 노을빛이 흘러나와 창고 곳곳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곳곳에 놓인 의체와 골렘의 파츠들이 들썩 거리더니 곧장 허공에서 하나둘씩 맞춰지기 시작했다.

찰칵찰칵!

완성된 것은 네 개의 인형.

각각 왼팔과 눈, 몸통과 두 다리가 비어 있었는데 그 빈자리에는 여명과 같은 노을빛이 채워진다.

주시자 [여명]을 이끄는 다섯 명의 간부인 ‘리전’.

그들이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한 알렌, 우완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누구 소집이야?’’

[나다.]

좌완이 입을 열더니 다른 리전들의 시선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루이제 발렌트와 이세훈이 마리오넷 팩토리의 현장체험에 참가 신청을 넣었더군.]

“뭐? 진짜로?”

[그래. 아마 일정대로라면 우완 네가 녀석들과 접촉하게 되겠지.]

좌완의 설명에 리전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각각 ‘목소리’와 ‘심장’에 자질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

그들을 확보하는 것이 [여명]의 최우선 목표였으나 지금으로서는 쉽지 않았다.

지난 사건들로 인해 상아탑과 바벨에서의 영향력이 축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승천제에게 경계를 사버렸기 때문이다.

[절호의 기회지만…… 어렵군요.]

[하물며 지금은 몽환마의 증축 계획에 협력 중인 상황. 일이 틀어지면 그녀와 적대하게 될 가능성도 높을 것이오.]

두 사람을 확보하려다가 얼마 남지 않은 조직의 기반마저 날려먹는다면 오랫동안 음지에 숨어 다녀야 할 것이다.

리전들이 그 가능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

[다들 바보야?]

그동안 가만히 있던 그릇이 이해가 안간다는 듯이 말했다.

[동화만 시킨 다음에 돌려보내면 되잖아. 거기까진 완등자들도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는 모를걸?]

“그게 단기간에 되는 줄 알아?”

[몽환마한테 납쭘하는 물건 쓰면 되는 거 아냐? 증축에 쓰이는 거.]

“ 그건......"

그릇의 이야기에 우완이 바로 대답하려다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고, 그 모습에 좌완이 물었다.

[가능한가?]

“조금 까다롭긴 하지만…… 가능할 것도 같네. 다만 미리 말해둘 게 있는데."

다른 리전들을 바라본 우완이 얼마 전에 몽환마측으로부터 전달받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몽환마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세훈을 확보하려는 것 같더라고. 우리가 먼저 확보하면 바로 적대하게 될 거야.”

환락가를 지배하는 몽환마와 적대하게 된다. 그 말에 다른 리전들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래. 필요 없는 말이었네.”

자신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분이 돌아오실 여명의 날을 만들어내는 것.

거기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십악이든 완등자든 그 누구와 적대하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그럼 끌어들일 만한 녀석들을 골라서 한번 해볼까.”

그렇게『여명」의 다음 테러 계획이 지하의 창고에서 은밀하게 준비되기 시작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