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06화
후웅!
흐레스벨그의 상체를 집어삼킨 검은 구멍이 말끔히 사라졌고, 하늘 위로 끌려가던 이세훈의 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힘 빠지네……'
안 그래도 지친 상태에 마혈기까지 사용한 탓인지 온몸에 피로가 몰려온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노곤함에 이세훈은 어떻게 착지할지 고민하다가 힘을 아예 빼버렸다.
‘될 대로 되라지.’
어차피 지금 상태면 떨어져도 죽지 않을 터.
그냥 대충 떨어진 다음 몸을 추스르기로 한 이세훈의 몸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지면에 떨어져 내리던 순간.
슈르륵!
검푸른 피가 이세훈의 몸을 깔끔하게 받아냈다.
소파처럼 부드럽게 몸을 받쳐주는 피.
그에 이세훈이 놀라는 사이 곁으로 베냐민이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아, 예. 크게 문제는 없습니다.”
문제없다는 말에도 미묘한 표정으로 아래쪽을 쳐다보는 베냐민.
그 시선에 이세훈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내렸다.
“ 아.”
명치 사이로 튀어나와 있는 새카만 검.
어딜 봐도 문제가 많았던 자신의 상태에 이세훈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잠깐만요.”
따악!
이세훈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검이 살짝 흔들리더니 등 뒤로 깔끔하게 뽑혀 나왔다.
우웅
매끄럽게 앞쪽으로 날아오는 새카만 검.
마혈기의 유지시간이 끝나서인지 곳곳이 갈라지기 시작한 모습에 이세훈이 유심히 살펴보았다.
‘흐음…… 얼추 제대로 된 것 같은데.’
그 모습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이세훈은 검신에 나있는 균열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후려쳤다.
파캉!
거푸집이 갈라지듯 산산조각 나며 떨어지는 푸석푸석한 파편들.
그 사이로 깔끔한 검의 표면이 드러나자 기다렸던 알림창이 이세훈의 눈앞에 떠올랐다.
[무구 ‘압그룬트’가 완성되었습니다!]
[경지에 오른 대장장이가 절대자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낸 특수한 무구! 경계를 오갈 수 있는 이 검은 존재 자체만으로 절대자를 향한 도전이 될 것입니다.]
[판정 결과 ‘압그룬트’의 등급은 ‘전설’입니다.]
눈앞에 연달아 떠오르는 결산창.
그 내용을 살핀 이세훈은 자신의 새로운 무구, 압그룬트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90cm 정도의 비교적 짧은 직검. 검신이 가늘고 얇은 데다 손잡이와 가드 사이에 구멍이 뻥 뚫려 있어 언뜻 보기에는 장식용처럼 보이기도 했다.
기존에 미완성일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에 이세훈은 이어서 정보창도 읽어보았다.
[압그룬트 Abgrund]
[등급 : 전설] [품질 : 중]
천운철을 특수한 제조법으로 가공해서 만들어낸 검.
마력을 소모하는 것으로 밤과 명계의 힘을 사용할 수 있으며 내부에 축적된 마력의 성질에 따라 각 효과가 강화됩니다.
경계의 힘으로 명계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며 암속성마력으로 이뤄진 물질이나 현상에 간섭할 수 있습니다.
*어둠을 흡수하여 마력으로 치환할 수 있습니다.
*경계의 힘으로 명계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습니다.
*스킬 ‘아바돈Abaddon’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쁘지는 않네.’
요 며칠 위르겐의 도움을 받아서 만들었던 새로운 무구.
기본적인 벼대는 어느 정도 완성했지만 세부적인 가공이 힘들어서 미완성인 상태였는데 마혈기를 통해 완성한 것이다.
‘이렇게 쓰게 될 줄은 골랐는데 말이야……'
마혈기로 완성도 높은 무구의 정보를 덧씌운 다음에 남은 흔적들을 수습해서 무구를 완성시키는 방법.
회귀 전에 시간이 없을 때 사용하던 방법이었는데 이번에는 제련하기 힘든 무구를 완성하는 데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이걸로 마혈기 자체에 문제가 없는 건 확인했어.’
남은 것은 몸의 문제.
이세훈이 가슴의 상처를 슬쩍 내려보던 그때. 허공에 위르겐의 눈이 나타났다.
[……]
공중에 떠 있는 압그룬트를 빤히 바라보는 위르겐.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이세훈에게 담담히 물었다.
[이게 완성품이냐?]
“예. 맞습니다.”
[흐음……]
이세훈의 대답에 위르겐이 눈을 가늘게 떴다.
[건방진 물건이군.]
불쾌함마저 느껴지는 중얼거림. 그 예상치 못한 반응에 이세훈에 의아해하다가 문득 결산창의 문구를 떠올렸다.
‘검의 존재만으로 절대자를 향한 도전이 된다고 했었던가?’
적당히 칭찬하는 문구인줄 알았더니 정말로 위르겐의 심기를 건드리는 부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뭔가 마음에 안 드시는 부분이라도……?”
[…….]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이세훈의 반응에 위르겐은 인형사의 자동인형을 집어삼켰던 검은 구멍을 떠올렸다.
접촉한 대상을 침식하여 다른 곳으로 전이시킨 힘.
보기에는 경계의 권능과 비슷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힘이었다.
그리고 위르겐을 물쾌함을 느끼는 부분은 바로 ‘완전히 다른 힘’이라는 부분이었다.
‘내 권능을 바탕으로 경계를 다루는 힘을 새롭게 만들어냈다라……'
좋게 보자면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고, 비딱하게 보면 자신보다 더 뛰어난 것을 만들 수 있다는 도전이나 다름없다.
마치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한 듯한 불쾌감.
다른 때라면 거슬려서 그냥 ‘정리’했겠지만, 눈앞의 녀석은 그렇게 처리하기에는 조금 아쉬움이 있었다.
한참 동안 고민하던 위르겐은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한 다음 이세훈을 바라보며 굴었다.
[이게 최선이냐?]
약간 도발하는 듯한 위르겐의 물음에 이세훈이 눈매를 꿈틀거렸다가 대답했다.
“지금은 그렇습니다.”
[그렇다는 건 다음에 더 뛰어난 물건을 만들 수 있다 이말이군.]
“못할 것도 없죠.’ 망설임 없는 이세훈의 대답에 위르겐이 짧게 이야기했다.
[지켜보지.]
지금은 자신의 권능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형편없는 수준이지만, 더 나아진다면 넘어가주지 못할 것도 없다.
‘겸사겸사 저작권도 받아내야겠군.’
처분을 미루기로 한 위르겐이 먼 훗날을 생각하며 만족하고 있을 때.
이세훈이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저 양반 또 이상한 생각하는 것 같은데……'
무슨 생각인지 굴어보고 싶지만 이런건 또 괜히 들쑤셨다가는 귀찮아질 뿐이다.
아예 화제를 돌리기로 한 이세훈은 이번 전투의 목적에 대해서 물었다.
“그래서 합격점은 된 것 같습니까?”
[아아.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군.]
불명자의 지골을 제대로 만들어냈으며, 그것을 전투에서 훌륭히 사용했는가.
이세훈의 물음에 방금 있었던 전투를 곱씹은 위르겐이 대답했다.
[명계를 투영해 힘을 이끌어내는 것은 나쁘지 않더군. 전환도 빠르고 효율도 괜찮았다.]
“크흠."
위르겐의 호평에 이세훈이 뿌듯해하려던 찰나. 그 모습이 못마땅한 듯 평가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에 반해 공격 방식이 너무 단조로웠다. 효율을 생각하면서 투창의 형태를 고집한 것 같은데 그래서야 무한정의 마력을 썩힐 뿐이지. 한 마디로 멍청한 짓이다.]
"........"
[그리고 베냐민을 소환한 것도 무리수였지. 성공하기는 했지만 만약 소환 과정에 혼선이 일어나서 다른 언데드가 나왔다면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거다. 도박 중독자나 할 법한 멍청한 전략이었던 셈이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혹평.
제대로 사령술을 배우지도 못한 사람에게 너무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또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무한정의 마력을 제대로 사용하고 운에 기대지 않는 확실한 전략을 사용하라. 기술과 별개로 모두 정론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거슬리는 점들이 많다만…… 가장 결정적인 그거군.]
이세훈의 명치를 본 위르겐이 차갑게 이야기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너무 쉽게 여겼다는 점이다.]
"........"
위르겐의 지적에 이세훈은 자신의 명치를 내려다보았다.
심장을 꿰뚫은 치명상. 원래는 압그룬트를 완성하고 바로 회복시킬 생각이었지만 어째서인지 현상유지만 겨우 되고 있는것이다.
[그 경계에 선다는 것은 삶과 죽음을 무한히 관측하여 모순을 유지한다는 것. 기술의 완성도를 떠나서 멀쩡히 살아 있는 녀석이 따라할 만한 기술이 아니야.]
살아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모순으로 이뤄진 불사.
그것이 위르겐 크루거가 완등자가 되면서 도달한 영역이자 일종의 비전인 것이다.
‘어느 정도 자신 있었는데…… 역시 실패였나.’
아마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령술에 대한 깊은 이해도 중요하지만 ‘영혼’ 자체를 완벽히 제어하고 있어야할 터.
그렇게 보면 회귀로 영혼이 변질되어 아직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이세훈으로서는 절대 온전히 펼칠 수 없는 기술이었다.
“그럼 상처가 회복 안 되는 것도 제 몸에 문제가 생겨서 그런 겁니까?”
[흐음. 문제라…….]
자신을 살펴보는 위르겐의 모습에 이세훈이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전투에 마혈기를 사용한 것은 능력도 선보이고 압그룬트도 완성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영혼에 어느 정도 통달한 위르겐에게 상담받기 위한 것도 있었다.
‘사부만큼 아니어도 이 양반이면 어느 정도 원인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위르겐의 눈에 무엇이 보일까.
이세훈이 살짝 긴장한 채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때.
[확실히 조금 생기긴 했군.]
“……정말입니까?”
[그래. 영혼이 처음보다 혼탁하게 변했다. 아무래도 그것 때문에 융체의 재생이 더뎌진 것 같군.]
“혼탁........"
영혼이 혼탁해졌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이세훈이 고민하자 위르겐이 담담히 설명을 덧뭍였다.
[네놈의 영혼에 물순굴이 끼어들었다는 뜻이다. 아마 경계 너머에서 망령들이 조금 깃든 거겠지.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테니 당분간은 무리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위르겐의 진단에 이세훈은 다시금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
‘영혼이 혼탁해지고…… 물순물이 생겼다……'
그 이야기에 이세훈은 한 인연석을 떠올렸다.
본래 무색의 투명한 광석이었으나 인연레벨이 오른 뒤 안쪽에 다른 무언가가 뒤섞인 형태로 변했던 자신의 인연석인
‘무연석’.
그동안은 확신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 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회귀하면서 영혼에 다른 무언가가 뒤섞인 거였군.’
도대체 무엇이 자신의 영혼에 뒤섞인 것인가.
어딘가 섬뜩한 상황에 이세훈의 눈매가 찌푸려지던 그때.
[아무튼 결과적으로 종합하자면.]
위르겐이 이세훈을 바라보며 평가를 정리했다.
[원숭이가 나를 흉내 냈다는 느낌이로군.]
사람도 아니고 원숭이. 순간적으로 화가 욱하고 치밀어 올랐지만, 이세훈은 생각을 바꿨다.
평범한 사람이 저런 말을 하면 욕이겠지만 상대는 성격파탄자에 정신이 이상한 미친 해골바가지. 그러니 말투보다는 그 속 뜻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다.
‘........ 아! 그건가.’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이세훈은 미소를 지으며 위르겐을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내 말을 제대로 들은 것 맞나?]
“예. 물론이죠.”
고개를 끄덕인 이세훈이 능청스럽게 이야기했다.
“미숙해도 위르겐님이 떠오를 만큼 경계의 권능을 잘 흉내 냈다는 뜻이 아닙니까.”
[…….]
“설마 그렇게까지 칭찬해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참으로 참신한 해석법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옆에서 지켜보던 베냐민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대단하군…… 회장님의 뜻을 저렇게 정확하게……'
가능하다면 비서실로 영입하고 싶을 만큼 뛰어난 해석 능력.
베냐민의 시선에 더욱더 확신을 얻은 이세훈이 의기양양해했고, 그 모습에 위르겐이 혀를 찼다.
[쯧……이상한 놈이로군.]
“그래서 제 말이 틀렸……."
[됐다. 아무튼 아슬아슬하게 합격이었다는 것만 알아둬라.]
듣기 싫다는 듯 이세훈의 말을 잘라버린 위르겐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테러와 전투의 여파로 인해 엉망이 된 도시.
처음에 빠르게 대피하긴 했지만 사망자가 적지 않았는데 위르겐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제여기도 정리하지.]
그에 대해서는 이미 모두 수를 써뒀기 때문이다.
후웅!
이세훈의 검지에서 물명자의 지골이 빠져나와 허공에 떠올랐고 그 안쪽에서부터 어둠이 흘러내리며 하나의 형상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검은 안개로 만들어진 로브를 뒤집어쓴 무언가.
거기서 흘러나오는 압도적인 존재감에 이세훈은 반사적으로 눈앞의 형체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불명자……'
모종의 사고로 육체의 대부분을 잃어버렸으나, 그렇다고 그 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새롭게 만들어낸 물명자의 지골을 매개체로 자신의 권능을 끌어올린 위르겐은 하늘을 가리키던 손가락을 천천히 땅 아래로 내렸다.
쿠구구궁!
시간이 가속된 듯 저편에서 밀려온 어둠이 하늘을 뒤덮었다가 다시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고, 그림자에 잠겼던 도시의 풍경이 눈 깜짝할 사이에 변했다.
“허......."
호텔을 비롯하여 파괴되었던 도시가 본래대로 복원되었고, 대피소로 피난했던 사람들은 물론 테러에 휩슬려 죽은 사람들도 모두 거리로 돌아왔다.
“어, 어........? 내가 왜......."
“폭발에 휩쓸렸는데......."
분명히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몸 어디에도 상처 하나 없다.
악몽이라도 꿨나 싶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선명한 기억에 모두가 당황하던 그때.
[상황은 종료됐다.]
허공에 떠올라있는 검은 망령, 위르겐이 도시 전역에 담담히 고했다.
[다시 제 할 일을 하도록.]
그걸로 끝이라는 듯이 사라지는 위르겐.
그 모습에 어느새 스위트룸으로 돌아온 이세훈은 창밖으로 완벽히 복원된 도심을 내려다보았다.
‘뭔가 준비를 해뒀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엄청나네.’
겉보기에는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세훈은 어렴풋이 어떤 방법을 쓴 것인지 이해했다.
‘아마 도시 전체를 명계에 미리 투영시켜놓은 다음 그걸 전환시킨 거겠지.’
도시 전체를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마음대로 결정 지을 수 있는 위르겐.
규모가 다른 완등자의 힘에 이세훈이 새삼스레 감탄하던 그때.
[받아라.]
허공에서 초록색 도가 칼집과 함께 툭하고 떨어졌다.
“ 이건......."
[자동인형이 남긴 거다. 전리품으로 챙겨라.]
전설 등급 무구에 관심 없다는 듯이 쾌척하는 위르겐.
완등자다운 배포라고 할 수 있었지만, 이세훈은 오히려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놈한테 마안도 하나 있지 않았습니까?”
[있었지.]
“그럼 그것도 주셔야……"
혼자서 다잡았는데 마지막 뒷정리 좀 했다고 그걸 가져가는 건 너무 양심 없는 것 아닌가?
그런 이세훈의 이야기에 위르겐이 담담하게 말했다.
[대여비다.]
“........ 예?”
[베냐민과 불명자의 지골을 빌려서 이긴 거니 내 도움도 받은 것 아니냐. 그러니 그만큼 전리품은 챙겨야지.]
“그게 무슨……"
본인이 성능을 검증하라고 싸우게 해놓고 이게 무슨 더러운 짓이란 말인가.
이세훈이 욱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위르겐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상처는 무상으로 치료해 줬으니 감사히 여겨라.]
"........"
어느새 말끔하게 매워져 있는 명치.
제멋대로 치료해놓고 값을 받아간다는 것이 매우 억울했지만, 이세훈은 자신이 참기로 했다.
저렇게 작정하고 가져간 이상 돌려받기도 애매하고 위르겐 성격상 더 따지면 괘씸하다고 전설 등급 무구도 가져가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에 새로운 몸을 찾으면 그때는 확 그냥……'
이세훈이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을 때.
그 속내를 어느 정도 읽어낸 위르겐이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놈은 정말 겁대가리가 없군.’
자신이 어느 정도 양보해 줬음에도 저렇게 불만을 드러내다니.
마음과 같아서는 한 번 교육을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결과를 내긴 했기에 위르겐은 자신이 한 번 양보하기로 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봐라.]
“……원하는 거 말입니까?”
[그래. 내키는 거라면 들어주마.]
대충 몇 푼 쥐어주고 끝내려는 듯한 위르겐의 모습에 이세훈이 두 눈을 빛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지금이 가장 좋은 상황이다. 주변에 듣는 귀가 없음을 확인한 이세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 여름방학 내에 몽환마를 죽일 생각이거든요.”
[........ 뭐?]
“저랑 같이 일 하나 해보시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