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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205화 (205/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05화

베냐민 루터.

과거 ‘블루 블러드Blue Blood’ 라고 불리며 만마전과의 전쟁에서도 큰 활약상을 펼친 S급 영웅이었으나 쿠데타 사건 때 위르겐에게 살해당한 인물.

완등자의 두려움을 알려주는데 큰 공을 세운 인물로 세간에서는 그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범죄자라고 말하지만, 정작 베냐민 본인은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위르겐에게 사역 당한 이후 그에게 저항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 이해하기도 했고, 생전의 기억도 어느 순간부터 자신과 별개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내 기억이지만, 아니기도 하지.’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고 부활한 순간. 기존의 베냐민 루터는 사라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베냐민이 되었을 뿐이다.

물론 언데드 중에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인물들이 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베냐민은 그렇게 생각해 오며 지내왔다.

그렇기에 위르겐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며 비서실상이라는 자리까지 올라 신임받게 되었지만.

“잘한다!!”

자신보다 어리고 약한, 무엇보다도 주인이 아닌 이의 명령을 따르고 있는 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오묘했다.

콰아앙!

베냐민의 몸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주먹을 휘둘렀고, 그에 맞서 나인 역시 에위니아를 휘둘러 받아쳤다.

푸콰악!

신체능력만 비교하면 베냐민과 나인 사이에 큰 차이는 없지만 에위니아라는 전설 등급의 무구가 있는 이상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공방이 오갈 때마다 주먹이 갈라지며 검푸른 피가 사방으로 튀었지만 그 모습에 인상을 일그러뜨리는 것은 베냐민이 아니라 나인이었다.

우우웅!

칼날에 베여 허공에 흩뿌려지던 검푸른 피가 고정된 것처럼 정지했고, 이내 베냐민의 주먹에 다시 달라붙으며 새로운 형태로 빚어졌다.

혈액이 응고되어 만들어진 거대한 손톱.

눈 깜짝할 사이에 양손이 변한 베냐민이 다시금 에위니아를 후려갈겼다.

카가강!

베냐민이 밀리는 것처럼 보이던 전투가 순식간에 대등하게 변했고 그 충격에 안 그래도 엉망이었던 호텔은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그 광경에 베냐민이 주변을 슬쩍 살피더니 나인을 보며 담담히 이야기했다.

“일단 밖에서 싸우지.”

콰가가각!

지면에서 쏘아지는 수십 발의 검푸른 탄환.

앞서 회수하지 않은 피들이 베냐민의 의지에 따라 쏘아진 것이었는데 나인이 재빠르게 에위니아를 휘둘러 막아냈다.

위력 자체는 그렇게 강력하지 않지만 저 탄환이 몸에 박히는 순간 안쪽으로 파고들어 움직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후웅!

그 틈새로 베냐민의 몸이 단숨에 정면으로 파고들었고 두 하수인들이 서로를 후려갈겼다.

콰아앙!

복부를 걷어차여 호텔 최상층에서 다시 지상으로 튕겨져 나가는 나인. 그 대가로 베냐민은 어깨에서부터 복부까지 갈라지는 큰 상처가 생겼지만 언데드이기에 별문제는 없었다.

‘완전수복까지 10초…….’

그사이에 나인이 다시 올라올 수도 있으니 임시로 봉합한 다음에 전투 중에 틈틈이 재생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베냐민이 판단을 내리며 아래로 향하려던 순간.

“흐음…… 이건가?”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검지를 가볍게 휘둘렀다.

꿀렁!

바닥에서부터 솟구쳐 오른 명계의 어둠이 베냐민의 몸을 장막처럼 감싸더니 상처의 안쪽으로 파고들며 눈 깜짝할 사이에 회복시켰다.

“……!”

단숨에 회복된 상처. 그 모습에 베냐민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오. 됐네.”

자신이 해놓고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이세훈의 모습에 베냐민은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어떻게 절 소환하신 겁니까?”

베냐민은 이미 위르겐의 휘하의 언데드.

그것도 일반 언데드가 아니고 정예인 ‘아인헤랴르’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외부인, 설령 위르겐의 피를 이어받은 자식이 할지라도 사령술로 간섭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을 이곳에 소환하고 명령에 따르게 만들었는가.

믿을 수 없어하는 베냐민의 모습에 이세훈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약간 편법을 썼죠.”

일반적인 언데드는 시체 혹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육체에 영혼을 불어넣는 것으로 만들어지지만, 베냐민은 조금 경우가 달랐다.

핏기만 조금 가셨을 뿐 죽기 직전의 육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베냐민. 심지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처음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S급 영웅의 육체라고 해도 이건 불가능하지.’

언데드니까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전설 등급 무구도 사용하다 보면 날이 닳듯이 S급 영웅의 몸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어디든 보수작업을 한 흔적이 있어야 했는데 베냐민의 몸에는 어제 막 죽은 것처럼 쌩쌩한 것이다.

대련을 통해 그것을 확인한 이세훈은 그제야 쭉 가설로만 여기고 있던 것을 확신했다.

“당신, 아니, 아인헤랴르에 속한 언데드들은 전부 명계의 어둠으로 만들어졌잖아요. 그러니 그 부분을 파고들면 저도 조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경계의 권능으로 베냐민의 영혼을 살해당한 직후의 상태로 보존한 뒤 그것을 명계의 어둠에 불어넣는다.

그런 다음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밀어 넣어 생전의 육체를 완벽하게 재생시키는 것이다.

‘역시라고 해야 할지…… 엄청난 방법이야.’

이렇게 되면 영혼이 보존되는 한 육체는 몇 번이고 재생할 수 있으며, 기량 역시 떨어지지 않는다.

경계의 권능을 완벽하게 활용한 언데드. 아마 위르겐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만들어낼 수 없으리라.

“파고든다…….”

“뭐, 말만 거창하지 약간 혼선을 줬을 뿐이에요. 위르겐 님이 부른 거라고 착각하게끔 말이죠.”

명계의 어둠을 끌어올린 다음 지난 대련을 통해서 파악한 베냐민의 육체 정보를 어설프게나마 재현한다.

그 다음 불명자의 지골을 매개체로 위르겐의 소환을 시도한 것인데 어떻게 보면 1학기 시험 때 고대인챈트로 주작을 조각 안에 불러낸 것과 비슷한 방식이었다.

‘대신 불명자의 지골이 없으면 불가능하고, 이마저도 위르겐이 작정하고 간섭하면 바로 막히지만.’

사실상 허가 하에 빌려 쓰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조금 기분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도 불명자의 지골을 활용법이니 뭐라고 하지는 않으리라.

“…….”

이세훈의 설명에 베냐민은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말로만 들으면 이렇게 쉬운 일이 없지만, 그게 정말 가능했다면 UD그룹의 후계자 경쟁은 진작 끝났으리라.

‘회장님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이 유일한 흠이군…….’

경계의 권능은 물론이고 영혼에 대한 관점까지 완벽하게 갖춘 이세훈의 모습에 베냐민이 생각이 복잡해지던 찰나.

“근데 슬슬 내려가 봐야겠는데요.”

이세훈이 엉망이 된 도심 쪽을 바라보았다.

파앙─!

나인이 추락했던 건물에서 바람이 터져 나온 순간. 외벽이 모조리 먼지로 변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건물 전체를 순식간에 먼지로 만들어 버릴 만큼 압축된 참격.

방금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에 이세훈이 두 눈을 빛냈다.

“드디어 꺼냈구만.”

후우웅

휘몰아치는 바람에 먼지가 흩어지고 빈 터에 서 있는 나인의 모습이 다시금 보였다.

끼리릭

평범한 인간처럼 보이던 상반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갈비뼈와 척추처럼 생긴 회색빛깔의 내골격이 외부로 훤히 드러났다.

그리고 왼팔도 잘려 나간 것처럼 어깻죽지 아래가 비어 있었는데 대신 그 주변으로 새로운 ‘육체’가 떠있었다.

우우웅

허공에 떠 있는 수백 자루의 비수.

방금까지 나인의 몸을 채우고 있던 부품들이 모조리 분리되어 허공에 떠오른 것이다.

조금 전과 싸우던 나인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 그것을 본 이세훈은 그제야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No.9 흐레스벨그. 그놈이었구만.’

공간능력과 바람능력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며 요인암살에 주로 투입되었다던 싱글넘버.

자동인형의 모든 기능을 해금하는 ‘종막終幕’을 사용할 경우 수백 자루의 비수를 제 몸처럼 다룬다고 자료에 적혀 있었는데 딱 맞아떨어졌다.

‘마안과 큐브. 그리고 저 초록색 도가 공명을 일으키면서 힘을 증폭시키는 건가.’

전력을 이끌어낸 나인, 흐레스벨그를 보고 있을 때. 그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위르겐의 개입이 너무 느리다고 생각했었는데…… 처음부터 끼어들 생각이 없었던 거였군. 맞나?”

다급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차분해진 흐레스벨그의 모습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무슨 목적이지?”

“시험이야. 나 혼자서 널 쓰러뜨릴 수 있나 없나.”

이세훈의 담담한 대답에 흐레스벨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자신을 붙잡아 조사하려던 것도 아니고 고작 생도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그야말로 완등자다운 오만한 행동이었지만, 흐레스벨그는 그보다 다른 것이 신경 쓰였다.

‘위르겐은 이세훈의 실력을 그 정도로 평가하고 있단 건가.’

좀처럼 믿기지 않지만 방금까지 이세훈이 펼친 사령술을 생각해 보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시험이라면 치명상을 입히더라도 회복시킬 수 있겠지.’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흐레스벨그가 그것을 검토하는 동안 이세훈이 물었다.

“불쾌하다고 자결하는 건 아니지? 그럼 곤란한데.”

“……그럴 일은 없다.”

생각을 정리한 흐레스벨그가 자세를 가다듬으며 두 눈을 빛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네놈을 죽일 테니까!”

후웅!

최상층의 정면으로 이동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쇄도해오는 비수들. 그 모습에 베냐민은 재빠르게 자신의 명치에 손끝을 찔러 넣은 다음 가슴을 잡아 뜯었다.

푸화아악!

사방으로 튀어 오른 검푸른 피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베냐민의 전신을 휘감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검푸른 갑주에 둘러싸인 괴물로 재탄생한다.

푸른색 눈동자를 빛낸 베냐민은 갑주를 형성하고 있는 자신의 피를 사방에 흩뿌리듯이 휘둘렀다.

카가가각!

혈액으로 만들어낸 꼬리가 비수들을 순식간에 쳐냈고 공세를 막아낸 베냐민이 뒤돌아보았다.

마치 명령을 기다리는 듯한 그 모습에 이세훈이 씩 웃으며 이야기했다.

“잡아 죽입시다.”

콰앙!

베냐민의 몸이 지상의 흐레스벨그를 향해 쏘아졌고, 전력을 이끌어낸 두 하수인들이 다시금 맞서 싸웠다.

콰드드득!

전신을 둘러싼 검푸른 갑주를 자유자재로 변형시키면서 싸우는 베냐민.

특수한 심장을 가진 변이체질이라 마력함유량이 높은 혈액을 생성할 수 있었는데 그것으로 혈술의 위력을 극대화시킨 것이었다.

언데드가 된 이후 혈액에 명계의 힘이 스며들거나 재생이 가능해지는 등 생전보다 훨씬 강해져 있는 상태였지만, 상대하는 흐레스벨그 역시 만만치 않았다.

카가가각!

사방에서 소용돌이치듯이 움직이며 베냐민에서 쏘아지는 수백 자루의 비수들.

속도도 속도지만 공격 사이사이에 단거리 공간이동이 뒤섞이면서 대응하지 못하는 공격들이 많았는데, 2할 이상의 공격이 베냐민의 갑주를 긁어댔다.

대인전에 특화된 그 공격 방식만 해도 매우 까다로웠지만 진짜는 오른손에 쥐어진 에위니아였다.

쿠구구궁!

두 사람의 공방 중에 발생하는 충격파와 비수들이 만들어내는 돌풍이 에위니아의 도신에 압축되었고, 그것이 더욱 강력한 참격으로 흩뿌려졌다.

이세훈이 명계의 어둠을 무한정으로 사용한다면 흐레스벨그는 주변에 만연해 있는 대기를 무한정으로 사용하는 상황.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날카롭게 벼려지는 에위니아의 참격에 이세훈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장기전으로 가면 안 되겠는데.’

지금은 베냐민의 갑주가 조금 깎여져 나가는 정도로 끝나지만 저대로 바람이 축전된다면 단숨에 두 동강 날 것이다.

빠르게 판단을 내린 이세훈은 지면에 두 손을 짚었다.

우우웅!

손바닥에서 뻗어나간 명계의 어둠이 순식간에 호텔 전체를 물들여갔고, 그 모습에 흐레스벨그가 눈짓을 보냈다.

피잉!

몇 자루의 비수들이 공간이동을 사용해 이세훈을 노리고 재빠르고 쏘아졌다.

그 모습에 베냐민이 다급히 최상층에 뿌려둔 혈액을 조종하여 막아내려던 순간.

투웅!

어둠 속에서 한 자루의 검이 튀어나왔다.

서걱!

날아오는 비수들을 가볍게 갈라버리는 칠흑의 검. 그 모습에 흐레스벨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S급 영웅의 공격도 견뎌낼 수 있는 비수를 간단히 갈라내다니. 그게 가능한 경우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전설 등급 무구?’

검신부터 손잡이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는 얇은 장검.

완성된 무구라기에는 조금 미흡한 면이 보였지만 흘러나오는 힘은 심상치 않았다.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그 형태에 흐레스벨그는 자연스럽게 그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세훈이 만들어낸 건가……!’

자신을 시험 대상으로 삼을 정도라면 그것 이외에는 없다.

비슷하게 진상을 파악해낸 흐레스벨그는 경악하고 있을 때.

“여유가 넘치는군.”

그 빈틈을 잡아낸 베냐민이 두 손을 맞부딪쳤다.

짜악!

박수 소리와 함께 베냐민을 둘러싸고 있던 피가 단숨에 사방으로 확산되었고 흐레스벨그와 그 주변에 떠있는 비수들을 단숨에 휘감았다.

청혈술靑血術 망혼심음亡魂心音

사방으로 뻗어나간 피의 그물이 베냐민의 검푸른 심장과 연결되더니 안쪽에서 맥동이 울려 퍼졌다.

두근─!

연결된 대상의 마력을 흩뜨려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하는 기술.

잠시 한눈을 판 대가로 옴짝달싹도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런……!’

베냐민 역시 움직이지 못하지만, 아군이 없는 자신과 다르게 저쪽에는 이세훈이 존재한다.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은 흐레스벨그가 다급히 벗어나려던 찰나.

쿠구구궁!

그 위로 나타나는 거대한 그림자.

자연스럽게 흐레스벨그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고, 여태 무너지지 않고 위태롭게 버티던 호텔이 검은색으로 물든 채 무너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콰아아앙!!

순식간에 자신의 몸을 덮쳐오는 무지막지한 질량.

눈 깜짝할 사이에 어둠에 둘러싸여진 흐레스벨그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을 짓누르던 잔해도, 전신을 묶고 있던 베냐민의 검푸른 피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도대체…….”

그 갑작스러운 변화에 흐레스벨그는 칠흑 같은 어둠을 살피다가 자연스레 또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대기가…… 없어?”

자신의 힘의 원천이나 다름없었던 대기. 그 힘이 어디를 살펴봐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달라진 환경에 흐레스벨그가 당황하던 그때. 맞은편의 어둠 속에서 베냐민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전투 중의 상처가 완벽히 치료된 모습. 그 변화에 흐레스벨그는 자신이 어디에 와버린 것인지 알아차렸다.

“설마…… 여기는…….”

“명계다.”

담담히 이야기한 베냐민이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흐레스벨그를 바라보았다.

“이곳에는 대기도 없고, 내 힘도 충만해지니 널 상대하기에 적합하지. 그래서 이곳으로 보내신 거다.”

대기에서 무한정의 힘을 얻는다면, 그것이 없는 공간으로 보내 버리면 그만이다.

호텔로 압사시키는 척 자신을 명계로 보내 버린 이세훈의 잔꾀에 흐레스벨그가 멍한 표정을 짓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대단하군.”

“그래. 네놈 따위가 넘볼 만한 분이 아니시지.”

무미건조하게 이야기한 베냐민이 옷을 모두 정리한 다음 그를 바라보았고, 그 뒤편으로 한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들어진 것은 거대한 성문.

완성된 문이 천천히 열리며 그 안에 도열한 위르겐의 언데드 군단을 드러냈고.

“그러니 여기서 죽어라.”

베냐민의 명령과 동시에 흐레스벨그를 향해 진격했다.

* * *

거대한 산처럼 쌓여 있는 건물의 잔해.

그 위에 자리 잡은 이세훈은 두 손을 바닥에 짚은 채 턱 밑까지 차오른 숨을 골랐다.

“후우…… 후우…….”

거의 바닥나기 직전인 마력.

전투 시작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경계의 권능을 사용한 탓에 슬슬 한계가 오고 있는 것이다.

‘슬슬 끝났으면 좋겠는데…….’

위르겐처럼 대상만 명계 너머로 완전히 보내 버리는 것은 상당히 버거웠기에 호텔의 잔해를 이용해 공간 전체를 옮기는 편법을 썼는데, 이것도 쉽지 않았다.

명계에 붙잡아두기 위해 경계의 권능을 강하게 발동해야 하는 데다 흐레스벨그가 안쪽에서 난동을 부릴 때마다 마력의 소모가 커졌기 때문이다.

쿠구궁!

잔해의 안쪽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진동.

이전에 류은하가 경계를 부수고 명계에서 자신을 끄집어낸 것처럼 흐레스벨그 역시 그렇게 시도하는 것이다.

“…….”

이대로 베냐민과 언데드 군단이 흐레스벨그를 쓰러뜨리기를 믿을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으로 준비해 둔 한 수까지 사용할 것인가.

잠시 동안 고민하던 이세훈이 이내 두 눈을 빛냈고.

‘남이 만든 작품들을 믿고 있을 순 없지.’

후웅!

잔해에 적용되었던 경계의 권능이 풀린 순간.

안쪽에서부터 무언가 솟구쳐 올라오더니 단숨에 이세훈의 목을 낚아채며 위로 날아올랐다.

────!

왼쪽 눈가가 완전히 함몰되고 목이 절반 이상 잘렸으며 하반신은 모조리 뜯겨져 나갔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곳곳이 찌그러진 몸과 너덜너덜한 오른팔. 하지만 왼팔에는 바람을 압축해서 만들어낸 팔이 흉흉하게 움직였고 그 손에 쥐어진 초록색 도가 예기를 흩뿌린다.

수만 마리의 언데드를 상대로도 악착같이 싸웠음을 보여주는 몰골.

인형사의 걸작다운 그 흉악한 기세에 이세훈이 놀라고 있을 때.

우우웅!

흐레스벨그의 안쪽에서 거대한 구동음이 울려 퍼졌다.

부러진 내골격 안쪽에서 빠르게 회전하는 큐브. 마지막으로 쥐어짜내는 듯한 그 힘에 이세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공간이동?’

이대로 자신을 인질로 삼아 어디론가 도망치려는 것일까. 그에 이세훈이 대응하려던 찰나.

푸욱!

에위니아가 이세훈의 심장을 단숨에 꿰뚫었다.

‘됐…… 다…….’

살아있는 채로 이동시키기에는 힘이 부족한 상황.

그러니 이세훈을 죽인 다음 자신의 마안과 에위니아, 그리고 이세훈의 심장만이라도 주인에게로 전이시킨다.

그렇게 모든 힘을 이끌어낸 흐레스벨그가 은신처의 좌표를 설정했고.

“거긴가.”

축 늘어져 있던 이세훈이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알려줘서 고맙다.”

“?!”

죽었는 데도 살아 있는, 가능할 리가 없는 모순적인 상태.

그런 이세훈의 모습에 흐레스벨그가 다급히 바람으로 만들어낸 왼팔로 이세훈의 머리를 부수려 했다.

콰득!

하지만 그것보다 빠르게 칠흑처럼 어두운 검이 이세훈의 가슴을 꿰뚫으며 동시에 흐레스벨그의 큐브를 파괴했다.

우우웅!

앞서 자신의 비수를 잘라냈던 미완성된 전설 등급 무구.

그 검날에 큐브가 단숨에 파괴되었고, 공간이동을 위해서 준비하던 힘이 사방으로 폭발할 것처럼 요동친다.

‘조금…… 이라도…….’

이세훈에게 무언가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면 무엇이든 좋다. 흐릿해져가는 의식 속에 흐레스벨그가 폭주를 가속시켰지만.

주르륵

그보다 먼저 이세훈의 피가 움직였다.

영연신마법靈硏身磨㳒 마혈기魔血氣

쿠드득─콰득─

가슴에서 흘러내린 검은 피가 칠흑의 검에 달라붙었고 이어서 이세훈의 영혼 속에 각인된 무구의 형태를 다시 재현한다.

그리고 만들어지는 것은 칠흑을 더욱더 어둡게 물들여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듯한 무저갱의 검.

미완성된 무구의 위로 덧씌워진 마검이 큐브의 안쪽으로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고.

혼원무구魂原武具 흑암혈黑暗穴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구멍이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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