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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203화 (203/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03화

“…….”

눈앞에 떠오르는 알림창에 이세훈은 자신의 손바닥 위에 떠 있는 검은색 손가락뼈, 새롭게 만들어낸 불명자의 지골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불명자의 지골]

[등급 : 전설] [품질 : 상]

완등에 성공한 절대자, ‘위르겐 크루거’의 왼쪽 검지뼈를 본떠서 만들어낸 무구.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사령술사의 육체를 재현하여 강력한 사령마법의 촉매가 될 뿐만 아니라 명계의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경계를 관측하는 불명자의 권능이 깃들어 있으며 마력을 소모하는 것으로 그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명계에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마력을 소모하여 경계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전설 등급…….’

수많은 영웅이 가지기를 원하고, 또 수많은 장인이 만들기를 원하는.

명칭 그대로 전설에 남아도 부족함이 없을 무구들에게만 붙는 등급.

회귀 전에 몇 번이고 만들긴 했지만 회귀하고 나서는 처음인 만큼 나름의 의미가 있는 순간이긴 하다.

“…….”

하지만 그 결과물을 눈앞에 두고 이세훈은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첫 번째는 자신의 힘으로 온전히 만들어냈다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고.

[전설 등급에 품질은 상인가. 그럭저럭 잘 만들었군.]

두 번째는 거의 다 끝난 작업의 마무리를 다른 사람에게 통째로 빼앗겼기 때문이다.

‘선심 쓰는 척 마무리를 훔쳐가고…… 치사하고 더러워서.’

케이크 위에 꽂혀 있는 딸기 조각을 마지막까지 아껴뒀더니 안 먹냐면서 홀라당 뺏긴 듯한 기분.

그에 이세훈이 눈매를 꿈틀거리며 쳐다보고 있자 허공에 다시금 나타난 위르겐의 눈이 히죽거렸다.

[표정이 영 좋지 않군. 이미 다 만들어진 물건에 마무리만 낚아챘으면서 거들먹거린다, 뭐 그런 생각이라도 하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위르겐님이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만들 수 없었을 겁니다.”

[크크. 네놈도 장인이긴 장인이군. 표정관리도 잘 안 되고.]

유쾌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위르겐이 자신이 마무리한 불명자의 지골을 바라보았다.

[물론 네놈이 완성해도 이것과 비슷한 게 나왔겠지. 지난번에 봤을 때 명안계암…… 경계의 권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한 것처럼 보였으니.]

“그러면…….”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물건은 ‘무구’였겠지. 완등자의 육체라고 하기에는 부족했을 거다.]

위르겐의 이야기에 이세훈의 눈이 살짝 커졌고, 이내 손바닥 위에 있는 불명자의 지골을 다시금 살펴보았다.

‘여기에 차이가 있다는 건가?’

완등자의 힘이 담긴 무구와 완등자의 육체. 쉽사리 구분되지 않는 차이에 이세훈이 빤히 보고 있을 때.

[그보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위르겐이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영웅 협회에 신고하고 S급으로 승급할 거냐?]

영웅 협회에 전설 등급 무구를 신고하고 자신의 힘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것을 증명하면 그 즉시 S급 영웅으로 인정받으며 다양한 혜택을 받게 된다.

그중에는 협회 소속 S급 영웅을 긴급 호출할 수 있거나 희귀한 소재의 매입권 등 쓸 만한 것이 많아 평범한 장인이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는 조건들이었지만.

“아뇨. 당장은 안 할 생각입니다.”

이세훈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항목이었다.

[그래? 기술직, 특히, 대장장이는 일반 영웅들보다 받는 혜택이 훨씬 많은데 아쉽지 않겠나?]

“그렇기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외부에 공개해서 받는 불이익이 더 많으니까요.”

무구산업의 난제인 검기 양산화에 성공했던 천재 대장장이가 이제는 전설 등급 무구까지 만들어냈다!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아마 하루도 안 돼서 전 세계에 퍼지게 될 것이고, 만마전 역시 곧장 알게 되리라.

“지금도 몽환마랑 인형사, 조율자에게 주목받고 있는데 여기서 더 심해지면 진짜 비명횡사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벌써 셋에게 주목받아 버렸나. 확실히 그 이상 늘어난다면 최우선적으로 제거당할 수도 있겠군.]

“그리고…….”

여기까지 말해야 할지 고민하던 이세훈은 위르겐이 평소에 공식 선상에서 말하던 것을 떠올리며 이야기했다.

“영웅 협회는 그렇게까지 신뢰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호오.]

이세훈의 이야기에 위르겐이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와서 내 비위를 맞추려는 거냐?]

위르겐은 완등자들 중에서도 영웅 협회에게 주어진 권한들의 철폐를 주장하며 약화시키려는 인물.

그렇기에 언뜻 보기에는 거기에 맞장구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세훈은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였다.

“아뇨. 정말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영웅 협회는 규모가 큰 만큼 여기저기 구멍이 많은 것 같아서요.”

전 세계의 영웅들과 위험지역을 관리하는 영웅 협회. 그 역할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구조상 여기저기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주시자들이 파고들기 쉬우니까 말이야.’

적당한 협력관계라면 모를까 손에 있는 패를 공개하면서 가깝게 지내기에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

굳이 패를 공개한다면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 하선우나 회귀 전에 확실하게 알고 지냈던 이들밖에 없으리라.

[흐음…….]

이세훈의 이야기에 위르겐이 가만히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여자친구 있나?]

“……예?”

[결혼적령기인 딸이 18명 정도 있는데 한 번씩 만나볼…….]

“위르겐 크루거 님.”

차가운 목소리가 공방에 울려 퍼졌고, 이세훈과 위르겐의 눈이 바로 옆에 있는 류은하에게 향했다.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생도에게 그런 권유는 삼가주셨으면 합니다.”

차가우면서도 이글거리는 열기가 느껴지는 살벌하기 그지없는 눈빛. 류은하를 아는 사람이라면 깜짝 놀랄 만한 모습에 이세훈도 살짝 긴장했다.

‘이건 조금 위험한데.’

위르겐이 루트비히와의 관계를 생각해서 비교적 온건하게 나오긴 했지만 이 정도로 적대감을 드러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잘못하면 싸움 나겠다 싶어 이세훈이 어떻게 나서야 할지 고민하던 그때.

[흐음. 알았다. 이건 미뤄두지.]

위르겐이 별다른 반응 없이 순순히 물러섰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상과 다른 반응에 류은하가 묘한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대답했고, 이세훈도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저 양반이 저럴 양반이 아닌데…….’

나이가 나이인 만큼 노망이라도 온 것일까. 이세훈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또 건방진 생각을 하고 있군.]

불명자의 지골을 통해 위르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울려 퍼졌다.

[생각해 보니 아직 정산이 끝나지 않아서 미룬 것뿐이다. 완성품의 등급이 어떻든 간에 조건은 변함없으니까.]

‘아아…….’

인형사의 싱글넘버를 제압하기 전까지 다른 거래는 하지 않겠다. 그 뜻을 이해한 이세훈이 위르겐을 다시 보았다.

‘원래 영웅 등급이던 걸 전설 등급으로 다시 만들어줬는데 그걸 굳이…… 하여간 가진 양반들이 더하다니까.’

위르겐에게 속내를 읽히지 않도록 주의하며 이세훈이 속으로 씹어대고 있을 때.

[그래서 남은 재료들로는 뭘 만들 거지?]

위르겐이 아직 남아있는 천운철을 바라보며 물었다.

“예? 그건 왜…….”

[무구를 만드는 게 생각보다 재밌더군. 방금 수준이라면 얼마든지 도와주지. 생각해 둔 게 있으면 뭐든 해봐라.]

우우웅

명계의 마력을 끌어올리며 담담히 이야기하는 위르겐.

새로운 무구를 만드는 데 딱 필요한 재료에 이세훈은 가만히 바라보다가 환하게 웃었다.

“아니, 뭘 이런 걸 다…….”

역시 재벌회장답게 배포가 큰 사람이었다.

* * *

독일에서 이세훈의 일과는 두 가지로 나뉘었다.

“더 빠르게 달려!!”

───!

오전에는 명계에서 언데드들과 빌딩을 타고 오르며 추격전을 벌이고, 그 이후에는 점심을 먹은 다음 UD그룹의 연구실로 향한다.

“아니아니. 거기 말고 저쪽!”

[말이 짧군. 죽고 싶나?]

“저쪽이요!”

그리고 밤늦게까지 위르겐의 도움을 받아가며 새로운 무구를 제작하고 온몸이 녹초가 됐다 싶으면 숙소로 돌아간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이세훈 생도.”

“예. 안녕히 주무세요.”

첫날과 다르게 류은하와 같은 방에서 쓰게 됐지만 침대를 따로 썼기에 별 차이는 없었고, 개운하게 자고 일어나면 다음 날에도 같은 일과를 반복한다.

그렇게 사흘 정도가 지난 뒤. 위르겐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무구를 어느 정도 완성하는 데 성공한 이세훈은 오후에 새로운 훈련을 진행했다.

파앙!

시체처럼 창백한 사내, 베냐민의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귓불을 스쳐지나가며 충격파를 흩뿌린다.

간발의 차로 공격을 피하는데 성공한 이세훈은 곧장 경계의 힘을 사용해 명계의 어둠을 끌어냈다.

후웅!

오른손 안쪽에서 흘러나온 명계의 어둠이 단숨에 한 자루의 창으로 변했고, 이세훈은 재빠르게 정면에서 압박해 오는 베냐민에게 휘둘렀다.

터엉!

베냐민의 몸과 맞부딪치면서 울려 퍼지는 뭉툭한 소리.

천충검으로 만들어내는 검기와 달리 이쪽은 순수한 힘의 덩어리다 보니 날이 있어도 몽둥이처럼 뭉툭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이다.

콰가가강!

이세훈의 창과 베냐민의 주먹이 쉴 새 없이 충돌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날에 검은 장창이 반으로 갈라진다.

하지만 거기에 이세훈은 놀라는 대신 자연스럽게 부러진 장창을 두 자루의 장검으로 변형시킨 다음 재빠르게 휘둘렀다.

“…….”

대련장 위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공방. 그 모습에 류은하가 말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

[참 재주가 많은 놈이군.]

허공에 떠 있는 눈, 위르겐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제련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전투 쪽으로도 저만큼 할 줄이야…… 루트비히가 신경 쓰고 있는 이유를 알겠어.]

위르겐의 이야기에 류은하가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위르겐 님은 이세훈 생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흐음…….]

류은하의 물음에 위르겐은 다시금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오전 훈련이 끝난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는 이세훈. 위르겐은 사실 다른 것보다도 그 모습이 가장 신기했다.

‘다른 녀석들이라면 하루종일 기진맥진할 텐데…… 어떻게 돼먹은 몸인지 모르겠어.’

오전 훈련은 이세훈이 꼭대기에 도달하거나 언데드들에게 잡힐 때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결말을 늘 전신을 갈기갈기 찢기는 것으로 끝났다.

벌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한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었는데 사실은 이 과정 역시 훈련의 일환이었다.

‘죽음을 경험하는 것만큼 명계를 이해하는데 유용한 게 없으니까 말이야.’

극한의 상황에서 죽음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것으로 명계와의 친화력을 높이고 영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

고통스럽긴 하지만 단기간에 성과를 보기가 좋아 시도한 것이었는데 결과는 위르겐의 예상과 조금 달랐다.

성장 속도는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배로 빠르고 부작용은 일절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재능인가 했지만…… 뭔가 다르다.’

새롭게 깨우치기 보다는 마치 잊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듯한 느낌.

비슷하면서도 다른 감각에 위르겐이 이세훈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아직은 판단하기가 어렵군. 자료가 부족해.]

“……그렇군요.”

어떤 의도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무미건조한 대답. 그 모습에 위르겐이 슬쩍 웃으며 물었다.

[너는 어떻지?]

“저 말씀이십니까?”

[그래. 저 녀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류은하가 이세훈을 상당히 아끼고 있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아낀다는 것이 어느 정도인가.

위르겐의 물음에 류은하가 잠시 동안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체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저놈이?]

“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 류은하가 이세훈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 누구도 이세훈 생도를 대체할 수 없다. 그게 제 생각입니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

극찬이라고도 할 수 있는 표현이었고, 그 내용에 위르겐이 흥미로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세간의 소문이 과장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오히려 과소평가였군 그래.’

류은하의 안에서 이세훈이 얼마나 큰 존재로 자리 잡고 있는지 위르겐이 이해한 그때.

파앙!

베냐민의 손날이 두 장검을 부수며 목에 겨눠졌고, 그 모습에 이세훈이 양손을 들었다.

“졌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대련을 끝내면서 두 사람이 아래로 내려왔고 류은하가 미리 준비해 둔 수건을 건네주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수건을 받아서 얼굴으 땀을 닦아낸 이세훈은 위르겐의 눈 옆에 서있는 베냐민을 힐끔 보았다.

‘확실히 일반적인 언데드랑은 느낌이 다르구만.’

죽었는데도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풍기는 것이 아마 일반적인 언데드와는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움직이는 방식이 다른 게 분명하리라.

‘그래도 필요한 건 얻었어.’

나머지는 실전에서 어디까지 통할 것인가.

거기에 생각이 닿은 이세훈은 맞은편에 서 있는 류은하를 바라보았다.

‘그러려면 류은하부터 어디로 보내야 하는데.’

위르겐이 있는 독일까지 암살하려고 찾아온 만큼 인형사의 싱글넘버는 매우 신중했는데 그 때문에 무턱대고 류은하를 어디 보낼 수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인위적인 느낌이 풍긴다면 저쪽에서 접근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내 쪽에서 쳐들어가는 것도…… 결국 류은하를 떼어내야 하니 힘드네.’

경호 때문에 직접 불렀는데 설마 이런 문제가 발생할 줄이야. 이세훈이 난처한 표정을 짓자 맞은편의 류은하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뭔가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예? 아아. 그냥 몸이 조금 뻐근해서요. 오전 훈련 후에 바로 움직이는 건 조금 무리수였나 봐요.”

“그럼 오늘은 그만 쉬시는 게…….”

“으음…… 그게 좋겠네요. 씻고 갈 테니까 먼저 나가 계세요.”

류은하를 먼저 보낸 뒤, 이세훈은 샤워실에서 몸을 간단히 씻은 다음 연구소의 1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류은하가 기다리고 있을 문 밖으로 나선 순간.

“돌아가시죠.”

“계속 그렇게 할 거야?”

평소보다 싸늘한 기세를 내뿜는 류은하와 그 맞은편에서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고 잇는 적갈색 머리카락의 여인.

어딘가 낯이 익은 그 모습에 이세훈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있을 때. 그 등장을 알아차린 두 사람이 돌아보았다.

“흐음. 유명인사가 계셨네.”

“잠깐…….”

“비키렴.”

류은하를 지나친 적갈색 머리칼의 여인이 이세훈의 앞으로 다가와 품에서 명함을 꺼내 한 손으로 내밀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세라핌 길드의 길드장직을 맡고 있는 유리얼 오펜하이머예요.”

과거 보육기관 겸 영웅 육성기관인 ‘에덴’을 운영했으며 지금은 무구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세라핌 길드.

어린 류은하를 S급 영웅으로 키워내고 현재 스폰서를 맡은 곳으로 염화문과도 협력체계를 갖추는 등 상당한 규모를 지닌 곳이었다.

‘이 양반이 왜 갑자기?’

뜬금없는 등장에 이세훈은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내밀어진 명함을 받았다.

“바벨의 제련학부 1학년인 이세훈이라고 합니다.”

“1학년수석이라고 소개해도 될 텐데. 소문에 비해 매우 겸손하시네요.”

싱긋 웃은 유리얼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말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요. 다름이 아니라 스폰서 업무 관련으로 은하한테 전화랑 메시지를 보냈는데 며칠 내내 답장은커녕 읽지도 않아서 이렇게 직접 찾아온 거예요.”

골치 아프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하는 유리얼. 그 모습에 이세훈은 돌연 첫날에 전화를 냉큼 끊어버리던 류은하의 모습을 떠올렸다.

‘과연. 그때부터였나.’

사이가 썩 좋지 않은 건 알았지만 설마 스폰서의 연락을 아예 무시하고 있었을 줄이야.

이세훈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짓자 유리얼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실례가 안 된다면 은하 좀 잠깐 데려가도 될까요? 몇 시간이면 되니까…….”

두 사람 사이에 류은하가 끼어들었고, 평소보다 무미건조해진 눈으로 유리얼을 노려보았다.

“이번 일이 끝나면 간다고 했습니다. 당장 돌아가십시오.”

“그때는 늦는다고 몇 번을 말해. 사업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네 맘대로 되는 줄 알아?”

“마지막으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돌아가십시오.”

“미안하지만 오늘은 안 돼.”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위태로운 상황. 그에 이세훈이 가만히 바라보다가 두 눈을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그냥 다녀오세요.”

이세훈의 이야기에 류은하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바라보았다.

“하지만…….”

“경호를 부탁드린 제가 말하는 것도 뭐 하지만 위르겐님도 있으니까 그렇게 위험하진 않을 거예요. 그리고 해봐야 몇 시간이잖아요. 그렇죠?”

이세훈의 되물음에 살짝 의외라는 듯이 보고 있던 유리얼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약속할게요.”

“…….”

“걱정해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다른 일을 다 내팽개칠 정도로 해주실 필요는 없어요. 저는 신경 쓰지 말고 다녀오세요.”

이세훈의 이야기에 류은하가 말없이 바라보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금방 다녀올 테니 절대로 혼자 돌아다니시면 안 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세훈에게 주의를 한 류은하는 이어서 가만히 구경하고 있던 위르겐을 바라보았다.

“숙소 근처 경비 강화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중증이군…… 알아서 할 테니 신경 꺼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거듭 부탁한 류은하는 몸을 돌려 유리얼을 바라보았다.

“가시죠.”

“노려보기는…… 따라오렴.”

류은하가 옆쪽에 대기하고 있던 고급 승용차에 올라탔고, 유리얼이 뒤따라 타기 전에 몸을 돌려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다음에 시간나면 밥이나 한번 먹죠.”

부우웅

유리얼이 올라타며 차량이 빠져나갔고, 이세훈과 위르겐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왔군.]

‘왔네요.’

기다리던 품질 검증의 시간이 다가왔다.

* * *

“…….”

허름한 빌딩. 작은 망원경을 눈에 가져다댄 사내, 인형사의 싱글넘버 자동인형인 ‘나인’은 표적의 상황을 살폈다.

표적인 이세훈은 연구소에서 호텔로 돌아갔고 가장 골칫덩어리였던 류은하가 차량을 타고 저 멀리 이탈한다.

그 빈자리를 채우듯 호텔 주변에 경비가 삼엄해졌는데 그 정도는 상정 내였다.

‘지금이 기회군.’

모든 조건이 갖춰졌음을 확인한 나인은 며칠 동안 대기하고 있던 괴뢰들에게 의식을 연결시켰고.

‘터뜨려라.’

콰아아아앙!!

이세훈이 머무는 호텔의 지하와 1층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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