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199화 (199/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99화

싸움을 예고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선언한다. 오만하기 그지없는 행동이었으나 상대가 완등자인 만큼 무게가 달랐다.

꿀렁.

순식간에 주변을 뒤덮은 어둠.

천장과 바닥이 구분가지 않으며 자신의 몸을 제외한 모든 것이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인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그 풍경에 이세훈은 자연스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렸다.

‘경계의 건너편……. 명계인가.’

현실의 그림자, 죽음의 세계, 망자의 종착점.

위르겐이 완등자가 되면서 발견한 이 ‘명계冥界’는 본래 직감에 의존하던 사령술을 대중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었다.

과거에는 영혼이 어디로 향하는지, 또 어떻게 불러내는지 저마다 방법이 달랐었는데 명계가 발견되면서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된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바벨의 아공간 터미널 같은 거지.’

죽은 자들의 영혼이 반드시 거치게 되는 중간지점. 사령술사들은 이 명계를 기준점으로 사령술을 재정립하면서 안정성을 높이고 위력을 높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기존에 인류가 믿던 사후세계들과는 많이 달랐기에 여러 혼란을 일으키긴 했지만 어찌 됐든 사령술에서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고.

꿀렁

당연히 살아 있는 사람이 갈 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주변의 어둠이 한차례 요동치는가 싶더니 몸의 가장자리부터 천천히 물들이기 시작한다. 그 광경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과연. 이런 식으로 명계에 침식당해서 서서히 망자로 변하는 건가.’

단순히 검은색으로 물들 뿐만 아니라 몸에 힘이 빠져나가고 육체 자체가 조각조각 분해되어 흩어진다.

지금 속도라면 5분도 채 버티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라면 공포에 질렸을 상황이지만 이세훈은 크게 개의치 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진짜 죽이려고 했으면 진작 죽었을 테고…… 뭔가 보고 싶은 거겠지.’

위르겐은 자신에게서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일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금방 답이 떠올랐기에 이세훈은 곧장 움직였다.

‘불명의 율법.’

우우웅

이세훈의 몸 안에서 무형의 파동이 뻗어 나간 순간, 전신을 물들여 가던 어둠이 단숨에 밀려 나가며 주변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세훈의 발아래에 하나의 선이 나타났는데 마치 이곳이 바닥이라고 구분 짓듯이 흔들림 없이 명확했다.

‘이게 경계인가.’

자신이 만들어낸 선을 바라본 이세훈은 곧장 그 위에 올라섰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감각이 변하는 것을 느꼈다.

전신이 명계와 애매하게 뒤섞여 있던 상태에서 자신과 명계 사이에 확실하게 ‘경계’가 그어진 감각.

더 이상 몸이 침식당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이세훈은 경계의 힘이 어떤 것인지 대략적으로 파악했다.

‘비닐장갑 같은 거구만.’

명계. 검은 먹물에 물들지 않도록 막아주고 그것을 안전하게 퍼 갈 수 있게 도와준다.

어떻게 보면 기본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강한 침식 능력을 가진 명계의 힘을 다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힘이었다.

‘위르겐이 보고 싶었던 건 아마 이거겠지.’

자신의 권능을 흡수해서 얻은 경계의 힘을 얼마나 잘 다루는가. 위르겐은 아마 그것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다짜고짜 명계에 집어넣은 것이 분명하리라.

‘나 정도면 안 죽는다고 생각한 건가? 아니, 그냥 죽어도 살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네.’

약간 정신이 나간 시험방식이긴 했지만 회귀 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종종 있었기에 이세훈은 크게 동요하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이대로 버티고 있으면 어련히 꺼내주긴 하겠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무엇보다도 그래봐야 위르겐의 평가가 애매할 것이다.

좀 더 점수를 따보기로 한 이세훈은 자신의 암속성 마력인 야계암을 끌어 올렸다.

우우웅!

두 손에 야계암이 맺힌 순간. 잠잠하던 주변의 어둠이 순식간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경계 너머에 존재하는 특수한 암속성 마력, 명계의 힘을 다루는 데 특화된 야계암이 자연스럽게 힘을 모으는 것이다.

‘어디 보자…….’

두 손에 야계암을 두른 채 이세훈이 허공에 큼지막한 원을 그려냈다.

후웅!

그러자 그 궤적을 따라 선이 그어지더니 명계의 힘이 일부분 떨어져 나왔는데 마치 공기의 일부분이 테두리가 그어지면서 분리된 것 같은 광경이었다.

우우웅

이세훈은 그 일부분을 두 손으로 천천히 주물렀고, 본래 원형에서 점점 장창의 형태로 빚어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야계암의 마력이 섞이면서 색상도 기존보다 조금 밝게 변했는데 명계의 힘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 풍겨 나왔다.

“흐음. 나쁘진 않지만…… 조금 무난한 느낌이네.”

후웅!

휘두를 때 느낌은 좋지만 구성을 따지고 보면 명계의 힘에 암속성마력을 더한 평범한 장창에 불과하다.

전체적인 구조를 살핀 이세훈은 검지로 창의 표면에 작게 술식을 새겨 넣기 시작했다.

‘기왕이면 침식 능력을 살리는 쪽이 좋겠지. 그리고 접촉한 대상에 소규모로 경계를 반전시켜서 명계와 연결시키면…… 아, 이게 명안계암의 구조인가?’

이세훈이 머리를 쥐어짜 내며 장창의 구조를 개선하던 그때.

쿠웅!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진동. 그 무시무시한 떨림에 이세훈이 놀란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뭐지?’

너무 잘 버티고 있으니까 위르겐이 뭔가 개수작을 부리려는 것일까. 이세훈이 곧 일어날 일에 대비하던 그때.

쿠우웅! 쩌적!

다시 한번 거대한 진동과 함께 맞은편에 거대한 금이 새겨졌다.

마치 누군가가 이 공간을 부수려고 하는 듯한 상황. 그 놀라우면서도 익숙한 광경에 이세훈의 머릿속에 한 가지가 뒤늦게 떠올랐다.

‘……류은하?’

자신은 이곳에 혼자 왔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콰아아앙!!!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눈앞의 공간이 박살 났고, 칠흑으로 뒤덮인 공간에 진홍빛의 불꽃이 밀려들어 왔다.

그리고 그 불꽃의 안쪽에서 진홍빛의 유성이 이세훈을 향해 다가오더니 순식간에 몸을 낚아채서 밖으로 빠져나갔다.

“으어억!”

그야말로 찰나에 가까운 순간에 명계의 밖으로 끄집어내졌고, 눈 깜짝할 사이에 복도로 돌아온 이세훈은 곧장 주변부터 둘러보았다.

화르륵!

위르겐의 어둠으로 뒤덮여 있던 복도 곳곳이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자신들을 안내해 준 베냐민이 가슴의 3분의 2가 날아간 상태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개판이네…….’

그 난장판을 바라보던 이세훈은 뒤늦게 자신을 품에 안고 있는 진홍빛의 유성, 류은하를 바라보았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머리카락과 두 눈, 거기에 양팔까지 진홍빛으로 물든 류은하. 용혼광로의 3단계인 ‘홍완紅腕’까지 발동시킨 그 모습에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다친 곳은 없는데……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우선 이곳을 탈출한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 잠깐…….”

쿠구구궁!

이럴 시간도 없다는 듯이 류은하가 말을 끊으며 다시금 힘을 끌어올렸고, 전신을 둘러싼 진홍빛의 불꽃이 더욱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설마 4단계까지…….’

전력을 발휘하려는 류은하의 모습에 이세훈이 다시금 말리려던 그때.

[여기까지 하지.]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던 방석 위의 두개골, 위르겐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후웅!

무언가 뒤집혔다고 생각이 든 순간. 주변의 풍경이 눈 깜짝할 사이에 기존의 복도의 형태로 돌아왔다.

사방을 뒤덮은 위르겐의 어둠도, 곳곳을 불태우던 류은하의 불꽃도 사라졌고 무언가 부서진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베냐민의 가슴 상처 역시 말끔히 회복되었는데 주변만 보자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화르륵!

하지만 류은하의 몸은 여전히 용혼광로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위르겐이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몸에 있는 불꽃도 없앨 생각이었는데…… 이건 조금 놀랍군. 루트비히 그놈이 눈여겨본 이유가 있었나.]

“…….”

신기해하는 위르겐과 여전히 빠져나갈 틈만 보는 류은하. 그 사이에 끼게 된 이세훈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학과장님. 그냥 가볍게 살펴보신 거예요.”

“……정말입니까?”

“예. 죽으라고 한 것도 농담이셨을 거예요. 명계에 잠깐 집어넣으신 거니까 언어유희로 하신 거죠.”

딱 나이대에 걸맞은 농담. 이거라면 이해하겠다 싶어서 한 설명이었지만 류은하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다짜고짜 명계에 생도를 집어넣는 것이 가볍게 살펴본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까?”

“그건……. 으음…….”

가벼운 것도 아니고 미친 짓에 가깝지만 어쩌겠는가. 상대가 완등자인데다 미친 양반이 맞는데.

뭘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하던 이세훈은 그냥 간단하게 해결하기로 했다.

“완등자잖아요.”

본래 고위영웅 중에는 어딘가 나사가 빠진 이들이 많은 법. 그런 와중에 그들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완등자는 어떻겠는가.

“…….”

이세훈의 설명에 류은하가 잠시 동안 눈을 마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용혼광로의 불꽃을 잠재웠다.

후웅!

이글거리던 머리카락도 차분히 내려왔고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던 힘도 사라졌다. 이세훈을 바닥에 내려준 류은하는 방 안에 있는 위르겐에게 고개를 숙였다.

“훈련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류은하의 정중한 사과에 위르겐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됐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상황이었으니.]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

[대신 두 번 방해받기는 싫으니 그놈만 안으로 들어와라.]

“…….”

위르겐의 이야기에 류은하가 슬쩍 바라보았고, 그 눈짓에 이세훈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잠깐 다녀올게요.”

류은하를 안심시킨 이세훈은 회장실의 안으로 들어와 주변을 살펴보았다.

넓이에 비해 들어 있는 것이 없어 텅 빈 내부. 유일하게 놓여 있는 책상 위에는 회색 방석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두개골 하나가 장식품처럼 놓여 있었다.

‘이야……. 이거 장난 아닌데.’

위르겐, 그의 두개골을 처음으로 본 이세훈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두개골의 내부를 채우고 있는 칠흑 같은 어둠. 다른 이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쉽사리 짐작하기 어렵겠지만, 이세훈은 방금까지 보고 온 것이기에 금방 알아차렸다.

‘설마 명계와 연결되어 있었을 줄이야.’

명계의 힘만 겨우 다룰 수 있는 다른 사령술사들과 다르게 위르겐은 아예 영혼이 명계와 연결되어 있다.

현실과 명계의 경계선 위에 존재하는 위르겐. 회귀 전에는 몰랐던 그 힘의 비밀에 이세훈이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그럼 저걸로 뭔가 만든다면 명계의 힘을 무한정으로 끌어올 수 있는 물건이…….’

앞서 불명자의 지골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해 버린 탓일까. 위르겐의 두개골을 봐도 꺼림칙하기는커녕 흥미만 솟구친다.

그에 이세훈이 두 눈을 빛내며 살피던 그때.

[그만 봐라.]

눈구멍의 어둠 속에서 검푸른 빛이 눈동자처럼 떠오르며 이세훈을 흘겨보았다.

[네놈이 쳐다보면 불쾌하다. 시선을 내려라.]

“알겠습니다.”

위르겐의 까칠한 이야기에 이세훈은 크게 반론하지 않고 시선을 방석 쪽으로 내렸다.

안 그래도 성질 더러운 양반인데 벌써부터 신경을 건드릴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흐음. 이거군.]

위르겐의 눈동자가 옆쪽으로 힐끔 움직인 순간. 허공에서 검은 장창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세훈이 류은하에 의해 꺼내기 전까지 명계에서 만들고 있었던 장창. 위르겐은 그것을 살피며 담담히 물었다.

[권능은 얼마나 흡수했지?]

“……불명자의 지골에 담겨 있던 것은 전부 흡수했습니다.”

[내 함정을 파훼한 방법은?]

“강제로 제압했습니다. 위르겐 님의 자아가 없으면 그냥 까다로운 힘에 불과하니까요.”

별로 대단치 않다는 듯이 대답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위르겐이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걸 제어해 보려다가 폐인이 된 놈들이 몇 명인데…… 어처구니없는 놈이군.’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아니, 이해하고는 있지만 그것을 대단치 않게 여긴다.

과연 놈의 입에서 대단하다는 표현이 나오려면 어느 정도일까. 위르겐은 자연스레 잠깐 사이에 만들어낸 장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침식을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 보려고 넣은 건데 설마 경계에 걸쳐서 명계의 힘까지 다룰 줄이야.’

단순히 권능을 흡수했다고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사령술에 대한 근간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어야만 가능한 결과물.

거기에 위르겐을 더욱 놀랍게 만든 것은 조금이지만 장창 안에 명안계암의 술식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경계를 다루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다루는 건지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이세훈의 기량을 빠르게 정리한 위르겐은 생각을 정리한 다음 입을 열었다.

[네놈에게 뭘 가르칠지는 대강 견적이 나왔다만…… 그 전에 한 가지 의논해야 할 것이 있지. 설마 잊었다고는 안하겠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는 위르겐의 모습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에 관한 것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반드시 이전보다 더 좋은 손가락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위르겐의 물음에 이세훈은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아공간 포켓에서 준비해 온 천운철을 꺼내 들었다.

[그건…….]

밤하늘을 떼어온 것 같은 천운철의 형태. 그 모습에 위르겐이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자 이세훈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이 재료의 일부분을 사용해서 손가락뼈를 새롭게 만들어낼 생각입니다. 다만 혼자만의 힘으로는 힘들고 위르겐 님이 조금씩 도와주셔야 합니다.”

[……생각보다 제대로 준비해 왔군.]

어쭙잖게 영웅등급 재료 같은 것을 가져왔으면 대신 몽환마의 눈을 내놓으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무작정 그리 요구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어떤 설계도를 준비해 뒀을지는 몰라도 자신만만하게 서 있는 이세훈의 모습에 위르겐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좋다. 대신 내가 참관했을 때만 무구를 제작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서약을…….]

“마음껏 보셔도 됩니다. 어차피 비법이라고 할 것도 없으니까요.”

대장장이 중에 기술 유출 때문에 공방에 출입 금지시키는 사람들이 종종 있기는 하지만 이세훈은 그 부분으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쪽이었다.

애초에 영연신마법을 기반으로 제련을 하는지라 보고 따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

시종일관 자신감이 넘치는 이세훈의 모습에 위르겐이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자식놈들도 자신의 앞에서는 벌벌 떠는데 이놈은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이리 당당하단 말인가.

‘묘하게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야.’

행동만 놓고 보면 능력 있고 당당한 것이 자신의 마음에 들 만한 녀석이지만, 직접 보고 있으면 묘하게 거슬린다.

그 미묘한 감각에 위르겐이 기분을 털어내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는 당연히 대가를 치러야겠지.]

“그래야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자신감은 좋군. 아무튼 본래는 네놈을 죽이고 하수인으로 삼을 생각이었다만…… 아무래도 그쪽은 일이 귀찮아지겠더군.]

손에 넣을 가치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루트비히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손해가 극심하다. 그렇기에 위르겐은 다른 선택지를 골랐다.

[그러니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면 네놈의 영혼을 일부분 가져가겠다.]

“영혼…… 말입니까?”

계약을 완수하지 못할 경우 영혼을 가져간다.

소설이나 만화에서 흔히 나오는 조건이었는데 이세훈은 그 내용에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영혼에 문제가 있는 상태라 그런 것도 있고 무엇보다도 위르겐이 영혼을 어떻게 사용할지 거슬렸기 때문이다.

‘설마……. 에이, 그건 아니겠지.’

회귀 전에 들었던 기괴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세훈이 꺼림칙해하고 있을 때. 위르겐이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뭐, 영혼을 가져간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 없다. 해봐야 1%…… 아니, 0.5% 정도겠군. 그 정도니까 네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을 거다.]

확실히 그 정도라면 육체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이세훈에게 유리한 조건이었지만, 그 내용에 표정이 더더욱 기묘해졌다.

회귀 전에 들은 이야기와 아주 딱 맞아떨어지는 양이었기 때문이다.

“그…… 가져가신 영혼은 어디다 쓰실 생각입니까?”

[음? 아, 그래. 네놈은 모를 수도 있겠군.]

이세훈을 바라본 위르겐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내 영혼의 일부와 합친다.]

“…….”

[그게 무슨 뜻인가 하면…….]

눈앞의 상대를 비웃듯이 위르겐의 눈동자가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내 89번째 자식이 만들어지는 거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