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92화
죽음을 초월한 최강의 사령술사, 불명자 위르겐 크루거의 왼쪽 검지 뼈가 자신의 손안에서 형태도 남기지도 못한 채 바스러졌다.
그 터무니없는 상황 속에서 이세훈이 곧 일어날 일을 대비하고 있던 그때, 오른손에서 거대한 맥동이 울려 퍼졌다.
쿵─
손 안에서 터져 나온 진동이 팔을 타고 심장으로 흘러들어와 이내 혈류를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혈액, 장기, 뼈, 근육.
이세훈이라는 인간의 육체를 만들어내고 있는 모든 것이 그 맥동에 호응하듯 움직인다.
쿵쿵쿵─
‘윽…….’
맥동이 빨라질수록 울림이 더욱 크게 퍼져 나갔고, 누군가 전신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강렬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주변의 풍경이 완전히 정지해 버린 순간.
퍼엉!
이세훈의 오른팔이 폭발했다.
질긴 피부도, 단련된 근육도, 단단한 뼈도, 지난 반년 간 쉴 새 없이 단련해 온 육체가 갈기갈기 찢겨져 흩날린다.
한 번 시작된 폭발은 그대로 전신으로 퍼져 나갔고 ‘이세훈’이라는 인간을 이루고 있던 육신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텅 빈 자리에 검은 구멍이 떠올랐다.
우웅─
그림자가 비춰진 것처럼 허공에 나타난 작은 구멍.
그 중심부에 자그마한 실선이 그어졌고, 위아래로 천천히 벌어지며 하나의 눈이 만들어졌다.
주르륵
눈에서 흘러내리는 검은색 눈물.
마치 그림자와도 같은 그 끈적거리는 눈물들이 허공에 찬찬히 흘러내리더니 뼈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방금 폭발해서 사라진 이세훈의 몸과 똑같은 형태.
검은 철사로 만들어낸 것 같은 뼈대가 순식간에 완성되었고, 그제야 오른 손등에 위치한 눈동자가 눈물을 그쳤다.
그리고 눈동자가 찬찬히 움직이며 주변을 살피더니 음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난장판이군…….]
갑작스레 의식이 생겨났지만 검은 눈동자, 불명자의 지골에 담겨져 있던 위르겐 크루거의 자아는 어렵지 않게 상황을 파악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애송이가 자신의 권능을 집어삼키려다가 죽어버렸고, 앞쪽에는 몽환마가 살의를 흩뿌리며 서 있다.
박제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몽환마의 모습에 크루거의 눈이 지그시 바라보다가 이내 찌푸려졌다.
[뭐야. 가짜잖아.]
몽환의 마력을 사용하여 진짜에 가깝게 부풀렸을 뿐. 그 실체는 본체에 미치지 못하는 분신에 불과했다.
그 본질을 단숨에 꿰뚫어 본 위르겐은 자신이 서 있는 몽환성의 홀을 찬찬히 살폈다.
[이제 보니 이것도 가짜 같고…… 반푼이도 안되는군. 이놈은 이런 녀석에게 당한 건가. 쯧쯧.]
누군지 모를 애송이에게 혀를 찬 위르겐은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한 뒤 자신이 차지하게 된 육체를 바라보았다.
[감히 내 손가락을 부숴먹은 것도 모자라 뒤처리를 시키려고 하다니…… 건방진 놈이군.]
살아 있었다면 직접 손을 썼겠지만, 이미 자신의 권능과 자아를 견디지 못하고 육체와 정신이 붕괴된 상태다.
위르겐의 눈동자가 어중간하게 생긴 자신의 육체를 다시 보더니 이내 흥미를 잃으며 시선을 돌렸다.
[이깟 애송이의 수작에 따라줄 이유는 없지.]
만약 손가락이 남아 있었다면 회수하기 위해서 움직여줄 수도 있었겠지만 자신이 깨어나면서 사라져 버렸으니 그렇게까지 해줄 이유는 없다.
결정을 내린 위르겐의 눈동자가 천천히 감기려던 그때.
“그…… 건…….”
검은 뼈대로 만들어진 턱이 천천히 움직였다.
“곤란…… 한데요…….”
막 감기려던 위르겐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자신이 차지했던 육체를 다시금 살펴보았다.
어딜 보아도 자신 이외의 존재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위르겐의 눈이 가늘어지던 그때.
두근─
텅 빈 허공에서 희미한 심장박동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위르겐의 눈이 허공을 응시했고, 잠시 후 ‘경계’의 너머에 있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근두근두근─
보랏빛으로 물든 심장과 끊임없이 순환하며 육체의 뼈대를 만들어내고 있는 혈류.
그 구조를 본 위르겐은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짧은 순간에 내 힘으로 심장을 경계 속에 집어넣고 몽환의 마력으로 연결시킨 거냐?]
“정확합…… 니다.”
불명자의 지골에 담겨져 있는 경계의 권능.
그 권능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갈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것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는데 당연하게도 완등자의 기술인 만큼 쉽게 다룰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세훈은 약간의 편법을 썼는데, 그것이 바로 몽환의 마력을 응용하는 것이었다.
‘몽환의 마력으로 심장을 꿈으로 치환해 두면 경계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더라도 죽음은 피할 수 있으니까.’
경계의 권능으로 심장을 경계에 집어넣어 죽지도 살아 있지도 않은 애매모호한 상태로 만든 다음 탐철로 흡수된 권능의 여파를 피한다.
하지만 이때 경계의 권능이 풀리면 심장을 현실로 돌리지 못해 즉사하게 되니 몽환의 마력을 통해 꿈으로 치환시키는 이중 안전장치를 만든 것이다.
‘설계한 대로 되긴 했지만…… 조금 위험하긴 했네.’
경계의 권능은 불명자의 지골을 사용하거나 연구하면서 알아낸 것이 전부고, 몽환의 마력 역시 누군가에게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만약 어느 한 쪽이라도 실수가 있었다면 그대로 죽어버렸을지도 모르리라.
[……애송이인 줄 알았더니 그냥 미친놈이었군 그래.]
나름의 확신이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저런 짓을 하기가 쉽지 않다.
목숨을 내다버린 것 같은 그 행동에 위르겐이 가만히 바라보다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어찌 됐든 잘됐다. 네놈이 저지른 오만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우우웅─
눈을 중심으로 퍼져 나오는 검은 파동.
경계 너머의 심장을 압박해 오는 그 거대한 힘에 이세훈은 상당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동요하지 않고 대답했다.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뭐?]
“새로운 손가락뼈를…… 말입니다.”
예상치 못한 이세훈의 대답에 위르겐이 황당하게 바라보았다.
당연히 목숨을 구걸할 줄 알았더니 그 와중에 제안을 해오다니?
도대체 뭐 하는 놈이길래 자신의 앞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이야기할 있는지 절로 의문이 들었다.
[저 반푼이도 어찌 못하는 네놈 따위가 내 손가락을 만들 수 있다는 거냐?]
“대장장이가…… 싸움을 잘하든 말든…… 무슨 상관입니까. 물건만 잘 만들면…… 그만이죠.”
[흐음…….]
다른 때라면 들을 가치도 없다고 경계 너머로 보내서 죽여 버렸겠지만, 이번에는 조금 상황이 달랐다.
자신조차 죽었다고 생각한 상황 속에서 묘환 꾀를 부려서 저렇게 살아 있지 않은가.
잠시 고민하던 위르겐이 이세훈을 올려다보았다.
[만들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 봐라. 물건도 보지 않고 거래를 할 수는 없지.]
심장만 덩그러니 남은 상태에서 증거를 보이라는 것이 말이 되나 싶지만, 그건 저쪽의 사정이니 자신이 고려해 줄 이유가 없다.
위르겐의 무자비한 요구에 이세훈은 뼈대만 남은 턱을 움직여 조악한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두근!
이세훈의 심장이 한 차례 크게 뛰었고, 경계를 넘어서 뼈대만 남은 몸 안쪽에 돌아왔다.
뼈대의 안쪽을 세밀하게 채운 혈류. 마치 혈관만 따로 뜯어낸 것처럼 섬세한 형태에 위르겐이 흥미롭게 바라보던 그때.
콰드득─!
심장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혈류의 위쪽으로 다시금 장기와 뼈, 근육과 피부가 하나씩 재생되어 복구된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폭발하기 전으로 돌아가는 듯한 모습.
그 과정을 살펴본 위르겐이 눈이 살짝 커졌다.
‘부활……?’
현재 두 사람이 공존하고 있는 육체는 삶과 죽음의 경계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는데 이 환경은 매우 특수했다.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이 거의 멈출 뿐만 아니라 죽더라도 경계를 넘어서 부활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했는데 자신이 살아 있던 순간, 그때의 몸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어야만 했다.
우드득─콰득!
언뜻 듣기에는 단순히 몸의 구조만 외우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조금 다르다.
살아 있는 육체.
그 내부에 흐르는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하나의 흐름.
흔히 ‘영혼’이라고 불리는 그 힘까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놈은 도대체…….’
사령술사라면 언젠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난제. 그것을 이미 해결해 버린 이세훈의 모습에 위르겐이 가만히 보았고.
촤작!
그의 눈동자가 떠 있던 자리에 오른 손등까지 완벽히 재생되었다.
폭발하기 직전, 불명자의 지골을 낚아챘던 그 자세 그대로 재생된 이세훈의 몸.
물론 안쪽에 위르겐이 만들어낸 검은 뼈대가 함께 뒤섞여 있기는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육체는 완벽히 부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정도면 어떻습니까?”
손등 위의 눈을 바라보며 담담히 물어보는 이세훈. 그 모습에 위르겐이 잠시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재밌겠군.]
그의 눈이 초승달처럼 가늘어졌다
* * *
이세훈이 불명자의 지골을 막 움켜쥔 순간. 그 모습을 정면에서 본 몽환마의 분신은 오싹함을 느꼈다.
각 마디마다 글귀가 빼곡하게 새겨졌던 손가락 뼈.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것이 어떤 물건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불명자……!’
13년 전, 공간이동 중에 기습당해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졌던 위르겐 크루거의 육체.
어째서 그 물건이 이세훈의 손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의문에 빠져들 시간이 없었다.
‘지금 상태에서 저 힘은 위험해!’
본체였다면 어떻게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안구를 매개체로 만들어진 분신.
만약 이세훈이 경계의 권능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위협이었다.
결정을 내린 몽환마는 곧장 홀을 가득 채운 나비들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스스스─
보라색 나비들이 각각 뭉치며 구멍을 만들어냈고, 그 안쪽에서 샛노란 벼락들이 이세훈을 둘러싸며 끝없이 쏟아졌다.
콰르르릉!!
악몽에서 파생된 번개. 꿈속의 허상일 뿐이지만, 이곳에서는 그것이 곧 현실이 된다.
구멍에서 터져 나오는 벼락은 멈추기는커녕 더더욱 위력을 높여갔고 몽환성의 홀이 그 충격과 굉음에 의해 쉴 새 없이 뒤흔들렸다.
S급 영웅조차 숯덩이로 만들어버릴 화력에 이세훈의 몸이 가루조차 남기지 못한 채 바스러지며 흩어졌고.
“소란스럽구나.”
이세훈의 목소리가 고요히 울려 퍼졌다.
샤륵─
번개를 토해내던 보라색 구멍에 그림자가 스며들었고, 이내 눈을 감듯이 일제히 닫히며 사라진다.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인 몽환성의 홀.
그리고 벼락이 쏟아지던 그 중심부에서 그림자가 솟구치며 다시금 이세훈의 몸이 나타났다.
우우웅─
발끝에서부터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검은 파동.
왼쪽 검지에는 문신처럼 검은 글귀가 빼곡하게 새겨졌고. 두 눈동자는 방금보다 더욱 깊고 어두워져 마치 무저갱처럼 빛을 빨아들인다.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이세훈의 모습에 분신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당신은…….”
“그만.”
분신의 말을 잘라낸 이세훈, 그 몸을 빌린 위르겐이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되다만 찌꺼기와 말을 섞고 싶지 않다. 시간도 아까우니 빨리 끝내도록 하지.”
자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말투. 그 모습에 모멸감을 느낀 분신의 눈매가 일그러졌지만, 그 감정을 표출할 시간은 없었다.
스스스
이세훈의 발치에서 뻗어 나온 검은 파동이 더욱 깊게 퍼져나갔고, 억지로 만들어낸 몽환성의 홀이 흐릿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꿈과 현실을 희롱하는 몽환의 마력. 그 사이에 하나의 ‘경계’가 그어지면서 무너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홀이 무너지는 순간 자신 역시 끝나게 될 것이다.
그 전에 결착을 짓기 위해 분신은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힘을 자신의 핵이나 다름없는 오른쪽 눈에 집중시켰다.
키이잉!
분신의 몸이 흐릿하게 변해 안개처럼 일렁였고, 그와 반대로 오른쪽 눈은 더욱 샛노랗게 빛나며 몽환성의 홀을 더욱 견고하게 유지시켰다.
그리고 천장과 벽면, 바닥에 다양한 형태의 문이 만들어지더니 그것이 천천히 열리며 반대편의 풍경을 드러났다.
꿀렁─
보랏빛이 뒤섞인 거무튀튀한 어둠.
꿈의 아래, 인간의 잠재의식이 억누르고 있는 오염된 정신들이 문 너머에서 찰랑거렸고.
몽환술夢幻術 오탁범람汚濁氾濫
몽환마의 눈이 빛나며 그 경계를 허물어 버렸다.
콰르르륵!
문 너머로 오염된 정신들이 해일처럼 쏟아져 나왔고 순식간에 몽환성의 홀을 물들이며 주변을 잠식해 나갔다.
인간의 이성을 무너뜨리고 광증에 빠뜨려 자아를 붕괴시키는 악몽의 해일.
이것이라면 불명자라 할지라도 그냥 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광경에 몽환마의 오른쪽 눈이 번뜩였고.
스윽─
검은 글귀가 새겨진 이세훈의 왼쪽 검지가 허공을 가볍게 가로질렀다.
아무런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 그저 가벼운 손짓. 하지만 그 궤적을 따라서 선이 그어졌고 주변의 모든 것들이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실선이 벌어지며 거대한 눈이 나타나 주변의 모든 것을 자신의 눈동자에 담았고.
“감겨라.”
그 눈이 천천히 감기며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고풍스럽던 몽환성의 홀도, 쏟아지던 악몽의 해일도, 분신이 만들어낸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이라고는 위아래도 구분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그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몽환마의 분신이 멍하니 바라보았고.
“……아쉽네요.”
쓴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눈을 감아 어둠 속에 녹아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