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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184화 (184/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84화

‘그래…… 그렇게 된 거였구만…….’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소개하는 빙견, 아미르의 모습에 이세훈은 당혹스러우면서도 후련함을 느꼈다.

바벨에서 재난을 일으켜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존재라면 십악정도의 거물이 아니라면 절대로 불가능하던 상황.

문제는 도대체 누가 자신을 노리느냐는 것이었는데 아미르가 갑자기 나타나면서 녀석의 배후에 있는 몽환마로 좁혀진 것이다.

‘몽환마라면 지난번에 염진현 습격사건 때 간접적으로 연관되기도 했으니까.’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한 이세훈은 생각을 더 이어나가는 대신 빠르게 감정을 조절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미르는 고유스킬 ‘동천안’으로 타인의 감정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흠. 아미르 싱 씨군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세훈의 모습에 아미르가 무언가 깨달은 듯 빠르게 덧붙였다.

“아, 죄송합니다. 생각해 보니 활동지역이 많이 달라서 제 이름을 모르실 수도 있겠네요.”

“예. 전혀 모릅니다.”

“……그렇군요. 간단하게 소개드리자면 중동에서 정보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영웅 분들에게 이런저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드리고 있죠.”

미소를 지으며 정성껏 설명하는 아미르의 모습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세훈의 대답에 아미르의 눈매가 살짝 꿈틀거렸다.

자신을 소개한 다음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가려고 했더니 이세훈이 그 분위기를 완전히 끊어버린 것이다.

‘아니, 끊었다기보다는…… 나한테 흥미가 전혀 없군.’

동천안으로 살펴보니 이세훈의 하늘, 감정은 구름 한 점 없이 아주 화창했다. 즉, 지금 상황에 어떤 속내를 숨기고 있다든가 그런 부분이 일절 없다는 것이다.

“뭐, 혹시 저한테 용건 있으십니까? 없다면 저도 일정이 있어서 이만 가보고 싶습니다만…….”

뒤쪽의 대련장을 힐끔 보는 이세훈. 그 모습에 아미르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그러시죠. 저도 마침 대련장에 빨리 돌아가 봐야 하는 상황이었던지라.”

“대련장이라면…… 저기 말입니까?”

이세훈이 자신의 뒤쪽을 가리키자 아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오늘 여기에 온 것도 한 생도 분을 살펴보러…… 아, 이건 조금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라 그렇군요. 아무튼 업무차원에서 왔습니다.”

“……그렇군요.”

방금과 비슷한 대답이지만, 자신을 향한 호기심과 경계심이 느껴진다. 의도한 그대로 반응에 아미르가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꾸벅였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차분하게 이야기하죠.”

“……알겠습니다.”

먼저 인사한 아미르가 여유롭게 대련장 쪽으로 향해 안으로 들어갔고, 이세훈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 뒷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쇼를 하는구만.’

어디까지나 겉으로만.

‘염성하를 조사하기 위해서 왔다, 그런 느낌을 풍겨서 자기한테 관심을 유도하는 건가.’

일부러 상대의 경계를 사서 그걸 빌미로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

어설프게 시도하면 이도저도 아니게 되지만, 타인의 감정을 볼 수 있는 아미르에게는 간단한 방법이었다.

아마 잘 모르는 사람은 이대로 분위기에 휩쓸려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겠지만, 회귀 전에 빙견과 어울렸던 이세훈은 그 영업 비밀을 다 알고 있었기에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한다…….’

사실 이세훈이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당장 아미르에게 몽환마가 꾸미고 있는 계획이 뭔지 알아낼 수도 있었다.

이전에 블랙마켓의 호화 여객선에서 신분을 숨기고 만났을 때. 서로 어느 정도 협력관계를 만들어놓은 다음 ‘신데렐라’라는 암구호를 정했기 때문이다.

‘그걸 말하면 저 녀석도 협조하긴 하겠지만…… 조금 애매하단 말이야.’

회귀 전 빙견은 기본적으로 모든 일에 신중하며 자신이 직접 해결하려고 하는 성향이 강했다.

이렇게 들으면 다른 삼견, 광견이나 폭견처럼 혼자서 돌아다닌다고 생각할 수 있었는데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간단히 말하자면 빙견은 다른 이들과 필요에 의해 협력한다고 해도 그들을 ‘도구’로 여길 뿐, 같은 사람처럼 대등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위험해지면 바로 뒤통수를 갈겼지.’

그 뒤통수도 본인이 직접 후려갈기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몽둥이를 건네주는 식으로 처리했었는데 한 마디로 중립이라 말하면서 양쪽에서 분란을 일으켰던 개놈이었다.

‘몽환마를 죽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었으니까 지금도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번의 만남만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정체를 드러냈다가는 그 즉시 뒤통수가 얼얼해질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이세훈은 이내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일단 신뢰부터 줘볼까.’

자신이 몽환마와 맞서 싸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죽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그것을 아미르에게 확실히 심어줘야 녀석도 목숨을 걸고 자신에게 배팅할 것이다.

‘회귀 전에도 비슷한 짓해서 형님소리 들었었는데…… 아.’

어떤 식으로 아미르에게 접근할지 방법을 떠올린 이세훈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예전처럼 친하게 지내봐야겠네.’

* * *

카아앙!

대련장 위에서 쇳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고, 그 소리를 만들어낸 두 사람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창을 휘둘렀다.

두 자루의 단창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190cm 초반의 장신의 청년.

그리고 본인보다 더 큰 장창을 가볍게 휘두르는 170cm 초반의 중년 남성.

카가강!

두 사람은 최소한의 마력과 근력만을 사용해 창술을 펼쳤고 그로인해 수수하면서도 화려한 접전을 만들어냈다.

불꽃이 터지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화려함은 없지만 쉴 새 없이 부딪치며 불똥을 튀기는 두 사람의 모습이 마치 연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과연…….’

그 두 사람, 창술학부 3학년 수석인 염성하와 지도교수인 도미니크의 대련을 살펴보던 아미르가 냉정하게 평가했다.

‘확실히 이원룡이 계속해서 견제할 법했네.’

활약상을 전해 들었을 때는 단순히 뛰어나다는 느낌만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고 있으니 분위기가 다르다.

고위 영웅, S급까지 성장하는 이들에게서 종종 보인다는 굳은 심지.

정상을 향해 차곡차곡 쌓이는 심상이 염성하한테서 느껴지는 것이다.

‘저런 녀석이 이원룡도 아니고 그 아들 녀석이랑 같은 선상에 놓였었다니……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야.’

준S급으로 인정받고는 있으나 등급은 여전히 A급인 이원룡, 그리고 A급 승급에 3번이나 떨어진 그의 아들.

좀처럼 성장하지 못하는 두 사람과 다르게 염성하는 이번 시험에서만 동급생과 조교를 모두 때려눕히고 이제는 지도교수와도 대등하게 싸우고 있었다.

‘지도교수인 도미니크는 출력보다는 기술로 A급을 따냈었던 인물. 대련이라고는 하지만 그와 맞먹는다는 뜻은…….’

장비를 갖추고 전력을 다하는 염성하는 이미 A급 영웅 수준에 도달했다는 뜻.

그 사실을 직접 확인한 아미르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3학년이니 슬슬 정식 등록도 생각 중이겠지. 그렇게 되면 길어봐야 이번 여름방학까지인가.’

이번 여름방학에 염성하가 정식등록을 하고 A급 영웅으로 인정받는 순간. 염화문이 그동안 필사적으로 붙잡고 늘어졌던 후계자 싸움도 완전히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원룡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

염성하를 죽이거나, 자신이 S급에 도달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염화문도 다급해지겠어.’

당장 지금 시험 결과만 외부에 퍼져도 염화문의 지지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할 터. 예전이라면 본인들의 세력으로 어떻게든 버텨봤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지금 염성하의 곁에는 이세훈,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수많은 고위 영웅들이 지지기반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이 모든 변화가 1학기 사이, 그것도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게 참 놀라울 따름이야…….’

아미르는 순수하게 감탄하는 한편 의구심이 생겨났다.

자신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바벨에 입학하기 전 이세훈의 재능은 잘 쳐줘도 중하, 바벨에 입학은커녕 그보다 몇 단계 낮은 육성기관도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입학 시험 때 갑자기 돌변하더니 저렇게까지 빠르게 성장하다니.

아무리 특수한 스킬을 습득했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뭔가 있을 것 같은데…….’

몽환마가 추측처럼 승천제가 엮인 것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는 고민에 아미르가 계속 곱씹다가 이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자예드 형님이라면 금방 알아냈을까.’

하루에도 몇 번이고 떠오르는 그 생각에 아미르가 대련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

“어때요.”

이세훈이 자연스레 옆자리에 앉았다.

“꽤 쓸 만해 보이죠?”

대련장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아미르가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보통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인데…… 염성하 생도는 오히려 과소평가를 당하고 있었네요. 역시 어떤 정보든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 하는 모양입니다.”

“뭐든 그렇죠. 저도 재료를 직접 만져보기 전까지는 뭘 어떻게 만들지 감이 안 잡히거든요. 특히.”

한 차례 말을 끊은 이세훈이 아미르를 힐끗 보며 이야기를 이었다.

“고객이 원하는 게 뭔지 모르면 더더욱 그렇고요.”

고객, 자신의 의도를 묻는 이세훈의 모습에 아미르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래. 마냥 순진하지는 않다 이거군.’

그동안의 행적을 살피며 순수한 천재 장인은 아니라고 느꼈는데 아무래도 그 이상이었던 모양이다.

이세훈이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 파악한 아미르가 관람석에 등을 살짝 기대며 여유롭게 대답했다.

“이세훈 생도처럼 유명한 분을 찾아뵙는데 고객이 원하는 게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원하는 게 너무 많으니까 뭘 먼저 주문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거죠.”

“그래요? 근데 그건 좀 안타깝네요. 전 시간낭비는 딱 질색이라 그런 고객들은 쫓아내거든요.”

“저도 이해합니다. 그래도 다양한 거래처를 얻고 싶으시다면 조금만 관용을 베풀어주시죠. 예를 들어 고객에게 먼저 제안을 한다든가, 아니면 보상이 뭔지 듣고 결정한다든가.”

아미르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끝을 향해가는 대련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해봐요.”

“2학기에 바벨로 편입할 예정인 유망주들과 배후세력. 그리고 그들 사이의 협력관계도와 추측되는 목적. 거기에 마지막으로…….”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아미르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바벨에서 비밀리에 준비 중인 학과시험의 ‘이벤트’까지 알려드리죠.”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이세훈이 아미르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마지막은 별 가치가 없는 것 같은데요.”

“평소라면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번 학기의 평가시험, 특히 학년수석은 상품이 매우 특별하지 않습니까.”

“…….”

“물론 이세훈 생도처럼 뛰어나신 분이라면 굳이 필요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냥 서비스라고 생각해고 받아주십시오.”

미리 대본이라도 짜둔 것처럼 쉬지 않고 대답하는 아미르. 그 이야기에 이세훈이 감정을 숨기면서 생각에 잠겼다.

‘학과시험이 노림수인가? 아니, 아직 속단하긴 일러.’

확실한 건 여지를 주자마자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걸 보건대 자신과 친분을 쌓는 것이 1차적인 목적으로 보였다.

어느 정도 상황을 만드는데 성공한 것을 확인한 이세훈은 표정을 가다듬으며 이야기했다.

“뭐, 좋습니다. 그래서 그쪽 조건은 어떻게 할 겁니까?”

“좀 더 생각해 보고 확실하게 결정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신 방금 말씀드린 보수는 먼저 지불하죠.”

“보수를 받았으니까 조건을 무조건 수락해야 한다든가 그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죠?”

이세훈의 삐딱한 물음에 아미르가 미소를 지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나중에 조건을 들어보고 마음에 안 드신다면 얼마든지 거절하셔도 됩니다.”

제대로 된 거래라기보다는 친분을 만들기 위한 접대. 아미르의 후한 조건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럼 그렇게 합시다.”

“감사합니다. 그럼 장소를 옮겨서…….”

카앙!

대련장에서 울려 퍼진 날카로운 쇳소리가 이야기를 끊어냈고,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앞으로 향했다.

오른손에 쥐고 있던 단창을 놓친 염성하와 창날을 목에 겨누고 있는 도미니크 교수.

대련의 결과는 염성하의 패배였지만, 그 모습을 본 이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후우…… 후우…….”

“자네는…… 정말 무서워졌군 그래.”

온몸이 땀에 젖은 채 거친 숨을 내쉬는 염성하와 그와 비슷할 정도로 지친 상태인 도미니크.

그 말인즉 창술학부의 지도교수인 도미니크조차 단번에 승부를 내지 못할 만큼 염성하의 실력이 안정적이란 뜻이었다.

“만점이다. 앞으로 정진하게나.”

“감사합니다.”

“4학년까지는 버티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힘들 것 같군.”

쓴웃음을 지은 도미니크가 조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관람석의 이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염성하가 올해 안에 자기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말한 건가?’

‘그렇다는 건…… 이원룡 문주도 어쩌면…….’

영웅 업계 관계자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고, 몇몇은 휴대폰을 꺼내며 황급히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한 모습을 제일 위에 있는 관람석에서 그 반응을 내려다본 아미르가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상상 이상이군요…… 어떻게 저리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겁니까?”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방향을 잘 잡으면 다 저런 법이죠. 당장 저만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천재를 예시로 들 때 자신을 언급하는데 망설임이 없는 이세훈.

그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아미르가 묘한 눈으로 힐끗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죠. 이 정도라면 저도 빠르게 노선을 바꿔 타야겠습니다.”

“그래요? 잘 됐네요. 안 그래도 대련 끝나면 이쪽으로 오라고 했거든요.”

“……예?”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아미르가 당황하던 그때. 대련장에서 숨을 고르던 염성하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단숨에 관람석 쪽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이세훈과 아미르가 있는 곳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염성하는 어디까지나 이세훈과 가까워지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굳이 만날 생각도 없었고 이유도 없었다.

불필요한 상황에 아미르의 눈매가 살짝 찌푸려지려던 그때. 이세훈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나사가 몇 개 빠진 놈이긴 한데 제가 옆에 있으면 그래도 말은 통할 겁니다.”

“……그렇군요.”

“일단 제가 말하는 거에 최대한 맞춰주세요.”

“알겠습니다.”

어느 정도 이야기를 맞췄을 때쯤. 염성하가 한 계단 아래의 관람석 라인에 서서 두 사람을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미르를 힐끗 살피더니 이세훈에게 물었다.

“옆에 놈은 누구지?”

경계심이 가득한 염성하의 질문에 이세훈이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이쪽은 아미르 싱. 오늘부터 나랑 의형제 맺고 서로 형님 동생 하기로 했어. 인사해.”

“?!”

상상을 초월한 이야기에 아미르가 표정관리를 잊은 채 두 눈을 크게 떴고, 그 반응을 본 염성하가 무심하게 물었다.

“표정은 그런 것 같지 않은데.”

“아까까지 고민하다가 방금 막 결정했거든. 그렇지?”

눈치껏 맞추라는 이세훈의 시선. 그 모습에 아미르가 속으로 수많은 생각을 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형님…….”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려고 하지만 희미하게 경련을 일으키는 눈매와 뺨이 보인다.

회귀 전에 빙견이 처음 형님이라고 부를 때가 생각난 이세훈이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한테는 절대 존댓말 못하지.’

회귀 전 나이가 어떻든 다른 녀석들에게는 어떻게 존댓말을 할 수 있지만, 삼견 이놈들만큼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이제야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에 이세훈이 속으로 만족하던 그때.

“흐음.”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염성하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런 놈을 굳이 형님으로 모시겠다니…… 머리가 상당히 나쁜가 보군.”

“…….”

“…….”

그 중얼거림을 들은 아미르는 다른 건 몰라도 딱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뭐 이런 새끼가…….’

눈앞의 염성하와는 절대로 친해질 수 없을 것 같다고.

* * *

“후우…….”

숙소로 잡아둔 바벨의 고급호텔에 들어온 아미르는 참았던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세훈과의 접촉도 성공적으로 끝냈고 차후 약속도 잡았다. 여기까지는 성공적이었지만 문제는 그 뒤에 있었던 염성하와 대면이었다.

‘무슨 그런 야만인 같은 놈이…….’

말 한 마디가 한 마디가 사람 신경을 긁어대는데 더욱 열이 받는 것은 동천안으로 봤을 때 염성하에게서 악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음…… 넌 지금 아주 멍청한 선택을 했다. 다시 생각해 봐라.’

진지하게 자신의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해서 배려랍시고 쉽게 풀어서 설명하려던 염성하. 그 모습을 다시 떠올린 아미르는 수치심과 분노로 눈매가 경련했다.

“후우…… 참자…….”

이세훈이 갑자기 의형제 이야기를 꺼낸 것도 짜증났지만,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

‘아미르. 기회라는 건 몇 번을 놓치더라도 한 번쯤은 네 눈앞까지 다가오는 법이야. 그러니까 언제든지 인내심을 가지고 행동해.’

섣불리 포기하고 자리를 뜨는 순간. 그토록 기다리던 기회가 빈자리를 스치며 떠나갈 수 있다.

자신의 사촌형, 자예드의 조언을 되새긴 아미르가 주먹을 꽉 움켜쥐며 두 눈을 빛냈다.

아무리 십악의 몽환마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그 목에 단검을 쑤셔 박을 순간이 올 것이다. 아미르가 그 기회를 떠올리던 그때.

우우웅

탁상 위에서 희미하게 떨리는 보석함.

그 모습을 본 아미르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보석함을 열었다.

안쪽에는 수많은 보석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중 손가락 두 개만 한 보라색 보석 하나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을 내려다본 아미르는 잠시 숨을 고른 다음 보석을 움켜쥐었다.

얼마나 준비됐나요?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몽환마의 물음.

승천제의 정원 한 가운데에서 십악과 소통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지만, 아미르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 방법이라면 아무리 승천제라고 해도 알아차리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이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겠지.’

속으로 중얼거린 아미르가 보석을 움켜쥔 채로 몽환마의 질문에 대답했다.

[접선은 끝났습니다. 다음은 학과시험 중에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미르의 의사가 보라색 안개처럼 변해 보석에 스며들었고, 잠시 후 머릿속에 대답이 돌아왔다.

잘했어요. 이번 일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전에 약속한 대로 구역장으로 진급시켜 줄 테니 열심히 해보세요.

[명심하겠습니다.]

보석의 빛이 사라지고 아미르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보석함을 다시 닫았다.

“기회는 온다…….”

그리고 바벨의 야경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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