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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183화 (183/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83화

마투학부 본관 건물 옆에 있는 작은 인공 산.

생도들의 교육을 위해 특수 제작된 장소로 대기 중의 산소나 마력을 조절하고 지형을 바꾸는 등 실전 같은 훈련에 유용한 기능들이 많이 존재했다.

그 때문에 실전적인 능력을 지향하는 마투학부는 이 인공 산에서 훈련을 하거나 시험을 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학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쿠웅!! 아아악──

산 어딘가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생도의 비명소리가 아련하게 울려 퍼진다.

그 소리를 들은 은발의 소녀, 루이제는 더욱 자신의 감각을 곤두세우며 인공 산의 정상을 향해 몸을 날렸다.

후우웅!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고 나무의 뿌리가 솟구치거나 지면이 푹 꺼지는 등 수많은 방해요소들이 나타난다.

하지만 루이제는 거기에 몸을 멈추는 대신 더욱 속도를 높이며 준비해둔 언령마법을 펼쳤다.

【Gale Cape】

루이제를 밀어내기 위해 몰아치던 바람이 돌풍으로 변해 몸에 휘감겼고, 그와 동시에 공중으로 박차고 올라 험악하게 변한 지형을 모조리 뛰어넘는다.

투두두두!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면 아래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수십 개의 화살.

예전 같았으면 마법을 날려서 막아냈겠지만, 루이제는 대처법을 바꿨다.

【Impact Stairs】

터엉!

루이제의 발바닥이 화살과 부딪친 순간. 거기서 발생한 충격이 사방으로 퍼지며 반투명한 계단을 생겨났다.

그 반투명한 계단을 박차며 공중에서 한 번 더 도약한 루이제는 뒤이어 날아온 화살들도 연달아 밟으며 산의 정상 위까지 올라섰다.

‘찾았다……!’

정상 위에 놓인 붉은 깃발.

목적지를 발견한 루이제가 곧장 몸을 날리려던 그때, 깃발 주변의 지면이 뒤흔들리더니 다섯 개의 기계촉수가 솟구쳐 올라왔다.

키기긱!

깃발을 둘러싸듯이 나타난 기계촉수가 허공의 루이제를 발견하더니 눈처럼 보이는 붉은 렌즈를 빛내며 마력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기계 촉수에 응집되는 마력. 그리고 그것이 한 줄기로 압축되어 레이저로 막 쏘아지려던 그 순간.

【Set─】

기계 촉수의 몸통에 붉은 마법진이 목줄처럼 채워졌다.

【Death Bite】

카아앙!!!

날카로운 쇳소리가 인공 산의 정상에 울려 퍼졌고 다섯 개의 쇳덩어리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주변이 고요하게 변했다.

더 이상 방해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루이제는 가볍게 정상에 착지하면서 붉은 깃발을 뽑았고.

“시험 종료!”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교수가 재빠르게 외쳤다.

“아악! 이번엔 전부 부서졌어!!”

“소리 지를 시간에 빨리 고쳐!!”

사방에서 작업복을 입은 기술자들이 달려와 깔끔하게 잘린 기계 촉수의 머리를 주워 들며 수리를 시작했고, 그 모습을 바라본 루이제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좀 살살할걸 그랬나.’

점수가 걸린 시험이라 전력을 다하긴 했는데 막상 저렇게 울상을 지으면서 수리하는 모습을 보니 살짝 미안해졌다.

루이제가 쓴웃음을 지으며 그 모습을 보고 있을 때. 얼굴에 상처가 가득한 중년의 여인이 다가왔다.

“으하핫! 아주 훌륭해! 몇 달 만에 완전히 물이 올랐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여인, 마투학부의 지도교수인 테일러의 평가에 루이제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요?”

“정말이고말고. 봐라. 다른 조는 기본 10분대잖아. 너 혼자 2분대고.”

테일러가 내민 패널을 본 루이제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실제로 다른 조에는 10분 미만이 없었는데 자신은 혼자서 2분 39초라는 압도적인 기록을 세운 것이다.

“솔직히 나도 보면서 놀랐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저 촉수 놈들은 좀 까다로울 줄 알았는데…….”

오염 지역에서 접근해 오는 몬스터를 요격하는데 쓰이는 마공학 병기 ‘디스트로이어’.

이름이 거창한 만큼 성능도 나쁘지 않았기에 시험용으로 특수제작을 맡겨서 가져왔는데 루이제에게는 레이저 한 번 못 쏴보고 무너진 것이다.

‘뭐, 저걸 만든 녀석들도 생도가 저런 마법을 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거겠지.’

단 두 번의 언령으로 완성된 마법.

일반적인 마법이라면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오기 힘들지만 루이제의 언령마법은 그걸로 특수합금으로 만들어진 디스트로이어의 몸을 잘라냈다.

‘아직 체계가 안 잡힌 것 같은데도 이 정도라면 나중에는 얼마나 강해질지…….’

처음에는 단순히 특이한 마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루이제가 얼마나 강력한 영웅으로 자라날 것인지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자신이 거기에 일조했다는 사실에 테일러가 흡족함을 느끼고 있을 때. 루이제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래서 점수는 어느 정도예요?”

“그걸 물어봐야 아니? 당연히 만점이지.”

“흠흠. 잘됐네요.”

예상했다는 듯이 이야기하면서도 슬며시 올라가는 루이제의 입꼬리. 그 모습에 테일러가 슬쩍 웃었다.

“남자친구한테 자랑할 생각하니까 기분 좋은가봐?”

“예? 그게 무슨…… 아.”

테일러의 물음에 자연스럽게 한 명을 떠올린 루이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이내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이상한 소리하지 마세요! 이세훈 그 자식이 왜…….”

“이세훈? 이상하네. 난 누구라고 콕 집어서 말 안 했는데~”

“…….”

능글맞게 웃는 테일러의 모습에 루이제가 입술을 꽉 깨물며 노려보았다.

격렬해진 감정에 반응하여 푸른색으로 빛나는 두 눈동자. 그 살벌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테일러가 피식 웃으며 아래를 가리켰다.

“그만하고 내려가 봐. 아까부터 기다리는 사람 있다니까.”

“……누구요?”

“이세훈.”

테일러의 대답에 루이제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눈매를 팍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시험 준비나 할 것이지 왜 찾아오고 난리야…….”

겉으로 보기에는 귀찮아하는 듯 보이지만 활활 타오르던 푸른색 눈동자가 차분하게 가라앉아 보석처럼 은은하게 빛난다.

본인의 스킬 때문인지 몰라도 감정이 숨김없이 보이는 그 모습에 테일러가 슬쩍 웃었다.

“빨리 가봐.”

“……예.”

“남자친구 후보한테 학부에 놀러 오라고…….”

“가보겠습니다.”

테일러의 쓸데없는 말을 잘라낸 루이제가 고개를 꾸벅인 다음 곧장 인공 산 아래로 내려왔다.

‘……저기 있네.’

주변을 한 번 훑어본 루이제는 단숨에 벤치에 앉아 있는 이세훈을 발견했다.

뭔가 고민 중인지 팔짱을 끼고 두 눈을 감은 채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안 그래도 사나운 인상이 더욱 험악하게 보였다.

‘안 그래도 인상 더러운데 좀 피고 다니지.’

그런 이세훈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쉰 루이제가 곧장 그 앞으로 걸어갔다.

“뭐 하러 왔어?”

루이제의 퉁명한 물음에 이세훈이 눈을 떴다.

“당연히 너 보려고 왔지.”

이세훈의 담담한 대답에 루이제의 입이 멈칫했다가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나를 왜 보러 왔냐고. 다른 시험 준비로 바쁘니까 빨랑 말해.”

“으음…….”

루이제의 재촉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넌 예언이나 미래예지 같은 거 믿냐?”

“……뭐?”

이세훈의 물음에 루이제가 눈매를 찌푸렸다.

너무 뜬금없는 화제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아는 이세훈과는 전혀 안 어울리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너 그런 거 믿어?”

“아니. 나도 원래는 절대 안 믿는데…….”

루이제의 반응에 이세훈이 눈매를 매만졌다. 예전이었다면 자신도 저리 반응했을 텐데 이렇게 고민을 하게 되다니.

마음 같아서는 그냥 헛소리라고 생각하며 무시하고 싶었지만 문제는 마지막 일곱 번째 카드에 그려졌던 그림이었다.

‘주변 풍경이나 자세, 그리고 명치에 박힌 단검까지…… 분명히 회귀 전 마지막이야.’

회귀 전에도, 지금도 자신밖에 모르는 풍경.

그런데 그게 예지마법인 신탁의 카드에서 나왔다는 것은 여러 가능성을 말해주었다.

가장 무난한 것은 예지마법에 자신의 심상이 영향을 끼쳐 회귀 전의 최후를 죽음의 이미지로 표현했다.

의심스러운 것은 순례교가 숭배하는 신이 보통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달갑지 않은 것은 지금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이…….

[깨어나는 꿈이 발동되었습니다.]

촤악!

뇌가 찬물에 담가진 것 같은 서늘한 감각이 쏟아졌고, 약간 몽롱해지던 정신도 날카롭게 깨어났다.

“……후우.”

회귀 전의 정보나 죽음이 연관된 탓일까. 평소보다 과민해졌음을 깨달은 이세훈이 한숨을 내쉬던 그때.

“야.”

바로 앞까지 다가온 루이제가 몸을 숙여 이세훈과 두 눈을 코앞에서 마주 보았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나랑 의논하려고 온 거 아냐? 혼자서 주접떨지 말고 빨리 말해.”

“그건 그런데…….”

“아니면 뭐, 나는 못 미덥다 이거야?”

바로 의논하지 않는 게 어지간히도 섭섭한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흘겨보는 루이제.

그 질책 어린 시선에 이세훈이 잠시 마주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그래. 개소리 같으면 같이 웃어넘기면 되니까…… 앉아봐.”

루이제랑 벤치에 나란히 앉은 이세훈은 회귀 전의 이야기 같은 것을 무시하고 예지마법에 대해서 설명했다.

“흐음…….”

이세훈의 이야기에 잠시 고민하던 루이제가 물었다.

“순례교나 그쪽에 물어보는 건?”

“그 생각도 해보긴 했는데 좀 내키지가 않아.”

예지마법의 해석을 물어보면 당연히 직접 펼쳐서 보여 달라고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회귀 전의 비밀이나 신성력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지도 모른다.

물론 정말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이렇게 앞뒤 가릴 상황이 아니긴 하지만 예지마법의 적중률이 100%는 아니니 신중해야 했다.

“무시하자니 찝찝하고 신경 쓰자니 애매하고…… 진짜 점 그 자체네.”

“그러게 말이야.”

“으음…….”

“흠…….”

두 사람이 벤치에 나란히 앉아 팔짱을 낀 채 계속 고민하던 그때. 루이제가 두 눈을 번뜩이며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야. 그 카드 중에 ‘친우’라는 것도 있다고 했지?”

“음? 그렇지.”

“그러면 그런 놈들 주변부터 살펴보면 되는 거 아니야? 같이 있을 때 재난이 일어난다고 했었으니까.”

“……괜찮은데?”

예지마법의 진위여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 내용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것이 좋아 보였다.

사실이라면 곧 일어날 재난을 발견해서 대비할 수 있을 것이고, 틀렸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없을 테니.

“앞에 같이 시험도 본다고 했으니까 같은 학년 위주로 보면 되겠네. 정 찝찝하면 다른 녀석들도 한 번 봐 보고.”

“그래야겠네. 조언해 줘서 고맙다.”

“됐네요. 뭐 이상한 거 발견하면 나도 도와줄 테니까 바로 말하고.”

얼른 가보라는 듯 손을 내젓는 루이제의 모습에 이세훈이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너도 주변에 수상한 거 보이면 연락하고.”

“알았어.”

간단하게 당부한 이세훈이 어디론가 걸어갔고, 그 뒷모습을 바라본 루이제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 녀석…… 아까 눈이 보라색으로 변했던 것 같은데.’

자신이 잘못 본 것일까 아니면 뭔가 새로운 스킬을 습득한 걸까.

눈동자가 묘하게 멍해져서 살짝 불안해졌지만 루이제는 금방 걱정을 털어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이세훈이 자기 몸도 제대로 관리 못 해 다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보다 수상한 거라…… 한번 찾아볼까.’

너무 막연한 주제이긴 하지만 언령마법을 어떻게 잘 맞춰보면 가능성 있어 보인다.

루이제가 잠시 동안 벤치에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돌연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근데 왜 내 주변에서 수상한 걸 찾으라 한 거지?’

별 의미 없어 보이던 이야기를 곱씹었고, 이내 루이제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하여간…….”

그리고 숨겨지지 않은 미소를 지으며 작게 투덜거렸다.

* * *

루이제와 헤어진 뒤, 이세훈은 아칼쿠프에 있는 플라비움으로 향했다.

다른 곳은 사람들이 한 명씩 흩어져 있지만 여기는 제이크와 염성하, 두 사람을 한 번에 살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둘 다 오늘 시험이기도 하고.’

휴대폰을 꺼낸 이세훈은 제이크와 염성하가 치르는 학부시험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제이크는 비공개 시험, 염성하는 공개 시험인가.’

보통 1, 2학년의 학부시험은 대부분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비공개 형식으로 치러지지만 3학년부터는 구경을 허락하는 공개 방식으로 많이 바뀐다.

바벨의 교육방침상 3학년부터는 영웅 견습으로 취급해서 외부 단체들과 안면을 틀 수 있게끔 장소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러면 일단 염성하부터 보고 와야겠네.’

도착지를 정한 이세훈은 곧장 염성하의 학부시험이 치러지고 있는 플라비움 내부의 대련장으로 향했다.

와아아─!

근처에 왔을 뿐인데도 바깥까지 들리는 환호성.

무슨 사건이라도 터졌나 싶어 이세훈이 걸음속도를 더 높이려던 그때.

“어라.”

뒤쪽에서 익숙한, 그리고 들려선 안 될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이세훈 생도 아니십니까?”

듣는 이로 하여금 왠지 친근감을 느끼게 만드는 쾌활하면서도 정중한 목소리.

그에 이세훈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꼭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우연히 만날 줄은…… 아, 죄송합니다. 제 소개가 늦었네요.”

머쓱한 표정을 짓는 이국적인 청년. 새카만 머리카락에 갈색 피부, 그리고 은색 눈동자를 지닌 그 모습에 이세훈이 한 가지 깨달았다.

“저는 아미르 싱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사건이 일어난다면 모두 이놈, 빙견이 원흉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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