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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175화 (175/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75화

이틀간의 자원봉사가 끝난 뒤. 이세훈과 루이제는 곧장 바벨로 돌아가는 대신 순례교의 이탈리아 지부로 향했다.

이번에 사용한 위장 신분을 정리하기 위해서도 있고 제인이 이번 일로 보답할 것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순례자가 뭐라도 좀 챙겨주라고 했나 보구만.’

이세훈은 순례자를 직접 만나보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 들은 바가 있었다.

‘아주 자비로우신 분이었죠.’

‘자기가 베푸는 건 좋아하면서 받는 건 질색해. 미치광이 호구 놈이지.’

‘좋지만 피곤한 사람이었습니다.’

슬퍼하던 카말 총대주교. 질색을 한 마광수. 그리고 탐탁지 않아 하던 류은하.

사람마다 반응이 조금씩 다르기는 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보답이 과하다 싶을 만큼 후하다는 점이었다.

‘100만 원을 빌리면 원금에 100만을 얹어서 갚고 다음에 무이자로 100만 원을 빌려주는 수준이랬지.’

사람이 착하다는 수준을 넘어서 도움에 강박적으로 반응하는 인물. 그게 바로 순례자 칼 안데르센인 것이다.

‘친하게 지내면 속에 천불이 나겠지만…… 거래 상대로는 그만큼 좋은 사람이 없지.’

누군가는 그렇게 과한 보답을 받으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세훈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아주 철저했다.

본인이 불편해서 그렇게 퍼주는데 왜 자신이 거기에 부담스러워하고 미안함을 느껴야 한단 말인가? 그것은 어떻게 보면 당사자에게도 실례되는 행동이나 다름없었다.

‘얼마나 퍼주려나. 당장은 그래도 앞으로 이득을 꽤 많이 볼 텐데…….’

응접실의 소파에 앉은 이세훈이 보답으로 뭘 줄 것인지 생각하고 있을 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루이제가 조용히 물었다.

“야. 우리 언제까지 기다려야 돼?”

“몰라. 저쪽에서 이야기 끝나면 오겠지.”

“으음…….”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루이제. 그 모습에 이세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왜 그래?”

“아니. 뭔가 좀 불편하다고 해야 하나……. 좀 거북한 느낌이 들어서.”

“불편하다고?”

루이제의 물음에 이세훈이 응접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순례교의 이탈리아 지부인 만큼 기본적인 방호설비나 보안설비도 모두 갖추고 있었는데 그 이외에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뭔가 있다면 순례교 건물 특유의 신성력…… 아!’

무언가 떠올린 이세훈은 눈매를 찌푸리고 있는 루이제를 바라보았다.

“정수리가 막 간질거려?”

“으음…… 약간 그런 것 같기도…….”

“몸에 뭔가 약간 둘러진 것 같다던가?”

“조금 그런 느낌도 있는 것 같아.”

“누가 귀에 바람 부는 느낌도 들어?”

“……들어.”

“거기에 뜨거운 물 마시는 것처럼 속도 묘하게 뜨겁다든가 그런 느낌도 들지 않냐?”

계속되는 이세훈의 질문에 묘하게 바라보던 루이제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야. 네가 그런 거지.”

자신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감각을 하나도 아니고 네 개 모두 정확하게 집어내다니.

의심을 넘어 범인으로 확신하기 시작하는 루이제의 모습에 이세훈이 놀라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얘가 왜 신성력을……?’

신성력을 각성하기 전에 나타난다는 네 가지 전조증상.

보통은 본인의 성향에 따라 한 가지만 나타나고 재능이 뛰어날수록 늘어났는데 루이제에게는 모든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폭견은 신성력을 쓴 적이 없었을 텐데…… 나 때문에 뭔가 변한 건가.’

신성력의 각성 조건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지만 ‘심상’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었다.

루이제와 폭견은 시작점만 비슷할 뿐이지 이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으니 이런 차이가 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신성력을 각성한다고 나쁠 건 없긴 한데…….’

마력을 사용하던 영웅이 어느 날 갑자기 신성력을 각성한다고 해서 기존의 마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마력과 신성력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 익숙해지면 두 힘을 번갈아 가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부분에서는 이득이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이세훈은 탐탁지 않게 느껴졌다.

‘재능이 너무 뛰어나.’

이세훈이 알기로 네 가지 전조증상을 모두 느낀 사람은 과거와 현재, 미래에서도 오직 한 명. 순례자의 후계자라고 불렸었던 십악의 배교자뿐이었다.

그런데 루이제가 두 번째가 되다니. 놀랍기는 하지만 조금만 수틀리면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다.

‘배교자 그 미친 새끼한테 찍힐 수도 있다는 거니까…….’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이세훈은 결정을 내리고 루이제를 바라보았다.

“빨리 대답…….”

“그거 신성력 각성하기 전에 나타나는 전조증상이야.”

“……뭐?”

“근데 의식하지 말고 각성하게 되더라도 숨겨야 돼. 잘못하면 엄청 귀찮아질 수도 있거든.”

이세훈은 루이제의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배교자가 얼마나 귀찮고 정신 나간 녀석인지 설명했다.

그 이야기에 처음에는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루이제의 얼굴도 진지해졌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 당장은 장점보다 단점이 크네. 너도 그것 때문에 숨기는 거랬지?”

“그렇지. 너나 나나 좀 더 실력이 오르기 전까지는 비밀로 하고 있는 게 좋아.”

“흐음…… 알았어. 나도 솔직히 말하면 신이니 뭐니 요상한 놈한테 힘을 빌리는 건 영 안 내켰거든.”

아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후련하다듯이 이야기하는 루이제. 그 모습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폭견이 신성력을 못 썼던 게 저것 때문인가?’

지금도 신에 대해서 반쯤 불신하고 있는데 성격이 꼬일 대로 꼬인 폭견은 어떻게 생각했겠는가.

아마 그 뿌리 깊은 불신이 신성력 자체를 부정해서 회귀 전에 각성을 방해했던 것이 분명하리라.

“근데 내가 보기에는 너도 나랑 비슷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뭐. 솔직히 말하면 비슷하게 생각하지. 그걸 어떻게 그리 쉽게 믿어?”

“그렇지? 근데 왜 너랑 나한테 이런 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상황에 루이제가 의아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그때.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제인이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처리 절차가 생각보다 길어지는 바람에…….”

“얼마 기다리지도 않았는데요 뭘. 그렇지?”

“아, 예. 맞아요.”

이세훈과 루이제의 대답에 제인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네요. 아, 일단 보답으로 정해진 물건들부터 보여드릴게요.”

두 사람의 맞은편에 앉은 제인이 품에서 하얀색 바탕에 금색으로 무늬를 새겨놓은 주먹만 한 아공간 상자를 꺼냈다.

“이 물건들은 치료법의 전수. 환락가의 계획 공유. 그리고 그것을 저지할 방법을 알려주신 것에 대한 보답입니다. 그러니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바꾸고 싶은 게 있으시면 얼마든지 말씀해 주세요.”

행사를 진행하는 것처럼 깍듯한 제인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은 금전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아공간 상자를 연 제인이 그 안에서 새하얀 신용카드 한 장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번에 새롭게 만든 계좌의 카드입니다. 앞으로 이세훈 생도의 치료법으로 얻는 수익을 전부 넣어둘 테니 마음껏 사용해 주세요.”

“……전부요? 몇 퍼센트가 아니라?”

“예. 이세훈 생도가 만들어내신 치료법이잖아요. 그러니 모두 가져가셔야죠.”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하는 제인의 모습에 이세훈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수수료는 떼어갈 줄 알았더니 설마 전부 양도할 줄이야.

“아니, 왜 그런 호구……!”

따악!

하티로 쓸데없는 말을 하려는 루이제의 입을 막은 이세훈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감사합니다. 순례교처럼 인류를 위해서 사용하겠습니다.”

“후후. 그래 주신다면 감사하지만 이세훈 생도께 드리니 보답이니 사적으로 많이 사용해 주세요.”

부드럽게 웃은 제인이 다시 아공간 상자에서 한 물건을 꺼내서 탁자에 올렸다.

“다음은 지원입니다. 이세훈 생도께서 인류를 위해 여러 활동을 하신다는 걸 알았으니 거기에 대한 지원을 해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황금색 고리의 형상을 띄고 있는 엠블럼.

순례교에서 직위를 증명할 때 쓰이는 물건이었는데 이세훈이 알고 있는 것과 형태가 많이 달랐다.

“이걸 보여주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건가요?”

“예. 어느 지부든 그 엠블럼을 보여주면 이세훈 생도, 아니, 명예 대주교님께 적극적으로 협조할 겁니다.”

“아아. 그렇…… 예? 명예 대주교라고요?”

혹시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묻자 제인이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본래는 대주교 직위를 드리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신성력을 보유하지 않으셔서 교주님께서 명예 대주교라는 직위를 새롭게 만드셨습니다.”

“…….”

“아, 혹시나 말씀드리지만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대주교로서의 의무는 빼고 권한만 넣었으니까요. 필요할 때 마음 편히 사용해 주세요.”

정말 기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는 제인의 모습에 이세훈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보답을 얼마나 퍼주든 간에 신나게 받아먹을 생각이었는데 막상 배가 터지도록 집어넣어 주니 뭔가 속이 더부룩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걸…… 받아도 되나?’

얼굴에 철판을 깔고 받아먹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 많지 않은가. 이세훈이 떨떠름해하는 사이 제인이 다음으로 넘어갔다.

“마지막은 명예 대주교님이 부탁하셨던 무구입니다. 앞으로 강한 적들과 싸울 일이 많아서 강력한 무구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죠?”

“아, 예. 그렇게 말했었죠.”

본래는 영연신마법의 비전기술인 마혈기를 그런 용도로 사용했었지만 영혼의 변질로 인해 사용이 제한된 상황.

그렇기에 이세훈은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무구를 구해줄 수 있으면 구해달라고 말한 것이다.

‘근데 그건 보답으로 그것만 구해달라는 뜻이었는데…….’

앞에 보상을 벌써 저만큼 줘놓고 또 주겠단 말인가. 이세훈이 긴장한 눈으로 바라보자 제인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죄송하지만 조건에 딱 맞는 무구를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교단이 보유한 무구가 전부 신성력을 사용하는 성법기다 보니…….”

“아. 그렇군요.”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숨겼기에 일어난 일. 하지만 이세훈은 그에 대해서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으면 보답이 늘어나는 것을 넘어서 순례자가 자신을 납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든지 적당한 게 좋지…….’

앞에 보상을 잔뜩 받았으니 마지막 정도는 조금 아쉬워도, 아니, 이미 차고 넘칠 정도로 받았기에 문제없다.

이세훈이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사이 제인이 상자에서 마지막 물건을 꺼냈다.

“……향로?”

동그란 형태의 하얀색 향로.

뚜껑 위에는 황금색 고리 모양이 만들어져 있었고 하얀색 쇠사슬이 길게 늘어져 본체와 손잡이를 연결시켰다.

어딜 봐도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무구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그 모습을 살피던 이세훈의 눈이 가늘어졌다.

‘뭔가……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형태도 그렇고 안쪽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묘하게 익숙하다. 이세훈이 과거의 기억을 마구 뒤져보았고.

“……순례자의 향로?”

믿기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알고 계셨군요. 하긴 다른 ‘스티그마타’와 다르게 순례자의 향로는 많이 유명한 편이니까요.”

스티그마타Stigmata.

순례자 칼 안데르센이 새로운 대주교가 탄생할 때마다 그 재능과 능력에 맞춰서 직접 만들어준다는 특수한 성법기.

그런 물건을 순례교인도 아니고 외부인에게 넘겨준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었는데 이세훈이 진짜 놀란 것은 물건 자체의 내력이었다.

“이 순례자의 향로는 교주님께서 완등자가 되고 처음으로 만드신 물건으로 최초의 성법기예요.”

“…….”

“수십 년 전에 만들어졌던 만큼 최근에 만들어진 스티그마타와 비교하면 조금 부족한 부분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교주님께서 직접 사용하시던 물건이니 나쁘지 않을 거예요.”

“저…….”

신나서 설명하는 제인의 모습에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순례자님이 제게 이걸 줘도 된다고 하셨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본인이 사용하던 무구를 외부인에게 이렇게 넘기라고 했을까. 이세훈의 물음에 제인이 미소를 지었다.

“교주님께서 이걸 가져다드리라고 제게 건네주셨어요.”

“…….”

“아. 그러고 보니 사용하시기 편하게 조금 손도 써두셨다든데……. 한번 보시겠어요?”

앞으로 내밀어진 순례자의 향로에 이세훈이 멍한 표정으로 정보창을 살펴보았다.

[순례자의 향로]

[등급 : 전설] [품질 : 하]

신의 존재를 목격한 절대자, ‘칼 안데르센’이 직접 만든 향로.

은혜를 다루는 순례자의 권능이 깃들어 있으며 신성력을 소모하는 것으로 그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가 신성력이 없을 경우 향로 내부에 권능을 영구적으로 소모하여 그 힘을 재현할 수 있다.

*신성력을 소모하여 은혜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권능을 영구적으로 소모하여 그 힘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

순례자가 직접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승천제의 반지와 불명자의 지골처럼 권능 자체가 깃들어 있는 물건.

만약 신성력이 없었다면 몇 번밖에 못 썼을 물건이지만,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다면 그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스티그마타보다 더욱 귀중한 물건에 이세훈이 잠시 숨을 골랐다가 제인을 바라보았고.

“사실 제가 순례교의 경전을 전부 외울 만큼 신앙심이 매우 깊습니다. 하하!”

“…….”

루이제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자신도 모르게 숨겨두었던 신앙심을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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