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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172화 (172/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72화

신성력과 마력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성질, 근원, 단련법 등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지만 제인은 그중에서도 ‘호환성’의 차이가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화속성마력을 보유하지 못한 사람은 체내에서 생성이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화속성마력을 아예 다룰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장비나 소모품, 다른 영웅 등 외부로부터 공급을 받기만 하면 기존의 마력을 사용하던 노하우로 어느 정도는 제어가 가능한 것이다.

카앙!

하지만 신성력은 그런 마력과 완전히 달랐다.

신성력을 각성하지 못한 사람에게 공급해 봐야 힘을 제어하기는커녕 유지조차 하지 못했는데 이를 두고 교주님, 순례자 칼 안데르센은 이렇게 설명했다.

‘언뜻 보기에 비슷해 보여도 근원부터가 다르다는 뜻이죠. 그렇기에 신께 은혜를 입은 저희들이 인류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근원부터 다르다.

그리 배웠고, 그리 느꼈기에 제인은 단 한 번도 그 사실에 대해서 의문을 품은 적이 없었다.

그 때문에 이세훈이 제안한 최신식 치료법에 대해서 들었을 때 그것이 정말 가능한지 믿을 수 없었고.

“…….”

빠악!

전신에 신성력을 두른 채 환자와 신나게 싸우고 있는 이세훈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좋습니다!!”

이세훈의 손에 들린 황금빛 장창, 신성마법으로 만들어낸 창이 유연하게 휘어지며 전방을 향해 매섭게 쏘아졌다.

형태와 강도는 물론 즉석적인 변형까지 자유자재로 펼쳐진다. 교단에서도 보기 힘든 완벽한 무구투영에 제인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어떻게…….’

몇 번 시범을 보여주면서 간단하게 가르쳐준 것이 전부인데 어떻게 저리 능숙하게 펼칠 수 있단 말인가.

무구투영만 죽어라 연습한 것 같은 완성도에 제인이 감탄하고 있는 사이 맞서 싸우고 있는 환자, 카를도 반격에 나섰다.

“흐읍……!”

호흡을 다잡으며 순식간에 자세를 잡고 이어서 변칙적인 창의 궤도에 맞춰서 재빠르게 나무창을 내지른다.

카가강!

세 번이나 휘어진 창날이 완벽하게 쳐내졌고 이번에는 카를이 기세를 몰아 반격을 펼쳤다.

공세를 펼친 그대로 거리를 좁히고 목을 향해 다시 쾌속하게 창을 내지른다.

마력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날카로운 공격에 이세훈이 재빠르게 창을 휘둘렀다.

카앙!

아무리 잘 파고들었다한들 마력의 도움도 못 받는 노쇠한 육체. 제인에게 미리 버프까지 받아둔 이세훈은 아주 가볍게 창을 막아냈고.

‘왔다……!’

그 상황을 기다리고 있던 카를이 육체를 쥐어짜내며 비장의 한 수를 펼쳐냈다.

끼기긱─

앞으로 내디딘 왼발을 안쪽으로 틀면서 전신을 타고 오르는 회전력을 양팔에 가미한다.

한계까지 비틀린 나무창이 비명을 내지름과 동시에 창끝이 폭발하듯이 맞닿아 있는 이세훈의 창을 후려쳤다.

파앙!

창끝에서 터져 나온 파동에 황금빛 창이 산산조각 나며 튕겨져 나갔고 카를이 그 빈틈을 향해 매섭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여태까지 치료를 핑계로 쉴 새 없이 자신들을 두들겨 팼던 망할 놈에게 전력을 다해 나무창을 내질렀고.

카각!

두 자루의 단검이 창날의 궤도를 비틀어냈다.

부서져 흩어지던 황금빛 조각을 뭉쳐서 만들어낸 단검.

허를 찌른 반격에 카를이 깜짝 놀란 사이 이세훈이 단숨에 목젖을 향해 단검을 휘둘렀고.

“……!”

생명의 위협을 느낀 카를이 반사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리며 이세훈에게 창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방금과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휘둘러진 나무창이 이세훈을 가슴을 꿰뚫었고, 그 모습에 카를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런……!”

마력을 사용한 것도 문제인데 전력을 다해서 받아쳐 버렸다. 혹시라도 상대가 다쳤을까봐 카를이 다급히 창끝을 바라보았고.

우우웅

황금색 방패를 뚫지 못하고 부서진 나무창이 보였다.

“휴우…… 대주교님 덕분에 살았네요.”

공격에 맞춰서 펼쳐진 제인의 신성마법.

미리 이야기해놓은 부분이었기에 깔끔하게 막아낸 것이다.

“마력을 사용하셨으니까 치료는 여기까지 해야겠네요. 몸 상태는 좀 어떠신가요?”

“아. 음…….”

이세훈의 이야기에 카를은 뒤늦게 자신의 몸을 살폈다.

온몸에 활력이 도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에 오른쪽으로 틀어져 있던 중심이 조금이지만 본래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자신의 등에 붙어 있는 척추 의체의 이질감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이었다.

“몸을 아예 통째로 뜯어고친 것 같군……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거지?”

“아. 특별한 건 아니고 어르신의 몸에 신성력을 불어넣어서 자연치료를 촉진시킨 겁니다.”

“자연치료?”

예상 밖의 대답에 카를이 의아해하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저희들이 신성마법으로 치료하는 건 환자분들의 육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서 효율이 좋지 않습니다. 특히 어르신처럼 척추부상 같은 섬세한 영역으로 가면 더 심해지죠.”

아주 약간의 비틀림조차 고위영웅들의 영역에서는 큰 허점으로 작용되는데 그걸 치료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세훈은 그걸 직접 애써서 치료하기보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당사자에게 맡기는 식으로 바꾼 것이다.

“저와 대련을 펼치면 어르신은 자연스럽게 부상이 생기기 전의 움직임을 떠올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그때 체내에 스며든 신성력이 신성마법으로 발현되어 육체를 그 감각에 맞춰 회복시키는 겁니다.”

상처를 그냥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성기 시절로 복원시키는 감각. 그 덕분에 단순치료보다 몸 상태가 훨씬 좋아진 것이다.

“물론 이것도 만능은 아닙니다. 어르신이 과거의 감각을 명확히 기억하셔야 하고, 최소한의 기틀도 있어야 하죠.”

“기틀이라면…… 의체를 말하는 건가?”

“맞습니다. 어르신의 척추는 이미 상한 상태기 때문에 의체를 기반으로 상처를 회복시켜나는 것이죠.”

“……대단하군.”

몸을 회복시킬 뿐만 아니라 의체의 고질적인 문제인 이질감까지 함께 없애준다.

지난 몇 달간 재활로 만들어낸 성과를 치료 한 번으로 따라잡았다는 사실에 카를은 놀라움과 기쁨을 느끼면서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혹시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는 건…….”

“아. 죄송하지만 정기적인 치료는 교단에서 금지하고 있습니다. 치료를 반복할 경우 마력운용에 장애가 생길 수도 있거든요.”

“으음…… 그런가.”

“예. 나중에 문제점이 개선되고 나면 그때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세훈의 대답에 카를이 아쉬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나중에 개선되면 잊지 말고 꼭 연락해라. 성금은 얼마든지 지불하지.”

“걱정 마세요. 아, 그리고 몸이 급격히 변해서 부담이 생길 수도 있으니 며칠간은 푹 쉬십시오.”

“그래. 그리고…… 음…….”

이세훈과 뒤에 있는 제인과 루이제를 바라본 카를이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머쓱하게 이야기했다.

“아까는 미안했다. 치료하느라 고생 많았어.”

부서진 나무창을 챙겨 넣은 카를이 다시 목발을 꺼낸 뒤 재빠르게 강당 밖으로 나갔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슬쩍 웃었다.

‘여유가 생기니까 사과할 줄도 아네.’

어쩌면 현역 시절에도 말버릇은 나빴어도 인성 자체는 그리 글러먹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세훈이 카를을 다시 평가하는 동안 알레시아가 세 사람의 곁으로 다가왔다.

“다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저분이 마지막이셨죠?”

“예. 이걸로 오늘 일정은 끝이니까 다들 돌아가셔서 푹 쉬시면 됩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뒷정리를 끝낸 뒤. 알레시아와 간호사들에게 배웅을 받은 순례교인들은 그대로 차를 나눠서 탄 다음 근처 동네에 잡아둔 숙소로 향했다.

“운전석이랑 차단되어 있으니까 여기선 편하게 말씀하시면 돼요.”

“흐아…….”

제인의 이야기에 가장 먼저 루이제가 한숨을 내쉬며 애써 관리하고 있던 얼굴을 단숨에 일그러뜨렸다.

“으으 머리야…… 신성력 저거 왜 저렇게 아파?”

이번 치료에 루이제가 맡은 역할은 언령을 사용해서 이세훈과 환자에게 마법진의 신성력을 동화시키는 것.

본래 신성력을 각성하지 못한 이들은 체내에 신성력을 유지할 수 없는데 그게 가능했던 이유가 바로 루이제의 언령 덕분이었던 것이다.

“이해도가 부족한 걸 억지로 사용해서 그래. 신성력을 각성하기 전까지는 계속 그럴 거야.”

“어지간하면 안 써야겠네…….”

언령을 한 번씩만 사용해서 다행이지 만약 효과를 계속 유지해야 했다면 도중에 머리가 터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루이제가 이마를 연신 눌러대며 앓는 소리를 내고 있을 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제인이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이세훈 생도.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을까요?”

“아, 예. 편하게 말씀하세요.”

“방금 치료법은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신 거죠?”

마력을 억누르고 신성력을 육체에 강제로 동화시켜서 자연치유를 극대화시킨다.

설명을 듣고 나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전까지는 상상도 못할 방법이었다.

‘그리고 신성력에 대한 이해도가 이상할 정도로 높아.’

아무리 신성력이 신체에 동화된 상태라지만 어떻게 신성마법을 그리 자연스럽게 펼칠 수 있단 말인가.

혹시 이미 신성력을 각성한 상태가 아닐까. 제인이 그렇게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그때.

“그냥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말인가요?”

“예. 좀 더 제대로 말씀드리자면…… 육체의 복원력과 루이제의 언령마법. 여기에 신성력의 특성을 더해서 세 가지를 잘 엮은 다음 만들어낸 거죠. 어려운 건 아니에요.”

세 가지 힘을 제대로 파악했기에 가능한 결과물.

그 태연한 대답에 제인은 여전히 믿기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납득하게 되었다.

‘근원이 다르다는 게 사람에게 적용하면 이런 느낌이었군요. 교주님.’

이해도와 발상. 그리고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까지 다른 사람들과는 근원 자체가 다르다.

태어나기를 무언가를 만드는 데 특화된 인물.

이세훈이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해야 하는지 깨달은 제인이 잠시 생각하다가 이야기했다.

“혹시 나중에 치료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교단에서 제대로 연구해 보고 싶습니다.”

“아. 물론이죠. 최대한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결과는 어떻던가요?”

제인의 물음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일단 필요한 정보는 다 확인했습니다. 기존에 의심스럽던 세 명과 다른 두 명이 와서 확실하게 비교되기도 했고요.”

이세훈의 이야기에 제인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세 사람에게서 차이점을 발견했다는 것은 곧 환락가의 개입이 사실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다르던가요?”

“음…….”

제인의 물음에 이세훈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의체의 성능이 훨씬 좋았습니다.”

“……예?”

“부작용도 덜하고 신체의 적응도도 뛰어나더군요. 내부에 다른 부품이 추가된 것 같던데 그게 육체와의 이질감을 줄여주고 퇴화된 기량을 높여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면…… 그 효과만큼 엄청난 부작용이 숨겨진 건가요?”

긴장한 제인의 물음에 이세훈이 담담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부작용도 거의 없습니다. 간단히 비유하자면 세 사람의 의체만 한 세대…… 아니, 두 세대 정도 앞선 기술처럼 느껴지더군요.”

“…….”

이세훈의 설명에 제인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환락가가 개입했다기에 당연히 마기가 침식하여 마인으로 만든다거나 정신을 오염시키는 등 부작용이 심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냥 성능이 좋은 게 전부라니.

그 대답에 제인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고,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루이제가 눈매를 찡그린 채 물었다.

“그러면 문제될 게 있나? 나쁜 것도 없잖아.”

“그것만 보자면 그렇지. 문제는 그 녀석들이 저 사람들을 회복시킨 다음에 뭘 노리냐는 거야.”

처음에는 저들 역시 환락가의 증축하기 위한 재료라고 생각했지만 치료 중에 의체를 살펴본 이세훈은 그 추측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쪽은 아예 다른 재료였던 거야.’

이전에 특무과와 함께 붙잡았던 이들이 마인으로 타락시킨 다음 증축의 재료로 쓰일 이들이었다면, 이쪽은 재활을 통해 영웅으로 부활시킨 다음 다르게 쓰일 재료였다.

그 재료의 쓰임새가 어디냐에 따라서 앞으로의 대응, 그리고 환락가의 공략법이 결정될 터.

“일단 의체에 들어가 있는 추가 부품을 봐야 확실하게 결론이 날 것 같아. 그러니까 오늘 밤에는 예정대로 잠입한다.”

“으음…… 근데 할 수 있겠어? 우리가 팔팔하게 만들어서 더 어려워진 것 같은데.”

지쳐서 곯아떨어지게 만들어도 들어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데 오히려 힘이 넘치게 만들지 않았던가.

찝찝해하는 루이제의 물음에 이세훈이 여유롭게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창문 밖으로 보이는 재활 병원. 그 모습을 눈에 담은 이세훈이 씩 웃었다.

“그쪽으로도 다 처리해뒀으니까.”

* * *

오전 1시.

소등시간이 된 지 한참 지나 병원 전체가 조용했고, 데스크의 전등과 야간당직인 직원을 제외하면 깨어 있는 사람이 없었다.

넓은 크기만큼이나 휑한 내부. CCTV로도 이상이 없는 상황에 경비실의 직원도 하품을 하고 있을 때.

스슥

병원의 풍경 일부가 아주 살짝 일렁였고, 그대로 복도를 지나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우우웅

눈에 보이지 않는 마력 레이저. 출입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지나가면 곧장 경보가 울리는 최첨단 경비 시설이었다.

스스스

하지만 일렁임이 앞으로 움직이자 레이저가 펼쳐진 풍경 자체가 흔들리면서 넘어갔고, 아무런 반응 없이 2층을 넘어 병실이 있는 3층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그대로 3층 데스크에서 당직을 서고 있는 간호사들을 지나서 한 병실의 안으로 들어섰고.

“……이제 됐어.”

“흐아아…….”

이세훈과 밀착해서 올라온 루이제가 마스크 너머로 참았던 숨을 한 번에 내뱉었다.

“으윽…… 울렁거려…….”

전신이 풍경에 동화되어 흔들리는 기괴한 감각.

온몸이 올올이 풀려나가는 듯한 그 기괴한 감촉에 루이제가 다시금 떠올렸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너…… 이런 미친 짓은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몽환의 마력을 사용해 꿈의 경계에 들어선 다음 언령마법으로 주변 풍경과 동화하여 녹아든다.

효과는 방금 본 것처럼 확실하지만 조금만 실수해도 주변 풍경에 녹아버릴 수 있을 만큼 위험한 방법.

만약 이세훈이 문제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않았다면 시도할 엄두도 못 냈으리라.

“뭐…… 그냥 되지 않을까 해서 해본 거지.”

정확히 말하자면 회귀 전의 폭견이 사용하던 방식을 고스란히 따라한 것이지만, 고스란히 설명할 수도 없었기에 이세훈은 적당히 둘러댔다.

“아. 그냥 해본…… 뭐?”

이세훈의 대답에 루이제가 고개를 끄덕이다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바라보았다.

“너. 아까는 나보고 검증된 방법이니까 믿으라고…….”

“쉿. 너무 떠들면 들켜.”

“아니, 이 개새─”

따악!

이세훈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마스크, 하티의 겉면에 X자 무늬가 추가로 생겨나면서 루이제의 목소리가 차단됐다.

처음 만들었을 때 몰래 추가해둔 음소거 장치.

자신의 목소리가 안 나온다는 것을 깨달은 루이제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이내 흉흉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중에 이야기하고 일단 들어가자.”

자신을 노려보는 루이제의 등을 떠민 이세훈은 그대로 병실의 안쪽으로 들어섰다.

우우웅

아직 몽환의 마력이 주변에 동화된 상태였기에 내부의 간단한 알람장치들은 쉽게 통과했고 이세훈은 곧장 침대에 누워 있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옆으로 누운 채 편안하게 잠든 카를.

느릿한 호흡이 얼마나 깊이 잠들어 있는 상태인지 말해줬는데 그 모습에 루이제가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완전히 곯아떨어지게 신경계 쪽을 자극했다더니 진짜인가 보네…….’

겉보기에는 그냥 편하게 자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면제를 처방받은 것처럼 깊게 잠든 상태인 것이다.

툭툭

하티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루이제의 모습에 이세훈이 진정된 것을 확인하고 다시금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개새끼.”

“이런 곳에서 흥분한 네 잘못이지.”

“됐고 이제 어쩔 거야?”

루이제의 물음에 이세훈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일단 해체부터 해야지.”

“……진짜 한다고?”

“당연히 진짜지. 별로 안 어려우니까 옆에서 좀 도와줘.”

거침없이 이불을 걷어낸 이세훈은 그대로 카를의 상의를 올린 다음 등에 붙어 있는 척추 의체를 바라보았다.

척추 라인을 따라서 그대로 몸에 박혀 있는 은빛 의체.

내부에는 희미하게 마력이 돌고 있었는데 진짜 신체의 일부처럼 순환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보자…….”

품에서 몽환의 단안경을 꺼내서 왼쪽 눈에 쓴 이세훈은 그대로 의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날개뼈 부근의 지점에서 시선을 멈춘 다음 미리 준비해둔 수술용 칼을 꺼내 들었다.

“여기에도 동화 걸어줘.”

“알았어.”

마력을 가다듬은 루이제가 언령을 불어넣었고 자그마한 칼날이 검은색으로 물들더니 이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살핀 이세훈은 조심스레 미리 봐둔 의체의 한 부분에 가져다대며 칼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스슥

살을 갈라내듯이 부드럽게 잘려나가는 의체.

실제로는 백광도 두르지 않은 칼날로 쉽게 잘라내긴 어려웠지만 동화로 부품을 확장시키듯 속여서 벌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오른손을 절단면에 가져다댄 이세훈은 그대로 흑무사를 연결시켜 의체의 다른 부분에 연결시켰다.

혹시라도 마력의 순환이 끊어지면 착용자인 카를이 깨어날 수 있었기에 그런 현상을 최대한 차단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 땀 한 땀 의체를 잘라내고 다른 곳과 연결시키면서 외장부분을 완전히 벌려냈고.

우우웅─

안쪽에 숨겨져 있던 부품을 발견했다.

녹색으로 빛나는 특수한 보석. 어딘가 익숙한 그 형태에 이세훈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야. 이거 설마…….”

곁에서 바라보던 루이제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고 그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여명』이 만든 물건이야.”

상대의 마력회로를 침식하여 구조를 완전히 바꿔 버리는 『여명』의 마력침식기.

그리고 이 보석은 그 안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 중 하나다.

“……거기에도 그 새끼들이 숨어 있다 이거네.”

루이제의 두 눈이 싸늘하게 빛났고, 그사이 이세훈은 녹색 보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근데 침식 중이라기에는 너무 얌전한데.’

마력회로도 거부 반응이 없고 무엇보다도 따지자면 척추 의체 쪽이 카를에게 육체의 일부로서 침식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쓰고 있는 걸까. 가만히 보석을 바라보던 이세훈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곧장 몽환의 단안경을 발동시켰다.

‘몽환투영.’

우우웅

몽환의 단안경에서 뻗어나간 한 줄기의 마력이 보석에 맞닿았고 조금씩 안경알에 어떤 풍경이 비치기 시작한다.

파앙!

그러자 보이는 것은 긴 창을 쥔 채로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빠르고 강력하게 움직이는 카를의 모습.

이전에 마의 거울에 오염된 영웅들의 심상과 다르게 오염된 곳 하나 없이 깔끔했는데 그 모습에 이세훈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건…….’

방금 이세훈이 몽환투영을 사용한 것은 잠든 카를이 아니라 척추 의체에 있던 보석이었다.

그런데 카를의 심상이 이렇게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심상의 복사.’

고위 영웅.

그것도 본래 S급 영웅이 될 수 있었던 뛰어난 자질을 가졌던 이들을 회복시키고 벽을 뛰어넘게 만들어 그 완성된 심상을 복사한다.

회귀 전에도 본 적 있는, 그리고 그 끝에 완성된 존재를 떠올린 이세훈이 속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멸각의 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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