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71화
약간 소란스러운 점심식사를 끝낸 뒤. 세 사람은 병원의 각 시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오전 동안 공터에서 수리만 한 이세훈에게 안내해 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오늘 소등시간 이후에 있을 ‘잠입’을 위한 조사였다.
“이쪽은 마력제어를 훈련하는 시설로…….”
제인에게 설명을 듣는 척 이세훈은 자연스럽게 병원의 경비 시설들을 살펴보았다.
‘역시 촘촘하구만.’
CCTV는 거의 사각이 없을 정도로 빼곡히 설치되어 있고 그 이외에도 비상시를 대비한 각종 마공학 장치들이 건물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여기에 건물의 무식한 내구도까지 생각하면 폭격도 거뜬히 견뎌낼 정도였는데, 재활병원에 이만한 시설이 갖춰진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여기 입원한 환자들은 적이 많으니까 말이지.’
오랫동안 활동한 고위 영웅이라면 마인들과 원한 관계 정도는 당연히 가지고 있는 법.
그렇다 보니 지금처럼 노화나 부상으로 약해졌을 때 습격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 설비를 철저하게 갖춘 것이다.
‘그걸 감안해도 여기는 좀 더 삼엄한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못 뚫을 정도는 아니네.’
루이제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이세훈이 머릿속으로 도면을 그리며 살펴보던 그때.
파앙!
5번 재활운동실 안에서 들려오는 파공음.
그에 이세훈이 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안쪽을 살펴보자 나무창을 들고 있는 노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가만히 서 있는 노인.
앞을 겨누고 있는 창끝은 미세한 흔들림조차 없었는데, 숨소리도 안 들리니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흐음…….”
그 자세를 본 이세훈이 노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때.
파앙!
눈 깜짝할 사이에 몸을 비튼 노인이 유리문을 향해 나무창을 내질렀다.
콰앙!
“악!”
창끝에서 터져 나온 파동에 유리문이 튕겨지다시피 열렸고, 그 예상치 못한 기습에 루이제가 깜짝 놀라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제인과 이세훈은 담담하게 안쪽을 바라보았고 그 시선에 노인이 창을 거두며 삐딱하게 바라보았다.
“요즘 순례교도 많이 변한 모양이군. 남을 훔쳐보는 교리도 생기고 말이야.”
노인의 노골적인 비꼼에 제인이 부드럽게 대답했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네요. 쉬는 시간인데 소리가 들려서 무슨 일인가 하고 살펴봤을 뿐입니다.”
“그래? 그럼 그만 가봐. 누가 훔쳐보고 있으면 걸리적거려서 운동을 못 하거든.”
손을 휘저으며 뒤도는 노인. 그 까칠한 반응에 제인은 쓴웃음을 지었고 루이제는 표정을 관리하면서 소매 안에 숨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 병원에는 진짜 미친개들만 모였나…….’
오전에 다른 노인들도 그렇고 이 병원에 있는 환자들은 왜 죄다 성격이 저 모양이란 말인가. 오전부터 쌓인 분노에 루이제가 몸을 부르르 떨고 있던 그때.
“어르신.”
가만히 지켜보던 이세훈이 노인에게 물었다.
“혹시 척추에 의체를 장착하신 겁니까?”
이세훈의 물음에 노인이 걸음을 멈추더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뒤돌아보았다.
“왜 그딴 걸 물어보는 거지?”
“다름이 아니라 방금 몸을 회전하실 때 척추 쪽에 통증을 느끼시는 듯해서 말입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
차분히 대답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창을 든 노인, 카를 매든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표정이 풀렸나? 아니,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실전 중에는 사소한 표정의 변화도 약점이 될 수 있는 법. 그렇기에 오랜 세월 전장을 돌아다닌 카를은 자신의 통증을 숨기는 데 매우 능숙했다.
그게 어느 정도인가 하면 아프면 제발 숨기지 말고 말해달라고 간호사들이 애원할 수준.
그런데 눈앞의 청년은 그것을 단숨에 꿰뚫어 본 것이다.
“……안목이 꽤 좋은 모양이야.”
경계심 가득한 카를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멋쩍게 웃었다.
“별거 아니지만 ‘고통감지’라는 C급 스킬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쪽으로는 상당히 예민한 편입니다.”
“고통감지…… 들어본 적 있군.”
이세훈의 설명에 카를은 여전히 경계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납득했다.
실제로 들어본 적 있는 스킬이기도 하고 그런 효과라면 충분히 자신의 통증을 감지할 만했기 때문이다.
‘과거였다면 그것도 속일 수 있었겠지만…….’
씁쓸한 표정을 짓던 카를은 눈앞에 낯선 세 명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표정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그래. 네 말대로 척추 의체를 달고 있다. 12년 전에 몬스터한테 씹혀서 몸이 두 동강 날 뻔했었는데 그때 망가졌지.”
창을 지팡이 삼아 중심을 잡은 카를이 까칠한 표정으로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그 이후로 조금만 방심해도 중심이 무너져 버리는 탓에 은퇴하고 여기서 이러고 있지. 이 정도면 대답이 됐나?”
“아, 예. 충분합니다.”
“그렇군. 그럼 이제 좀 꺼져주겠나? 자네들이 내 훈련 시간을 벌써 3분이나 뺏었거든.”
다시 삐딱하게 이야기하는 카를의 모습에 루이제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던 그때.
“그건 안 되겠는데요.”
세 사람의 뒤쪽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타깝지만 어르신은 사흘 동안 자율운동 금지시거든요.”
“아, 알레시아. 자네 언제…….”
“어르신.”
카를의 말을 자른 거구의 간호사, 알레시아가 미소를 지은 채 바라보았다.
“병실로 돌아가세요. 당장.”
“…….”
알레시아의 이야기에 카를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나무창을 아공간 포켓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목발을 꺼내서 잡은 다음 밖으로 나오면서 옆으로 비켜선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래서 종교쟁이들이랑은 상종을 하면 안 되는…….”
“어르신!!!”
“간다! 가!”
카를이 불만스럽게 투덜거리며 걸어갔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알레시아가 세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분이 평소에는 안 저러시는데 훈련 중에 방해받으면 많이 예민해지셔서…….”
“아니에요. 한참 훈련하시는 데 방해한 저희들도 잘못했죠. 수간호사님께서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닙니다. 원래 함부로 운동을 못하게 저희들이 관리해야 하는데 최근 재활에 차도를 보이니까 저렇게 계속 몰래 하셔서…… 하아.”
평소에도 골머리를 썩이는지 한숨을 푹 내쉬는 알레시아. 그 모습에 제인은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대신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다.
“아까 점심 전에 오후 일정이 변할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그건 어떻게 됐나요?”
“아, 참. 안 그래도 그걸 말씀드리려고 왔는데…….”
본래 용건을 떠올린 알레시아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제인을 바라보았다.
“혹시 신성마법으로 다섯 분만 치료해 주실 수 있을까요?”
“치료요?”
“예. 최근에 무리하게 재활운동을 한 탓에 몸이 약해지신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쪽으로는 치료마법보다 신성마법이 더 효능이 좋다고 해서 부탁드릴 수 있을까 하고…….”
알레시아는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제인의 눈치를 살폈다.
원래 이런 치료봉사는 사전에 협의를 거쳐서 진행하는 것이 보통인데 병원장이 갑자기 부탁 좀 해달라고 말을 꺼냈었기 때문이다.
‘자기는 출장 가있다고 속 편하게 이야기하고…… 환자나 의사나 다 똑같아 아주 그냥.’
알레시아가 속으로 무책임한 병원장을 씹어대고 있을 때. 제인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완전히 거절하면 의심받을 것 같고…… 차라리 두 사람을 포함해서 몇 사람을 제외시키는 게 좋겠어.’
이세훈과 루이제만 콕 집어서 제외하면 병원에 숨은 내통자들이 의심스럽게 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만 나선다고 하고 몇 사람을 제외시킨다면 자연스럽게 상황을 넘길 수 있으리라.
머릿속으로 결론을 내린 제인이 막 대답하려던 그때.
“좋네요. 대주교님!”
이세훈이 그보다 먼저 대답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저희 순례교의 사명이지 않습니까. 저도 꼭 하고 싶습니다!”
“……괜찮으신가요?”
여러 의미가 함축된 제인의 물음에 이세훈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아직 후유증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루이스 성도님이 옆에서 도와주시면 치료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이세훈의 대답에 루이제가 움찔했다가 눈치껏 상황을 파악하고 재빠르게 대답했다.
“제가 곁에서 잘 보조하겠습니다. 대주교님.”
“으음…….”
두 사람을 바라본 제인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임스 성도님은 루이스 성도님과 함께 참가하는 걸로 하죠. 수간호사님.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요?”
“아, 물론이죠! 과로나 만성피로를 치료하는 정도니까 문제 없을 겁니다!”
어찌 됐든 치료를 받아주기만 해도 다행이다.
환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알레시아의 모습에 제인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장소가 정해지는 대로 말씀해 주시면 다른 성도님들과 함께 가겠습니다. 편하실 때 말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나중에 장소가 정해지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알레시아가 재빠르게 어딘가로 향했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제인이 신성마법을 사용하여 이세훈에게 물었다.
-뭔가 계획이 있으신가요?
신성력도 사용 못 하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참여하겠다는 것인가. 제인의 물음에 이세훈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대주교님. 이전에 말씀드렸던 치료법 써도 될까요?”
“……예?”
의아해하는 제인의 모습에 이세훈이 슬쩍 웃었다.
“교단에서 개발한 최신식 치료법 말입니다.”
* * *
오후 3시. 병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간호사들에게 불려나온 카를은 목발을 짚으면서 연신 투덜거렸다.
“별로 아픈 곳도 없는데 특별 치료는 무슨…….”
최근에 재활의 성과가 보이기 시작해서 운동을 조금 과하게 하기는 했지만 다치지 않을 만큼 조절하면서 했었다.
그런데 겨우 그걸로 무리했다고 따로 치료를 받으라니.
현역 때 배에 구멍이 뚫린 상태로도 싸웠던 카를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옛날이었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인데…… 쯧.’
속으로 쉴 새 없이 투덜거리며 카를이 2층으로 내려와 강당 쪽으로 향하던 그때.
“……음?”
저 멀리서 걸어오는 한쪽 눈이 탁한 노인, 듀크 포스터의 모습에 카를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분명히 오늘 오전만 해도 왼쪽 눈깔이 망가진 놈답게 움직임이 어설펐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중심이 딱 잡혀 있는 것이다.
‘저놈 저거…… 약이라도 빨았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모습에 카를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듀크가 그를 발견하며 말을 걸었다.
“뭐야. 너도 치료받으러 왔냐?”
“너도 받았어?”
카를의 물음에 듀크가 상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받았지. 처음에는 영 거지 같았는데 끝나고 나니까 나쁘지 않네. 신성마법도 그새 많이 발전한 모양이야.”
“…….”
듀크의 칭찬에 카를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재활병원에서 성격이 더럽기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미친놈이 저렇게 순수하게 칭찬하다니.
‘특별치료라는 게 도대체 뭐길래…….’
방금까지 느꼈던 짜증은 어디가고 호기심이 생겨난 카를이 강당 쪽을 보고 있을 때. 듀크가 씩 웃었다.
“잘 해봐라. 나만큼 치료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뭐?”
“운동하러 가야 되니까 이만 간다.”
듀크가 재빠르게 옆으로 지나갔고, 그 흥겨운 뒷모습을 바라보던 카를이 다시금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살짝 긴장된 표정으로 목발을 짚으면서 강당의 안으로 들어섰다.
“이건…….”
강당의 중앙에서 빛나는 팔각형의 거대한 마법진.
각 꼭짓점에는 순례교인들이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신성력이 마법진에 스며들어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구조에 카를이 의아해하던 그때. 안에서 대기 중이던 알레시아가 곁으로 다가왔다.
“어르신.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거 착용하세요.”
큼지막한 족쇄를 연상케 하는 두꺼운 묵색 팔찌. 그 모습에 카를이 눈매를 찌푸렸다.
“치료하는데 마력제어기는 왜 껴?”
“치료 중에 마력을 움직이면 효과가 떨어진대요. 그러니까 미리 착용하고…….”
“됐어. 별로면 안 받고 말지.”
“잠…… 어르신!”
알레시아를 지나친 카를은 그대로 황금색으로 빛나는 마법진의 안쪽에 들어섰다.
우우웅─
전신을 부드럽게 감싸는 황금빛 기운. 천천히 피어오르는 활력에 카를이 여기저기 굳어 있던 몸을 풀었다.
‘역시 이런 쪽으로는 신성력이 낫긴 하군.’
치료마법이 뭉친 곳을 팔꿈치로 문지른다면 신성마법은 찜질로 풀어준 다음 부드럽게 풀어주는 감각.
치료 과정은 물론이고 효과 역시 신성마법이 더 좋았기에 과거의 전장에서는 부상자들끼리 서로 치료를 받겠다고 다투는 경우도 많았었다.
‘……틈만 나면 옛날 생각을 해버리는군.’
쓴웃음을 지은 카를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마법진의 중앙에 섰고, 잠시 후 강당의 안쪽에서 이세훈과 루이제, 제인이 걸어 나왔다.
“또 뵙네요. 어르신.”
이세훈의 인사에 카를이 눈매를 찌푸리며 바라보다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치료나 해라.”
“하하. 알겠습니다. 그런데 마력제어기는 착용 안 하십니까?”
“마력만 안 움직이면 된다며. 그럼 필요 없어.”
카를의 대답에 이세훈이 쓴웃음을 지었다.
“다들 반응이 똑같으시네요…….”
“뭐?”
“아닙니다. 어르신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괜찮겠죠. 루이스 성도님. 신성마법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세훈의 이야기에 루이제가 마법진에 발을 걸친 채로 최대한 소리를 낮춘 채 속삭였다.
【Assimilation】
우우웅─
마법진의 신성력이 두 사람의 몸에 더욱 깊이 파고들었고, 그 낯선 감각에 카를이 흠칫 떨며 반사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리려 했다.
‘이런……!’
하지만 그보다 먼저 자신이 한 말을 떠올리며 재빠르게 마력을 억눌렀고 그 사이 신성력이 더욱 깊숙이 파고들어 자리를 잡았다.
마치 신성력을 각성한 것 같은 기묘한 감각. 현역 때도 겪어본 적 없는 상황에 카를이 묘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됐습니다. 이제 훈련용 무기를 꺼내보세요.”
“아. 그래. 그러지.”
의아해하면서 카를이 목발을 집어넣은 다음 나무창을 꺼냈고 자연스럽게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앞에 서 있던 청년의 손에 황금빛 장창이 쥐어진 것을 발견했고.
“절대 마력을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이세훈이 단숨에 바닥을 박차며 카를의 심장을 향해 장창을 내질렀다.
“뭣……!”
그 갑작스러운 기습에 카를이 깜짝 놀라면서도 반사적으로 자신의 나무창을 휘둘렀다.
카앙!
거리를 완전히 좁히기 전에 쳐내진 황금빛 장창.
하지만 그 방어가 무의미하게 창끝이 뱀처럼 휘더니 재빠르게 명치를 향해 파고들었다.
그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카를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이내 나무창을 꽉 움켜쥐었다.
‘아직이야!’
이 정도라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카를이 마력을 끌어올리려던 그 순간.
‘아. 마력을 쓰면…….’
뒤늦게 떠올린 경고에 카를의 몸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굳어졌고.
빠악!!!
황금빛 창이 사정없이 명치를 후려갈겼다.
“커헉!!”
온몸에 파고드는 통증에 카를이 숨을 토해내며 뒷걸음질 쳤다. 조금만 힘이 풀렸어도 바닥을 나뒹굴었을 일격.
“이 개새끼가……!”
명치의 통증보다도 쳐낼 수 있는 공격을 쳐내지 못했다는 상황에 대한 굴욕감.
뒤늦게 밀려오는 감정에 카를이 마력을 끌어올리며 분노를 토해내려던 그때.
“어르신! 화내시기 전에 일단 몸 상태부터 보십시오! 방금보다 훨씬 나아졌을 겁니다!”
이세훈이 화낼 타이밍을 끊어내듯 절묘하게 소리쳤고, 그 진심이 느껴지는 외침에 카를이 멈칫하다가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어?”
창에 맞았던 가슴 주변의 근육이 부드럽게 풀렸을 뿐만 아니라 전신의 근육통이나 타박상이 눈에 보일정도로 풀렸다.
마치 신성마법으로 치료받은 듯한 증상.
그 예상치 못한 효과에 카를이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이건…….”
“이번에 교단에서 개발한 특수치료법입니다. 가벼운 대련으로 육체를 활성화시켜 치료하는 방법이죠.”
“허. 그런 치료법이 있다니…….”
만약 처음에 이야기로 들었다면 헛소리를 한다고 무시했겠지만, 이렇게 효과를 직접 겪어봤으니 믿을 수밖에 없다.
“대신 치료 중에 한 번이라도 마력을 사용하면 몸이 신성력에 저항성을 띄게 되어 며칠간 시도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마력제어기를 착용해달라고 말씀드렸던 거고요.”
“으음. 그런 거였나…….”
이세훈의 설명에 카를은 납득하는 한편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이유였다면 미리 설명해 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랬다면 나도 얌전히 착용을…… 음…… 아니. 개소리하지 말라면서 나갔겠군.’
자신의 성격을 객관적으로 살핀 카를이 머쓱하게 헛기침을 하고 있을 때. 이세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했다.
“그럼 치료를 계속해도 될까요?”
“……좋아. 마력만 안 쓰면 되는 거지?”
“예. 마력만 안 쓰시면 됩니다.”
이세훈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투웅!
처음보다 더욱 빠르게 바닥을 박차며 카를에게 달려들었다.
“잠……!”
완벽히 허를 찌른 기습.
그에 카를이 재빠르게 나무창을 휘두르며 반격했지만 황금빛 장창이 다시금 휘어지며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투두두!
“크헉……!”
목과 명치, 복부를 매섭게 찌르는 장창. 그리고 몸이 경직된 틈을 노려 이리저리 휘어진 창이 채찍처럼 전신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지는 공격. 그에 카를이 당황하면서도 자신을 몰아붙이는 청년을 바라보았고.
“잘하고 계세요! 그대로 계속 참으시면 됩니다!”
치료를 핑계로 자신에게 복수를 하는 것은 아닌지, 아주 진지하게 의심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