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168화 (168/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68화

사람 한 명 없는 조용한 기도실.

다른 사람들은 이곳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진다고 말했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심기가 불편해졌다.

마치 자신이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앉아 있는 듯한 감각.

아무것도 안했는데 죄를 지은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이 공간 자체가 여러 의미로 불쾌했다.

“…….”

평상시보다 집중도 안 되고 괜히 몸이 움찔거리며 눈매가 절로 찌푸려진다. 속에서 천천히 끓어오르는 짜증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려던 그때.

“앉아계십시오.”

뒤쪽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이 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맞은편에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노인이 자리에 앉았다.

옅은 갈색피부에 황금빛이 서린 눈동자. 얼굴도 온화하고 체구도 그리 크지는 않지만 마주보고 있자니 어째서인지 거대하다는 인상을 안겨준다.

그 이질적인 모습에 반사적으로 눈매를 찌푸리며 노인, 순례교의 총대주교 카말 샤르마를 바라보았다.

“영감님. 지금 내가 여기에 몇 시간이나 있었는지 아십니까? 예?”

“4시간 동안 앉아계셨지요.”

“그럼 그만 좀 합시다. 대체 언제까지 여기서 이렇게 멍하니 앉아 있으란 겁니까?”

신경질적인 물음에 카말은 불쾌해하기는커녕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여유롭게 대답했다.

“신의 존재를 느끼실 때까지 앉아계시면 됩니다.”

“…….”

뭘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듯한 모습에 속이 묘하게 뒤틀리는 것을 느끼고 있을 때. 카말이 품에서 보온병을 꺼내 옆에 내려놓으며 이야기했다.

“신성력을 각성하고 싶다고 하신 건 이세훈 성도님 아니십니까. 그러니 저는 부탁받은 대로 도와드릴 뿐입니다.”

“……거기에 내가 시간이 없으니까 하루라도 빨리 각성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게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기도실에 틀어박혀서 멍하니 있는 것이 빠른 방법이다.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려는 말들을 필사적으로 눌러 삼키며 입을 열었다.

“후우…… 좋습니다. 그럼 그냥 때려치웁시다.”

“한 달이나 노력하셨는데 이렇게 그만두실 겁니까?”

“지금 노력이 중요합니까? 결과가 중요하지. 내가 여기서 이렇게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동안 연합군이 얼마나 손해를 보는지 영감님도 알지 않습니까.”

한 달이면 쓸 만한 영웅 등급 무구 수십 개, 그리고 재료만 있으면 전설 등급도 몇 개는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귀중한 시간을 이런 골방에 처박혀서 날려먹다니.

처음에는 투자라 생각했지만 슬슬 손해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흐음…… 그 말씀도 맞군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그런데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신성력을 각성하는 데 성공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

재차 나오는 말에 눈매가 살짝 찌푸려지고 카말은 옆에 내려놓았던 보온병의 뚜껑을 연 다음 그 안에다가 담겨져 있는 차를 천천히 따랐다.

“이세훈 성도님이 신성력을 각성하고 그것으로 ‘성법기’를 만들 수 있다면 영웅들은 만마의 늪에서 태어난 그 부정한 존재들을 보다 쉽게, 그리고 많이 쓰러뜨릴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공한다면 그렇겠죠.”

“제게 전략적인 안목이 없기는 하지만 적에게 상극인 힘이 있다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게 좋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스윽

차가 가득 담긴 잔을 앞으로 내민 카말이 진중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인류를 위해 조금만 더 노력해 주십시오. 제가 반드시 이세훈 성도님이 신성력을 각성할 수 있도록 이끌어드리겠습니다.”

평상시에 느긋하던 때와 다르게 각오가 느껴지는 얼굴.

그 모습에 새어나오려는 한숨을 참으며 앞에 놓인 잔을 단숨에 들이마셨다.

화아악─

몸 안쪽에 향기가 부드럽게 퍼지며 날카로워졌던 신경이 조금이나마 무뎌진다.

텅 빈 잔을 앞에 다시 내려놓은 다음 카말을 바라보았다.

“세 달. 그 이상은 안 돼.”

“걱정하지 마십시오. 신께서 분명히 이세훈 성도님에게 기회를 주실 겁니다.”

만마전의 토벌. 그리고 인류의 승리라는 목적의 일치.

그에 따라 카말과 함께 다시 그 빌어먹을 신의 존재를 느끼기 위해 열심히 기도했고.

“……아무래도 신께서 이세훈 성도님이 많이 불편하신 것 같습니다.”

“이 개씨─”

세 달을 골방에 처박혀 멍만 때리다가 날려먹었다.

* * *

‘그런 적도 있었는데 말이지…….’

회귀 전에 신성력을 습득하기 위해서 온갖 개고생을 했던 3개월을 떠올리던 이세훈은 다시금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우우웅─

손바닥 위에 은은하게 맺히는 새하얀 기운. 안쪽에는 황금빛이 희미하게 반짝거렸는데 그로인해 신비로우면서도 마력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느낌을 풍긴다.

누가 봐도, 그리고 어딜 봐도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한 신성력.

“…….”

익숙하면서도 낯설기 그지없는 감각. 자신의 몸 안쪽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움직이는 힘에 이세훈이 복잡한 표정으로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신성력] 『F』

신에게서 비롯된 성스러운 힘.

생명을 회복시키고 마기를 정화하는 데 특화되었다.

‘줄 거면 진작 주지 개 같은 새끼 같으니…….’

물론 회귀를 하면서 신성력에 대한 재능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기분이 더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세훈이 속으로 신에게 온갖 쌍욕을 퍼부으며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이세훈 생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안정완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자네 혹시 순례교인이었나?”

“예? 아뇨. 종교는 없습니다.”

“허어…….”

이세훈의 이야기에 안정완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신성력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들은 순례교를 믿어야만 각성할 수 있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신성력에 대한 정보,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만으로도 간단히 각성하는 이들이 종종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모두 순례교의 대주교까지 올라갔었다지.’

순례교의 간부이자 순례자 칼 안데르센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수제자들. 이세훈에게 그 자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안정완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세훈 생도.”

“예?”

“잘 듣게나. 지금 자네가 해낸 일이 어떤 거냐면…….”

안정완은 지금처럼 신성력을 각성한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리고 순례교에서 어떤 대우를 받을 수 있는지 빠짐없이 설명했다.

나중에 어떤 상황이 되든 간에 손해를 보지 말라는 뜻으로 말해주는 것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던 이세훈이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봐도 그거랑은 조금 다른 느낌인데…….’

이전에 들은 바에 의하면 신성력은 기본적으로 마력과 완전히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마력은 대기 중에 분포된 순수한 마력을 마력회로로 가공하여 사용하지만 신성력은 외부의 존재, 흔히 말하는 ‘신’에게서 공급받는 것이다.

간단히 비유하자면 마력은 수제 요리고 신성력은 배달 요리인 셈이었는데 이세훈은 자신이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신성력을 각성하면 신이랑 연결되는 감각이 생긴다고 했었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그런 게 안 느껴져.’

오히려 기존에 습득했던 속성마력처럼 마력회로에 얌전히 자리 잡고 있었는데 여기서 신경 쓰이는 점은 거기서 변화가 없다는 것이었다.

‘속성마력이면 자리를 잡은 다음에 양이 늘어야 되는데 이놈은 그런 기미도 없고…… 오히려 방금 사용한 것 때문에 양이 더 줄어들었어.’

체내의 신성력을 한참동안 살피던 이세훈은 한 가지를 떠올리며 계속해서 설명 중인 안정완을 바라보았다.

“교수님.”

“음? 왜 그런가.”

“마지막에 주셨던 신성력으로 만든 영약. 혹시 더 있으십니까?”

“그거라면 수업용으로 넉넉하게 받아뒀네만…….”

“지금 확인해 볼 게 있는데 하나만 더 주실 수 있나요?”

“으음…… 알겠네. 잠시 기다리게.”

자리에서 일어선 안정완이 보관함에서 신성력으로 만든 영약을 가져왔고 이세훈은 그것을 단숨에 털어 넣었다.

스스스

입으로 넘김과 동시에 체내에 쌓이는 신성력. 그 양을 확인한 이세훈은 곧장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신성마법을 펼쳤다.

우우웅!

오른손에서 피어오른 신성력이 한 줄기로 뭉치더니 순식간에 황금빛의 검으로 빚어졌다.

신성력을 무구의 형태로 만들어내는 무구투영.

검기보다 위력이 떨어지고 만들기는 더럽게 어렵지만 신성력이 저장된 소모품으로도 펼칠 수 있어 자주 써먹었던 기술이었다.

‘어디보자…….’

투영한 검이 거대한 대검으로 변하자 체내에 저장되었던 신성력이 순식간에 소모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검이 완성되기도 전에 신성력이 바닥난 순간.

파카앙!

[‘신성력(F)’이 소멸되었습니다.]

대검이 부서지며 기껏 습득한 신성력이 사라졌다.

‘과연…… 이번에도 완전히 각성한 건 아니구만.’

다른 사람들처럼 신한테 직접 신성력을 받을 수는 없지만, 영약처럼 다른 형태로는 저장해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어정쩡한 수준이었지만 이세훈은 이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신성력을 보유하는 것만으로도 귀찮아질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신성력이 필요할 때는 영약 같은걸 구해 와서 충전만 하면 되니까 아쉬울 것도 없다.

번거롭긴 해도 그리 나쁘지 않았기에 이세훈이 만족하던 그때. 눈앞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에 안정완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바, 방금 신성마법을…….’

오늘 처음 신성력을 각성한 사람이 아무한테도 배우지 않고 저렇게 신성마법을 펼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에 안정완이 당황하던 그때. 점검을 마친 이세훈이 그를 바라보았다.

“교수님.”

“어? 아. 그 말하게나.”

“방금 있었던 일들을 전부 비밀로 해주실 수 있을까요?”

“……비밀로?”

“예. 이게 알려지면 너무 유명해져서 여러모로 힘들어질 것 같거든요.”

기본적으로 신성력은 마기와 상극을 이루는 힘인 만큼 인류는 물론이고 만마전 측에서도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런데 양산형 검기라는 엄청난 기술을 만들어낸 천재 대장장이가 신성력까지 각성했다는 소문이 퍼진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특히 배교자 그놈이 문제야.’

과거 순례자의 후계자라고 불리며 촉망받던 S급 영웅이었으나 수천 명의 신도들을 학살하고 도망쳐 십악이 된 ‘배교자背敎者’ 막스 싱클레어.

일반적인 영웅들은 녀석과 엮일 일이 거의 없어서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순례교와 관련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틈만 나면 개종하라고 꼬드기고 끝까지 거절하면 그때는 죽이려고 악착같이 달라붙는다 했었지.’

회귀 전에는 이미 순례자와 공멸한 상태였기에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딱 봐도 미치광이인 녀석과 엮여서 좋을 것도 없다.

“흐음. 자네 말도 일리는 있군. 그럼 방금 있었던 일은 못 본 걸로…… 아니지.”

자리에서 일어난 안정완은 다시 보관함 쪽으로 가더니 서약서 한 장을 꺼내와 조항을 작성했다.

“이 정도면 될 것 같군. 확인해 보게.”

다른 사람에게 비밀을 누설하려고 할 경우 침묵의 저주가 활성화되고, 그럼에도 정보가 유출되려고 할 경우에는 기억말소의 저주로 관련된 기억을 모조리 지운다.

자의든 타의든 절대로 비밀을 유출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조건에 이세훈이 살짝 의외인 표정을 지었다.

“엄청 철저하시네요.”

침묵까지는 그렇다 쳐도 기억소거는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걸 망설임 없이 추가하다니. 이세훈이 신기해하자 안정완이 담담히 대답했다.

“허술한 것보다 철저한 게 낫지. 이 정도면 되겠나?”

“예. 충분합니다.”

“그럼 마무리하겠네.”

마력을 담은 사인으로 서약서를 완성한 안정완은 곧장 그것을 이세훈에게 넘겨주었다.

“잘 보관하게. 파손되면 효과가 사라지니까.”

“알겠습니다.”

서약서를 챙긴 이세훈은 안정완은 다시 보았다.

‘마냥 사람 좋은 양반인 줄 알았는데…… 좀 칼 같은 부분이 있구만.’

과거에 비밀과 관련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세훈이 생각에 잠긴 사이 안정완이 남은 것들을 정리하며 물었다.

“그럼 수업은 어떻게 하겠나? 혹시라도 영약을 먹다가 신성력이 흘러나오면 들킬 수도 있으니 취소하는 것도…….”

“아. 그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 정도는 조절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

오늘 신성력을 각성했으면서 힘을 완벽하게 숨길 수 있다고 자신하다니. 다른 사람 같으면 너무 자만한다고 나무랐을 텐데 이세훈이다보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음…… 알겠네. 자네가 그렇다면야…….”

그렇게 수업에 관한 이야기가 일단락되고, 이세훈은 아직 시간이 남은 것을 확인하고 안정완을 바라보았다.

“교수님. 수업과 별개로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의아하게 바라보는 안정완의 모습에 이세훈이 곧장 본론을 이야기했다.

“혹시 재활시설 중에서 의체를 전문으로 다루는 곳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몽환마의 부하, 마키프의 이야기에 따르면 환락가에서 갑자기 영웅용 의체의 수입이 늘어났다고 말했었다.

그걸 정확히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증축 프로젝트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분명히 의체를 착용하고 있는 영웅들을 노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의체라면…… 아! 혹시 안토니오 재활병원 말하는 건가?”

“안토니오 재활병원이요?”

이세훈의 물음에 안정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꽤 오래된 곳인데 최근에 한 기업과 제휴계약을 맺어서 이용자가 많이 늘었다더군. 그 기업 이름이…….”

“제가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안정완에게 양해를 구한 이세훈은 곧장 휴대폰을 꺼내 안토니오 재활병원에 대해서 검색했다.

그리고 뉴스란으로 들어가 그와 관련된 소식들을 확인했고.

[마리오넷 팩토리, 안토니오 재활병원과 제휴계약 체결.]

[인류를 위해 헌신했던 은퇴한 영웅들에게 신형 의체 전액 무상 지원 결정.]

“……호오.”

짧은 글귀에서 느껴지는 구린내에 두 눈을 빛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