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67화
“으윽…….”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방 밖으로 나온 이세훈은 기지개를 피다가 자연스레 눈매를 일그러뜨렸다.
어제 염성하에게 몇 시간 동안 대련을 빙자한 폭행을 당한 탓에 전신이 욱신거렸기 때문이다.
‘3학년 선배라는 새끼가 1학년 상대로 이 악물고 싸우기나 하고…….’
회귀 전에도 종종 자신은 어린이나 노약자를 상대로도 전력을 다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니기는 했지만 참 속 좁은 녀석이다.
이세훈이 타박상을 입은 몸을 풀어주며 마루로 나오자 차를 마시고 있는 마광수와 염진현을 발견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잠자리가 불편해서.”
집주인 앞에서 대놓고 불만을 토해내는 마광수의 모습에 이세훈이 흘겨보자 염진현이 부드럽게 웃었다.
“이 친구가 원래 낯선 곳에서는 잠을 잘 못자는 편이라. 그보다 몸은 좀 괜찮은가?”
“아, 뭐. 조금 뻐근하기는 한데 이 정도면 금방 괜찮아질 겁니다.”
어디가 부러지거나 잘려나갔으면 몰라도 단순 타박상 정도는 영연신마법으로 조금만 풀어줘도 금방 회복된다.
둘러대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움직임에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세훈의 모습에 염진현이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 혹시 회복계열 스킬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비슷한 걸 가지고 있기는 한데 보조 정도입니다.”
“보조라…… 자네한테서 몇 번을 놀라야 할지 모르겠군.”
이전에 꿈속에서 자신을 전성기로 만들었던 기술도 그렇고 어제 염성하와 나름대로 대등하게 대련을 펼친 것도 그렇고 보면 볼수록 재능이 많다.
‘역시 이 친구라면 괜찮겠군.’
다시 한번 확신한 염진현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잠깐 앞에 앉아 보게나.”
“아. 예.”
이세훈이 맞은편에 앉자 염진현이 옆쪽에 따로 빼놨던 고급스러운 나무상자를 앞으로 내밀었다.
“이건…….”
“이전에 이야기했던 답례일세. 한번 살펴보게나.”
염진현이 내민 상자를 내려다보던 이세훈은 살짝 긴장된 표정으로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방석 위에 놓여 있는 큼지막한 주괴.
하늘색과 하얀색이 은은하게 뒤섞인 것이 마치 하늘의 일부가 떨어져나온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을 풍긴다.
“…….”
그 익숙한 모습에 이세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이내 곧장 정보창을 살펴보았다.
[천운철天雲鐵]
[등급 : 전설] [품질 : 하]
하늘의 기운이 담긴 특수한 광석을 제련한 철.
막대한 양의 마력을 보존하거나 그 성질을 강화할 수 있으며 마력을 소모하는 것으로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다.
*내부에 보존된 마력의 성질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마력을 소모하여 비행이 가능합니다. 단, 사용자의 제어가 없을 경우 움직이지 않습니다.
주작의 동공, 남화동 이후로 처음 보는 전설 등급의 재료.
그 정보를 읽은 이세훈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설마 여기서 천운철을 보게 될 줄은…….’
하늘의 기운이 담겼다는 거창한 설명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천운철은 굉장히 만들기가 까다로운 재료였다.
서로 다른 속성 마력 재료 다섯 가지를 완벽하게 혼합시킨 다음 하늘의 기운, 상공의 구름 근처에서 순도 높은 마력을 내부에 주입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력의 순도도 전부 운으로 결정되고.’
마력을 써서 인위적으로 순도 높은 마력을 가져오면 되지 않느냐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한 번이라도 손을 대는 순간 완성됐을 때 품질이 급격히 떨어진다.
한마디로 귀찮은 데다 운이 필요한 물건이라 재수 없으면 몇 년이 걸려도 못 만드는 게 바로 이 천운철인 것이다.
“이건 어디서…….”
“성화공한테 선물로 받은 거라네. 그 양반이 완등자가 되기 전에 한 번 도와준 적이 있었거든.”
“아아…….”
확실히 그 양반이라면 천운철을 만들 만큼 시간과 돈이 썩어 넘치기는 했다.
대강 상황을 파악한 이세훈은 염진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런 걸 저한테 주셔도 괜찮겠습니까?”
마음과 같아서는 그냥 냉큼 챙기고 싶지만 그렇게 무작정 받아먹다가는 언젠가 한 번 탈이 나는 법이다.
특히 상대가 다른 사람도 아닌 염성하의 사부였기에 이세훈은 신중하게 반응을 살폈고 염진현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봤으면 알겠지만 품질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 자네가 생각한 것만큼 그리 값비싼 물건은 아니야.”
“그래도 전설 등급입니다만…….”
“아무리 등급이 높아도 내게 필요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부담가질 필요 없네. 그리고…….”
이세훈과 눈을 마주본 염진현이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앞으로도 성하를 잘 부탁한다는 의미도 있으니 모쪼록 받아주게.”
단순한 답례가 아닌 거래.
사부나 제자나 비슷한 모습에 이세훈이 그와 눈을 마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부담 없이 받겠습니다.”
“고맙네.”
앞으로도 염성하를 돕겠다는 대답에 염진현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이세훈도 곧장 천운철이 들어 있는 목함을 아공간 포켓에 챙겨 넣었다.
‘안 그래도 이번에 무구를 좀 만들까 싶었는데…… 이거라면 나쁘지 않네.’
이세훈이 머릿속으로 도면을 이것저것 그려보고 있을 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염진현이 한 가지 생각난 듯 이야기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친구한테 조언을 듣는 것도 괜찮겠군.”
“예?”
마광수를 가리키는 모습에 이세훈이 의아해하자 염진현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이 친구의 애검도 천운철을 사용해서 만들었거든.”
“아아…….”
염진현의 이야기에 이세훈은 그제야 마광수의 애검인 야천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랬었던가.’
회귀 전에 수리하면서 많이 살펴봤던 탓에 굳이 참고해야겠다는 생각이 안 떠올랐었다.
‘게다가 안 보여 주려고 하고 말이지.’
이세훈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마광수가 팔짱을 낀 채로 담담히 이야기했다.
“귀찮다.”
안 된다가 아니라 귀찮다.
잘만 부탁하면 보여줄 수도 있다는, 마광수 나름의 애두른 표현이었으나 이세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쩔 수 없죠.”
“……어려울 텐데?”
“세상사는 게 원래 그렇죠 뭐.”
별 미련이 없어 보이는 이세훈의 모습에 마광수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저러니까 마치 천충검에 흥미가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설마 어검술도 익혔다고 필요 없다 이건가……?’
천충검에 얼마나 많은 기술이 더 있는데 만족한단 말인가.
마광수가 뭐라 말도 못 하고 끙끙거렸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염진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기왕 내려놓을 거면 다 내려놓을 것이지…….’
경호원 노릇은 잘도 하면서 저런 부분에서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사부님.”
뒤쪽에서 들려오는 염성하의 목소리. 그에 염진현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제자를 바라보았다.
“그래. 너도…….”
막 대답하려던 염진현의 표정이 오묘해졌고, 이세훈이 고개를 돌려 염성하를 바라보았다.
“…….”
자신에 비하면 다친 곳 없이 멀쩡해 보이지만 오른쪽 눈두덩이에 시퍼런 멍과 볼에 이빨 자국이 남아 있다.
하루가 지났는데도 선명한 자신의 박치기와 깨물기의 자국에 이세훈이 피식 웃었고.
“……웃지 마라.”
염성하가 이빨을 꽉 깨물며 중얼거렸다.
* * *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시간 나면 또 오게나.”
문 앞까지 마중을 나온 염진현에게 고개를 꾸벅인 이세훈은 그 옆에 서 있는 염성하를 바라보았다.
“넌 언제까지 있을 건데?”
“일주일 안에는 돌아갈 거다.”
이세훈과 마광수는 오늘 돌아가기로 했지만 염성하는 부상의 요양을 위해 본가에 좀 더 머물기로 했다.
물론 이유만 그렇고 실제로는 아직 상태가 안 좋은 사부를 간병하기 위해서였는데. 염진현은 같이 돌려보내고 싶었지만, 본인이 단호하게 반대하여 그리 결정됐다.
‘사부한테 하는 거의 10분의 1만…… 아니, 생각해 봐야 의미 없지.’
이세훈이 속으로 체념하고 있을 때. 염성하가 대뜸 손을 내밀었다.
“이것도 가져가라.”
“음?”
이세훈이 앞으로 손을 내밀자 그 위로 검은색 씨앗, 그림자 나무의 씨앗이 놓였다.
“……어? 뭐야. 네가 직접 뽑았어?”
예상 밖의 물건에 이세훈이 염성하의 명치 부근을 바라보았다. 마력혼용으로 인한 부상을 막기 위해 새겨 넣었던 저주.
어느 정도 상태가 괜찮아지면 직접 제거해 주려고 했는데 염성하가 혼자서 처리한 것이다.
“오랜만에 속성마력을 동시에 끌어올리니까 갑자기 폭발하듯이 나오더군.”
“흐음…… 부상이 많이 낫긴 한 모양이네.”
예전 같았으면 속성마력이 제대로 제어가 안 돼서 움직이지 못했겠지만 이제는 많이 회복되어 저주를 무시하고 끌어올렸던 모양이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게 해제된 것이기도 하고 몸에 문제도 없어 보였기에 이세훈은 그림자 나무의 씨앗을 살폈다.
‘그동안 알차게 빨아먹었구만.’
염성하의 암속성마력인 흑암혼이 가득 들어차 있는 씨앗. 재료로 쓰기에도 나쁘지 않았기에 이세훈은 곧장 아공간 포켓에 챙겨 넣었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마라.”
“쓸데없는 걱정이다.”
“그래그래. 그럼 먼저 간다.”
염성하와도 인사한 이세훈은 마광수와 함께 미리 불러둔 차를 타고 아공간 터미널로 향한 뒤 곧장 바벨로 복귀했다.
“후우…….”
“이제 뭐 할 거냐?”
마광수의 물음에 이세훈이 아직도 뭉친 몸을 풀어주면서 대답했다.
“우르 쪽에 가려고요. 안정완 교수님의 수업을 도와드리기로 했었거든요.”
이전부터 약속한 일이기도 했고 이번에 몽환마의 부하인 마키프에게서 얻은 정보도 있었기에 조금 피곤하지만 찾아 가보는 편이 좋다.
“의학부 쪽인가…… 뭐, 나쁘지는 않겠군. 너는 이래저래 다칠 일도 많아 보이니.”
“그 정도는 아닙니다만.”
“아니기는…… 뭐 일단 알았다. 그럼 다음 수업 때…….”
막 자리를 옮기려던 마광수는 잠깐 멈칫하다가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
“재료를 어떻게 써야 할지 정 모르겠으면 찾아와라. 조언 정도는 해주지.”
끝까지 야천을 보여 주겠다고 말을 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신경을 써주는 마광수의 모습에 이세훈이 의외인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간다.”
더 할 말 없다는 듯이 마광수가 훌쩍 걸어갔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용할 생각이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으니까 이래저래 챙겨주는 느낌인가.’
가축이 다 자라날 때까지 밥도 주고 건강도 관리해 주는 것처럼 쓸 만해지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관리를 해줄 생각인 모양이다.
‘나름대로 융통성은 있구만.’
나중에 귀찮아지기는 하겠지만 당장은 도움받기 쉽겠다는 것을 파악한 이세훈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번 정류장은 ‘종합의학연구소 파나케아’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이세훈은 정류장에 내리면서 눈앞의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아스쿠스 병동과 비견될 만큼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이 새하얀 건물은 우르에 의학과 관련된 학부들이 같이 사용하는 공용 건물이었다.
아칼쿠프의 플라비움처럼 비슷한 분야의 학부들끼리 서로 힘을 합쳐서 학문을 갈고닦으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는데 실제로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후우…….”
“하아…….”
퀭한 얼굴로 부지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
대부분 재학 중인 생도들이 아니라 졸업 후 아스쿠스 병동에서 근무하는 전공의들로 근무시간 이외에는 이곳에서 추가적으로 심화 수업을 듣고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대학원생들이 많이 오가는 장소.
그렇기에 재학생들이 많은 플라비움에 비해 파나케아는 분위기가 우중충하고 좀 더 현장에 가까운 느낌이 많이 풍겼다.
‘그리고 의료학부라 그런가. 다른 곳보다는 덜 알아보는 기분이야.’
정확히는 주변 사람을 둘러볼 기운도 없어서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었지만, 어쨌든 편하면 편했지 불편한 것은 없었기에 이세훈은 곧장 안으로 들었다.
‘보자. 이쪽이었나…….’
안정완에게 미리 받은 약도를 보며 걸음을 옮긴 이세훈은 금방 안쪽에 위치한 연구실에 도착했다.
똑똑
“교수님. 이세훈입니다.”
“아. 들어오게.”
허락을 받은 이세훈은 곧장 문을 열고 연구실 안쪽으로 들어섰다. 어질러진 것 없이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는 내부.
깔끔한 성격이 엿보이는 풍경에 이세훈이 금방 시선을 거두고 안정완을 바라보았다.
“잘 왔네. 이번에 일어난 사건은 잘 해결됐나?”
“아, 예. 범인들은 일단 잡혔고 조사관들이 계속 관계자들을 수사 중이라고 합니다.”
“다행이군.”
살짝 안도한 표정을 지은 안정완을 벽에 걸린 시계를 슬쩍 살펴보았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네만…… 조금 쉬었다가 하겠나?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서 피곤할 텐데.”
“괜찮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곧 피로도 회복될 테니까요.”
이번에 안정완을 도와서 진행할 수업은 신성력을 사용해서 만든 영약의 효과를 분석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라면 섭취 중에 마력이 폭주할 가능성이 있어 긴장하겠지만 이세훈에게는 그저 몸보신일 뿐이었다.
“자네는 정말 자신감이 넘치는군…….”
다른 생도들에게는 볼 수 없는 그 모습에 안정완이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조금 일찍 준비하지. 저기 소파에 앉게나.”
“예.”
이세훈이 소파에 앉자 안정완이 아공간 보관함에서 몇 가지 물건을 꺼낸 다음 맞은편에 앉았다.
“이번 수업에 사용할 영약들의 견본품일세. 우선 이걸 섭취해서 거부반응이 있는지부터 확인해 보지.”
아무리 이세훈이 자신 있어도 영약을 이용한 수업은 언제 어떻게 문제가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반드시 직전에 견본품을 이용해서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안정완의 설명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것부터…….”
안정완이 신성력 함유량이 가장 낮은 견본품이 든 투명한 케이스를 건네주었고, 이세훈은 곧장 그 뚜껑을 열어 안에 들어 있는 작은 조각을 삼켰다.
사르륵
입에 들어오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녹아내리는 영약의 조각.
거기서 피어오른 마력이 이세훈의 몸 안쪽으로 질주했고, 이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음. 괜찮네요.”
“……정말인가?”
섭취와 동시에 돌아온 대답에 안정완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견본품이라고 해도 마력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어야 할 텐데 너무 빠르지 않은가.
혹시 허세를 부리는 건가 싶어 안정완이 미심쩍게 보던 그때. 이세훈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우우웅!
손바닥 위에 나타나 빠르게 회전하는 검은색 구.
암속성마력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는데 마력을 흡수 중이라면 불가능할 만큼 완벽한 제어였다.
“이거면 될까요?”
“……다음으로 가지.”
안정완은 점차적으로 신성력 함유량이 높은 견본품을 건네주었고, 이세훈은 그것을 그야말로 물처럼 받아먹었다.
‘이, 이게…….’
거부반응은커녕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영약을 소화하는 이세훈. 그 모습에 안정완은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견본품인 만큼 등급이 낮기는 하지만 어쨌든 외부의 마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흡수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할 텐데 이세훈은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신성력이 함유된 물건들은 특히 까다로운데…….’
예상을 뛰어넘은 이세훈의 능력에 안정완이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잠깐만 기다려 보게.”
보관함으로 다시 간 안정완은 이내 새로운 케이스 하나를 들고 왔다.
안쪽에서 옅은 황금빛을 내는 새하얀 알약.
딱 봐도 심상치 않은 물건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건 뭡니까?”
“이번에 순례교에서 받은 물건일세. 신성력만 사용해서 만든 영약으로 본래 수업에 사용할 생각이었는데 혹시나 싶어서 제외했었지.”
신성력을 보유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아닌 사람에게는 어떤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지 않은가.
“자네만 괜찮다면…… 한번 먹어보겠나?”
만약 이것도 방금처럼 간단하게 소화해낸다면 눈앞에 생도의 능력은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일지도 모른다.
안정완의 제안에 이세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뭐.”
신성력만 사용했으면 자신에게는 효율이 조금 떨어지긴 하겠지만 별로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리 생각한 이세훈은 망설임 없이 입안에 영약을 털어 넣었고.
우웅!
영약이 스며듦과 동시에 체내에서 무언가가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맹렬하게 움직이는 힘.
그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이세훈은 당황하지 않고 재빠르게 영연신마법을 응용해서 난동을 부리는 힘을 임시회로에 집어넣었다.
‘이건 또 뭔…….’
혹시 영약에 숨겨진 독이라도 있었던 걸까. 일단 작염륜으로 전부 태워서 없애기로 한 이세훈이 막 마력을 끌어올리던 그때.
후웅─
마구 날뛰던 힘이 임시회로에 얌전히 자리 잡았다.
언제 난동을 피웠냐는 듯이 안착하고는 부드럽게 흐르는 힘.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행동하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떨떠름하게 바라보았고.
[‘신성력(F)’을 습득하셨습니다.]
“……아?”
눈앞의 알림창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