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66화
모든 상황이 마무리된 뒤. 이세훈과 일행들은 우선 바벨로 다시 복귀했다.
마인에게 습격당한 상황에 외부에 나가 있는 것도 위험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염진현의 상태가 나빠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몸에 특별한 이상은 없지만, 마력회로가 상당히 약해졌습니다. 며칠간 안정을 취하면서 치료를 받는 게 좋을 것 같군요.”
큰 문제는 없지만 몸이 약해졌기에 염진현은 아스쿠스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고, 그동안 협회에서도 조사를 나섰다.
가장 먼저 조사대상이 된 것은 사건의 배후로 유력한 염화문.
만마전이 연루된 사건인 만큼 특무과를 파견하여 강도 높은 조사를 거쳤는데 그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조사 결과 이번 사건은 염화문 소속의 영웅들이 독단적으로 벌인 원한범죄로 확인되었으며 범인은 물론 관계자를 모두 체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염화문 내부에서는 환락가와 거래한 자료들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고 오히려 범인들의 자택에서 내부자료가 유출되고 있었던 정황이 밝혀졌다.
그로 인해 염화문은 용의자 선상에서 빠져나갔고 세간에서는 ‘사람 관리도 못 하는 무능한 집단’ 정도로 그친 것이다.
“수십 년을 몸담은 간부들이 만마전이랑 내통했다고?”
“염화문이 옛날 같지 않다더니 저 정도일 줄은 몰랐네…….”
물론 외부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은 염화문에게 그조차도 치명적이었지만 제대로 된 타격이라고 하기에는 이래저래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다.
“흐음…….”
툇마루에 누워서 며칠 동안 나온 뉴스들을 살피던 이세훈이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뭐. 결국은 이정도인가.’
염화문의 사범들이 대놓고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하기는 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맥 빠지게 끝나 버렸다.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수사에 이세훈이 담담하게 다른 소식을 살피고 있던 그때. 마당에서 도복을 입고 창을 휘두르던 염성하가 대뜸 물었다.
“그 녀석들은 어떻게 됐지?”
“음? 아아. 사범들?”
후웅!
대답 대신 묵묵히 창을 휘두르는 염성하. 그 건방진 모습에 이세훈이 흘겨보다가 대답했다.
“전부 수용소로 보내졌어. 듣자 하니 발견됐을 때는 이미 백치 상태였다고 하더라고.”
염진현과 맞서 싸우기 위해 자신의 육체를 마인으로 변환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 상태로 죽음까지 경험했다.
물론 모든 것이 꿈속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하나같이 정신에 큰 부담을 안겨줄 만한 일들이었기에 버티지 못하고 백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
이세훈의 설명에 염성하는 아무런 대답 없이 묵묵히 창을 휘둘렀다.
이번에 습격한 사범들은 모두 염화문의 초창기부터 활동해 온 이들. 염진현이 은퇴하면서 이원룡에게 붙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사이가 나쁜 정도는 아니었다.
‘이래저래 생각이 많겠구만.’
염성하는 기본적으로 잔정이 없고 배려심이 없으며 자신밖에 모르는 안하무인한 놈이지만, 염진현이 관련되면 평범한 청년이 되는 기질이 있었다.
그러니 이번 습격에 대해서는 여러 방면으로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으리라.
‘근데 그래도 손님이 놀러 왔는데 대접 좀 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
자신은 안중에도 없이 창만 휘두르고 있는 염성하의 모습에 이세훈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초목에 둘러싸인 전통 건물. 이전에 프라이빗 트레이닝실에서 재현한 풍경보다 조금 노후화되긴 했지만 분위기는 이쪽이 더 좋았다.
후우웅
자연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적당히 선선하게 얼굴을 간질였고 담장 너머로 보이는 나무와 숲, 산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인다.
염진현이 퇴원하면서 같이 오게 된 염화문의 구 본관의 모습에 이세훈이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건물이 있을 때는 이런 느낌이었단 말이지.’
회귀 전에 왔을 때는 담장은 물론 건물의 기둥까지 모조리 타버려서 흔적만 겨우 남아 있었기에 느낌이 색달랐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집터 위에서 묵묵히 앉아 있던 광견의 모습을 떠올린 이세훈이 다시금 염성하를 보고 있을 때.
“고맙다.”
창을 휘두르던 염성하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갑자기?”
너무 뜬금없이 나온 이야기에 이세훈이 당혹스럽게 바라보자 염성하가 계속해서 창을 휘두르며 태연하게 이야기했다.
“네가 없었다면 과거의 사부님을 볼 수 없었을 테니까.”
그동안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들었던 사부님의 과거.
누군가는 그저 과거의 그림자라고 표현할지도 모르겠지만, 조금이나마 그 모습을 보게 된 염성하는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었다.
강인한 사부님을 보았다는 기쁨. 염화문의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압도적인 강함. 그리고 자신이 앞으로 갈고 닦아나갈 염륜잔화창의 길까지.
마치 자신을 괴롭혀오던 수많은 고민거리가 한 번에 해결된 기분이었다.
“그동안은 그저 막연하게 강해져 문주가 되겠다고만 생각했지만…… 이번 일로 확실하게 목표가 생겼다.”
“흐음. 뭔데?”
“과거의 사부님에게 닿는 것.”
그 경지에 닿아 염화문의 문주가 되는 것이야말로 사부님의 뜻과 강함을 증명하는 확실한 길이 되리라.
염성하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러니까 네게는 몇 번이고 감사를 표하마. 정말 고맙다.”
거리낌 없이 감사 인사를 남발하는 염성하의 모습에 이세훈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다른 사람 같으면 그러려니 할 텐데 그 싸가지 없는 염성하가 저러고 있으니 다른 꿍꿍이가 있거나 뭔가 잘못된 느낌이 들었다.
그 괴상망측한 기분에 이세훈은 괜히 닭살이 돋는 것을 느끼며 대답했다.
“말로만 그러지 말고 뭔가 성의를 좀 보여 봐.”
“성의…….”
잠시 고만하던 염성하가 이내 좋은 게 떠올랐다는 듯 이야기했다.
“가불을 해주지.”
“……가불?”
“네가 대가를 미리 준비하지 못한 순간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휘두르던 창을 멈춘 염성하가 이세훈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그때는 특별히 가불해 주겠다.”
[대상 ‘염성하’의 인연레벨이 Lv.3로 상승합니다.]
[인연레벨이 상승함에 따라 관계가 심화됩니다.]
[관계 : 거래去來]
서로 받은 만큼 돌려주는 거래는 조금 삭막해 보일 수 있지만 거기에 신용이 생겨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별다른 보증 없이 상대를 신뢰하여 대금을 후일로 미룬다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가 그만큼 두터워졌다는 것.
그 신뢰가 더욱 두터워진다면 거래를 넘어 새로운 관계로 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상과의 거래가 성립될 때마다 인연석이 생성됩니다.
*대상과 거래 중인 상황일 때 인연석의 숙성속도가 증가합니다.
*대상과 신용관계를 유지할 때 인연석의 심상발현 확률을 증가시킵니다.
*현재 생성된 인연석 : 없음.
눈앞에 연달아 떠오른 알림창에 이세훈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인연레벨이 3이라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염성하가?
혹시 습격을 막아낸 것은 모두 착각이고 몽환마의 부하에게 붙잡혀 환영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회귀 자체가…….
[깨어나는 꿈이 발동되었습니다.]
화악─!
정신오염의 징조가 보이자 재빠르게 발동된 스킬.
머리에 찬물이 끼얹어진 것처럼 번뜩인 이세훈은 이곳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재차 알림창을 보았다.
‘허…… 이것 참…….’
자신의 입장에서는 효율적인 방법을 고른 것뿐이지만, 아무래도 염성하에게는 전성기의 염진현을 본 것이 마음속 깊이 닿았던 모양이다.
어쨌든 나쁠 것은 없었기에 이세훈이 심화된 관계의 내용을 살피고 있을 때.
“……잠깐만.”
무언가 깨달으며 염성하를 바라보았다.
“너 그러면 여태까지는 내가 대금 없으면 무시하려고 했었냐?”
이세훈의 물음에 염성하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왜 그런 당연한 걸 묻지?”
“뭐…… 야! 나는 여태 가불해 줬잖아.”
“그건 네가 대금을 요구하지 않았으니 그렇지. 나는 언제나 지불하려고 했었다.”
“…….”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 표정과 말투를 듣고 있으니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툇마루에서 몸을 일으킨 이세훈이 손을 까딱였다.
“야. 창 한 자루 내놔.”
“대련이라도 할 생각인가?”
“그래.”
오랜만에 피가 끓은 이세훈이 염성하를 바라보았다.
“내 생각에 넌 좀 맞아야 될 것 같아.”
이놈에게 예의를 가르치려면 염진현을 통하거나 아니면 몸으로 직접 새겨주는 수밖에 없다.
의욕을 불태우는 이세훈의 모습에 염성하는 의아해하면서도 창 한 자루를 꺼내 던져주면서 이야기했다.
“나야 상관없지만 무리하지는 마라.”
“뭔 소리야?”
까칠하게 대답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염성하가 악의 없이 순수하게 대답했다.
“나한테 창으로 덤비는 걸 보니 머리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닌가. 무리해서 덤비지…….”
“죽어!!!”
콰아아앙!!!
이세훈이 덤벼들면서 안뜰의 연무장에서 굉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고,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광수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사이좋게 노는군.”
이세훈이 들으면 속 터질 소리를 중얼거리던 마광수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는 대신 다시 뒤뜰로 걸음을 옮겼다.
작게 꾸며진 정원. 그 사이로 놓인 평상에 앉아 있는 염진현의 곁으로 간 마광수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가니까 싸우고 있길래 그냥 왔다.”
“그런가. 그러면 대련이 끝나고 나서 불러야겠군.”
담담하게 대답한 염진현은 찻잔을 기울이다가 물었다.
“한잔하겠는가?”
“아니. 됐어.”
“알겠네.”
두 번은 권유하지 않는 듯 염진현이 조용히 차를 마셨고, 마광수는 그 옆에 앉은 채 말없이 정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염진현이 마시고 있던 찻잔을 다 비워갈 때쯤에 나지막하게 물었다.
“1년도 안 남았다면서?”
“…….”
“몸에 몽환의 마력이 그렇게까지 침식해 있다가 모조리 빠져나갔는데 멀쩡할 리가 없지.”
염성하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말했었지만, 실제로 염진현의 몸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
몽환의 마력에 침식당했던 장기들의 기능이 모두 대폭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염진현은 그 사실을 모두 숨겼다.
“시간의 차이일 뿐. 어차피 정해진 일이었네.”
본래도 언제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고 입원을 권유받던 상태였다. 거기서 목숨이 1년 남은 시한부가 되었다고 얼마나 차이가 있겠는가.
그런 염진현의 대답에 마광수가 눈매를 찌푸렸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냐?”
“이해해 주게. 모처럼 길을 잡은 아이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아.”
“…….”
염진현의 이야기에 마광수가 다시 뭐라 하려다가 멈칫했다. 과연 자신이 저런 상황에 처했을 때 똑같이 행동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쯧.’
누구에게나 우선순위는 있는 법. 그리고 염진현은 자신의 목숨보다 제자의 미래가 먼저일 뿐이다.
“나중에 나한테 따지러 오면 두들겨 팰 테니까 알아서 해.”
“……고맙네.”
퉁명스러운 마광수의 대답에 염진현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다가 문득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거의 비어 있는 찻잔을 들고 있는데도 희미하게 떨리는 손.
그날 잠시나마 돌아갔던 전성기와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그 모습에 염진현이 찻잔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옆에서 불만스럽게 앉아 있던 동기를 향해 물었다.
“완등은 포기했는가?”
염진현의 물음에 마광수가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담담히 대답했다.
“포기하진 않았어. 더 급한 일이 있을 뿐이지.”
“도플갱어의 이야기로군.”
부정하지 않는 마광수의 모습에 염진현은 얼마 남지 않은 차를 마셨다.
“포기하고 완등에 집중하라고 해도 듣지 않을 테지?”
“……알면 말하지 마라.”
“가는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이정도는 괜찮지 않나.”
“이 자식이…….”
협박하듯이 이야기하는 염진현의 모습에 마광수가 흘겨보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했다.
“녀석과의 일을 먼저 처리해야 완등에 닿을 수 있어.”
“자네 생각인가?”
“백연 그 녀석이랑 루트비히가 그럴 거라더라.”
“……그렇다면 무시할 순 없겠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원견사와 승천제, 완등에 도달한 두 사람이 똑같이 말할 정도라면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마광수의 이야기에 염진현은 새삼스레 오랜 동기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세월을 이기지 못해 점차 시들어가 이제는 저물어가는 자신과 다르게 끝없이 강해져 가는 강자.
물론 그조차도 언젠가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순간이 오겠지만, 마광수라면 그전에 벽을 부수고 한계를 넘어 저 멀리까지 도달할 수 있으리라.
“……절대 포기하지 말게.”
여러 감정이 담긴 염진현의 이야기에 마광수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하지만 염진현의 시선은 어느새 담장 바깥의 산으로 향해 있었고, 까마득히 정상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상당히 비참하니 말일세.”
제자의 앞에서는 보여주지 않는 속마음.
그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모습에 마광수가 재차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그 정돈 나도 알고 있어.”
“그런가.”
빈 찻잔을 내려놓은 염진현이 떨리는 손을 매만지며 작게 중얼거렸다.
“다행이로군…….”
* * *
보랏빛 안개가 은은하게 깔린 채 수많은 형광빛이 어우러진 몽환적인 도시.
물리법칙에 벗어난 것처럼 높이 솟구친 기형적인 빌딩들이 요사스럽게 빛났고 그 아래의 거리에서 수많은 이들이 나른한 얼굴로 걸음을 옮긴다.
환락가의 시초이자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제 1구역.
그 가운데에 위치한 초고층 빌딩의 한 회의실에서 펠릭스가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미끼들에 관한 정보가 퍼지면서 고객이 대폭 늘어났습니다. 이정도라면 처음에 요구하셨던 납품량의 두 배는 족히 채울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펠릭스의 설명에 상석에 앉아 있던 진한 보랏빛 머리칼의 여인, 몽환마가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입가에 은은하게 맺힌 부드러운 미소와 달리 웃음기가 느껴지지 않는 눈.
그 섬뜩한 모습 앞에서 펠릭스가 태연함을 유지하고 있을 때.
“그래서.”
몽환마가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들의 작전이 성공적이었다는 건가요?”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한 질문. 하지만 그것이 질책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는 펠릭스가 바짝 긴장한 상태로 대답했다.
“초기대응이 미흡해 조금 피해를 입기는 했으나 충분히 대응 가능한…….”
“A급 영웅들이 28명. 거기에 그들을 보조하거나 거래해 왔던 관계자들은 279명. 유럽에서 평판이 나쁘지 않은 중소길드들은 물론 대형 길드에 잠입한 이들도 모두 뿌리 뽑혔죠.”
“…….”
“거기에 만마의 거울까지 협회에게 확보되어 경계를 받게 된 상황…… 이게 정말 유입에 도움이 될까요?”
몇 명이 잡히든 만마의 거울만 들키지 않았어도 그럭저럭 넘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정체와 효과를 들킨 것은 앞으로의 증축 계획에 매우 치명적이다.
이제부터 상대해야 할 진짜 고객들에게 마기에 오염당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안겨주면 그 수가 줄어들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몽환마의 물음에 펠릭스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대신 그런데도 저희의 손을 잡은 이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어중간하게 발을 거친 이들이 얼마나 방해되는지는 마담께서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흐음…….”
“쇠락하고 골방에 처박혀도 인류의 수호자랍시고 콧대를 세우는 게 영웅이라는 작자들입니다. 그런 놈들을 제대로 이용하려면 이런 더러운 관계도 마다하지 않은, 꺾일 대로 꺾인 놈들이 더 편리한 법이죠.”
끌어들일 수 있는 고객의 수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 질은 오히려 예정보다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 설명에 몽환마가 가만히 바라보았고 펠릭스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물론 이번에 저희의 실수로 생겨난 피해는 앞으로의 납품에서 만회하도록 해보이겠습니다.”
펠릭스의 이야기에 몽환마의 눈꼬리가 살짝 휘어지며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당신은 전임자보다는 조금 나은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몽환마의 칭찬에 펠릭스가 몸을 희미하게 떨며 고개를 숙였다.
그에게 있어 거만한 형보다 뛰어나다는 표현만큼 기분 좋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앞으로는 조금 신중해졌으면 좋겠네요. 말단이기는 했어도 제 아이가 죽는 것은 썩 기분이 좋지 않거든요.”
지원을 나왔다가 죽은 신임 구역장. 워낙에 말단이기에 벌써 새로운 후보가 뽑혔지만 그렇다고 그 죽음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어찌 됐든 몽환마가 직접 재능을 살핀 뒤 선별한 인원이었기 때문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앞으로 기대하겠어요.”
“예. 그럼 오늘은 가보겠습니다.”
고개를 꾸벅인 펠릭스가 그대로 회의실 밖으로 나갔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몽환마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후우웅
그러자 주변이 흐릿해졌다가 고급스러운 병실로 변했고 몽환마가 그대로 침대 옆으로 향했다.
“아…… 으아…….”
침대에 누운 채 계속해서 신음을 흘리는 마키프.
백치가 되어버린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몽환마의 샛노란 눈동자가 요사스럽게 빛났다.
사르륵
그러자 마키프의 이마에서 보라색 나비가 피어나더니 그대로 날아올라 몽환마의 검지 끝에 달라붙었다.
스스슥
그러자 그녀의 눈앞에 보랏빛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이내 여러 장면이 흐릿하게 비쳤다.
바닥에 짓눌린 몸. 자신의 제어를 듣지 않는 마력. 그리고 무심하게 내려다보는 보랏빛의 몽환적인 눈동자.
상대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그 광경만으로도 몽환마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저건…… 분명히 몽환안이야’
마키프를 가볍게 제압해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힘을 완벽히 분리하여 개입을 차단한 능력.
그게 가능한 것은 몽환안밖에 없었다.
‘설마 이런 재능을 바벨 쪽에서 찾을 줄이야…… 이전에 심부름꾼으로 보낸 싱 가문의 아이를 제압한 것도 그자일까.’
그때는 자신이 새겨 넣은 각인을 풀었길래 실력이 괜찮다고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가지고 싶다는 욕심이 나기 시작한다.
‘과연 어느 쪽이려나…….’
그 장소에 같이 있었다던 이세훈일 가능성도 있고, 어쩌면 승천제가 몰래 붙여둔 부하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가능성이 있었기에 몽환마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역시 바벨의 안쪽도 살펴봐야겠어.’
증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지금 그와 같은 인재는 반드시 필요하다.
조금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한 몽환마가 허공을 향해 속삭였다.
“이전에 의논했던 바벨 잠입. 좀 더 빠르게 진행하세요.”
-알겠습니다.
귓가로 대답이 들려왔고 몽환마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시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
이제는 신음조차 흘리지 않고 멍하니 누워 있는 마키프.
몽환마가 기억을 보기 위해 그 일부를 나비로 변환시키면서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 폐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처참한 모습을 내려다보던 몽환마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직 두 번은 더 볼 수 있겠네.”
그 안에 몽환안을 가진 인물에 대해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리 중얼거리던 몽환마가 병실에서 몸을 돌려 소리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