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59화
식사를 끝낸 뒤. 본래는 자리를 옮겨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먼 길을 온 탓인지 염진현의 몸 상태가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미안하군. 이렇게 대접해 줬는데 이렇게 일찍 끝나게 만들어서…….”
“아닙니다. 기회가 오늘만 있는 것도 아닌데요.”
“고맙…… 쿨럭쿨럭!”
몇 마디 못하고 기침을 토해내는 염진현. 그 모습에 염성하가 다급히 다가갔지만 손을 뻗어 멈춰 세웠다.
“후우…… 며칠 동안 바벨에서 머물 생각이니 몸 상태가 좋아지고 나면 다시 보세나.”
“예.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고개를 꾸벅인 이세훈이 돌아갔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염진현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우우웅
이세훈이 멀어졌음에도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술식.
인챈트 술식을 응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그것을 살핀 염진현이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제련 솜씨만 뛰어난 줄 알았는데…… 이쪽으로도 재주가 있었군.’
세간에 퍼진 소문을 들었을 때는 조금 과장된 게 아닌가 싶었지만 이렇게 보니 오히려 과소평가를 받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
잠시 생각에 잠겼던 염진현은 옆에서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는 염성하를 바라보았다.
“성하야.”
“예, 사부님.”
“네가 보기에 이세훈 저 친구는 어떤 것 같으냐.”
“…….”
염진현의 질문에 염성하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조심스레 대답했다.
“괴팍하지만…… 거래에 한해서는 충분히 믿을 수 있는 녀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심이 담긴 염성하의 대답에 염진현이 살짝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믿지 않았던 염성하가 저렇게 이야기하다니.
‘정말 여러 의미로 대단한 친구로군.’
바벨에 머무는 동안 틈틈이 만나봐야겠다고 염진현이 생각하던 그때.
두근!
크게 한 번 뛰는가 싶더니 움직이지 않는 심장. 마치 누군가에게 쥐어짜이는 듯한 통증에 염진현의 두 눈이 커졌다.
“컥…….”
“사, 사부님!”
갑작스러운 발작과 함께 쓰러지려는 염진현의 모습에 염성하는 깜짝 놀라며 몸을 부축했다.
그리고 황급히 주머니를 뒤져서 작은 은색 케이스를 꺼낸 다음 그 안에 있는 보라색 알약을 염진현의 입에 넣어주었다.
“후우…… 후우…….”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던 염진현의 상태가 곧장 안정되었고, 그 모습을 본 염성하가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괜찮으십니까?”
“……그래. 괜찮으니 걱정말거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염성하에게 손짓을 한 염진현이 지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오랜만에 조금 걸어볼까 했다만…… 아무래도 힘들겠구나.”
“예. 지금 바로 휠체어를 꺼내겠습니다.”
아공간 포켓에서 휠체어를 꺼낸 염성하는 곧장 비틀거리는 염진현을 조심스레 앉혔다.
그리고 자신이 입고 있는 자켓을 벗은 다음에 염진현의 몸에 덮어주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그러거라…….”
염성하가 조심스레 휠체어를 밀며 걸었고, 그 위에 앉은 염진현이 힘없이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힘없이 감겼던 두 눈이 천천히 떠졌고.
우웅
보랏빛 기운이 눈동자에 맺히며 그 눈빛을 흐리멍텅하게 만들었다.
* * *
두 사람과 헤어진 뒤 이세훈은 길가를 걸으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심상 투영기라…….’
바르무트 가문의 가주 막스 바르무트가 젊은 시절에 만들어낸 물건.
거기까지는 그러려니 했지만, 이세훈은 심상을 단련한다는 효과가 상당히 미심쩍었다.
‘심상이라는 게 그렇게 뚝딱하고 단련되는 게 아닌데 말이야.’
과거나 현재, 미래에도 심상을 단련하려는 시도는 수없이 많았다.
이 심상에 따라 기술의 완성도와 위력이 달라지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대부분 실패였는데 타인의 힘을 빌려서 심상을 단련하다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의 색으로 물들어 혼탁해지기 때문이다.
‘성격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득보다 실이 많은 방식이지. 즉…….’
심상 투영기에는 함정이 존재한다.
그것을 떠올린 이세훈이 턱을 쓰다듬었다.
‘과거에도 염진현 말고 다른 고위 영웅들에게 접근했다고 했으니 지금쯤 심상 투영기를 여기저기 공급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럼 여기서 자신은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좋을까.
잠시 고민하던 이세훈의 머릿속에 한 가지가 떠올랐다.
‘함정이 있는 걸 모른다면…… 알려주면 되는 거 아닌가?’
자신이 굳이 여기저기 들쑤실 필요도 없다. 결론을 내린 이세훈이 곧장 헬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수님. 제련학부에 황혼주괴 있습니까?”
-외부에 유통되는 재료면 다 갖춰져 있지. 필요하면 지금 신청해 주마.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이세훈은 곧장 제련학부로 향해 준비된 황혼주괴를 챙겨 제련실로 들어섰다.
“보자…….”
자켓을 벗은 이세훈은 챙겨온 황혼주괴를 살펴보았다.
주홍빛이 은은하게 어려 있는 주괴. 강도는 상당히 부드러웠는데 조금만 힘을 줘도 휘어질 정도였다.
“상태는…….”
턱을 쓰다듬은 이세훈은 곧장 정보창을 펼쳐 황혼주괴의 상태를 살폈다.
[황혼주괴]
[등급 : 희귀] [품질 : 중상]
화속성마력과 수속성마력을 결합하여 만들어낸 주괴.
내부에 마력을 부여할 경우 주변 일대에 신기루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단, 신기루가 펼쳐지는 동안 주괴가 영구적으로 소모된다.
*마력을 부여할 경우 신기루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나쁘지 않네.”
재료에 문제가 없으니 남은 것은 성능을 토대로 되짚어가는 것.
황혼주괴를 집어 든 이세훈은 백광을 만들어내 끝부분을 조금 잘라냈다.
서걱
저항없이 가볍게 잘려나가는 황혼주괴. 그 조각을 주워든 이세훈은 곧장 안쪽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우우웅
마력이 부여되자 조각이 주홍빛으로 희미하게 빛나더니 겉에서부터 천천히 기화되기 시작했다.
스스스
손바닥 위쪽에 흐릿하게 비치는 집게. 모루 옆에 놓인 것이 신기루로 나타난 것인데 그 과정을 살핀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무작정 신기루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주변에 퍼지면서 적합한 물건을 찾는 방식이구만.’
이번에는 작은 조각을 사용했기에 집게를 신기루로 만들어냈지만, 주괴 전부를 사용한다면 더 큰 모루나 화로를 띄웠으리라.
‘심삼 투영기는 이 신기루의 대상을 심상으로 지정하는 건가.’
과연 여기에 뭘 더해야 심상을 비출 수 있을까.
이세훈은 황혼주괴를 가볍게 두드리며 자신이 알고 있는 다른 재료, 그리고 다양한 마력들을 떠올려보았다.
톡톡톡
손가락 끝이 두드릴 때마다 희미한 파장이 흩뿌려졌고 황혼주괴의 마력배열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수백, 수천 개의 도면 속에서 여러 재료와 힘들과 결합하면서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냈고.
“……이거다.”
유일하게 완성된 도면에 따라 이세훈이 명치로 손을 뻗었다.
화르륵!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몽환의 불꽃. 그 힘을 덜어낸 이세훈은 곧장 황혼주괴에다 불어넣었다.
키이잉
황혼주괴가 희미하게 진동하더니 당장에라도 신기루로 변할 것처럼 흐릿하게 변한다.
그 모습에 이세훈은 오랜만에 연금제련법을 사용했다.
우우웅
황혼주괴와 이세훈의 마력이 공명하자 몽환의 불꽃에 잠식되지 않고 다시금 윤곽이 선명하게 돌아온다.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이 두 눈을 빛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다.’
황혼주괴의 신기루 능력과 몽환의 불꽃이 가진 능력을 절묘하게 합쳐져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어느 한쪽이 조금만 과해도 밸런스가 무너지기에 이세훈은 감각을 날카롭게 세운 채 집중했다.
스스스스
주홍빛과 보랏빛이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꿈틀거렸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천히 그 경계선이 무너져갔다.
그리고 몽환의 불꽃이 황혼주괴에 빨려들듯이 안으로 스며든 순간.
파앙!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황혼주괴가 변했다.
본래의 주홍빛으로 사라지고 보랏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주괴.
그 모습에 이세훈이 곧장 정보창을 살펴보았다.
[몽환주괴]
[등급 : 희귀] [품질 : 최상]
화속성마력과 수속성마력, 몽환의 마력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만들어진 주괴.
내부에 마력이 부여될 경우 인근에 있는 생명체의 꿈을 신기루로 비출 수 있습니다. 단, 신기루가 펼쳐지는 동안 주괴가 영구적으로 소모된다.
*마력을 부여할 경우 꿈의 신기루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흐음…….”
몽환주괴를 이리저리 살펴본 이세훈은 곧장 조각을 떼어내 안에다가 마력을 불어넣었다.
스스스
보라빛 신기루가 손바닥에 스며드는가 싶더니 그 위로 한 장면이 떠올랐다.
쏴아아-
저 멀리서부터 천천히 밀려오는 검은 파도. 그 모습에 이세훈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거지 같은 꿈이구만…….”
당장에라도 지워 버리고 싶었지만 이세훈은 거기서 마음을 다잡으며 자신의 심상을 가다듬었다.
우웅
신기루가 희미하게 일렁이는가 싶더니 잠시 후 건물의 잔해 속에서 울부짖고 있는 어린 시절의 자신으로 장면이 바뀌었다.
부모님이 불가살이에게 죽은 순간.
이 정도면 이런 식으로 심상을 관찰당할 때 크게 의심받지 않으리라.
‘심상 투영기는 아마 여기에 뭔가를 또 더하겠지만 그것까지 알아낼 필요는 없지.’
애초에 자신이 만들어낼 것은 심상 투영기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한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
용도가 완전히 달랐기에 이세훈은 새로운 재료를 꺼냈다.
‘자신만의 정의를 추구하며 악으로 판단한 이들과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단호함. 사명을 완수하는 데 병적으로 집착하며 자신이 다치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회귀 전, 그리고 이번 만남으로 확인한 하선우의 모습이 이세훈의 머릿속에 그려지며 오른손에 인연석을 만들어냈다.
우웅
서늘한 감각과 함께 생겨난 반투명한 광석.
눈동자만 한 크기에 여기저기 광택이 흘렀는데 크리스탈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이놈한테 인연석을 얻을 줄이야.’
피식 웃은 이세훈은 곧장 하선우의 인연석 정보를 확인해보았다.
[인연 : 천관석]
[등급 : 희귀] [품질 : 중상]
특수한 힘이 서려진 광석.
마력을 공급받으면 표면에 비치는 사물을 보다 자세하게 관측할 수 있다.
*함께 사용한 재료의 성분을 보다 세밀하게 관측할 수 있습니다.
‘역시 딱 맞는구만.’
하선우의 고유스킬인 천리안의 효과가 반영된 천관석.
간단하게 겉면을 살펴본 이세훈은 곧장 백광을 이용해서 천관석을 반으로 갈라냈다.
스각!
깔끔하게 반으로 잘린 천관석. 한쪽을 옆으로 치워둔 이세훈은 가볍게 몸을 풀어준 다음 백광을 손끝에 집중시켰다.
‘좀 더 날카롭게…….’
우우웅
한점으로 압축되어 가느다란 실선으로 변한 백광. 그 날을 확인한 이세훈은 곧장 천관석의 겉면을 아주 미세하게 깎아냈다
사악
저항도 없이 잘려나간 단면. 그와 동시에 겉이 투명하게 변한 것을 확인한 이세훈은 계속해서 단면을 깎아내며 연마했다.
그리고 양쪽이 완전히 투명하게 변했을 때쯤. 백광을 거둬들인 이세훈이 연마된 천관석을 눈에 가져다 댔다.
“흠. 잘 보이네.”
마력을 따로 담지도 않았는데 멀리 있는 것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천관석 반쪽을 안경알로 만들어낸 이세훈은 이어서 몽환주괴를 집어 들었다.
‘필요한 만큼만 적당히 소모되도록 각 구간을 나눠서…….’
우웅
몽환주괴가 공명을 일으키며 가느다랗게 쭉 늘어나기 시작했다. 안경알에 딱 맞는 안경테와 그 옆에 연결되는 가느다란 쇠사슬.
완성된 부품들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이세훈은 뻐근한 몸을 풀어준 다음 옆에 빼둔 천관석을 움켜쥐었다.
[인연각인 ‘천관석’을 발동합니다.]
오른손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
기존의 오감과는 완전히 다른 그 감각을 천천히 곱씹으며 이세훈이 흑무사를 안경알과 안경테에 연결시켰다.
‘안경으로 본 상대만 꿰뚫어 봐야 하니까 술식으로 조정하는 게 좋겠네. 마법은 흑무사랑 상성이 안 맞으니까 주술…… 저주 쪽으로 가볼까.’
바느질을 하듯이 흑무사가 겹겹이 연결되며 안경알과 안경테를 결합시켰고, 이어서 사슬 쪽도 연결시켰다.
조금만 실수해도 몽환주괴 쪽이 천관석을 잡아먹을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상태.
하지만 이세훈은 천관석이 가진 관측능력을 오른손에 깃들게 해서 손끝의 미세한 감각으로 그 경계선을 확실히 제어하고 있는 것이다.
“…….”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집중 상태에 들어섰고, 이어서 오랜만에 귓가에 한 소리가 천천히 밀려들어 왔다.
쏴아아-
꿈에서도 보고 싶지 않을 만큼 지긋지긋한 소리지만, 작업 중에 들려올 때는 모든 것을 잊고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귓가를 가득 채우는 파도 소리 속에서 이세훈의 손이 더욱 빨라졌고 모든 부품이 흑무사로 빈틈없이 결합되었다.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이 마지막까지 연결된 흑무사를 가볍게 끊어냈고.
[무구 ‘몽환의 단안경’이 완성되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결산창이 떠올랐다.
[새로운 물질, 새로운 조합법.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는 것은 비단 탐험가뿐만이 아닙니다.
사용된 재료의 품질이 기술에 비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완벽히 새로운 물건으로 탄생시킨 대장장이의 실력은 새로운 경지를 보고 있을 것입니다.]
[판정결과 ‘몽환의 단안경’의 등급은 ‘영웅’입니다.]
[스킬 ‘몽환안(A)’을 습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