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54화
아칼쿠프의 번화가 외곽에 위치한 찻집.
안쪽의 방을 빌린 하선우는 자신의 맞은편에 조용히 앉아 있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음…….”
말없이 차를 홀짝이며 무언가 생각에 빠진 듯한 이세훈.
쉽사리 말을 걸기 어려운 분위기에 하선우는 굳이 먼저 말을 걸기보다 자신의 상황을 되짚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고모 할머님의 부탁도 들어드릴 겸 조사 대상을 살피기 위해 왔을 뿐인데. 그 상대를 사숙으로 모셔야 한다니!
어디 가서 말하기도 부끄러운 상황에 하선우가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때. 차를 절반 정도 마신 이세훈이 입을 열었다.
“뭐,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직 정식 제자도 아니고 어르신이 멋대로 말씀하신 거니까요.”
“그,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하죠. 아, 대신 대외적인 자리에서는 의식하고 행동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르신이 보실 수도 있으니까.”
“…….”
이세훈의 이야기에 하선우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어렵게 말해서 그렇지 결국 둘이서 있을 때만 편하게 하고 밖에서는 사숙과 사질 관계로 깍듯하게 대하라는 것 아닌가.
‘아니, 이거라도 다행인가…….’
개인적으로도 사숙으로 깍듯하게 대하라고 했으면 정말 괴로웠을지도 모른다. 하선우가 속으로 안도하던 그때.
“뭐, 이쪽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죠.”
“본론이라 하시면…….”
“조사하러 오신 거잖아요? 기왕 만난 김에 다 해치우는 게 낫죠.”
이세훈의 이야기에 하선우가 살짝 의외인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 준비부터 하겠습니다.”
자세를 바로 한 하선우가 곧장 아공간 포켓에 넣어둔 녹음 장치를 꺼내서 올려놓은 다음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우선 사건 당일부터 시간 순서대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이세훈은 만마전의 습격이 있었던 날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했고 하선우는 말없이 그 내용을 경청했다.
그리고 대략적인 설명이 끝난 다음 의문이 생겨난 부분들에 대해서 질문하기 시작했다.
“내통자들의 대련용 무구가 이상하다는 걸 사전에 알아차리셨다고 했는데 어떻게 알아보셨던 겁니까?”
협회 측에서 초청한 장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 도구는 육안으로는 절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위장되어 있었다고 했었다.
그런데 학과수석이라고는 해도 아직 1학년인 생도가 그것을 알아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수상한 이야기였다.
“뭔가 이상해 보여서 대련 중에 몇 번 때려보니까 느낌이 확 다르더라고요. 그렇게 알게 됐습니다.”
“그게…….”
말이 되냐고 말하려던 하선우는 문득 이번에 이세훈이 만들어낸 양산형 검기 무구를 떠올렸다.
무구 업계에서 난제라고 표현하며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기술. 그것을 개발할 만큼 천재라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은가.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그 사실을 바벨에 보고하지 않은 이유는 뭡니까?”
“대련용 무구로 위장되어 있었으니 바벨에 숨어 있는 내통자를 통해서 받았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섣불리 나섰다간 위험해질 것 같아서 일단 지켜만 봤습니다.”
“흐음…… 그렇군요.”
실제로 이번 사건에서 교수 출신 내통자가 나타났으니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대처였다.
“혹시 전시장에서도 이런 의심스러운 정황을 발견하고 미리 대비하고 있으셨습니까?”
“아뇨. 그때는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생도 두 명이 A급 영웅 출신인 찰스 교수를 토벌하고 장악당한 시설을 빼앗아 부활한 S급 마수 주작을 묶어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즉각적인 대응이었다?
본래라면 더욱더 의심이 생겨날 상황이었지만, 하선우는 왠지 모르게 납득하고 있었다.
‘방금 보여준 실력이라면…… 안 될 것도 없지 않나?’
새로운 환경에 대한 빠른 적응력과 자신의 행동을 완벽히 예측해낸 관찰력. 그리고 그것을 완벽하게 반격해낸 실행력까지.
고모 할머님, 원견사 하백연조차 인정하여 제자로 들일 재능과 실력인데 충분히 가능성 있지 않은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하선우는 모든 의문이 해소되어 속이 뻥 뚫린 것 같으면서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전부 재능과 실력이라니…….’
말이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되는 것 같아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한 느낌이 든다.
이대로 조사를 끝내는 게 맞는가 싶어진 하선우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질문드리겠습니다. 김인철 전 교수를 습격한 염도사냥꾼을 토벌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하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학원장님의 힘이 담긴 장비로 빈틈을 만들어서 그대로 제압했습니다.”
“…….”
승천제의 힘이 담긴 장비.
힘의 격차를 극복하고도 남을 그 이야기에 하선우가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완등자의 비밀이 엮여 있는 거대한 음모가 아닐까 긴장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질 만큼 무난한 결론.
밀려오는 개운함과 허탈함에 하선우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차를 마시려던 그때.
“그럼 이제 내기로 넘어가죠.”
이세훈이 담담하게 하선우를 바라보았다.
“아, 그렇군요. 혹시 생각해두신 게 있으십니까?”
눈앞의 천재가 과연 자신에게 어떤 조건을 요구할까.
조사가 끝나서인지 경계심이 조금 사라진 하선우의 시선에 이세훈이 천천히 이야기했다.
“앞으로의 대화에 조사관 하선우가 아니라 영웅 하선우로서 대답해 주셨으면 합니다.”
“……예?”
예상과 다른 질문에 하선우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조사관이 아니라 영웅으로서?’
도대체 무슨 목적인가. 하선우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이세훈이 재차 물었다.
“해주실 수 있습니까?”
저 조건이 자신에게 해가 될 것이 있는가. 잠시 생각해 보던 하선우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가능합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라면 못할 것도 없다. 하선우의 대답에 이세훈은 차로 목을 축인 다음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번 사건을 통해 바깥에서도 여러 변화가 생겨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마전과 내통한 이들을 색출하거나 십악을 토벌한다거나 그런 일들 말이에요.”
“음. 아무래도 그렇겠죠.”
외부에서 충분히 논의되는 이야기였기에 하선우가 순순히 인정하던 그때.
“가장 먼저 토벌해야 할 십악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세훈이 두 눈을 빛내며 물었다.
“…….”
그 질문을 들은 순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하선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본래 영웅 협회에 소속된 직원들은 이런 질문에 절대 대답하지 않는다. 자신의 사소한 말 한마디가 정보유출이나 사건을 망가뜨릴 수 있는 원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영웅 협회의 실질적인 무력으로서 여러 계획을 담당하는 특무과 소속이라면 더더욱 조심스러웠는데 이세훈은 그걸 정면에서 물은 것이다.
‘……그렇군. 조사관이 아니라 영웅으로서 말해달라는 건 이런 뜻인가.’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식견으로만 대답해달라.
어떻게 보면 말장난이지만, 오늘 이야기를 완전히 분리해서 듣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감정적이고 거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닐지도 모르겠어.’
다시금 긴장된 눈으로 이세훈을 바라보던 하선우는 이내 생각을 정리한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후보를 꼽자면 셋. 불법 개조로 세력을 불려가는 조율자. 영웅을 습격하고 무구를 강탈하여 자동인형으로 만드는 인형사. 그리고 환락가의 주인인 몽환마겠죠.”
개인의 무력뿐만 아니라 만마전이라는 집단 자체의 힘을 키워줄 수 있는 이들.
이번에 승천제를 습격했다는 이유도 있지만 본래 위험도를 따져도 그 세 명이 가장 높았었다.
“그리고 그 셋 중에서도 고르자면 저는 몽환마라고 생각합니다. 십악이 여태까지 붙잡히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괴물 때문이니까요.”
승천제가 만들어낸 게이트로 인류가 전 세계를 순식간에 오가듯, 만마전은 몽환마가 만들어낸 환락가를 통해서 세계 곳곳을 누빈다.
그렇기에 그 거점을 끊어내는 것이 십악을 토벌하는 데 첫 단계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몽환마의 환락가는 음지에 노골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에 조금만 알아봐도 충분히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여태까지 몽환마를 토벌하지 못한 이유는 몽환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환락가의 특성 때문이었다.
“몽환마는 환락가 내부에 있을 때 완등자에 비견되는 힘을 가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는 어떨지 몰라도 그 안으로 들어간 이들 중에 살아 돌아온 이들은 없었죠.”
“완등자분들이 나선다면…….”
“그때는 입구를 차단하거나 내부의 인원을 희생하더라도 구역을 폐쇄해서 도망쳤습니다.”
하선우의 설명에 이세훈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역시…… 상황은 예전이랑 비슷하네.’
회귀 전에도 저 셋이 가장 먼저 언급됐었는데 순서로 따지면 인형사, 몽환마, 조율자 순으로 토벌당했었다.
조율자와 다르게 인형사는 환락가를 거의 이용하지 않아 결국 추적을 뿌리치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몽환마는 빙견 그놈이랑 협력해서 죽였었고.’
몽환마의 후계자나 다름없던 빙견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물론 그것도 썩 원활하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도 ‘시도’는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문제는 지금 상태로 시도해 봐야 개박살 난다는 거지만.’
이전이랑 비슷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는 빙견이 처리했던 것처럼 약간의 밑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환락가에 연결된 이들을 제압하는 것이 중요했다.
‘일단 전체적인 상황은 내가 알던 거랑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다행이네.’
물론 파고들다 보면 다른 점이 나오기야 하겠지만 그 정도는 그때그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모두 정리한 이세훈은 자신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는 하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십악보다는 일단 내통자들부터 정리하는 게 현실적이겠네요.”
“지금으로써는 그렇겠군요.”
음지에 맞닿아 있는 것을 넘어서 만마전과 손을 잡은 존재들. 이들만큼은 반드시 뿌리를 뽑아 혼란을 막아내야 한다.
그런 하선우의 생각을 읽어낸 이세훈이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건 어디까지나 만약, 아주 만약의 경우입니다만.”
“…….”
“자기 핏줄도 도구로 쓸 만큼 피도 눈물도 없는 가문이 만마전과 내통하면서 영웅들이 사용하는 무구를 개발하고 있다면 얼마나 위험할까요?”
이세훈의 질문에 하선우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방금보다 더욱 깊어진 눈으로 대답했다.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아주 위험하겠죠.”
“그런 이들을 상대한다고 하면 조사관의 도움도 받을 수 있을까요?”
“확실한 증거만 있다면.”
즉각 대답한 하선우가 자신의 의사를 물어보는 이세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대상 ‘하선우’와의 인연이 성립되었습니다.]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자주 뵐 것 같네요.”
여러 의미가 담긴 이야기에 하선우는 이것이 정말 맞을지 고민하다가 이내 결정을 내리며 맞잡았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 * *
쏴아아─
독일 뮌헨의 교외에 위치한 거대한 저택.
창문을 두들기며 쏟아지는 빗물에 복도를 걷던 금발을 깔끔하게 넘긴 깡마른 사내, 미하엘 바르무트가 눈매를 찌푸렸다.
“쯧…….”
저택 내부는 마법으로 최적의 환경이 유지되고 있었기에 달라지는 것이 없지만 쏟아지는 비를 본 것만으로도 몸이 젖은 것처럼 불쾌감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괜히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미하엘은 흐트러진 정신을 가다듬으며 다시 걸음을 옮겨 방문 앞에 도착했다.
“…….”
저택 안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한 방문.
중년의 나이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크고 무겁게 느껴지는 그 문의 모습에 미하엘이 잠시 숨을 가다듬다가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가주님. 미하엘입니다.”
“들어와라.”
허가를 받은 미하엘은 그대로 조심스레 문을 열며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붉은 카펫이 깔린 내부. 고급스러운 가구와 장식품들로 꾸며져 화려하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집무실의 풍경에 미하엘이 곧장 그 주인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의자의 등받이뿐.
자신이 들어왔음에도 보지도 않는 그 모습에 미하엘은 가슴 깊은 곳에서 서늘함을 느끼며 깍듯이 이야기했다.
“무슨 일로 부르셨는지…….”
“네가 말해보거라.”
목이 옥죄어오는 느낌에 미하엘이 식은땀을 흘렸다. 무슨 이유로 자신을 불렀는가.
그 가능성이 수없이 많았지만, 자신에게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가주의 모습에 미하엘은 금방 그 답을 알아차리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제 징계를 논의하기 위해 부르셨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 말할 필요는 없어졌군.”
미하엘의 추측에 담담히 수긍하며 가주, 막스 바르무트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습격에 대해서 뭐라 할 생각은 없다. 주체는 어디까지나 만마전과 주시자였으니. 이번 실패는 그 녀석들이 무능력했거나, 아니면 승천제가 그만큼 뛰어났다는 거겠지.”
“…….”
“하지만 내가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건…… 어째서 비에르를 그렇게 보냈냐는 것이다.”
무미건조한 목소리에서 은은하게 묻어나오는 분노. 가주이자 아버지의 분노에 미하엘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더니 재빠르게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부디 한 번만 용서를……!”
미하엘의 애원에 잠시간 침묵이 흘렀고 이내 조금 차분해진 막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비에르 그 녀석에게 들어간 시간과 돈. 그리고 재료들까지 가문의 힘이 얼마나 들어갔는지는 알고 있느냐.”
“예,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걸 그렇게밖에 써먹지 못했다면 가주의 자리를 논할 자격도 없겠지.”
막스의 이야기에 미하엘의 두 눈이 부릅떠졌지만 거기에 대해서 항의를 할 수는 없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바벨에 잠복해 있던 만마전과 주시자, 거래처들의 힘이 줄어들면서 자신들 역시 덩달아 영향력이 줄어들고 말았다.
거기에 최근에 자신이 맡았던 일들이 모조리 실패했으니 이번 결정에 항의했다가는 자리를 보전하기는커녕 ‘지하실’에 처박히게 되리라.
‘이세훈…… 그 근본도 없는 천박한 새끼 때문에…….’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나 다름없는 존재. 그 거슬리는 얼굴을 떠올리며 미하엘이 이를 갈고 있을 때.
“두 번 묻게 하는군.”
막스의 담담한 중얼거림에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마, 맞습니다! 지금 제게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
한심스럽다는 듯이 이야기한 막스가 그동안 뒤돌아 있던 의자를 돌리며 이야기했다.
“오늘부터 차기 가주는 너다. 펠릭스.”
막스의 이야기에 미하엘이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머리카락의 반이 새하얗게 새어버린 금발. 입고 있는 셔츠는 잔뜩 구겨진 데다 단추까지 풀려 있었으며 몸 곳곳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다.
경박하다 못해 천박하기 그지없는 그 모습에 미하엘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사내, 펠릭스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저한테 이렇게 기회를 다 주시고. 형님이 어지간히도 쓰레기였나 봅니다. 아버지.”
“쓸데없는 말은 필요 없다.”
단호하게 말을 잘라낸 막스가 자신의 두 아들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주시자는 당분간 상황을 살펴본다더군. 그러니 그쪽과 관련된 일은 모두 동결하고 다른 프로젝트를 먼저 준비해라.”
“다른 프로젝트라면…….”
“몽환마가 ‘증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니 우선은 그쪽으로 거래를 터라. 곧 다가올 흐름을 생각하면 나쁘진 않겠지.”
막스의 이야기에 미하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몽환마가 오래전부터 진행해 온 장기 프로젝트인 ‘증축’.
그것을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다는 것은 환락가 전체가 움직인다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거래처들도 많을 테니 뒤처지지 않게 적극적으로 움직여라. 그리고.”
잠시 말을 끊은 막스가 냉담한 눈으로 이야기했다.
“이세훈 그놈을 처리할 방법도 찾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