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53화
“내기는 제가 이긴 것 같고…… 이제 어떻게 할까요?”
으쓱거리며 자신만만하게 물어보는 이세훈.
그 모습에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힌 하선우가 천천히 대답했다.
“내기에 관한 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우선은 화살을 몇 발 더 쏴주셨으면 합니다. 예상보다 일찍…… 끝나 버리는 바람에 견본이 부족하네요.”
이세훈의 수읽기 능력이나 대응법이 훌륭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만으로 재능을 판가름하기에는 어렵다.
자존심에 상당히 상처가 났을 텐데도 예의 바르게 이야기하는 하선우의 모습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새로운 화살을 집어 든 이세훈은 처음보다 훨씬 익숙해진 자세로 단숨에 바람의 장벽을 향해 쏘아냈다.
투웅!
장벽 안쪽에 파고들어 부드럽게 흐름을 타고 움직이는 화살.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본 하선우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가능한 건가?’
화살을 한 번 쏠 때마다 1년이 흐른 것처럼 이세훈의 궁술이 능숙해진다.
처음에는 몰래 연습했었거나, 뛰어난 재능 덕분이 아닌가 싶었지만 고유스킬인 천리안으로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새로 배운다기보다는…… 떠올리는 느낌이야.’
숙련된 궁수가 수십 년 만에 활을 잡고 기억을 떠올리듯 무뎌졌던 솜씨가 횟수를 거듭할수록 날카롭게 벼려진다.
그 이질적인 광경에 하선우는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모습이 의심스러웠다.
‘단순히 스킬의 효과인 건지…… 아니면 무언가 다른 원인이 있는 건지…….’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바벨에 입학한 이후 갑작스럽게 재능을 뽐내며 무시무시한 성장을 보이는 차세대 유망주.
비정상적일 정도로 다채롭고 뛰어난 재능에 하선우가 묘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흐음.”
화살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다시금 화살통으로 손을 뻗었다.
“뭐…….”
투웅!
하선우가 놀라는 사이 두 번째 화살이 장벽을 향해 쏘아졌고 이내 흐름 속에서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1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따로따로 움직이는 화살들. 처음에는 두 개를 동시에 제어하느라 조금 흐트러졌지만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정된다.
‘이 정도면…… 30% 정도인가.’
한 발의 화살을 제어하는 데 소모되는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화살이 늘어날 때마다 가중되는 수치.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끝낸 이세훈이 다시금 새로운 화살을 집어 들었고.
“바로 갑니다.”
다시금 새로운 화살을 장벽을 향해 쏘아냈다.
투웅! 투웅! 투웅!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쏘아지는 화살. 그때마다 기존의 화살들이 흐트러졌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바로잡히며 힘차게 뻗어 나간다.
그러게 세 발로 늘었던 화살이 다섯 발이 되고, 이내 더욱더 늘어나 총 열 발의 화살로 늘었다.
후웅!
강물을 거스르는 연어 떼처럼 줄지어서 흐름을 타고 움직이는 화살들. 그 모습에 하선우는 더 놀랄 힘도 없어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사범 수준 아닌가?’
열 발의 화살 주변의 바람의 흐름을 완벽히 파악하고 그것을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움직인다.
가문의 궁도장에서도 연날리기 훈련을 저만큼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포함한 사범들밖에 없었다.
“다음은…… 안 되겠네. 지금은 이게 한계 같은데요?”
열 발의 화살을 유지하면서 여유롭게 이야기하는 이세훈. 그 모습에 하선우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 비현실적이면 도리어 현실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던가. 자신의 상상을 한참 뛰어넘은 풍경에 하선우가 뭐라고 대답을 못 하던 그때.
띠리릭!
주머니에서 울리는 알림음. 그에 하선우가 화들짝 놀라면서 재빠르게 휴대폰을 꺼내 들어 화면을 바라보았다.
[고모할머님]
상대의 이름을 확인한 하선우는 곧장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 하며 바짝 긴장한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눈앞의 아이한테…… 아니지, 그냥 스피커 모드로 바꿔라.
하백연의 이야기에 하선우가 재빠르게 휴대폰을 조작하여 주변에 목소리가 들리게끔 고쳤다.
-아아. 들리느냐?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하백연의 목소리. 어느 정도 예상한 상황이었기에 이세훈은 크게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예. 들립니다.”
-그래. 네 궁술은 잘 봤다. 생각보다 재주가 좋구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세훈의 깍듯한 대답에 하백연이 슬쩍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아까 우리 조카 손주를 박살 낸 궁술은 광수 저놈한테 배운 거냐?
“내 이름 부르지 마라.”
“…….”
자신이 언급되자 마광수가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하선우는 말없이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스스로도 부끄러운데 존경하는 집안의 어르신께 박살 났다고 평가를 받았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궁술을 따로 배운 건 아니고 잘 싸우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래? 그런 것치고는 꽁꽁 숨겨둔 기술까지…….
“딴소리하지 말고 빨리 평가나 해!”
마광수의 짜증에 하백연이 휴대폰 너머로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그래. 일단 간단하게 평가를 내리자면…… 그래.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수준이네.
“……예?”
하백연의 평가에 하선우가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사범들과 견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궁술 실력. 거기에 자신의 행동을 모조리 예상하고 반격할 정도로 보는 눈이 뛰어난데 겨우 그 정도라니?
-쯧쯧. 딱 보면 모르겠냐? 전부 요령으로 끼워 맞추기만 하고 있는데.
“요령……?”
한심하다는 듯한 하백연의 이야기에 하선우가 반사적으로 바람의 장벽 안에서 계속해서 움직이는 화살들을 바라보았다.
흐름을 따라서 절묘하게 움직이는 화살. 처음에는 모두 개별적으로 제어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보니 뭔가 연결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맨 앞의 화살로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그 뒤로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거기에 맞추고 있다고?
불규칙적으로 변화하는 바람의 장벽 속에 약간의 변화를 가해 규칙성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대응해서 화살을 제어해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궁술 그 자체가 뛰어나다기보다는 연날리기라는 훈련‘만’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는 방법. 그 모습에 하선우가 자신도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진짜…….”
이걸 단숨에 못 알아본 자신의 부족함을 탓해야 할지, 아니면 자신의 눈조차 속인 이세훈의 실력을 칭찬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렇게 하선우가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 하백연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뭐, 저런 요령을 펼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본은 된다는 뜻이지. 바람도 제법 읽을 줄 알고…… 활을 쏘는 것도 나쁘지 않아.
“하지만 좋지는 않다는 거군요.”
-그렇지. 근데 너도 알고 있지 않나?
저 먼 산의 정상에서 이세훈의 모습을 바라보며 하백연이 담담하게 물었다.
-네가 펼친 기술은 죄다 텅 비어 있다는 걸.
기술이 텅 비어 있다. 하백연의 평가에 이세훈이 살짝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 평가도 오랜만이네.’
회귀 전에 삼견을 비롯하여 고위 영웅들에게 지겹도록 들었던 이야기.
자신에게 전투에 재능이 없음을 깨닫게 만들었던 그 평가에 이세훈이 담담히 대답했다.
“약간 그런 느낌이기는 하지요”
-뭐, 너무 풀 죽지는 마라. 그런 상태에서 그만큼 펼쳐낼 수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재능이니까. 예를 들자면…… 어이쿠. 이건 아무래도 좀 그렇군. 그냥 못들은 걸로 해라.
난처하다는 듯 이야기한 하백연이 화제를 돌리며 다시금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무튼 평가는 그렇다는 거고 결과만 말하자면…… 합격이다.
“합격이라고 하신다면?”
-제자가 될 자격이 있다는 뜻이지.
하백연의 이야기에 어수선하던 대련장의 공기가 굳어졌고, 허탈하게 웃고 있던 하선우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제, 제자 말씀이십니까?”
세간에 하백연에게 가르침을 받은 이들은 꽤 많지만, 그중에서 자신을 원견사의 제자라고 칭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백연은 어디까지나 다른 완등자들에 비해서 가르침을 쉽게 내려줄 뿐이지 아예 제자로 거둬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궁술은 부족하지만 눈이 마음에 들어. 종류로 따지자면 선행자 그놈에게 가깝지만 가르치기 나름이겠지.
하백연의 평가에 이세훈이 살짝 의외인 표정을 지었다.
‘눈이 마음에 든다고?’
바람을 읽는 법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일까, 아니면 하선우의 행동을 꿰뚫어 보는 법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일까.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는 채점 기준에 이세훈이 고민하는 사이 하백연이 재차 물었다.
-그래서 네 생각은 어떠냐. 내가 말하기는 뭐하지만 흔한 기회는 아니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완등자 중 한 사람인 원견사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기회.
도중에 내쳐지더라도 어디 가서 받을 수 있는 가르침이 아닌 만큼 절대 손해 보는 일은 아니었다.
“으음…….”
예상치 못한 선택지에 이세훈이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때.
“안 돼!!”
옆에서 듣고 있던 마광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누구 마음대로 이놈을 제자로 들여! 절대로 안 돼!”
-네가 왜 난리야? 누가 보면 사부라도 되는 줄 알겠네…….
“저놈이 천충검을 배워갔으니 사부나 다름없지! 아무튼 절대로 안 돼! 너도 알겠냐?!”
다급한 마광수의 물음에 이세훈이 가만히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왜요?”
“……뭐?”
“교수님한테 수업을 듣고 있긴 하지만…… 그 이외에는 별다른 관계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 자식이…….”
이세훈의 단호한 대답에 마광수가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이 나이 먹고 미행까지 하면서 뒷바라지를 해줬는데 이렇게 대놓고 뒤통수를 치다니!
그 배은망덕한 모습에 마광수가 뭐라고 하려던 찰나.
“그리고 아까는 저보고 애송이라면서요? 그 정도 수준이면 없어져도 상관없는 것 아닙니까?”
이세훈의 까칠한 대답에 입이 떡 벌어졌다.
당연히 완등자라서 저쪽에 붙으려고 하는 건 줄 알았더니 설마 아까 이야기 때문에 삐져서 그랬단 말인가.
‘이런 속 좁은 놈이…….’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마광수가 당황하고 있을 때.
-하하하핫!
휴대폰 너머로 하백연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표정 한 번 걸작이구만 그래. 평소에도 그런 얼굴로 돌아다니면 참 보기 좋을 텐데 말이야.
“……닥쳐라.”
눈매를 씰룩이며 대답하는 마광수의 모습에 하백연이 또다시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뭐, 일단 당장 대답할 필요는 없으니까 한번 고민해 봐라. 네가 생각해둔 계획 같은 것도 있을 테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전까지는…… 그렇지. 선우 네가 사숙으로 모시면서 도와주면 되겠구나.
“알겠습…… 예? 사숙이요?”
하백연의 이야기에 하선우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숙이란 사부의 사제.
즉, 자신보다 웃어른으로 모셔야 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저 녀석이 내 제자가 되면 네 사부, 아버지랑 같은 항렬 아니냐. 그러면 사숙이지.
“그, 그치만…….”
-그치만?
“아무리 그래도…….”
-그래도?
“…….”
하백연의 거듭되는 되물음에 하선우가 입을 달싹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듯 대답했다.
“알겠…… 습니다.”
-좋아. 그러면 나는 저 광수 저놈이랑 할 말 있으니 너희 둘은 나가서 아까 그 내기라는 거나 해결해라.
“예, 예…….”
뚝
전화가 끊어지고 대련장에서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휴대폰을 바라보던 하선우가 천천히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사질.”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싱글벙글 웃으며 인사하는 이세훈. 그 모습에 하선우가 눈매를 파르르 떨며 한참 동안 입술을 달싹이다가 대답했다.
“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숙.”
* * *
생기가 넘치는 이세훈과 다 죽어가는 하선우가 대련장 밖으로 나간 뒤. 기다렸다는 듯이 홀로 남은 마광수의 휴대폰에 진동이 울려 퍼졌다.
“……쯧.”
그 모습을 보며 짧게 혀를 찬 마광수는 곧장 하백연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어차피 받을 거면서 뭘 그렇게 꾸물거려?
“시끄러워! 그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가볍게 살펴볼 것처럼 말해놓고 갑자기 제자라니. 하필 상대가 이세훈이라 짜증 난 것도 있었지만 마광수가 이렇게 반응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제자로 받아들일 수준은 아니었잖아.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꾼 거냐?”
서로 알고 지낸 지도 수십 년. 특히 그 대부분 시간이 전장이었던 만큼 서로의 성향이나 기술, 눈높이에 대해서는 모를 수가 없었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부족하기는 하지.
“그럼 왜 그런 건데?”
-말했잖아. 눈이 마음에 든다고.
하선우와 함께 걸어나가는 이세훈의 모습을 슬쩍 본 하백연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저 녀석. 관점이 상당히 비틀려져 있어. 시선에 약간 미래가 뒤섞여 있다고 해야 하나…… 상당히 이질적인 형태야.
“미래? 뭐 예지나 그런 종류냐?”
-그거랑은 조금 달라. 보고 있다기보다는 이미 봤다고 해야 하나…… 확실한 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해 빠진 눈은 아니라는 거지.
사물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똑같은 안법이라도 그 효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마련.
그런 부분에서 볼 때 이세훈의 관점은 충분히 갈고닦아볼 잠재력이 있었다.
-제자로 들인다고 해도 잠깐이야. 저런 이질적인 종류면 조금만 갈고닦아도 견적이 나올 테니까.
“루트비히 그놈은?”
-그놈이야 누구든 데려가서 가르치라고 난리지. 애초에 내가 지금 거기를 여유롭게 보고 있는 것만 봐도 모르겠냐?
“쯧…… 나를 그렇게 좀 도와줄 것이지…….”
혹시 완등자가 아니라고 차별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마광수가 속으로 루트비히를 욕하고 있을 때.
-그리고 나한테 배워가면 너한테도 나쁘지는 않을걸?
“뭐가?”
짜증스러운 마광수의 물음에 하백연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그 녀석. 도플갱어랑 비슷하거든.
하백연의 이야기에 마광수의 표정이 굳어졌고, 이내 휴대폰이 아니라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허튼 소리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한 차가운 눈. 그 시선을 마주 보며 하백연이 미소를 지었다.
-잘 가르치면 찾는 데 도움이 될 거야.